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 | 양장본 Hardcover)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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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12년 일제는 조선민사령을 제정했지만 가족 관련 사항에 관해서는 조선의 ‘관습’에 따른다면서 관습주의를 채택했다. 일제가 조사한 조선의 ‘관습’에 따르면 여성의 이혼청구권은 허용될 수 없었다. 이혼은 처칠거·삼불출의 원칙에 따라야 하고, 이혼할 때는 부모나 호주의 동의가 필요하며, 아내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데다 협의이혼도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달랐다. 재판이혼이 각지 재판소에서 행해졌으며, 여성의 이혼 청구에 따른 이혼소송도 진행되고 있었다.

조사된 관습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나타나자 조선총독부는 마침내 조선의 이혼 관습을 거듭 확인한 뒤 이전의 입장을 번복하고 1922년 조선민사령 2차 개정을 통해 일본 민법의 의용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칠출’이라는 기존의 이혼 사유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최종적으로 일본 민법에서 규정하는 이혼 사유에 들어야만 이혼이 가능했다. 그리고 법적으로 협의이혼과 재판이혼이 인정되었다.

여성들이 종래의 칠거지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불합리한 이유로 내쫓겨도 참기만 하고,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학대와 구타를 당해도 저항하지 못하고, 남편이 축첩을 일삼아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그리하여 법정이라는 곳을 자신과 무관한 먼 곳으로 여겼다면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혼법 개정 과정을 단순히 일제의 의도로만 볼 문제가 아니며 조선 사회 내의 문제이자 젠더 문제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저자

소현숙

저자소현숙은한양대학교에서식민지시기이혼제도의변화를주제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한국근현대가족사,법사회사,일상사,사회사,젠더사,마이너리티역사를연구하고있다.현재한양대학교비교역사문화연구소HK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는『20세기여성사건사』,『일상사로보는한국근현대사―한국과독일일상사의새로운만남』,『식민지공공성실체와은유의거리』,『日韓民衆史硏究の最前線』,『‘성’스러운국민―젠더와섹슈얼리티를둘러싼근대국가의법과과학』(이상공저)가있으며,논문으로는「Collaborationauf?mininenCor?e」,「‘황국신민’으로부름받은‘집없는천사들’―역사사료로서의영화<집없는천사>」,「수절과재가사이에서―식민지시기과부담론」,「식민지시기‘불량소년’담론의형성」,「1956년가정법률상담소의설립과호주제폐지를향한기나긴여정」,「부계혈통주의와‘건전한’국민사이의균열―1950∼70년대동성동본금혼제를둘러싼법과현실」,「‘만들어진전통’으로서의동성동본금혼제와식민정치」등이있다.

목차

서론
1.이혼을통해본가족,일상,식민지근대,역사/2.연구과제/3.연구동향/4.활용자료/5.이책의구성

제1부근대적이혼제도의도입과이혼실태
제1장근대적이혼제도의도입과이혼법개정
1.조선시대의이혼제도와관행
2.일제하근대적이혼제도의도입
3.이혼법개정과여성원고
제2장이혼의실태
1.통계로본이혼의실태
2.제도적이혼의수용과비제도적이혼의양산
제3장재판이혼과이혼원인의변화
1.관습에서일본민법으로의전환과이혼원인
2.이혼청구원인의변화
3.재판이혼의판결에나타난젠더질서의변화상

제2부‘자유이혼’론의수용과이혼관의변화
제1장‘자유이혼’론의수용과이혼논쟁
1.가족개혁과‘자유이혼’론의수용
2.‘남편에대한배신’에서‘개성자각’으로
3.‘자유이혼’과이혼논쟁
제2장‘자유이혼’의현실과‘구여성’의이혼인식
1.‘자유이혼’과‘구여성’의이혼거부
2.‘구여성’의의식변화와이혼청구
제3장‘신가정’의현실과‘신여성’의이혼인식
1.‘신가정’의파탄과허영론
2.‘신여성’의이혼과여성의사회활동,가정,모성
3.여성해방론과남성책임론

