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마르크스주의

대안마르크스주의

$20.83
저자

자크 비데/제라르 뒤메닐

저자 : 자크 비데
파리 10대학 명예교수. 자크 비데는 철학자로서, 『자본』의 경제학, 철학, 이데올로기』(Que faire du Capital?, 1985), 『일반이론: 정치, 경제, 법에 대한 이론』(Theorie generale: theorie du droit, de l’economie et de la politique, 1999), 『『자본』의 설명과 재구성』(Explication et reconstruction du Capital , 2004), 『세계국가: 글로벌 층위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L’etatmonde: liberalisme, socialisme et communisme a l'echelle globale: refondation du marxisme, 2011) 등을 저술하였으며, 학술지 『악튀엘 마르크스』(Actuel Marx)를 편집하고 국제적 마르크스주의 학술대회인 국제마르크스회의(Congres Marx International)를 주도하였다.



  

저자 : 제라르 뒤메닐 (Gerard Dumenil)
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임 연구원. 제라르 뒤메닐은 도미니크 레비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자본의 반격》,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등을 썼고, 자크 비데와 《대안마르크스주의》를 함께 썼다.  

역자 : 김덕민
원광대학교, 아주대학교, 목원대학교 강사. 경기 변동론에 대한 시스템 동역학적 접근과 고전파-마르크스주의 및 포스트 케인지언의 시각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계량 경제학적 논의에 관심이 있다.  

출판사 서평

현대 사회 분석을 위한 마르크스 이론의 혁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 전하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미래는 어떤 이름을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그 이름은 이미 낡은 것으로 들리지만, 한때 그것은 새로운 미래의 이름이었다. 기대했던 미래는 수많은 실패로 이어졌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미래의 전달자를 자처하고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서로 함께할 수 있는 공동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사유해 왔다. 그것은 평등과 자유, 합리성의 의미가 담겨 있는 문구로부터 출발하였고,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적 지배를 통해 조롱당해 온, 그 자신이 말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탐구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소비에트 연합과 중국의 사례를 보며 역사가 다른 경로로 흘러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 실패한 것인가? 마르크스주의적 기획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마르크스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넘어 미래를 다시 새롭게 구상할 수 있을까? 질문은 여러 갈래로 길을 만들어 간다. 바로 이 물음표들에 대한 답이 그린비출판사 트랜스 소시올로지 총서 20번째 권으로 출간된 『대안마르크스주의』에서 다루는 주된 내용이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 활동해 온 프랑스 철학자 자크 비데(Jacques Bidet)와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G?rard Dum?nil)이 오랜 시간 동안 토론하며 구성한 작품이다. 특히 철학자와 경제학자의 각각 색다른 시선은 마르크스주의에 내재된 다채로운 맥락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은 앞서 던진 물음표들로부터 시작하여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살핀다. 저자들은 다양한 과정을 관통해 오는 마르크스주의를 살펴보며 일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거나, 혹은 떨쳐내야 할 해묵은 문제처럼 취급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생산관계나 계급들에 대한 명제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수정하고 재정식화하며,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한계와 공과(功過)를 분명히 한 후 새롭게 갱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단순한 낙관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현실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현대의 계급관계에 대한 분석을 마르크스주의적 틀로 새롭게 갱신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고려하는 경제학적 관점뿐만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연결된 법-정치적 관점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장과 조직만큼이나 법­정치적 관점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주장은 최종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민주주의의 주제와도 연결 지점이 있음을 밝혀 준다. 시장의 자유와 불평등만이 허락되는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이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초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뿐임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안마르크스주의의 출발
대안마르크스주의를 논의하기 전, 가장 필요한 첫번째 작업은 왜 실패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현대 사회를 계급관계로 분석했고, 계급관계의 폐지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계급관계 폐지는 문자 그대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마르크스주의에 실패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실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도 쟁점이 될 것이다.

