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과들뢰즈의조우
의미를생성하는‘무-의미’에대하여
일상어에서차이그자체를추구한선불교의
역설의언어,차이의언어들
아비달마,중관,유식,인명등인도불교를오래연구해온필자는자신이중국불교의한줄기인선불교의공안집公案集(화두집)『무문관』無門關에이끌린이유를모든공안집의공안(화두)이담고있는,차이의언어인활구活句때문이었을것이라고말한다.
인도불교든선,화엄,천태같은중국불교든모든유형의불교는붓다의말씀이시사하는차이그자체를전개하는쪽으로흘러왔다.동일성에기반하는모든철학을타파하기위해불교는테라바다불교든대승불교든인도,티베트,몽골,중국,한국,일본등북방의나라들에서,태국,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스리랑카등남방의나라들에서차이그자체를드러내보이고자부단히노력해왔다.
그런데이모든나라,이모든불교중에서언어철학의관점에서볼때유난히두드러지는불교가있었으니,그것은바로이땅한국에있는,우리가선禪이라는이름으로자주맞이하는불교이다.모든유형의불교가차이그자체를지향해왔지만,일상어에서차이그자체를추구하고발견한불교는선불교가유일하다.선불교의언어들은일상어의사구와활구로이루어져있는데,이중활구는역설의언어,차이의언어이기때문이다.
1,700공안의요체를담고있는『무문관』48칙공안
그리고“무”자공안의위력을섬세하게탐구하다!
『무문관을사색하다』는남송南宋시대의선승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가지은『무문관』의본칙,평창,송을해독하고해석한책이다.『무문관』은같은이름으로된영화가나오고,수행처가생길정도로유명한공안집이다.무문관이세간에영화,수행처,화두집가운데어떤이름으로알려져있든그주위에는『무문관』제1칙「조주구자」공안의“무”가맴돌고있다.
한국,일본,대만,중국등동아시아4개국의선원에서불교수행자들이간화선看話禪수행을할때주로드는공안,혹은가장먼저드는공안은아마도이“무”자공안일것이다.무문혜개역시수년간“무”자공안을들다가깨달음을얻었다고하니이공안의위력은정말대단하다할것이다.『무문관』48칙공안은이른바‘1,700공안’의요체를담고있고,또이48칙공안은“무”자공안으로향한다고할수있다.『무문관을사색하다』는“무”자공안을위시한『무문관』48칙의위력이어디에서비롯되는가를탐구한다.
오늘날의일상어와철학어로해석된『무문관』
공안집(화두집)에는풀어야할문제로제시된공안인본칙本則(고칙古則)은물론본칙을비평하고해석하는평창評唱,그리고본칙의요체를읊는송頌이있다.다른공안집과마찬가지로『무문관』역시당송대의속어로이루어져있다.이책에서필자는『무문관』의본칙,평창,송을오늘날의일상어와철학어로해독하고해석해보려노력했다.오늘날의우리일상어에는의식,무의식,감각,지각,영혼,정신,물질,물체등철학언어가잔뜩들어와있다.일상어로쓸때이런용어는의미의경계가불분명할때가많다.그래서특정철학자의용어를써서이런일상어의의미를정확히규정할필요가있는데,그에따라필자가택한철학자는프랑스의현대철학자질들뢰즈(GilleDeleuze;1925~1995)이다.
들뢰즈의철학을“차이의철학”이라부르는데서알수있듯이,들뢰즈는붓다가이미2500여년전자신의전사상체계에서일관되게적용한해체의방법에토대를이루는차이개념을훌륭하게전개하고있다.인도전통철학의이슈와라와아뜨만의동일성을비판하는붓다의사상은서양전통철학의신과자아의동일성을비판하는하이데거의차이개념을완성한들뢰즈의철학에잘계승되어있다.
의미의결여가아니라생성을뜻하는‘무-의미’
공안해독과정에서들뢰즈의용어를더잘이해하게된다!
필자는『무문관』의공안들을해독하고해석하면서들뢰즈의여러용어를사용하는데,그중독자들이이책에서가장많이접하게될용어는무-의미non-sense이다.이무-의미는들뢰즈가특히『의미의논리』에서자주언급한그무-의미이다.이무-의미를일상에서흔히쓰는말‘무의미하다’의무의미와혼동하면안된다.‘무-의미’는의미를결여함을뜻하지않고,오히려의미를생성하게함을뜻하기때문이다.
선불교의활구活句는무-의미의활구와의미의활구,이렇게둘로나뉜다.『무문관』의공안들은곧바로무-의미로향하는경우가많지만,의미를거쳐가는때도종종있다.이의미sense역시활구이다.들뢰즈의“의미”는의미/사건으로표현되는데서알수있듯순수생성purebecoming의사건이기때문이다.
들뢰즈의핵심용어인무-의미,의미,현시작용manifestation,지시작용designation,함의작용signification,사건event,사건그자체Event,순수차이puredifference,순수생성등공안을해독하는데동원되는이들용어를숙지한다고해서『무문관』의공안을모두정확히해독할수있는것은아니다.이용어들을숙지하고공안을대한다면공안을해독하는데는분명히도움이될터이지만,공안을해독해가는과정그자체는들뢰즈의용어를숙지하는일과는다르다.
공안을있는그대로해독해가는과정에서들뢰즈의용어를더잘이해하게된다는것이오히려정확한말일것이다.그러므로공안에등장하는인물들이하는말을주의해서듣고,분별을해체하며무분별로넘어가는과정을조심스럽게한단어한단어한문장한문장톺아보아야한다.
모든화두는,『무문관』제1칙조주의“무”로귀결된다하더라도,“무”로귀결되는과정이라는제각각의성격을지니고있다.그러므로화두를풀때“무”로귀결되는그과정을잘살펴보아야한다.공안을해독해가는이과정은우리의마음을닦아가는수행의과정이기도하다.
화두를푸는과정은정견(正見)의과정
스스로해독하는동안깨달음의힘을얻는다!
『무문관』을접했을때필자는평창과송을참고하지않고우선은스스로본칙을해독해보려고노력했다.이를통해나름의독특한해독을얻기도했으나미심쩍다고여겨지는본칙이있을때는무문의평창과송을통해확실한해독을얻었다.그럼으로써이미명확하게파악했다고여긴본칙이라할지라도더충실한해독을얻을수있었다.이처럼『무문관』화두들에대한필자의해독은무문의평창과송까지화두로보고얻은결과이다.그렇다면필자는48칙을해독한것이아니라,48곱하기3해서144칙의공안을해독하고해석한셈이다.
필자는자신이비록무문의인도를받았다하더라도,무문의평창과송을그릇되게또는애매하게해독했을수도있기에,필자의해독을읽기전에먼저『무문관』의본칙과평창과송을스스로해독해보라고권한다.화두를잡고풀어가는과정은정견正見(올바른사유)을얻는과정이므로화두를푸는만큼깨달음의힘을얻는다.이런과정과결과가가능한것은,화두가선불교의위대한선언인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의활구를중심으로이루어져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