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에서세계일주까지,근대조선인들의다양한여행
어디를여행하고,무엇을보고,어떻게생각했을까
‘여행’하면쳇바퀴도는일상에서벗어나어디론가떠나는것을생각하고,일탈과자유와설렘의이미지가떠오른다.실제로이책의기행문필자들가운데서도그런감정을느끼며여행을한이가있다.외국유학길에오르며여정에서느끼는온갖감상을말하는조선청년,직장에서쌓인피로를풀고자휴가여행을꿈꾸는문인노천명,자연풍광이수려한명승지를찾아떠나는단체관광객들….
여행의사전적의미는이렇다.
“일이나유람을목적으로다른고장이나외국에가는일”(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
이말은여행이업무의연장선일수도있다는의미이다.그렇다.여행이어디휴식의의미만있을까.학생들의수학여행은교육과정의연장선이고,기자의세계시찰여행은선진국의문명과문화를조사하는업무의연장선이며,문인의여행은신문사나잡지사의청탁에따른글쓰기의일환이다.
이책은근대조선의다양한여행자와여행양상,그리고그것만큼다양한여행자의시선을들여다본다.여행자는학생,기자,작가,학자,정치인등주로지식인뿐아니라일반관광객도포괄하며,여행형태는휴가여행뿐아니라업무성격의여행도포함한다.특히1920년대여학교의원족(遠足),1930년대수학여행,신혼여행,유학생이유학대상국에도착하기까지의여로,탐승단·견학단등의단체관광,신문사·잡지사기자와정치인의시찰여행등다양한여행형태를포괄한다.여행대상지는조선전지역에걸치고,만주와일본,미국,유럽까지아우른다.여행자가곳곳의여행지에서본것들은그야말로가지각색이다.수려한자연풍광,경주·부여·평양등조선의문화유적,일본과유럽등의도시문명등이다.
이책은근대조선인의여행,특히여행자의시선에초점을맞춘다.그들은각자어느위치에서있는지에따라대상을바라보는관점이달라진다.그관점과시선은제국(일본)-식민지(조선)라는정치적상황의영향때문에더욱뚜렷이부각된다.근대기행문을남긴필자,즉여행자의시선은여러가지다.주체적인시선으로,동경과선망의시선으로,일제의정치전략에포섭된시선으로,현실과의식의불일치로인한복잡한시선으로식민지조선과세계를바라보는다양한여행자에관한이야기다.
시선1:기차속여행자의시선
보는방식이바뀌면생각도달라진다
고종의특사자격으로러시아황제니콜라이2세의대관식에참석하고돌아온민영환은그여정을기록한『해천추범』에서처음타본기차에대해바람이달리고번개가치는듯하니보던것이금방지나가거의꿈속을헤매는것같다고했다.조선에아직기차가도입되기전이었으니,기껏경험해본탈것이라야가마와우마차가전부였을것이다.엄청난경이로움과신비함이었으리라.흥미로운점은그가기차를타고가면서바깥풍경을여유롭고구체적으로적은것은아주소략할뿐,거의대부분출발지와도착지중심으로지나가는모든역을좌표위의점처럼기록했다는사실이다.기차로인한사이공간의소멸이다.
최남선의「교남홍조」와「평양행」은열차기행문이라할만하다.그의글에는,기차에의해통제되지만동시에새롭게구성되는여행자의시선이잘나타나있다.객실안여행자최남선은기차의달리는속도때문에바깥에있는하나의대상을지속적으로볼수없다.객실안의공간이라고다르지않다.승객들은서로에게‘보거나’‘보이는’일방향으로만존재할뿐이다.대상으로부터소외된최남선은앞자리에앉은일본여인을두고상상의나래를펼친다.대상을보지만정작실체는없는상상속의대상인데,이는기차가만들어낸또다른시선으로서여행자의관점에서이루어지는해석이다.
시선2:소비대중의탐승적시선
시각적소비상품이된조선국토와고도(古都)
1920~1930년대는여행과관광이일반화된시기이다.3·1운동이후일제는무단통치에서문화정치로식민지정책을전환했는데,그에따라1920년대초는일본의발전된문물을시찰하게끔하려는목적의단체관광단이많이모집되었다.일본의근대화된문물시찰을통해조선관광객으로하여금일본은문명의나라라는이미지를공고화시키고자함이었다.여기에는제국과식민지를문명과야만으로이분하는제국의식민이데올로기가숨어있었다.일본을여행하는조선인관광단은제국의이데올로기에호출되면서,동시에상품을욕망하고소비하는대중으로변모해갔다.
한편,1920년대후반부터조선일보사나삼천리사등언론사중심으로자연풍광이수려한명승지나경주등고도(古都)를여행하는단체관광단이조직되었다.소비대중문화의시대로일컬어졌던만큼식민지영토도소비상품이되었다.
