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처칠,스탈린이만들어낸20세기의세계질서
-평화를위해치러야했던대가
이책은루스벨트가미국대통령4기취임식을끝내고크림반도의얄타로향하는과정부터시작하여얄타에서8일간에걸쳐미·영·소의정상과그참모들이치열하게벌인논의과정에초점을맞춰그려내고있다.총7부31장으로구성된내용에서마지막장은얄타회담직후루스벨트의죽음과동서진영의위기조짐,그리고포츠담회담을서술했지만,온전히얄타회담만을파고들었다고할수있다.한국인이라면20세기중반한반도의운명과관련하여너무나익숙하게들어왔음에도불구하고,구체적으로어떤협상이전개되었는지는잘모르는것이얄타회담이다.저자는기밀문서와공식회의자료및회담에참석했던사람들의일기와회고록을바탕으로얄타회담을생생히복원했다.회의장면은때론긴장감이감돌아숨막히고,때론가시돋친말이오가며,논의가안풀릴때는분위기를전환하려는모습도나타난다.상대방의관심을고려하면서밀고당기기를하는모습이흥미진진하다.저자에따르면“루스벨트,처칠,스탈린,그리고그밖의다른사람들의입에서나온말은그들이실제로얘기했을법한말을추정해쓴것”이고“모든자료를활용해이것을재구성하려고노력했다”고한다.실제로루스벨트,처칠,스탈린의대화가오가는장면은당시의녹취를풀어내기라도한듯현장감이살아있다.
유럽전장에서의승리를목전에두고있기는하지만아직달성되지않은상황에서,게다가극동쪽전쟁이계속되는상황에서세강대국의지도자는얄타에왜모였으며무슨논의를했던것일까?그들은유례가없는세계대전의참혹함을끝내는방법으로협상에따른평화를수립했다.즉,얄타회담을통해유럽역사상가장긴평화의확립에이바지한국제체제의요소를결합하는데성공했다.하지만이런식으로전쟁을끝내는데는치러야할값비싼대가가있었다.
얄타회담에서주요쟁점이된주제는다섯가지로요약할수있다.①세계평화기구,즉UN의설립과회원국자격,②유럽국경선문제,③전쟁배상금,④전쟁포로문제,⑤소련의대일전참전이다.루스벨트는자유주의적국제주의의구현이라는목표하에소련을세계평화기구에가입시키는데성공했다.그러나‘1국1표’의원칙을견지하려던UN안전보장이사회투표권에대해벨라루스와우크라이나를포함하여소련에게3표를주는협정을맺었다.(소련은3표를확보하기위해영연방이6표를갖고있다는점을강조하고미국에게도추가로2표를주는데동의한다는주장을폈다.)동유럽국경선과관련해,미국과영국은전쟁의승리에가장크게기여한소련의입장을고려하지않을수없었다.폴란드의동부영토를소련에내주고,폴란드정부구성방식에서는확실한매듭을짓지못해이후논란의불씨가되었다.미군의피해를조금이나마줄이고자루스벨트는소련을대일전에끌어들이려했고,그대가로사할린남부를할양하고만주에서소련의영향권을인정해주었다.처칠은민주적가치를신봉해왔고철저한반공산주의자이지만,얄타회담이전의모스크바회담에서발칸반도에대한영향권을두고스탈린과‘퍼센트거래’를했으며,그리스에서영국의주도권을확립하고자군대를투입시켰다.루스벨트는영국과소련의이거래에참여하지는않았지만못본척눈감았다.
정치·사회·문화가달라도상호이해에기반한다면못할일이없을거라는낙관은곧얄타정신이었고,실제로루스벨트와처칠은양보와타협으로얄타합의를도출했다.이합의에이르는과정은공개적으로선언한대서양헌장의원칙을훼손하고,서구지도자들이깊이신봉해온가치의타협이포함되는과정이었다.그에더해유럽의절반이전체주의체제에복속되는대가를치러야했다.
6년여에걸친세계대전,8일간의외교전쟁
-다른목표와이견의상충,협상의전략과기술
스탈린과루스벨트,처칠은서로상충되는목표를가지고얄타에왔다.미·영·소는나치독일을패퇴시킨다는공동의목표를갖고있었지만,그이후어떤공동의목표를가져야할것인가에대해서는각자달랐다.루스벨트는세계평화기구창설과세계경제경쟁에서미국의우위달성이라는목표를가지고있었다.처칠은점점쇠약해지는대영제국의위상을높이고유럽지역에서영향권을가지려했다.스탈린은국제적고립끝에강대국의지위를인정받고동유럽에서영향권을확대하고자했다.공동의적을무찌른다는목표에서는같지만전후세계를바라보는관점은확실히달랐다.그때문에실제전장에서는미·영·소가대연합을이루어공동의적과맞섰지만,얄타에서는연합국간에치열한외교전쟁이치러질수밖에없었다.
얄타에서는지도자개인들이갖고있는원칙과가치뿐만아니라하나의의제를놓고도서로간충돌했다.루스벨트와처칠은의회에서쌓은경험을통해노련한토론의대가이지만,스탈린역시현실정치의베테랑으로서회담분위기를쥐락펴락했다.