제3부법정으로간여성들
제1장남편의‘외도’와아내의대응
1.간통·축첩·중혼에대한법적규제의변화와이혼
2.축첩및중혼의현실
3.이혼,부양료청구,정조유린위자료청구소송
4.정조관념의변화:‘남성의정조’와여성의‘정조권’
제2장가정내의폭력과여성의대응
1.가정폭력에대한처벌의변화와이혼
2.폭력적일상문화와가정폭력의현실
3.소송을통해본,가정폭력에대한여성의대응
4.폭력에대한사회적무관심과분열증적시선

보론:이혼이후의삶―생존과자존의길찾기
1.이혼이후의삶과젠더
2.이혼여성의생계와빈곤탈피를위한노력

결론

부록:주요법령/참고문헌/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이름없는평범한여성들이일으킨파열음
‘이혼’을통해바라본식민지일상

우리는거의모두갑남을녀,장삼이사,필부필부로오늘을살아간다.시대를거슬러올라가일제강점기식민치하에서도우리와똑같은평범한이들이일상을살아갔을터다.역사의도도한흐름속에서이름없고평범한사람들의일상은주목받기힘들다.특히식민지라는시공간이라면더욱더그럴것이다.시대적특수성때문에이시기에대한관심은일제지배정책이나민족운동에초점이맞춰질수밖에없다.그러나일상을살아가는아주평범한이들의작은목소리,작은행위가지배정책에균열을일으키고법제도의변화를가져오기도한다.
저자는근대사회로전환해간식민지하에서가족생활중변모가가장두드러졌던영역이이혼이었다고말한다.그리하여‘이혼’이라는특수한상황이자비일상을통해식민지일상을들여다본다.나아가식민지일상에큰영향을미친사회와국가의역할까지도꼼꼼히살펴본다.
사실,오늘날의시각으로보면잘이해되지않을수도있다.연간12만건의높은이혼건수를보이는한국에서‘이혼’자체는특별한일이아니고,‘이혼청구’가어려운일도아니기때문이다.그러나조선시대여성에게는이혼청구가불가능한일이었고한말에이르러서도쉽지않은일이었다.이혼현상자체는존재했지만,그것은대체로소박이나기처등남성이여성을버리는행위를일컬었다.
일제의사법권강탈이이루어지고근대적사법제도로개편해나간1910년대에이혼이급격히증가한사실도눈에띄는사실인데,소송을청구한원고의90%이상이여성이라는점또한주목할만한현상이다.그리고1914년마침내여성의이혼청구권을인정한최초의근대적판례가나온다.

이혼법정으로향한여성들,
관습법에서일본민법으로전환을이끌어내다

1912년일제는조선민사령을제정했지만가족관련사항에관해서는조선의‘관습’에따른다면서관습주의를채택했다.일제가조사한조선의‘관습’에따르면여성의이혼청구권은허용될수없었다.이혼은처칠거·삼불출의원칙에따라야하고,이혼할때는부모나호주의동의가필요하며,아내는이혼을청구할수없는데다협의이혼도인정되지않았다.그러나실제현실은달랐다.재판이혼이각지재판소에서행해졌으며,여성의이혼청구에따른이혼소송도진행되고있었다.조사된관습과현실사이에괴리가나타나자조선총독부는마침내조선의이혼관습을거듭확인한뒤이전의입장을번복하고1922년조선민사령2차개정을통해일본민법의의용을결정했다.이에따라‘칠출’이라는기존의이혼사유는인정되지않았으며,최종적으로일본민법에서규정하는이혼사유에들어야만이혼이가능했다.그리고법적으로협의이혼과재판이혼이인정되었다.
여성들이종래의칠거지악을숙명으로받아들이면서불합리한이유로내쫓겨도참기만하고,남편과시집식구들로부터학대와구타를당해도저항하지못하고,남편이축첩을일삼아도아무말하지못하고살았다면,그리하여법정이라는곳을자신과무관한먼곳으로여겼다면법제도의변화를이끌어낼수있었을까?저자는이혼법개정과정을단순히일제의의도로만볼문제가아니며조선사회내의문제이자젠더문제로파악해야할필요성을제기한다.
법정소송은이른바‘신여성’이라불리던엘리트중상층의여성만제기하지않았다.가난한하층민여성이나어린민며느리도법정소송을제기했다.1910년대소송청구자의90%이상이여성이라는사실,그것은여성이자신의권리를지키고침해된권익을보장받기위해활발히나섰다는사실을방증한다.

