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배제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 양장본 Hardcover)

동화와 배제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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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국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표방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조선인의 사상·정신, 일상 생활양식, 나아가 혈통까지 일본인화할 수 있는 동화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내선결혼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제적·문화적·혈연적 경계를 흔드는 식민통치의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 민족이 다르고 식민자와 식민지민으로서 서로 지위가 다른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은 양 집단 모두에게 문화적·혈연적 혼효를 야기하고, 그 부부와 자녀를 어느 집단에 포함시킬지 혹은 배제할지를 결정해야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선결혼 정책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인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다. 일제시기 가장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던 내선결혼을 둘러싸고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들이 맞물리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해방으로 법제적 평등을 얻은 국민국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동원된 포섭과 배제의 논리들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생각할 단서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

이정선

저자이정선은서울대학교국사학과에서일제의내선결혼정책을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고,한림대학교한림과학원HK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한국사회의차이와차별문제를고민하다연구자의길에발을들여놓은후,일제시기를중심으로민족·계급·젠더등이중층적으로교차하며빚어내는역사상을그려내는데주력하고있다.「1910~23년내선결혼법제의성립과정과그의미」등내선결혼에관한연구외,「식민지조선·대만에서의‘가제도’의정착과정」,「일제시기조선총독부의조선인이름정책과이름의변화양상들」,『‘성’스러운국민』(공저)등의논저가있다.

목차

책머리에
서론
제1부1910~30년대‘내선결혼’법제의형성및운용
제1장법제상의민족구별과내선결혼문제
1.‘병합’이후조선(인)과일본(인)의구별
2.내선결혼문제의발생
3.조선총독부의내선결혼문제해결시도
제2장‘내선결혼’법제의형성과정
1.공통법의제정및민족구별원칙의결정
2.‘내선결혼’법제의정비와시행
제3장‘내선결혼’법제에의한호적이동
1.일본호적에서조선호적으로의이동
2.조선호적에서일본호적으로의이동
3.호적이동이허가되지않은관계
소결동화와구별의긴장,‘내선결혼’법제의보충과초과
제2부1910~30년대내선결혼의선전및실태
제1장조선총독부의내선결혼선전과조선인의반응
1.동화정책논란과‘내선융화’의제창
2.조선총독부의내선결혼장려론
3.조선인식자층의내선결혼반대론
제2장조선에서의내선결혼유형과추이
1.연도별·유형별추이
2.지역별·직업별추이
제3장내선결혼가정의결혼동기와생활양식
1.관공리와왕공족·귀족의정략결혼
2.경제적이해관계의합치
3.신분사기,성범죄,동지적결합
제4장내선연애·내선결혼으로인한사회문제
1.연애와결혼의불연속및변심
2.일부일처제가족제도와의충돌
3.민족차이·민족감정으로인한갈등
소결‘융화’와‘불화’의공존,내선결혼을통한동화의어려움
제3부전시체제기내선결혼정책과내선혼혈문제
제1장‘내선일체’정책에서내선결혼의위상
1.‘내선일체’의제창과적극적내선결혼장려론
2.조선총독부의소극적내선결혼장려정책
3.일본정부의내선일체옹호와내선결혼·혼혈경계
제2장내선결혼·혼혈연구와일본(인)의순일성문제
1.내선혼혈아에대한우생학적연구
2.내선일체정책의역류와일본(인)보호
제3장공통법체제의재검토와통혼장려의방기
1.호적상민족구별원칙의논리적동요
2.조선총독부의전적안과‘황민화’의조건
3.내무성의이적안과‘일본인화’의조건
소결내선결혼·혼혈의일본(인)에의역류,통혼정책의동요
결론
1.동화정책의작동방식:이념,시책과선전,현실의상호작용
2.동화정책의성격:조선인의법제적,문화적,생물학적동화
3.차이와차별:민족,계급,젠더