얄타회담에미국,영국,소련의지도자들이모였기때문에,그외향적구성만보고우리는흔히루스벨트와처칠이라는두서방지도자가한팀을이루어소련의스탈린에맞서는토론을벌이지않았을까생각하게된다.그러나당시루스벨트는세계평화기구의창설및유럽·태평양에서군사적승리를염두에두면서유럽문제를부차적관심사항으로두었기에스탈린을경쟁자라기보다잠재적우방으로여겼고,처칠은무엇보다지중해의통제권을영국이장악하길원하고동유럽의독립이영국의안보에중요하다고여겼기에스탈린을경쟁자이자잠재적인적으로보았다.이때문에회담에서협상의제에따라미국과영국은같은입장을취하기도했지만,서로갈등하면서소련측의입장을지지하기도했다.
루스벨트는‘재판관’의역할을맡으며상충하는의견을조정하려했고,처칠은노벨문학상수상자답게문학적인용을해가면서자신의의견을주장했고(얄타회담의작전명‘아르고호’도처칠이제안했다),스탈린은두국가에심어놓은스파이를통해얻은정보를가지고여유를부리며회담에임하다가도자신의주장을강하게내세울때는의자에서일어나걸어다니며연기를하듯이웅변하는모습을보였다.루스벨트,처칠,스탈린은공식회담중에각기별도로사전미팅을갖기도하고,개별적으로편지를보내의견을개진하고상대방을설득하기도했다.얄타회담이라는거대한외교전쟁속에세강대국의지도자는개별사안에서외교전투를치렀다.
정치·군사·외교논쟁을넘어인간사를아우르는이야기
-인과관계적사건서술,회담의이면,개인들의풍부한에피소드
저자는얄타회담을냉전이라는역사적·지적맥락에서끄집어내야얄타가역사에서제대로위치를잡는데도움이된다고말한다.그에따르면냉전은적어도서방측에서는크림반도에발을들여놓은적이없는여러개인들이내린결정에의해나중에시작되었다.얄타회담의참석자들은이회담이끝이아니라생각했고,평화협상은계속될거라고여겼다.이점을염두에두고얄타회담을들여다보아야한다.그래야만회담에임했던사람들의희망과실망,기대와포기,신뢰와불신,원칙과타협을제대로볼수있다.
이책을흥미롭게읽을수있는까닭은바로그와같은회담참가자들의기대와실망의바탕이되는동기,사고,행동에대한묘사가매우뛰어나기때문이다.얄타에서는군사작전뿐아니라유럽국경선획정을포함한미래지정학의문제등복잡한주제가논의되었다.자칫어렵게느껴질만한주제이지만,저자는회담에서논의된이야기자체에만치중하지않고그논의의배경이되는과거사건까지거슬러올라가설명하는방식을취한다.또한각인물들의면면을세세히그려낸다.
서방측군사령관들에게좋은인상과신뢰를심어준소련공군부사령관세르게이후댜코프가스탈린의눈밖에나서얄타회담1년뒤총살을당한사건,내무인민위원회수장으로서비밀경찰을거느리며스탈린의공포정책을앞장서서시행했지만스탈린사후결국스파이혐의로체포되어처형당한라브렌티베리야,소련측통역가인발렌틴베리시코프의가족이독일군점령시부역혐의를받는바람에외무부에서쫓겨난일,그리고미국정부의각료는아니지만얄타회담대표단에들어간독실한기독교신자에드워드플린이종교문제를모스크바측과논의하는과정,미국측사진가로버트홉킨스와소련측사진가사마리구라리가얄타회담의기념사진촬영과관련해겪은일,루스벨트의딸애나베티거와처칠의딸사라올리버,미국대사애버럴해리먼의딸캐슬린이회담에서한역할등회담밖의뒷이야기가풍부하게서술되어있다.
얄타회담과한반도의운명
-극동문제에관한비밀협상
일반적으로우리는얄타회담이한반도의분단을초래했다고알고있다.얄타회담은한국현대사에서매우중요한회담이기는하지만,저자에따르면얄타에서38선을경계로한분단이논의되지않았다.
얄타회담에서극동문제는소련의대일전참전에대한대가로만주지역에서소련의영향권인정과남부사할린할양에치중되어있다.아시아의제와관련해루스벨트는한국에대한20~30년간의신탁통치를제안하고(이보다앞서1944년테헤란회담이끝났을때루스벨트는한국에대한40년간의신탁통치를스탈린과양해했다고밝힌바있다),그관리국가로미국·중국·소련을언급했다.스탈린은신탁통치의기간이짧을수록좋겠다고말했을뿐이다.세국가가한국의신탁통치를맡되영국이반발하면영국도포함하기로한것이전부다.한국에대한거래는이로써끝나버렸다.(17장극동기습,421쪽참조)
저자는한국어판서문에서“루스벨트와스탈린이단30분만에극동의미래를결정”했다고한다.이30분동안한반도문제는얼마나차지하고있을까?그들의머릿속에약소국한반도는크게자리하지않았던셈이다.
중요한점은얄타회담에서세계의분할이이루어지거나한반도의분단이결정되지는않았지만,루스벨트와스탈린은‘강대국의권력게임’을계속이어나가며“해당국가·국민과어떤상의도없이,그들에게큰질곡을안기면서자의적으로영토를잘라”내는논의와합의를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