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이책은인도독립의아버지인마하트마간디,그리고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와함께투쟁했지만동시에끊임없이대립각을세웠던네명의인물들(빔라오람지암베드까르,수바스찬드라보세,무함?마드알리진나,비나약다모다르사바르까르)을통해인도독립의과정과그속에서제기된쟁점들을살피는책이다.흔히인도의독립은간디가이끈비폭력저항운동이이루어낸성과이며,따라서인도독립의공은대부분간디에게있는것처럼인식되곤한다.하지만당연하게도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만큼이나열정적으로투쟁했던인물들이많았고,...
이책은인도독립의아버지인마하트마간디,그리고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와함께투쟁했지만동시에끊임없이대립각을세웠던네명의인물들(빔라오람지암베드까르,수바스찬드라보세,무함마드알리진나,비나약다모다르사바르까르)을통해인도독립의과정과그속에서제기된쟁점들을살피는책이다.흔히인도의독립은간디가이끈비폭력저항운동이이루어낸성과이며,따라서인도독립의공은대부분간디에게있는것처럼인식되곤한다.하지만당연하게도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만큼이나열정적으로투쟁했던인물들이많았고,그방향과방식은많은경우‘위대한성인’간디와는달랐다.불가촉천민문제의해법을놓고간디와맞섰던암베드까르,독립을위해서는어떠한수단이라도동원하고누구와도손을잡아야한다면서간디의비폭력투쟁에비판적이었던보세,간디와국민회의가힌두중심의국가를만들려한다며무슬림국가의분리독립을위해힘썼던진나,반대로간디가친무슬림적인태도를보인다고비판하며‘힌두스탄’(힌두의국가)건립을위해애썼으며끝내간디암살의배후로지목되기까지했던사바르까르.이네명의인물들은모두간디의위대함에존경을표하고인도독립에있어서간디가가진영향력을인정하면서도간디의‘어떤’측면에대해서는맞서고투쟁하기를멈추지않았다.현재한국
외국어대학교인도연구소연구교수로인도의식민지시기와독립과정에대해10여년간꾸준히연구를지속해온저자박금표는오랜연구의성과들을토대로이네명의인물,그리고그맞섬의대상이었던간디라는인물을통해영국에맞선인도의투쟁과독립의역사를꼼꼼하게직조해내고있다.
간디와맞섰던네명의인물들을통해
우리가몰랐던‘정치가로서의간디’를만난다!!
―논쟁과대립을통해본인도독립의역사와쟁점들!!
이책『간디와맞선사람들』은인도독립의아버지인마하트마간디,그리고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와함께투쟁했지만동시에끊임없이대립각을세웠던네명의인물들(빔라오람지암베드까르,수바르찬드라보세,무함마드알리진나,비나약다모다르사바르까르)을통해인도독립의과정과그속에서제기된쟁점들을살피는책이다.흔히인도의독립은간디가이끈비폭력저항운동이이루어낸성과이며,따라서인도독립의공은대부분간디에게있는것처럼인식되곤한다.하지만당연하게도인도의독립을위해간디만큼이나열정적으로투쟁했던인물들이많았고,그방향과방식은많은경우‘위대한성인’간디와는달랐다.
불가촉천민문제의해법을놓고간디와맞섰던암베드까
르,독립을위해서는어떠한수단이라도동원하고누구와도손을잡아야한다면서간디의비폭력투쟁에비판적이었던보세,간디와국민회의가힌두중심의국가를만들려한다며무슬림국가의분리독립을위해힘썼던진나,반대로간디가친무슬림적인태도를보인다고비판하며‘힌두스탄’(힌두의국가)건립을위해애썼으며끝내간디암살의배후로지목되기까지했던사바르까르.이네명의인물들은모두간디의위대함에존경을표하고인도독립에있어서간디가가진영향력을인정하면서도간디의‘어떤’측면에대해서는맞서고투쟁하기를멈추지않았다.현재한국외국어대학교인도연구소연구교수로인도의식민지시기와독립과정에대해10여년간꾸준히연구를지속해온저자박금표는오랜연구의성과들을토대로이네명의인물,그리고그맞섬의대상이었던간디라는인물을통해영국에맞선인도의투쟁과독립의역사를꼼꼼하게직조해내고있다.
