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새로운혁명윤리,
“폭력”은우리를주체로만든다!
모든폭력은정당화될수없는가?사회를바꾸기위해서는비폭력만이유일한해답일까?페미니스트철학자엘자도를랑의『자신을방어하기:소수자들,빼앗긴폭력을되찾다』는폭력에대한우리의통념을향해도발적인질문을던진다.엘자도를랑은『인종의매트릭스:프랑스국민의식민주의적·성적계보학』,『섹스,젠더,섹슈얼리티:페미니스트철학입문』등의저서에서미셸푸코의계보학적방법론을적극차용해소수자들의파묻혀진역사적문헌을발굴하는작업을진행해왔다.『자신을방어하기』는2018년프란츠파농상을수상한엘자도를랑의대표작으로한국에처음으로출간되는그의저서이다.엘자도를랑의제자이자국내에서페미니즘이슈가있을때마다꾸준히목소리를내온페미니스트철학자윤김지영이직접번역을맡아더욱의미가깊은이책은,이론적도약을모색하는한국사회의페미니즘에새로운사유를던져줄것이다.
빼앗긴폭력을되찾은소수자들의역사
최근몇년동안한국사회는선량한시민의모델을통해체제의변화를추구해왔다.체제에저항하는그순간에도항상올바를것,비폭력적일것,시민의식에투철한것을강박적으로요구해온것이다.이처럼소수자와비폭력,여성과평화를본질적으로동일한것으로여기는분위기아래에서,소수자의정당성은비폭력의반경안에머물때에만비로소확보가능해진다.체제를바꾸는시위역시이를진압하려는이에의해인정받을때에만정당성이확보된다는것은여전히국가가허락한운동,남성이허락한운동이라는틀에서벗어날수없음을뜻한다.그리하여소수자와폭력,여성과권력의조합은그자체로불온한것이자받아들일수없는불쾌하고도반본성적인것,뿌리깊은거부감의대상이된다.소수자들이‘더이상이렇게는못살겠다!’를외치며거리에서시위할때에,한국사회는너무도쉽게이러한소수자의분노를폭력적이며반사회적인행동으로낙인찍는다.반대로다수자들이여성에대한폭력(디지털성범죄,직장내성폭력,친밀한관계에서의성폭력)을너무도반복적인일상의원리로가동시킬때에,이것은폭력이아닌관습과체제가되어이에대한분노조차질식시킨다.
이러한상황에서『자신을방어하기』는이사회의소수자들에게허용되지않아온폭력의활용문제를적극적으로제시한다.어떠한몸은스스로를방어하며다른몸을공격할수있지만,또다른몸은자기방어의권리조차빼앗김으로써권력의불평등구조가유지된다.소수자들은심리적·물리적폭력앞에서자기자신을방어할수있는개념적·실천적자원을빼앗겨왔다.착한패배자의몸을갖는것이유일한생존기술이었던것이다.그러나이책은선량하고도완전무결한약자의서사가소수자들을의식적인차원은물론무의식적인차원에서통치하는지배술임을폭로한다.우리의근육까지침투한폭력의체제는소수자들에게그저가만히제자리를지킬것을,분노의포효를그저삼켜버릴것을강제함으로써유지·강화되었다.소수자들에게스스로의근육을어떻게활용할것이며,자신의온몸을어떻게내뻗을것인지,다수자들의폭압에어떻게대항할것인지에대한상상조차비합법적인것·불가능한것으로낙인찍으면서견고한지배체제를유지해온것이다.
이책은정당방위와자기방어개념을구분한다.정당방위가사법적·합법적개념이자사회적다수자들에게접근가능한지배의기술이라면,자기방어는소수자들의대항의역사와밀접한저항의기술이다.자기방어라는대항실천의역사는다양한소수자들의역사를면면히관통하고있다.자기방어기술은식민지배상황속노예들의봉기부터참정권획득을위한서프러제트의주짓수,홀로코스트가일어나는게토내유대인들의무장봉기,흑인해방을위한블랙팬서의자기방어운동,퀴어들의자기방어정찰대,일상의여성포식구조속포식자집단에대한여성들의반격실천등에서구체적으로실현된다.이러한자기방어는다수자들에대한대항전술만이아니라,새로운자기실천의창조행위이기도하다.왜냐하면자기방어는근육의움직임으로부터출발하는가장내밀한신체적변화이자가장강렬한정치적의식화이기때문이다.자기방어는그어떠한위임이나대리행위없이스스로가자신의몸을직접적으로정치화하는계기이다.다시말해,자기방어는이세계에서살아가는법,존재하는법을제창해내는것이자자신의몸과새롭게관계맺고새로운신체도식을스스로설계해내는기획행위인것이다.
비폭력이라는덫,
포식자의세계에서탈출하라
총9개의장으로구성된이책은자기방어를전투적실천이자쟁투의철학으로구축해낸다.자기방어의문제란소수자의분노를어떻게정치화할것인가의문제이자단한번도허용되지않은폭력을여성이어떻게활용할것인가의문제이다.엘자도를랑은여성의폭력활용을통해자신의관점과감각,느끼는바,판단하는바가더이상부인과부정의대상이되지않는법을제시하고있다.즉포식자가아닌자신의관점에서재구축된세계속에전적으로새롭게도래하는여성이라는존재가지금껏간과되고무시되어왔던자신의현실에드디어밀도와두께를부여하게되는것이다.