▶ 마르크스주의의 실패
저자들은 사실상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실행된 역사적 기획이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 명백하게 실패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소비에트 연합의 비참한 결말, 중국과 제3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진적 변화, 신자유주의 체계의 확산,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던 노동조합과 정당들이 사라지는 현실까지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해 왔다고 말한다. 꾸준히 실패를 거듭해 왔던 마르크스주의가 정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좌파들이 현대 사회의 중요 쟁점들이라 할 수 있는 착취론, 페미니즘, 생태학, 대안세계화주의와 같은 중요한 이슈를 다룰 때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상황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이대로 실패한 채 끝나는 것일까?
저자들은 어떤 대안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이 순간,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마르크스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되묻는다. 우리가 ‘이윤의 논리’를 배제하고 생태적 재앙 또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제국주의’ 이해에 의거하지 않고 남반구와 북반구의 대립을 이해할 수 있을까? 포스트 식민주의적 인종주의를 마르크스 없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계급관계, 상품, 시장 같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로 분석해야 하는 현실 안에서 어떤 비판적 사상가와 활동가가 마르크스주의 없이 실천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마르크스주의의 유효함을 재확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들은 마르크스의 복귀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현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과 거리를 두고,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죽어 버린 것과 살아 있는 것을 나누며,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이제까지 마르크스주의의 자기비판은 없었다고 말하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가감 없이 진행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자체로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없었고, 이러한 사실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로 이어졌다. 대안마르크스주의는 오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이 끝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혁신적 이론이다.

▶ 동맹에 대한 새로운 이해

대안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출발점 중 하나인 ‘동맹’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며, 또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맹은 마르크스적 기획을 새롭게 꾸려 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하나의 축이다. 우선은 ‘동맹’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철학자인 자크 비데는 자신의 틀인 현대성(자유, 평등과 합리성) 이론의 관점에서 동일한 지배계급의 두 축으로서 시장과 조직을 말한다. 하지만 이 두 축은 상호보완적(정치, 경제) 관점에 있기도 하지만, 적대적이기도 하다. 이 경우 지배계급은 하나가 된다. 물론 조직 극에 있는 지배세력과의 동맹을 통해, 시장 극을 매개로 하는 지배계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비데의 이런 논리에 대해 뒤메닐은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는 세 개의 계급을 말한다. 민중계급과 그에 대응하는 관리자계급, 자본가계급이 있다. 이 책에서는 비데적 의미의 근본계급 또는 뒤메닐적 의미의 민중계급이 세 개의 전선을 마주하게 된다는 식으로 합의를 이루었지만(146쪽), 이러한 타협의 내용이 과거의 오래된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이 아닌지 되물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이미 전후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이야말로 동맹의 탁월한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저자가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을 어떤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은 직원 및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중계급에 우호적인 타협과 정책으로 구성되었다(사회보장 서비스의 확대, 국유화, 의료 서비스 등). 계급대립의 상황에서 이 타협이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들은 이런 생각에 반대하며, 이 타협의 이면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은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통제가 주요 경제적 쟁점이 되었던 당시,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들 내에서 자본주의적 시장, 그리고 국가의 중앙화된 개입 사이를 할당하는 차원의 타협이었다. 결국 케인스주의적 타협뿐이라는 것이다. 이 타협은 또 다른 계급이건 또 다른 극에 준거한 지배세력의 한 세력이건 간에, 타협의 주체 중 한 축을 인민의 대리자가 아닌 계급으로 명확히 규정짓고 있다. 뒤메닐이 말하는 동맹에 대한 제안은 자본주의적 소유의 진화 과정, 다시 말해 오래된 생산력과 생산관계 변용 과정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된다. 자본주의적 소유와 생산력, 생산관계라는 용어에 집중하는 것을 보며 알 수 있듯, 저자들에게 동맹은 서로의 계급적 위치를 꾸준히 발견하는, 어쩌면 이율배반적이기까지 한 동맹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동맹은 인민의 적과의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적 과정과 같이 상대방의 동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두 계급 간의 동맹은 모든 수준에서 상대의 전문가적인 능력, 인정된 지식과 사회적 코드의 전횡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동맹은 평화적인 악수가 아니다. 어려운 기획이며, 서로가 무릅써야 하는 상당한 위험이기도 하다.

▶ 정치의 위기

마르크스적인 기획을 새로이 구성하기 위해 우리가 속해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관문일 것이다. 유럽에서의 극우세력의 부상,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뿐만 아니라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 갈등까지, 세계체계 전반의 무질서 상태는 ‘정치의 위기’ 상황을 확연히 드러낸다. 특히 장 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FN)은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현 집권당인 사회주의당(PS)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이방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해 가는 프랑스 정치의 또 다른 국면을 드러낸다. 한국 역시 ‘정치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는 꾸준히 불평등이 심해졌고 노동조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되었다. 특히 금융부문에서 급격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런 변화가 발생하면서 무엇보다 소비자대출이 강화되었으며, 성장성이 아닌 수익성에 기준을 둔 투자행위가 만연하게 되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한국은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적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상시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며 노동자계급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위협이 일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정치세력은 기득권세력들의 이해관계만을 강조하며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폐해를 꾸준히 악화시켜 가고 있다. 이런 위기는 한국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