이렇게여러인물들이구체적으로대립하고논의했던과정을살피면서저자는인도라는거대한아대륙이‘독립’이라는대의를달성하는것과함께,내부의첨예한갈등을해결해야했음을잘보여주고있다.힌두전통에서비롯된카스트제도의문제,다양한종교·민족간갈등의문제등.간디는때로는대화와청원으로,때로는기도와단식으로,때로는비폭력실천으로이렇게첨예하고종종극단적인폭력사태에이르기도하는입장차이들을한데모아나갔다.하지만이런‘마하트마’의모습은어떤이들에게는답답함으로,또어떤이들에게는또다른폭력으로비쳐지기도했다.불가촉천민의분리선거권을단식을통해막아내고,‘비폭력’과영국정부에대한청원에만몰두하는듯보이고,무슬림과정치적권력을나누고싶어하지않는듯보이면서도,종교적관용은설파하고싶어했던간디.이책을통해독자들은네개의각기다른렌즈를통해그동안위인전류의책들이소개하지못했던,‘정치가’로서의간디,‘인간’으로서의간디를새롭게만날수있을것이다.
간디의반대와거부―암베드까르와보세
▶불가촉천민분리선거제를둘러싼대립:암베드까르의경우
간디가인도인에대한차별을뼈저리게느꼈던것은아프리카에서였다.1893년영국유학을마치고변호사일을맡아남아프리카더반으로갔을때,1등칸표를가지고있었음에도불구하고유색인종이라는이유로열차에서쫓겨난것이었다.이후간디는남아
프리카의인도인차별을철폐하기위한다양한활동을벌이다가,22년후인1915년에귀국하여인도의독립운동에매진하게된다.귀국이후간디는그동안입었던양복을벗어버리고인도의전통의상인도띠를입기시작했다.이렇게해외에서인도인에대한불평등을절실하게깨달았던간디와달리,불가촉천민출신으로는처음으로미국과영국에유학하여박사학위를받은인물인암베르까르가처음으로차별을느낀것은미국이나영국이아닌바로인도에서였다.인도의촌락에서불가촉천민은저수지나우물,도로를함부로사용할수도없었고,언어와의복에서도정해진규정을따라야했다.그리고이러한규정을어길경우에는목숨을잃을정도의폭력에마주해야했다.불가촉천민에대한이런혹독한차별속에서살다가미국과영국의자유로움을경험하고돌아온암베드까르는신발과장신구가허용되지않고,옷도하체를겨우가릴정도만허용되는인도의불가촉천민차별에대한저항의식을양복과넥타이를통해드러내면서불가촉천민에대한폭력과차별을철폐하는운동에전념하게된다.
도띠와양복.입고있던옷만큼이나간디와암베드까르는인도의촌락에대해상반된시각을가지고있었다.간디는인도의전통적인촌락은스와라지(자치)를통해완전히평등하고공평한것으로복원되어야하며,이를통해인도의자치를달성할수있다고바라보았다.착취와의존성을논함에있어촌락과외부의관계를문제삼았을뿐촌락내부의문제는크게고려하지않았던것이다.하지만암베드까르는촌락이차별의온상이었으며시궁창과다름없다고주장한다.불가촉천민에게의존성과착취의문제는외국지배자와인도인사이에서발생하는것이아니라같은촌락안에서살고있는카스트힌두와불가촉천민사이에서발생한다는것이다.
이두입장의차이는1931년9월7일런던에서개최된‘2차원탁회의’에서논의된‘불가촉천민분리선거제’를둘러싸고첨예하게맞붙게된다.인도통치법의개정을논의하는3차에걸친원탁회의에암베드까르는불가촉천민의대표로참석하여그동안무슬림에게허용되어왔던분리선거제를불가촉천민에게도부여할것을주장했고,암베르까르의이런노력으로영국정부는불가촉천민에게도분리선거권을부여한다는결정을하게된다.하지만간디는원탁회의의이러한결정에죽음을불사하는단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