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메소아메리카 토착 문명의 역사!!
스페인 식민시대부터 마야 사파티스타 운동까지,
메소아메리카의 찬란한 삶과 유산을 만나다!
메소아메리카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대(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북부)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올메카, 테오티우아칸, 마야, 사포테카, 아스테카 등 고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 공간이다. 다양성과 포괄성으로 특징지어지는 메소아메리카의 문화적 전통은 적어도 기원전 1000년부터 지역적?지방적 문화들의 복잡한 혼합체로 구성되어 왔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여기에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과 북미 문화가 주입됨에 따라 그 혼합과 변화는 더욱 심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소아메리카 문화 전통의 유산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특별한 문화 영역이다. 또한 메소아메리카는 생태계 다양성, 80여 개 이상의 원주민 언어, 다양한 형태의 문자 체계, 수많은 종족 집단과 종족 정체성 등에 관하여 신세계 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포괄적인 문헌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다채로운 사료는 인류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메소아메리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왔다.
『메소아메리카의 유산: 아메리카 토착 문명의 역사와 문화』는 메소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삶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메소아메리카의 변동을 서술한다. 로버트 M. 카멕, 제닌 L. 가스코, 게리 H. 고센을 필두로 열세 명의 북미 고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등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다양한 연구방법론, 풍부한 사료와 고고학적 자료 분석, 심층적인 문헌 조사, 문화기술지 사례 분석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메소아메리카의 복합적인 사회 구성과 문화적 전통을 연구한다. 스페인 접촉 이전 토착민 정착의 기원과 고대 문명들의 구조(1부), 스페인 접촉 이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메소아메리카와 원주민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혼란의 시기(2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메소아메리카의 정치개혁과 혁명운동(3부), 언어?젠더?문학?종교에서 드러나는 메소아메리카의 문화적 특성(4부)이 풍부하고 실증적인 자료와 사례들을 토대로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매우 다양한 주제들로 논의되고 있다. 문명사의 특정 단계(기원이나 스페인 정복 이전 등)에 머무르거나 부분적인 측면들(예술, 건축, 신화 등)에 한정되어 있었던 기존의 메소아메리카 연구와는 달리, 이 책은 개별적으로 묘사되던 여러 문명을 메소아메리카라는 개념으로 묶어, 문명이 특정 시기에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 상징적?물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개된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그동안 메소아메리카 연구 학계에 축적된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새롭게 부각된 쟁점과 현상을 논의하고 있는 『메소아메리카의 유산』을 통해 우리는 메소아메리카 토착민, 각 문명의 사회제도와 문화양식, 그들 상호의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는 사람들과의 변화하는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에 녹아 있는 메소아메리카의 가치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메소아메리카 토착 문명의 기원과 역사
1502년, 스페인의 제국주의 아래 아시아로의 경로 개척을 목적으로 네 번째 항해를 떠난 콜럼버스가 온두라스 해안 근방의 바히아 섬에서 인디오의 카누와 마주친 것으로 유럽과 메소아메리카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카누에 타고 있던 토착민들에게서 신선한 문화적 세련미를 느낀 콜럼버스는 카누의 선장을 배에 합류시켜 중앙아메리카 중남부를 항해했고, 이 기간 동안 이들 일행은 여정의 매 순간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적으로 세련되며, 정치적으로 강력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복잡한 정치 체계와 문화적 다양성으로 스페인인들을 감명 받게 한 메소아메리카의 수준 높은 토착 문화의 역사는 기원전 5000~3000년 사이에 속하는 고대기 거주자들의 옥수수 재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옥수수, 콩, 호박 등의 작물 재배가 이들의 생존을 뒷받침하게 되면서 점차 정주형 촌락이 형성되었고, 이는 형성기(기원전 1800년~서기 200년)와 고전기(서기 200년~800년)를 거쳐 거대 도시와 국가로 성장, 각각의 문명을 탄생케 했다. 그 가운데 올메카는 기원전 1200년대에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나타난 메소아메리카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대표적인 유물인 거대 석조 두상으로 미루어 볼 때 올메카는 이미 기념비적 조각상 제작을 가능케 할 복잡한 정치사회적 복합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태양과 달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졌던 테오티우아칸 역시 메소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명 중 하나로, 광범위한 상업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축적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해 중미 전역에 세력을 떨쳤다. 마야는 후기형성기에 태동해 고전기에 번성한 가장 잘 알려진 문명으로 농업, 의례, 공예 등 각종 사회문화가 융성했다. 특히 마야 문명은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통일된 적이 없었던 수많은 도시국가로 이루어졌으며, 이 도시국가들은 수도와 수도에 종속된 소규모 도시, 시가지, 촌락들로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12~13세기 중앙멕시코 고지대를 향해 남쪽으로 이주해 온 북부 멕시코 종족집단이 그 기원이 된 아스테카 문명은 15세기 초반에 접어들어 소규모 제국을 설립했고 그 어떤 문명에서보다 통제력이 막강한 통치 계급을 구성했다. 이들은 발달된 농업 체계와 조공 체계를 통해 각종 공예품의 생산, 교환 경제, 상업시장의 발달을 지배했으며 각 도시국가들 간의 관계를 다차원적으로 관리했다.
