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발생과정부의대응
국가폭력에의한피난과소개,생존의위협에내몰린난민들
한국에서난민은분단국가성립과정에서의이주와국가폭력에의한피난과소개로발생했다.전쟁이전제주도와여순사건지역에서는정부측이봉기를진압하고지역을장악하는과정에서지역민을소개했다.소개된사람들은난민이되었다.지역단위에서피폐한상황을해소할방안을강구하고,난민과지역민이협력하여자구책을마련했으나한국전쟁이중첩되면서복구는요원해졌다.전쟁기에는정부와유엔군이난민문제를다루었으나군사활동에방해를일으키지않는데목표를두었다.따라서그대응은난민을전황에따라적절하게배치하고통제하는것이주를이루었다.정부는난민이복귀하여영농을시작해야한다는이유때문에귀향을유도했지만서울로의이동은차단했다.난민은정부의임시적인대책으로식량등을받았으나피난과정에서정부와유엔군의부적절한대응으로생존에어려움을겪기도했다.피난생활에서는특히주거문제에서지역민의협력을필요로했다.난민이대도시에정착하고자해도정부는주택을철거하는등이를제재했다.
정착사업의기획과추진
농촌정착사업을통한난민대책은사회정책이자개발정책이었다
정부난민정책의궁극적인목적은난민상태를벗어나게하는것이었다.난민이이동하지않고일정한거주지에정착하여생업하게하는것이다.이목적을달성하기위한정책이바로정착사업이었다.난민정착사업은한국전쟁기에정부와원조기구합동으로시작되었고,1950년대후반에도원조기구가큰비중을두고지속했다.난민정착사업은구호대상자가개간·간척하여조성하는농지를토대로정착하고자립하게한다는목적으로추진되었다.이승만정부와원조기구는난민정착사업을재건과부흥을위한기초로인식하였고,지역사회개발,사회복지,주택분야를아울러가장큰규모로원조가이루어졌다.1950년대난민정책의틀은정착사업이었다.정부는최소한의비용으로난민의노력과의지에의존하여난민이구호대책에서벗어나도록하는것을지향하였다.
1960년대전반에는미개간지와갯벌을농지로만든다는사업방식은이전시기와동일하였으나정착사업의대상을난민뿐만아니라실업자,고아·부랑아등으로확대하였다.정부는통제와폭력을동원하면서사회문제시되는사람들을농촌에격리하고식량을증산할방안으로서정착사업을적극활용하였다.1960년대중반이후에는사업에서대상을지정하거나정착해야한다는목적을두지않았다.정착사업은잉여농산물을활용하여노동력을동원하고농지를확대하는근로사업으로흡수되었고,사업참여자는구호대상자전반으로확대되었다.
사업장의‘경계’와정착민의삶
생존자의구술로재현해낸정착사업장의사회사
궁극적으로난민의발생과정착문제는해방후한국사회의모순과과제들의응축이었고,그에대한난민의역동적인대응이었다.1950년대에정부는최소한의비용으로난민을농촌에서자력으로살게하기위해정착사업을적극추진하였다.난민은같은경험을한사람들과의집단거주,원조물자배급,이전보다좀더나은삶의추구등의동기로사업에참여하였다.정착민은사업장을통해작동하는정부의통치를현실에맞게활용하였다.
난민은사업장에서농지를조성하였고,분배에대한기대감을지녔다.그러나기존에소유권자가있던토지중에는난민이사업에참여하여개간을했음에도소유권이인정되지않는경우가있었다.이는사업초기에정부의토지소유관계확인이불분명했다는점,문제가발생한후에도개간·간척한사람들이아닌기존소유권자를우선했다는점,행정상착오와무책임으로정착민의요구에대응하지않았다는점때문이었다.정부는난민과구호대상자를사회문제로인식하였기때문에,정착사업으로구호를축소하고도시에서이들을배제하는것을사업의목적으로하였다.사업이후에빚어진토지소유문제나사업장의환경등사업상의문제점은당사자가해결해야했다.
난민의정착은다양한물리적,심리적어려움을극복하며가능한것이었다.농지조성을위한강도높은노동,불리한영농조건,부족한영농경험등은재이주를선택하는배경이되기도하였다.난민은전쟁,피난등과거의경험,고향에대한향수,경제적동질성으로결속력을가졌고,이웃과공동의목표를추구하거나근면한생활로삶을향상시키기도했다.또한차별과멸시를감내하고나름대로대응하며장기적으로정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