1957년 반우파운동의 진실을 말한다!
-‘민주운동 VS 정풍운동’으로 들끓은 한 시대를 밝혀낸 회고적 연구!
중국 대륙에는 발언을 금하고 있는 네 가지 현대사 사건이 있다. 1957년 ‘반우파운동’과 이후 일어난 ‘3년 대기근’(1959~61년), ‘문화대혁명’(1966~76년)과 1989년 ‘6.4 톈안먼사건’이 그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 일어난 앞의 세 사건은 모두 마오쩌둥의 정치적, 역사적 공과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므로 중국 내에서는 쉽사리 발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중 특히 반우파운동은 중국 국내외적인 배경하에 수많은 정적과 지식인, 학생, 민주인사, 그리고 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당한 역사적 비극의 기원이기 때문에 55년이 지난 지금도 금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지은이 첸리췬이 1990년대 말에 반우파운동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공산당에게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2002년 베이징대학 교수직에서 조기에 퇴임한 사실, 그리고 반우파운동에 관한 이 책이 대륙에서는 출간되지 못했다는 사실(2007년 홍콩에서 반우파운동 50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다)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이 책 <망각을 거부하라>(拒絶遺忘)는 중국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낸다. 1957년 반우파운동 당시 ‘사회주의적 민주’를 주장한 선각자들이 어떻게 우파로 몰려 기나긴 시간 고통받았는지를 오랫동안 감춰졌던 우파 관련 자료와 회고록 등을 정리하고 개별적인 만남 등을 통해 보완하고 연구하여, 당시의 역사적 현장으로 안내한다. 반우파운동(반우파투쟁)이란 1956년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의 일시적인 사상의 자유 속에서 반정부적 발언을 한 모든 인사들을 ‘우파’로 낙인찍어 탄압한 전제적 군중운동이다.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초법적인 힘을 지닌 공산당은 아무 죄 없는 사람들(우파로 지목된 사람의 가족, 그들과 대화한 사람)까지도 우파의 함정으로 몰았기 때문에 마오쩌둥 중심의 강력한 일당 전제정치와 통제시스템이 공고화되었다. 군중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방식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이런 방법을 보건대 반우파운동은 사실상 문화대혁명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반우파운동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 책은 두 가지 특징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그 당시 우파로 몰렸던 수많은 인사들의 주장, ‘우파정신’을 복원하는 것이다.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외친 ‘사회주의적 민주’를 정리하여 그들의 요구가 톈안먼사건의 민주화 요구로까지 계승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처로 남아 있는 중국인들의 아픈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망각하지 않는 민족’만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같은 독재자를 두 번 다시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밝히는 역사의 진실과 ‘사회주의적 민주’와 같은 정신적 유산은 현대 중국이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5.19민주운동을 말한다!-민간 이단사상의 발굴
“사상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사상이란 초월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옥, 형벌, 고통, 빈곤, 더 나아가 죽임, 이러한 것들은 사상을 억압할 수도, 속박할 수도, 금지시킬 수도 없다. 금지시키려 할수록 그것의 힘은 더욱더 강대해져서, 아무리 그것을 금지시키고 억누르고 없애 버리려 해도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발전하고, 퍼져 나가 자라날 것이다.”-리다자오李大釗(린자오林昭의 인용), 본문 487쪽.
이 책은 ‘반우파운동’을 중심으로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반우파운동 이전의 사회 분위기와 모순의 심화(특히 1부), 2. 우파인사들의 이단적 사상(특히 2부와 4부), 3. 우파로 몰린 자들의 피해와 고통(특히 3부), 4. 우파정신의 계승(5부) 등이다. 전체 내용 중 다른 무엇보다 우파인사들의 ‘정신과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반우파운동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사상의 물꼬를 튼 대표적인 인물들, 예컨대 진정한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실행하고 여러 논점과 시각을 새롭게 평가하자며 『광장』을 연 발간인들,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며 유명한 연설을 남긴 린시링(林希翎), 공산당의 문예정신을 비판했다가 반혁명분자로 수감된 후펑(胡風)의 무죄를 주장한 류치디(劉奇弟), 특정 개인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며 정신적 독립과 자유를 부르짖은 탄톈룽(譚天榮) 등 5.19민주운동의 주체들을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5.19민주운동’이란 1957년 5월 19일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민주의 벽’(학교 담장에 대자보를 붙여 민주에 관한 요구를 제기하였다)을 만든 것을 발단으로 신속하게 전국의 대학으로 퍼져 나간 학생민주운동을 가리킨다. 그들은 캠퍼스에서 대자보를 붙이거나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였고, 『홍루』와 『광장』을 비롯한 다양한 잡지 출간을 통해 문예의 부흥과 사상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나아가 스탈린주의적 교조주의에 반대하고 맑스주의의 비판 정신, 혁명적 본질을 회복하자는 강한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국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경계심을 갖고 유심히 지켜보았고, 끝내는 반우파운동을 통해 이들의 말과 행위를 일소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평생 우파 낙인을 안고 산 린자오는 당국을 향해 “계급투쟁을 명목으로 우민정책을 실행하여 정신을 기만하고 억눌러 중국 인민들을 노예화한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그녀는 1968년에 사형당했다). 70년 말 많은 우파들이 명예회복이 될 때 끝끝내 제외된 린시링은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온 관료, 간신, 국적(國賊)들이 ‘가장 혁명적인’ 좌파와 극좌파의 월계관을 쓰고 있다. 그들 대다수가 여전히 높은 지위와 많은 녹봉, 갖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당내의 관료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우파 청년들의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민주를 향한 열정은 그 당시에는 철저하게 억압받았지만, 훗날 문화대혁명 중의 이단사조로, 1974년 광저우의 민주의 벽으로, 1976년 1차 톈안먼 시위, 1989년 6.4 톈안먼 시위로 그 명맥이 이어진 ‘이단의 역사’의 기원이 되었다.
