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변화 - 철학의 정원 57

고요한 변화 - 철학의 정원 57

$17.00
Description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눈에 띄지 않지만, 결국 모든 것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이끄는 지속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둔 서양 철학은 인도유럽어에 종속되어 ‘변화’나 ‘이행과정’ 자체를 사유하지 못한다. 프랑스 동양학의 권위자 프랑수아 줄리앙은 유럽 사유와 중국 사유를 맞대면시키며, 세계의 연속성을 사유하기 위해 서양 철학이 만들어 낸 ‘사건’과 ‘시간’, 나아가 ‘주체’의 개념을 제고하게 한다.

저자

프랑수아줄리앙

(FrancoisJullien)
프랑수아줄리앙(FrançoisJullien,1951년~)은현존하는프랑스철학자로서파리7대학교수,프랑스파리국제철학대학원장,프랑스중국학협회장,파리7대학현대사상연구소장,프랑스인문과학재단이타성분과장등을역임했다.줄리앙은수십여년간중국사유와서양사유를맞대면시키는작업을통해중국학의차원을뛰어넘어새로운사유를펼쳐왔다.역사,언어,개념등모든면에서서로무관하게정립된중국사유와서양사유는각각의습벽(習癖)을서로에게드러냄으로써철학을재가동시킨다.줄리앙은동서양사유의간극을통찰한수십권의작품을토대로제1철학,윤리,실존,예술,정치등철학의다양한영역에탈합치의개념을적용하고있다.현재까지50권이넘는저작이출간되었고그의사유를중심으로2020년〈탈합치연합〉이창립되어소속회원들의활발한활동이이어지고있다.서양의대다수이론가들이동양사유를제대로읽지못하고많은동양학자들은서양사유를정확히다루지못하기때문에동서양의간극과탈합치에이르는줄리앙의관점은엄밀한연구대상이되지못하고있다.그의철학은동서양양쪽이론가들에게무궁무진한영감을제공할것이다.이미그의많은저작이20여개국에서번역되었다.

목차

서문_7

1장주체/행동과다른관점:변화_17
2장변화아래에서:이행과정_27
3장눈은녹는다(또는존재를위한입장은이행과정의사유를가로막는다)_35
4장변용에시작이있는가?_49
5장이행과정또는횡단?늙음은항상이미시작되었다_59
6장반전의모습_71
7장삶의유동성(또는어떤것이어떻게이미다른것이되어있는가?)_87
8장‘시간’을발명해야했는가?_105
9장사건의신화_121
10장부족한개념:역사,전략,정치_139

옮긴이해제간극와탈합치_159
옮긴이후기_185
프랑수아줄리앙의저작_189

출판사 서평

거대한빙하의움직임처럼,
커다란사건은고요한변화에서돌출한다

별은갑작스럽게해체되지않는다─언어의장벽에가로막힌서양철학의빈틈

어느날,연인들이헤어지고별이해체되는‘사건’이일어난다.이런사건은어떤징후도없이갑작스럽게우리에게다가온다.하지만‘사건’은‘갑자기’일어나지않는다.연인사이의미묘한감정의변화나젊은항성의내부에서고요하게일어나던핵융합이,우리의눈에띄지않으면서그안에서응축된결과사건의형태로나타나는것이다.

저자인프랑수아줄리앙은서양사유의전통이이런과정을사고할기회조차갖지못했던이유를인도유럽어체계에서찾는다.필연적으로주어와술어의관계를서술해야하는인도유럽어체계하에서변화를이해하려면‘변하는어떤것’을상정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하지만변하는‘존재’가따로있는것이아니다.저자는일례로‘늙음’을제시한다.우리가‘늙음’을알아챌수있는이유는눈가의주름한줄이나흰머리한올이아니라,그사람이풍기는‘분위기’의노화다.변화가전반에걸쳐일어나기에‘사건’이라고인식되는것은결국‘분위기’가변화된결과를인식한것에불과하다.이런이해가없다면‘사건’은단절된‘어떤것’으로만이해될수밖에없다.

흰색과검은색사이에‘회색’이있다.두개의개별항사이에중간항을만들어냄으로써변화의‘과정’을설명하려한것이다.하지만‘회색’은또하나의개별항으로그지위를유지한다.과거와미래사이의‘현재’역시마찬가지다.서양사유는언어의한계속에서존재론을만들어냈고,파편적인사고를할수밖에없었다.이들은세계의연속성과유동성을설명하기위해‘시간’이라는개념을가공해내야만했다.