또한이책은너무도빠르게당연시된비폭력적페미니스트윤리에문제를제기하며,지배받는자가지배하는자에대한돌봄과염려를지속적으로수행하는것이자연스런애착과관심에의한것이아닌강제에의한것임을날카로이드러낸다.이러한타인에대한지속적염려는자신이느끼는바와자신에대한관심을고갈시킴으로써가능하다는점에서자기소진적행위이다.타인에대한돌봄과염려가여성의유일한본성이자우월한가치로덕목화될때에,정작여성자신의관점과여성자신의세계는지배하는타자의세계뒤로밀려나버린다.돌봄노동의의무는타자의욕망과의도,관점에끊임없이자신을투사함으로써만지속가능한것이기때문이다.그러하기에여성은돌봄노동의무게로인하여,타자의욕망과관점을경유하지않고서는도무지자신이무엇을원하며느끼며해야하는가를알수조차없게된다.이를통해,타인에대한자기소진적돌봄과염려라는성별노동분업은여성자신의행위역량이무엇인가에대한무지를생산해내는절차이자자신의지배자에대한강박적앎을축적해내는통치기제임이입증된다.
엘자도를랑은주류적페미니스트윤리학은물론,폭력에대한통념과도대적하는가장철저한철학적사유의순간과소수자들의폭력활용을통한혁명적폭력이라는정치적결집의순간을우리에게강렬히촉구한다.이불편하고도예리한역서는우리가그토록미뤄두며직면하고싶지않았던문제들을직면하게함과동시에우리스스로를초과하게만들것이다.
본문중에서
비참함을드러내는모든자세,또는취약성을드러내는모든행위들과는별개로,로드니킹의몸은항시공격자의몸으로만간주된다.단지그는백인인종주의자들의공격판타지를양산해내는몸일뿐이다.재판장안에있는백인배심원들의눈에,그는단지폭력의행위자로비쳐질뿐이다.같은맥락에서불공정한방식으로성폭력혐의로고발당한노예의자손들,또는노예였던이들은인종분리정책의기나긴기간동안길거리에서공격당하고집이나유치장바깥으로끌려나가고문당하고처형당해야만했다.이와같은맥락에서오늘날아프리카계미국인청년이나청소년들,또는아프리카계자손들은거리한가운데에서구타당하거나살해당하고있다.(17쪽)
1916년5월8일,루시프라이어는자기집에서죽은채발견되었다.그녀의강간에대한소문은웨이코에서매우빠르게돌았으며,프라이어가에의해고용된17세농장소년인제시워싱턴이곧장의심의대상이된다.그리하여재판비슷한것이5월15일에열린다.배심원들과피고측변호사들은재판관들과마찬가지로워싱턴의유죄를모두확신하고있었기에그는사형에처해졌으며법정에출석한이들에게넘겨지고만다.법정바깥에는마을의모든유력자도끼여있던거대한군중이그를기다리고있었다.그들은이미화형대아래집결해있었다.제시워싱턴은그들에의해칼에찔리고거세당한후,두시간동안화형대위에서고문당했으며손가락과발가락도잘렸다.그의사체조각은기념품처럼팔려나갔고고문장면을담은사진은마을의관광홍보를위한경치좋은엽서형태로퍼져나갔다.(227쪽)
당신은낯선이들에의해무례하게접근당한다.“헤이베이비,멋진다리군!”“너시간있니?”“와우,너정말아름답구나!”“너의엉덩이흔들거림이좋아.”“허리가나가도록내가해줄수있는데.”이게임은단계마다선택의여지가있다.당신은언짢고다소걱정스럽게“고마워”라고하면서가던길을갈수있다.당신을괴롭힌이는당신을조용히내버려두는체하고떠나겠지만,몇초후다시당신은그를만나게될것이다.또는,당신은소총을뽑아들고그가죽을때까지방아쇠를당길수도있다.후에남자는피바다위에누워있게될것이고,이내당신에게건넨마지막문장이그의묘비명이된무덤으로바뀐다.그러나당신은아무것도얻지못한다.당신을괴롭히는사람의수는무한하기때문이다.단지거리를돌아다닐수있는가능성과당신을지속적으로무례하게접근하도록하는가능성을가지게될뿐이다.바로이것이이게임에카프카적인부조리극의국면을부여한다.(303쪽)
왜냐하면이소설은벨라에게가해진폭력이무엇인가와더불어,그녀역시이제자기차례가되어폭력을저지를수있게되었음을묘사함으로써여성들에게가해진폭력의효과들을발본적으로재의미화하기때문이다.언론인들이규정하는바와같이벨라는페미니스트연쇄살인마이자비폭력적인페미니스트윤리―페미니즘전체에너무빠르게부과된것―와전적으로단절해있다.그녀는폭력과의고유한관계성에대해질문하기위해페미니즘이그토록필요로했던바로그더러운여성주인공인것이다.우리가폭력안에서,그리고폭력과더불어할수있는것이과연무엇인가를페미니즘적으로질문하기위해반드시필요한인물이바로벨라이다.이소설에서는친절하고도유약하며취약한벨라가여성들의대의를수호하기위해유혈을즐기는판정자로극적으로변모하게되는,영웅적전환점이란없다.(3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