출판사 서평

포섭하면서배제하는,
끌어당기며경계짓는,
일제의조선인동화정책
법제적문화적생물학적동화의전략과현실의길항을살펴본다

내선결혼법제의형성과정과운용양상을밝히다

일제시기제국일본전체를아우르는법제사연구가부족한학계의현실에서,이책[동화와배제]의제1부는가족법과호적제도에대한제도사적접근의촘촘함이돋보이는주목할만한연구성과이다.1910년대한제국을병합한일제는조선인이일본인과유사한‘동문동종’임을전제로동화가가능하다고주장하고,천황이조선인과일본인을‘일시동인’함을강조했다.그러면서도조선에호적상의본적을갖는자를법제적의미의조선인으로삼아,조선민족과일본민족을구별했다.그리고다시공통법(1918)에서는조선인과일본인이혼인이나입양을통해가족이되는때는당사자일방의본적이동을허용하기로했다.그에따라,‘내선결혼’법제는개인이속한지역적을바꿀수있는유일한통로가되었다.
조선총독부는1919년3·1운동이후조선인의민심을수습하기위해내선결혼법제의정비·시행을더욱서두르고,동화의측면만부각시켰다.하지만엄연히존재하는차별을비공식화한‘내선결혼’법제는그만큼논리적·제도적으로불안정했고,일제의의도와는다른방향으로운용되었다.조선인남성가운데는일본인이되기위해‘내선결혼’법제를활용하려는사람도나타났지만‘내선결혼’의법제적장벽을가급적제거한다는입장이었던일제에게는위장결혼등탈법행위를막을방법이없었다.게다가친족입적마저지역적을변경할수있는요인이되면서이론상조선인의일본호적입적이무제한가능해졌다.일제가지역적의약점을보완하며무차별의상징으로선전한‘내선결혼’법제는사람들의행동에따라서는오히려지역적을동요시킬수도있는제도가되어간것이다.

융화와불화의공존,내선결혼에서드러난‘동화’의허구성
3·1운동이라는거대한저항에봉착하자,민족간의이해와사랑이저항을무마할방책의하나로주목되었다.조선인이마음으로부터식민지배에순종하게하는방책,즉,조선인을동화시키기위한전제가‘융화’였고,1920년대내선결혼은내선융화의상징으로급부상했다.
조선총독부는1921년‘내선결혼’법제의시행을전후하여내선결혼을양민족이서로사랑으로가정을이루는융화의결과로표상하고,사랑을연쇄시킬융화책으로서통혼을장려한다는선전을본격화했다.하지만당시자유연애와연애결혼을이상으로하는결혼관이유행하는가운데,조선인식자층은내선결혼자체를정략결혼으로보고배척했으므로조선총독부도직접적인통혼장려책을시행하지는않았다.또한내선결혼이사랑으로맺어진다는선전과달리,실제로는정략적혹은경제적동기로인한통혼도많았다.심지어성범죄나인신매매가통혼의계기가되기도했다.자유연애또는자유연애로맺어진결혼이라도반드시원만하거나영구결합하지는않았다.연애중이거나결혼한뒤에도결별하는일이드물지않았고,자유연애는오히려기혼남성의작첩·중혼이나기혼여성의간통으로발현되어일부일처제와충돌하는경우도많았다.조선총독부의내선결혼통계에는이들도민족간‘융화’의결과로집계되었지만,이러한내선융화의가정은현실에서는다양한‘불화’를수반하면서역으로내선융화의취약성을보여주었다.

내선결혼과내선혼혈에대한회의,통혼정책의동요
1930년대이후전시체제기는일제의조선인동화정책에서정신적·문화적,생물학적,법제적동화의각측면이뚜렷이구별되고,그중내선결혼과혼혈으로실현될생물학적동화에대한회의가강해지면서통혼정책이동요한시기였다.
먼저조선총독부는노동력·병력자원으로활용해야할조선인들이일본인이라는국민의식을가지고일본문화에익숙해지도록‘내선일체’,곧반도의일본화정책을추진했다.일본본토에서도재일조선인의정신적·문화적일본인화를꾀했다.하지만당시조선총독부와일본정부는내선결혼의급격한확산은바람직하지않다는인식을공유하고있었다.조선총독부가조선인의문화적동화없는내선결혼의확산이조선에서민족간‘불화’를야기하는것을경계했다면,일본정부는더나아가동화정책자체를재검토했다.내선결혼이주로하층계급의‘밀통’,사기등으로이루어져불건전할뿐아니라일반적으로조선인남성이일본인여성을내연의처나첩으로삼는등,내선일체정책이지도자여야할일본인을압박하고있다는이유에서였다.내선결혼이현실에방임된결과로통혼과혼혈이본토의문제가되자일본정부는조선인을계층,국민의식,생활양식의차원에서일본인보다열등하게보고일본(인)의순수성을지키려했다.급기야패전직전에이르러일제는병합이래유지해온내선결혼장려의슬로건마저부정하기에이르렀다.결국서구와달리일본인과조선인의‘동문동종’의유사성을전제로성립된일본의동화주의는생물학적차이보다는정신적·문화적차이를강조하면서도,서구와마찬가지로민족의혼혈을거부하고분리를추구하는방향으로나아갔다.그리고이러한흐름은패전후일본이재일조선인을포섭할여지마저부정하고,개인의의사를무시하며일본국적에서조선인을배제하는것으로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