각 문명이 가지는 특성과 차이로 미루어 볼 때, 메소아메리카는 결코 고정되거나 정적인 하나의 문화 전통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자발적인 형성과 지속적인 변형으로서의 메소아메리카 토착 문명을 일련의 본질적인 속성이나 사상으로 단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이들이 사회적?물질적 과정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어떠한 관계를 맺어 왔는지 검토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그렇다면 스페인과의 접촉 이후, 메소아메리카가 겪어야 했던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스페인 식민시대, 그리고 그 이후의 메소아메리카
스페인 제국주의자들은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국기를 달고 항해하던 와중에 ‘새로운 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신이 자신들에게 비기독교인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할 권리를 부여함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확신 아래 3세기에 걸친 스페인의 식민제국 통치를 감내해야 했던 메소아메리카 토착민들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찾아온 극도의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폭력과 착취, 그리고 전염병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고, 신기술과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의 도입은 지방의 경제적?생태적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새로운 사회적?종교적 관습이 강요되었다. ‘엔코미엔다’(일부 토착민의 물품이나 노동력에 대한 ‘사용권’을 허가한 제도), ‘레파르티미엔토’(노예제 폐지를 보완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강제 노동력 징집, 강제 물자 배분과 다름없었던 제도), ‘콘그레가시온’(분산된 토착민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문명화’하기 위해 통제가 용이한 단일 공동체로 강제 합병시킨 제도)과 같은 정책은 물론, 복음 전도라는 미명 아래 세워진 가톨릭 교회는 메소아메리카의 토착 종교를 배척하고 식민 정책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 외에도 식민 메소아메리카의 사회 구조는 종족과 인종 범주의 위계질서에 근거했다. 스페인의 통치로 인해 스페인인, 기타 유럽인,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 메소아메리카 토착민들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혼합됨에 따라 다양한 범주의 인종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부모의 혈통에 따라(피부색에 따라) 사회적?법적 지위가 달라졌다. 이들은 ‘카스타’라는 범주 아래 정통 스페인인, 크레올(메소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스페인인), 메스티소(스페인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 물라토(스페인과 아프리카계인의 혼혈로 삼보라고도 불린다), 노예, 토착민으로 구분되었다. 곧 사회는 ‘외국인’과 그들의 후손이 권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위계질서와 마주해야 했고, 토착민들은 하위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현실에 직면했다. 이후 메소아메리카가 스페인 대륙에서 벗어나 ‘신식민지배’라고 이름 붙여진, 내부의 백인과 메스티소들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인보다 가혹한 착취를 일삼는 신식민주의자들의 공공연한 권위에 수많은 토착 집단이 대항하기 시작했고, 이는 1660년 테우안테펙 마을의 사포테카 주민 폭동, 1712년 치아파스 고지대의 종교반란인 첼탈-마야 봉기 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20세기 이후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혁명주의자들은 그들에게 남겨진 문화적 전통의 보존과 관련해 동의를 표하는 듯했지만, 근대적 민족국가를 창조한다는 목표 아래 메소아메리카 토착민들은 언제나 그들의 고려대상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멕시코에서 토착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디헤니스모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이는 토착민들을 ‘원주민’으로서보다는 ‘시민’으로서 국가 사회에 통합시키고자 하는 동화 사업일 뿐이었다. 이에 토착민들은 자체적인 종족?민족적 운동을 고수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 초칠-마야어를 사용하는 차물라 공동체의 사례가 대표적이며, 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 등 중앙아메리카 토착 메소아메리카 공동체들, 지역 내 다양한 지방 단위 토착 공동체들의 연합인 다문화주의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마야 사파티스타 운동도 멕시코 치아파스 주(州)의 마야계 원주민들에 대한 토지 분배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봉기한 반정부 원주민 투쟁의 대표적인 예이다(‘10장 마야 사파티스타 운동’ 참조).
21세기에 남겨진 메소아메리카의 유산
오늘날까지도 메소아메리카는 거대한 언어적 다양성을 보유한 지역이다. 스페인어가 지배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 약 100개의 토착 언어들이 개별 경계들 내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메소아메리카인들의 문화, 역사, 관계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소아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