자유연애·결혼이몰고온사회적파장
자유이혼에따른갈등,또다른파탄

서구의자유주의사조를수용하기시작한1910년대말부터1920년대에는혼인과이혼에서자율적권리를강조하는담론이사회적으로팽배했다.조선시대이래여성의이혼청구를남편에대한배반행위로간주하던인식은이제‘개성의자각’이라고하여이혼을긍정하는분위기로바뀌었다.
그러나1920~1930년대유행한‘자유이혼’은신지식층남성의‘본처버리기’로귀결되었고,‘구여성’은이혼을강요당하는처지로내몰렸다.부모에의해강제결혼이나조혼을한신지식층남성들은‘자유연애’의붐을타고봉건적인결혼풍습을비판하면서‘자유이혼’을실행에옮겼는데,그것은종종‘기처(棄妻)’,곧아내버리기로실현되었다.조선민사령2차개정에따라법정이혼원인이명확하게규정되었기때문이기도하고,자유연애로다시결혼을했다하더라도집안의반대에부딪치면본처와의이혼이쉽지않았기때문이기도했다.
여성들은본처로서지위를지키고자신의이해를옹호하기위해다양한방식으로저항했다.특히1920년대중반이후에는남편에게부양료의책임을묻거나이혼무효소송을걸기도하고,부부확인및입적수속청구소송을제기하는등법정소송도불사했다.또반대로이혼을적극적으로받아들여남편에게위자료를청구하며이혼소송을먼저제기하기도했다.
한편,자유연애·결혼을통해‘이상적가정’을이루었다고여긴신가정에서도결혼생활의파탄은일어났다.부모로부터독립한‘개인’으로서남녀의결합을이룬결혼이지만,실제생활에서이상과현실은달랐다.여성해방을부르짖는신남성도실제가정생활에서는가부장의권력을누리려했고,아내에게복종과순종을기대했다.신지식층남성과신여성의이혼문제는결혼생활에서권력배분을둘러싼갈등구조에기반했다.

정조와폭력의경계는어디까지?
법정소송을통해새롭게규정되는남편의외도와폭력

한말에이르러축첩폐지론이등장하고1915년첩의입적신고를수리하지않음으로써법률상첩의지위는부정되었으나,이미관행화된축첩의풍습은식민지시기에도널리행해졌다.일제는본토에서와달리식민지관습을존중한다는미명하에축첩을이혼사유로인정하지않고온존시켰으며,남녀에게차별적으로적용하는간통죄로남성의혼외성(婚外性)을실질적으로문제삼지않았다.
그러나남편의축첩과사실상의중혼,간통에대한부정적인식및비판이확산되면서여성의태도에도변화가나타났다.물론남편의외도를마지못해인정해버리거나부덕(婦德)을되새기며인내하는경우도있었지만,법정소송으로나아가남편에게동거나이혼을요구하기도하고,부양의의무를주장하거나정조유린에대한위자료청구소송을제기하기도했다.사례가아주많지는않으나,흥미롭게도남편에대한아내의위자료청구소송은거의대부분원고에유리하게판결이났다.이런과정을통해남성의정조의무가강조되고여성의정조권이라는새로운시각이나타났으며,이는기존의정조관념에균열을일으켰다.
가정내폭력의심각성은당시‘사형(私刑)’이라명명된,남편이나시집식구가아내(며느리)에게자행하는가혹한폭행을통해드러난다.정신적·신체적학대와모욕은가출이나방화,자살,살해와같이극단적형태인저항을가져오기도했으나,여성들은소송을불사하면서남편과시부모의가혹행위를문제삼고이혼을제기하며법적처벌을요구하기도했다.이들이일으킨법정소송은그동안가부장에게폭넓고관대하게허용된사적인형벌권을제한하는계기가되었다.비록많은소송이취하나기각으로귀결되기도했지만,끊임없이계속된소송을통해사회적으로허용될수없는폭력의범위를재설정하는계기를마련했던것이다.

저자는이책에서다양한소송사례를분석하여제도나정책의피해자또는수혜자라는이미지프레임에갇혀있던식민지조선의여성이결코수동적인존재로만남아있지않았음을밝힌다.또한,이혼과같은제도적변화가식민지지배권력의의도나정책에따른산물이아니며,피지배민중의일상적행위및실천의상호작용속에서이루어졌음을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