사건의연쇄가아니라‘이행과정’그자체인세계

서양사유의한계를뛰어넘기위해저자는중국의사유를끌어온다.중국에서는한해의흐름을봄과가을이라는두계절,춘추에의거하여파악했다.이두계절은‘지속성’의본보기다.지속성이란중국사유의핵심적인개념인‘변통’(變通)에서‘통’에해당하는성질로,‘변’과대립되어나타난다.‘변’한것은지속(‘통’)되고,지속되던것이어야변할수있으므로‘변’과‘통’은각각서로를요한다.이원리에따라연대기를정하면서,변양의양극단인여름과겨울이아니라이행과정을상징하는계절들로연대를파악하였다는점은중국사유가‘시간’과‘존재’라는서양사유전통에서비껴간다는점을뒷받침한다.서양과중국의자연관역시이런면에서차이를보인다.그리스인들이자연을운동하는물체로보고변화또한‘운동’에빗대어인식했던것과다르게,중국에서는‘음’과‘양’이라는상관요소로자연을이해했다.변통이그러했듯음양역시서로를요하며,운행의과정에서각각서로에게기운다.보름에차오른달이그믐까지서서히기우는것처럼말이다.음양은‘존재’로서의요소들이아니며,서양에서그랬듯단절을의미하지도않는다.중국에서세계는상호영향을주고받는연속성으로이루어져있다.

중국은세계를‘이행과정’그자체로이해했다.반면서양에서는세계를‘사건’의연쇄로써이해하며,하나의사건이우리눈앞에‘갑자기’돌출한다고생각해왔다.하지만‘사건’을위주로세계를단절하여생각한다면사회현상이나사건의인과를제대로분석할수없다.역사에기록되는것은‘사건’이지만전쟁을승리로이끄는힘이나,혁명세력을집결하게하고결국혁명을드러나게만드는힘은감지할수없이상황을전환시킨이행과정에있다.사건이사람들에게영향을끼치는것은그것이시대적흐름의‘방향’을틀었기때문이며,우리가눈치채기어려운‘은미한경향’을주도하기때문이다.이것은전면에드러나지않은채로사유의수면아래에서진행된다.

이렇듯고요한변화가가진힘은상류에서부터조금씩전체를변화시키는것으로,거대한‘사건’이라는결과를도출하는강력한힘이다.하지만고요한변화를따르는방법을제시하기란쉽지않다.고요한변화가“확정하고영속화할수있는공식이나고정가능한모델로환원되지않으며,여러요인의작용이시작된매변화를거쳐현재진행중인변화를새로운전환으로열어놓는”(74~75쪽)방식으로이루어지기때문이다.변화란끊임없는생성이며,따라서변화뒤에이어질“변화의변화”를예측해야고요한변화를포착할수있다.『손자병법』에서예시한,전쟁을승리로이끄는고요한변화의전략을살펴보자.“적이편안한상태로오면적을피곤하게만들기시작하라.배부른채오면배고프게만들기시작하라.결합된채오면분열시키기시작하라[…]적이자각하지도못한채그가저항할능력을상실할때까지가도록그를변화시켜라.”(151쪽)

고요한변화의통찰을통해
비로소드러나는삶과세상의모습

세계를사건의연속으로생각할때에는세계가운행되는과정을파악하지못하기때문에,사회현상을제대로바라보기어렵다.전세계를충격에빠뜨렸던9·11사태역시냉전체제와소련의해체가세계화의도화선에불을붙이고,국가간갈등의힘이긴시간축적되어테러의모습으로우리눈앞에나타난것이다.‘사건’이돌출하기까지고요하게이루어진변화의미세한징조들을파악하지못하면사회현상의원인을파편화하여이해하는실수를저지르게된다.상류에서부터일어나는변천에대해큰경각심을가지고탐색해야사회가대면한변화의국면을예측하고그것을가시의차원으로끌어올릴수있다.

한국은근대에이르기까지동양의사유,즉음양의조화라는방식으로사고해왔다.그러나세계대전이후급격하게서구문물이유입되고서양식교육과정에따르게되면서사고방식역시서구화되었다.그결과삶의대부분의영역이사건위주로재단되고,하루의여러부분까지도단절된사건의연쇄처럼생각된다.자연히한국에서벌어지는다양한사회현상도이해하기어려워졌다.한국역시‘존재’와‘주체’의관성에종속된서구의관점에서벗어나‘고요한변화의지혜’를받아들일때,우리사회와세계를온전히이해할수있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