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왜우울한가?우리는왜불안한가?
임상·상담심리학박사인변지영이블랑코·시몽동과함께그물음에대한답을찾아나선다.작가이기도한변지영은가볍고경쾌한에세이적글쓰기로심리학과철학을자유자재로넘나들면서인간존재의무한함과가능성에대해새로운통찰을보여준다.
“우리존재한가운데에는무한의바다가출렁이고있다.”
무한으로이해하는무의식,관계,그리고존재
이책은“무한”이라는개념을통해인간존재의본질을탐구하는심리학적,철학적여정을안내한다.저자는이냐시오마테블랑코(IgnacioMatteBlanco,1908~1995)와질베르시몽동(GilbertSimondon,1924~1989)이라는두학자의독창적인이론을중심으로무의식과생성,그리고관계의역동성을탐구한다.두학자는각기다른분야에서활동했지만존재를움직이는동력이자근원적토대로‘무한’을주목했다는공통점을갖는다.
마테블랑코의무한
칠레의저명한정신분석학자이자정신의학자마테블랑코는프로이트가정의한무의식을넘어서‘무한집합으로서의무의식’개념을제시했다.그가말한무의식이프로이트,융의무의식과어떻게다른지간단히살펴볼필요가있다.정신분석이론에서무의식을자기만의언어와체계로설명해낸학자는프로이트,융,마테블랑코세사람정도다.
프로이트의이론에서무의식은억압된생각,감정,욕망등이저장된,철저히개인적인영역에해당한다.그는의식적으로받아들일수없거나불편한내용들이무의식에억압되어있으며,이러한무의식적내용들은꿈,말실수,행동,신체증상등을통해나타날수있다고보았다.프로이트에게무의식은의식화해야하는,이겨내야하는어둠의영역인것이다.
분석심리학의창시자융은프로이트의무의식개념을인정하면서도그것이전부가아님을알고있었다.융은무의식을더포괄적이고심오한개념으로확장시키기위해개인무의식과집단무의식으로나누어설명했다.집단무의식은개인을넘어서인류전체가공유하는무의식적인정신구조를의미한다.융에따르면,집단무의식은인류의진화과정에서형성된경험과기억들이축적된영역이며원형(archetypes)이라불리는보편적인심상과상징들을포함한다.이원형들은인간의꿈,신화,종교적상징에서나타나며,모든인류가공유하는무의식적인패턴으로작용한다.
한편마테블랑코는의식과무의식의구조를이해하기위해수학적접근이필요하다고보았다.그는무의식이비합리적이거나혼돈스럽다는일반적인인식에서벗어나,무의식이일정한패턴과규칙을따르는체계적성질을지니고있다고설명했다.꿈이나적극적상상등무의식과의만남을통해인간이성장하고자기실현을이룰수있다고보았던융과는달리,마테블랑코는무의식을직접적으로만나거나알수있는방법은없다고보았다.그의설명에따르면,무의식은우리의일상적인논리와는다른방식으로작동하기때문에이를직접경험하거나알아내는것은불가능하다.다만의식에드러난영향과표현을통해일부를짐작할뿐이다.즉,마테블랑코는무의식이인간정신의본질적인부분이지만,무의식을직접대면할수는없다고본것이다.
블랑코는의식으로알아낼수없는영역,하지만우리를끊임없이혼란에빠뜨리는무의식을우리존재의본질이라보았다.득도한수행자와정신분열환자에게는큰공통점이있다.자기와타인사이의경계가사라지는경험을한다는것이다.이둘은어떻게다를까?그는이것을매우체계적인방식으로설명해낸다.수학적논리로우리의무의식을분석하고풀어내는데평생을바쳤던마테블랑코는,철저히무의식을위한,무의식을향한,무의식중심의논리를펼친다.왜우리정신세계가대체로무의식적일수밖에없는지,꿈에는왜시간이없는지,해묵은감정은왜수십년이지나도지금일어난것처럼생생하게느껴지는지를하나의이론으로설명할수있는정신분석가가과연있을까?마테블랑코가유일할것이다.그의무의식이론은인간의내면을이해하는데있어더깊고체계적인통찰을제공했다는평가를받는다.
