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백년손님 벼슬하지 못한 부마와 그 가문의 이야기

조선 왕실의 백년손님 벼슬하지 못한 부마와 그 가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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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學無所用, 才無所展
아무리 학문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쓸 곳이 없고,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을 펼칠 곳이 없던 신분, 바로 부마이다.

부마란 왕의 사위를 일컫는 말로, 조선시대 정식 명칭은 ‘의빈(儀賓)’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왕의 사위 또는 공주·옹주의 남편으로 부마와 의빈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으며 부마라는 용어가 더 많이 등장한다.
부마가 된 이는 공주나 옹주와 혼인함에 따라 왕실 인사로서 국왕의 최측근이 될 수 있었으나 정작 정치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정착되고 성종 대 『경국대전』이 반포되면서 부마의 정치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마로 간택된 이는 신분은 높지만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벼슬길에도 나아갈 수 없었다. 아무리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고 한들, 아무리 뛰어난 학문과 재능을 갖추었다고 한들, 부마는 자신의 재능을 공식적으로 평가받을 기회인 과거를 치를 수 없고, 목민관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일 자체가 봉쇄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부마는 조선 정치사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왕비, 후궁, 종친에 못지않게 부마와 그 가문은 왕실 인척으로서 조선시대 정치·문화사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부마는 왕실 문화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부마 가문은 정치 실세로서 왕의 후견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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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채용

신채용은국민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한뒤동대학원석·박사통합과정을수료했고,한국고전번역원에서3년간한학을연수했다.조선시대사공부를시작한이후로조선의정치와문화를주도한실체가왕실인사들이었다는사실을밝히고자,여러가문의족보와『조선왕조실록』등의사료를통해인물간의관계를집중적으로연구하고있다.국민대학교에출강했고,현재는간송미술관연구원이면서여주박물관소장전적의해제및번역사업에참여하고있다.
지은논문으로는「영조대탕평정국과부마간택」,「『성호전집星湖全集』묘도문자를통해서본이익의남인의리義理」가있다.