▶첸리췬 역사서술법의 특징-1957년학
이 책의 지은이 첸리췬은 이렇게 정사(正史) 서술에서 누락된 이단적 사상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한다. 위에서 발동한 운동이나 정풍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의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대(大)우파로 지목된 장보쥔(章伯鈞) 등의 민주당파와 달리 민주에 대한 열망이 새롭고 뜨거웠던 청년, 대학생들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껏 역사 연구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5.19민주운동’의 복원은 중국 현대사 연구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이 속에서 관심의 시선을 반우파운동으로 고통받은 사람들, 특히 보통 사람들의 운명, 심리, 정신에 두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에는 늘 사건만 있고 사람은 없다, 혹은 역사의 위대한 인물만 있고 보통 사람은 없으며, 집단의 정치는 있으나 개체의 영혼세계는 없다”며 지금껏 중국사 서술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평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고통스러웠던 1957년의 역사를 재생시키고 민간의 사상사를 새롭게 펼쳐 보임으로써 ‘1957년학’이라는 연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민들의 비극적 삶을 말한다!
“예전에 단테의 『신곡』을 읽었는데, 「지옥」편에서 난 이 작가가 지닌 잔혹한 상상에 놀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그래도 너그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아주 극히 평범한 고통과 처참함이 누구도 보지 못했던 지옥이라는 것을 그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루쉰(첸리췬의 인용), 본문 400쪽.
▶가정과 일상의 유린
이 책은 반우파운동으로 인해 우파로 몰린 인사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과 이와 연관된 수많은 평범한 중국인들의 억울하고 고단한 삶을 기록하고 있다. 반우파운동을 전후로 중국 사회에서는 개인 소유의 토지를 집단화하는 농업합작화와 국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공사합영 등 사회주의적 시스템이 급격히 도입되면서 국가와 인민의 이익 사이에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기업의 업무 성과가 국가의 이윤, 국가의 생산능력으로 환원되면서 상사들은 국가로부터 호평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의 월급을 비롯한 생산단가를 낮추고 이윤을 최대화하려 했다. 한 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건설사업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개인의 명예와 상급기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인민의 피땀을 먼지처럼 대합니다. 사고가 백출하고, 끊임없이 재공사를 하는데도 완공된 후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집니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다치게 했는지, 얼마나 많은 국가 재산을 낭비했는지 모릅니다!”라고 한다(54쪽).
체제 공고화 작업에 따라 공산당 간부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피해도 급증하였다. 한 공산당 간부는 버스와 항구를 장악해 폭리를 취했고, 무노임으로 사람들을 부려 자신의 저택을 지었다. 심지어는 권력의 힘으로 끊임없이 “여자를 찾아다녔고”, 현역 군인의 아내와 여성 간부까지 그의 ‘탐문’ 대상이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감히 이것을 고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다이황(戴煌)이 이와 같은 행태를 당국에 알렸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는 ‘우파’의 확증이 되어 버렸다(48쪽 이하). 이렇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권력을 소유한 당 간부들은 결혼 상대마저도 정해 줄 정도로 일상에 깊숙이 개입했다. 장셴츠(張先癡)의 기록이 이를 잘 예증한다. 모 군정대학에서 어느 소대장과 그의 대학 동기가 연애를 하면서 혼인을 준비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사령부의 나이 든 간부가 그의 약혼녀를 마음에 두어, 조직 심사를 통해 허가를 받았고, 조직은 나서서 그녀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조직에서는 “우리가 그에게 일을 줄 수 있다”고 안심시키고는 이를 “혁명을 위해 개인 이익을 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