질베르시몽동의무한
한편질베르시몽동(GilbertSimondon)은20세기프랑스의철학자로,질들뢰즈,브뤼노라투르,베르나르스티글러에게영감을준개체화론의창시자로유명하며기술철학에서중요한위치를차지하는사상가다.시몽동이평생품었던화두는‘어떻게지금과같은존재자들이생겨났는가?’였고,그가도달한대답은‘관계’였다.“관계로서의존재는최초의것이며원리로간주되어야한다”는시몽동의철학세계를한마디로압축하면생성을실체와동등한반열에올려놓은관계의존재론,생성의존재론이라할수있다.그리고이논리를가능하게하는핵심개념이전개체성이다.
시몽동은존재를고정된실체로보지않고,끊임없이변화하고관계맺으며개체화되는과정으로이해했다.그는모든생성이아페이론,즉전개체성으로부터출발한다고보았다.이는단순한잠재력이나가능성의상태가아니라,개체화가일어나기이전의잠재적무한의상태로,새로운존재가관계를통해형성될수있도록하는원천이다.이전개체성은한정되지않은,끝없는가능성을포함한무한한근원으로서인간과세계의생성과정을이끈다.
그는개체가단순히고정된존재가아니라,전개체성에서시작해끊임없이변화하고발전하는존재라고보았다.우리안에아직정해지지않은,규정되지않은전개체성이우리를끝없이관계로나아가게하고새로운가능성을만들어내도록촉진하는힘이다.끊임없이무한을향해나아가는힘이우리내부에이미들어있는것이다.우리안의무한이우리를끝없이관계로나아가게한다.시몽동의이론을한줄로표현하자면,세상에무언가새로운것이만들어졌을때그것은‘무한’이착수한일을‘관계’가마감한결과물이라고할수있다.아이가청소년이되고어른이되어엄마,혹은아빠가되고회사원이되거나예술가가될수있는것은우리안의전개체성,곧무한덕분이다.
시몽동의개체화론은인간이단순히고정된존재로서주어진환경에적응하는것이아니라,무한한잠재력을지닌존재로서환경과상호작용하며자신을창조적으로형성해나가는과정임을강조한다.이무한한전개체성은우리로하여금계속해서새로운관계와생성을추구하게하는근원적인힘이다.시몽동의사유는인간존재의무한한가능성과역동성을철학적으로탐구하며,전통적인존재론을넘어“생성,변화,관계맺음”의철학을발전시켰다.이를통해그는인간과세계의근본적인구조를이해하고자했으며,현대철학에중요한기여를했다.
무한의인식론×무한의존재론
이책은마테블랑코의‘무한의인식론’과시몽동의‘무한의존재론’을통해인간의내면과관계맺음,그리고새로운가능성의탄생을조망한다.두학자는아주다른분야에서,매우개성강한이론을제각기펼쳤지만수렴하는지점이있다.바로‘무한’이다.무의식을탐구한마테블랑코의이론이‘무한의인식론’이라면,생성의관계론을펼친시몽동의개체화론은‘무한의존재론’이라할수있다.이들의논리를따라가다보면,우리존재의한가운데무한의바다가출렁이고있음을실감하게된다.
자기안의무한을깨달을때우리는유한자(필멸자)의한계와니힐리즘을극복하고약동하는삶을살수있다.우리가무한을깨닫는순간은과거나미래가아니라현재다.우리는지금-여기에서특이적존재가됨으로써“흔한일부”가아니라“유일한전부”가될수있다.
생명은문제다.우리는언제나자신을문제삼는다.그이유는자신안에양립불가능한채로남아있는모순들,긴장들때문이다.흥미롭게도이러한문제는자신안에서해결하는것이불가능하다.자신을문제삼는활동은자신을넘어관계로나아가게한다.
새로운무언가가되기위해관계가있다.관계가무의식적이고감정을일으키는것은이때문이다.예측가능하고통제가능한의식이하는일이아니라우리안의무한이자무의식,전개체성이하는일이다.우리안의무한은관계와생성을포기하는법이없다.
통제와질서에익숙한현대인에게이책은우리존재가무한한가능성을지닌거대한존재임을깨닫게해주며,삶의복잡성과파편화속에서도근원적으로연결된우리자신을발견하는여정을안내한다.무의식과관계,생성에대한깊이있는사유를통해,독자들은인간존재의본질적무한함에대해새로운통찰을얻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