고적중심의경주여행에서주목해야할사실은식민지땅으로서경주의현실을볼수있는여행자의눈이가려지고,그결과터전으로서경주의설자리는잃어버린다는점이다.여행자는식민지시기경주의현실을읽어내기가어렵다.단지소재적차원에서만조선적인것을환기하거나유람도시,관광도시로서고도를시각적으로소비할뿐이다.또한일본제국의프레임에갇혀식민지의자기역사인식이라는주체적태도가자신도모르는사이에제국의포섭적전략아래이루어지고만다.
수천년전에는남부럽지않게살아심지어천문학까지도남의선도자가되었던우리가오늘에와서는모든것이남에게뒤진것뿐이다.이것이자연의원칙일까?나가자!!힘쓰자!!우리도사람인이상에야힘쓰면못할것이없겠다는생각을나혼자하면서다시걷기를시작했다.
―『근대조선의여행자들』306쪽(이소란,「경주기행문」,『청년』,1926.12)
경주수학여행기의일부분이다.저자는위수학여행기를쓴학생의“이것이자연의원칙일까?”라는표현을통해식민지화된조선의현실을부지불식간에자연의순리로받아들이고있음을포착한다.평양·경주·부여등의고도로떠나는수학여행또한일제의동화정책과무관하지않으며,역사지리에대한학습보다조선의역사공간자체를시각적으로소비하는소비문화의하나로정착되었다는것이저자의생각이다.
시선3:주체적인시선
‘제국=시찰의주체’라는도식을깨버리다
이책에는여러종류의기행문이망라되어있으며,저자는이를통해여행자의생각과시선을살펴보고분석한다.제1부~제5부까지는여행과여행자의유형에따라다양한이들의여행기가제시되어있는반면,제6부는중외일보사신문기자이정섭이중심이다.그의기행문속에드러난역사관과생각은굉장히흥미롭다.
1920년대중후반국내외적변화의흐름을타고중외일보사는세계시찰이라는목적을가지고이정섭을중국과유럽에파견했다.대외적으로일본에서는보통선거실시가가시화되고무산정당운동이진전되고있을때이며,중국에서는국민당이북벌을전개할무렵이었다.대내적으로조선에서는민족주의운동이고조되고있을때였다.이정섭은이러한시대적분위기하에시찰여행을떠났는데,대개의시찰자가제국의시선에서벗어나기힘들었던반면그는‘제국=시찰의주체’라는도식을깨고온전한시찰의주체가되었다.
이영국인은중국을개똥같이나무랍니다.말하길중국인은아편을먹는다는둥,말하길혁명군은약탈을시사한다는둥.이말을들은나는“당신은중국인이아편먹는것을말하기는좋아하면서어찌하여영국인이아편먹는것은좀말하지않는가요?나는결코중상하려고하는말이아니라19세기후반기의경제사상에일대혁명을일으킨칼맑스가쓴『자본론』제1권을읽어보시오.확실히어느주(註)에‘중국의아편을수입하여이익을보는영국은그화가자기발등에떨어졌다’라는의미의말이있을것이오.또사실상중국인이아편을먹는습관은있다할망정아편을먹여다른국민을독살하고라도황금만모으기를위주로하고인류역사상에제일부끄러운아편전쟁을한나라는어느나라인가요?1840년부터1842년간의아편전쟁을회고할때당신은부끄러운생각이없소?또혁명군이약탈한다하지만영국국민같이약탈을좋아하는국민도세계에없을것이오.만일내말이의심되거든『브리태니커백과사전』의인도라하는주를찾아보시오.저자가영국인임에도불구하고영국인은인도에서해적행위와제반약탈을마음대로하였다는말이없는가.”
―『근대조선의여행자들』468~467쪽(이정섭,「호한기행(7)」,『중외일보』,1927.2.26.)
여러나라사람이모인가운데벌어진토론에서이정섭은중국에대한영국제국주의의폭력적행태를강하게비판한다.『자본론』과『브리태니커백과서전』을끌어다가자신의논리를정연하게펼친다.그는중국여행을통해조선민족운동의방향을모색하고자했다.
「조선에서조선으로」는이정섭이중국여행을끝내고돌아와서몇달뒤다시세계일주를하고난후쓴기행문이다.그의여행지는미국,영국,아일랜드,프랑스였다.눈여겨볼지점은그가미국,영국,프랑스를보는관점이다.영국에대해서는여전히제국주의의중심으로비판적이지만,미국에대해서는영국으로부터독립을쟁취한나라라고생각하여비판의날이무뎌진다.또,한편미국의각도시와프랑스파리에서그들의문화적풍부함에대해서는호의적이다.정치와문화를양분하여생각하는태도인것이다.
제국에상당히비판적인시선을갖고있으면서도,동시에제국의문화정치적위력으로부터벗어나지못한모순!이정섭의기행문에는식민지지식인의복잡한내면과한계가잘드러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