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이야기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 이야기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13.00
저자

아라사키오리테루

저자아라사키모리테루(新崎盛暉)는1936년도쿄에서태어났다.오키나와대학학장을지냈으며,현재오키나와대학명예교수로있다.1982년1평반전지주회를설립했고오키나와평화시민연락회대표간사로활동하고있다.1993년에계간지『게시가지(역풍)』를창간했고,저서로는『오키나와문제20년』(공저),『오키나와동시대사』(전10권,별권1권),『오키나와를안다일본을안다』,『오키나와현대사』등다수가있다.국내에는『오키나와이야기―일본이면서일본이아닌』,『오키나와현대사』,『오키나와―구조적차별과저항의현장』등이번역되었다.

목차

목차
한국어판서문:또하나의일본,오키나와를생각하며
증보판서문:오키나와에서강정까지,평화를위하여
머리말:일본이면서도일본이아닌오키나와
제1장오키나와는어떤곳인가
제2장오키나와의역?사와문화
제3장근대국가일본의성립과류큐처분
제4장오키나와전―대일본제국의종착역
제5장전후일본의‘번영’과오키나와분리
제6장오키나와반환과미·일안보
제7장‘일본’이된오키나와
제8장인권과평화,자립을찾아
제9장후텐마에서헤노코로
제10장‘올오키나와’의형성
제11장국가와오키나와현의대결
해설1:오키나와현대사와아라사키모리테루―어느지식인의삶과투쟁/모리요시오
해설2:그이후/모리요시오
역자후기
오키나와연표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0.6vs75
국토면적의0.6%땅에주일미군기지의75%가밀집해있는,
‘일본’의이름으로착취당하고전쟁과죽음으로내몰렸던,
그속에서변함없이인권과자립,평화와연대를꿈꾸는,
아름다?운섬오키나와와오키나와사람들의이야기
오키나와를알면일본을안다
폐번치현,메이지유신,아시아태평양전쟁,평화헌법,미일동맹까지
일본사의변곡점마다역사의소용돌이한가운데에섰던비극의섬오키나와
오키나와는‘일본이면서일본이아닌’이질성을지닌곳이다.기후가그렇고,생태가그러하며,언어...
0.6vs75
국토면적의0.6%땅에주일미군기지의75%가밀집해있는,
‘일본’의이름으로착취당하고전쟁과죽음으로내몰렸던,
그속에서변함없이인권과자립,평화와연대를꿈꾸는,
아름다운섬오키나와와오키나와사람들의이야기
오키나와를알면일본을안다
폐번치현,메이지유신,아시아태평양전쟁,평화헌법,미일동맹까지
일본사의변곡점마다역사의소용돌이한가운데에섰던비극의섬오키나와
오키나와는‘일본이면서일본이아닌’이질성을지닌곳이다.기후가그렇고,생태가그러하며,언어또한본토와비교할때매우이질적이다.그러나가장특이한점은,일본열도에서유일하게별도의‘국가’를성립시켰던역사적경험이있다는점이다.오키나와의‘류큐왕국’은중국과‘조공무역’을통해문물을들여오고무역을발전시키며동남아시아까지활발한교역관계를가지고있었다.그러나사츠마번에의해정복된이후일본사에편입된오키나와는폐번치현과메이지유신을거치며‘오키나와현’으로거듭난다.그리고본토인(야마토)에의한오키나와사람들(우치나)의착취역사도함께시작되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당시오키나와는대일본제국의전쟁기지가되었다.또한전쟁말기,미군의상륙작전에의해‘일본유일의지상전투’가벌어진땅이되고말았다.강제로주입된‘귀축미영’에대한공포이미지와천황이데올로기때문에주민들은동굴에숨어들어집단자살로생을마감했다.군인들은민간인보호는아랑곳없이‘본토결전’을준비한다는명목으로계속탈주하며전투를지속했다.그러나‘본토결전’따위는없었다.결국전쟁은원자폭탄과천황의항복선언으로끝났다.오키나와에는드디어평화가찾아왔을까?
일본군에의해만들어진오키나와섬의여러비행장들,기지설비는미군에의해접수되었다.과거청나라에류큐열도일부를팔아넘겨교역의우선권을사려했던일본정부는,이제미군에오키나와기지를넘겨주고본토의안전을보장받으려했다.미국과일본의이해관계,국제정세와미국의동아시아군사전략상이유로일본은오키나와를미군에넘겼으며,수십년이지난뒤1972년에야돌려받았다.그과정에서오키나와사람들의목소리에귀기울이는이는없었다.
오키나와를구하면일본을구할수있다
전쟁과기지의섬오키나와를평화와연대의섬으로
아베정권의재무장·헌법개정시도에맞서동아시아평화를위해싸운다
제2차세계대전이후미일관계의기본틀인미·일안보체제는일본을반공의방패로삼는것이었다.따라서냉전체제가종언을고한뒤그존재가치는완전히사라질터였다.그러나미·일양국정부는아시아지역분쟁에대비해야한다는구실로미·일안보체제를더욱긴밀하게미국의세계전략과연결시키고자했다.그럴경우세계적으로군사적긴장이고조되고,오키나와는계속그부담을떠안게될것이었다.과연그렇게되어도괜찮은가?기지를정리축소하고미·일안보체제를재검토해야한다는여론이오키나와뿐만아니라본토에서도형성되기시작했다.민중들의분노는점점더커져갔다.
전쟁과기지의시대를끝내고자하는오키나와사람들의투쟁은후텐마기지의반환을둘러싸고불이붙었다.미군은지역발전에걸림돌이되는후텐마기지를오키나와현민의요구에따라반환하기로했지만,이를대신할다른기지가필요하다며헤노코에새로운기지를만들어줄것을요구했다.일본정부는‘미일동맹’의이름으로노후한기지를최신설비의기지로바꾸어주는데흔쾌히,적극적으로동의했다.후텐마와헤노코를시작으로오키나와와일본,더나아가동아시아에서기지를정리축소시켜야한다는주민들의목소리는여전히무시당할뿐이었다.
새로운군사기지설립에반대하는목소리가보수·진보의입장차이를떠나‘올오키나와’의이름으로단결하고지사선거와주민투표등모든민주적의사결정단위에서승리했지만미국과일본정부의뜻은여전히완고하고집요했다.주민동의없이토지를점거하고,지사의승인없이기지건설공사를강행하고있다.어떤수단을사용해서라도신기지건설을강행하려는국가와이를저지하려는오키나와현의분쟁은법정으로까지번진상황이다.그런가운데오키나와의투쟁은일본을넘어서세계적으로지지와연대를확장해나가고있다.헤노코신기지건설은단순히하나의군사기지를건설하는문제가아니라,평화와민주주의,소수파자기결정권의본연의자세를묻는문제가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