목차

프롤로그:왜부마에주목하는가

1장왕위계승쟁탈
들어가는글:왕자의난과계유정난
01개국공신의운명,태조부마흥안군이제/02단종의보호자,문종부마영양위정종

2장폭군과함께한운명
들어가는글:새로운훈척의등장
03연산군의채홍사,성종부마풍원위임숭재/04폐주로인한이혼,연산군부마능양위구문경

3장사림파로의전향
들어가는글:성리학적사회질서의정착
05뛰어난문장가,성종부마고원위신항/06문집을남긴문사,중종부마여성위송인

4장벼슬하지못한슬픔
들어가는글:명분과절개,사림의시대
07장원급제실력,선조부마해숭위윤신지/08강직한척화론자,선조부마동양위신익성

5장왕권강화의뒤편
들어가는글:국왕주도의정국운영
09숙종의밀사,효종부마동평위정재륜/10중국에알려진명필,현종부마해창위오태주

6장북학수입의첨병
들어가는글:문예군주와북학파
11박지원과함께한사행,영조부마금성위박명원/12정조특명의사행,영조부마창성위황인점

에필로그:부마와그가문을통해본조선
부록:조선왕조공주·옹주와부마명단

출판사 서평

정치참여가금지된그들이선택한삶
국왕의보좌역또는문필가의삶
부마의어원은중국한나라시대임금이타는수레의말을관리하는벼슬에서유래한다.부마라는단어에함축된의미답게,조선시대부마의삶을살펴보면비록정치의전면에나서지는못했지만정책과정사를보이지않게보좌하면서국왕을현군으로이끌기도했고,국왕의패악과패륜을부추기면서잘못된길로인도하여역사의죄인으로만들기도했다.
조선후기문예부흥기를이끈정조의치세중빼놓을수없는부분은실학의발전이다.정조가규장각출신의관원을...
정치참여가금지된그들이선택한삶
국왕의보좌역또는문필가의삶
부마의어원은중국한나라시대임금이타는수레의말을관리하는벼슬에서유래한다.부마라는단어에함축된의미답게,조선시대부마의삶을살펴보면비록정치의전면에나서지는못했지만정책과정사를보이지않게보좌하면서국왕을현군으로이끌기도했고,국왕의패악과패륜을부추기면서잘못된길로인도하여역사의죄인으로만들기도했다.
조선후기문예부흥기를이끈정조의치세중빼놓을수없는부분은실학의발전이다.정조가규장각출신의관원을직접선발하고교육하면서북학진흥에힘쓴것은잘알려진사실이다.북학은청나라사행을통해들여왔는데,이막중한임무를정조는그의고모부들에게맡겼다.정조의고모부란곧영조의부마를말하며,이시기북학수입의중대임무를맡았던이는박명원과황인점이다.특히황인점은정조재위기간에가장많은사행을떠났는데,거의2~3년에한번꼴로청나라를다녀왔다.정조는사행의임무를맡길만한인물로종친이아닌의빈을선택했다.정조의고모부이자영조의부마인박명원과황인점은정조의믿음과신뢰에힘입어청나라의선진문물을들여오는데앞장섰고,이렇게들여온문물은조선후기의실학발전에밑거름이되었다.
조선시대최악의폭군,혼군으로뽑히는왕은연산군이다.조선제10대왕이지만재위기간동안폭정과패륜을일삼고,두차례의사화를일으켜많은신료를죽이고왕위에서쫓겨났기에‘군(君)’으로강등되었다.연산군시대에주목할부마는임숭재이다.임숭재는성종의부마로서연산군에게는매부가된다.임숭재의아비임사홍은맏아들임광재도예종의부마로만들고갑자사화를일으킨인물로조선시대대표적인간신으로손꼽힌다.성종부마임숭재는연산군의매부로서채홍사가되어전국의미녀들을뽑아바치는일을맡았다.그런그의위세는왕의행차에버금갈정도였다.
한편벼슬할수없는처지이기에아예정치와담을쌓고문필가나명필로이름을날린부마도있다.사림이등용되기시작하던무렵,중종부마송인은조선왕조의부마가운데최초로문집을남겼다.조선의문장사대가로꼽히는장유와이식은송인의문집인『이암유고』에발문과후서를썼는데,특히이식은송인에대해“예나지금이나임금의사위가된자들은호화스러운생활을하면서그지위를믿고거만을떨지만,송인은초야에사는유자(儒子)의행실과덕을갖추고있었다.”라고평했다.
현종부마오태주는조선의명필로중국에까지명성을떨쳤으며,그의매부가되는숙종과시를주고받으며마음을나누었다.오태주는그의아비오두인이인현왕후의폐출에반대하다가숙종의노여움을사서국문을받고유배를가던중죽었는데,이때문에현실정치에관심을끊어버리게되었다.그렇지만현종의유일한사위이자숙종의하나밖에없는매부이기에오태주는손위처남인왕의마음을헤아리고화답하는시로써위로해주었다.
왕실의얽히고설킨인척관계
정치의실세로떠오른부마가문
조선시대는신분의구별이엄격했다.그에더해가문역시빼놓을수없는개인의출신성분을결정짓는요소였다.가문의개념이사라진오늘날의관점에서보자면이해하기힘들지만조선시대만하더라도가문의위력은개인의능력을뛰어넘었고,혼맥으로이어진가문간유대관계는정치·사회·문화전반을지배했다.
이책은부마한사람에게만주목하지않는다.부마를배출해낸가문과그들을둘러싼정치세력의움직임까지다각적으로살펴본다.어떤사람이부마가된다는것은그의가문이왕의사돈이된다는것이고,이는당시정치세력에게촉각을곤두세우게만들었다.부마야정치참여가금지된다지만,그부마를배출해낸가문은당대정치의실세인경우가많았다.대개정승이나판서,참판가문인데다왕의사돈이라는지위까지얻었으니막후실력자로서정치적영향력을행사할수있었던것이다.게다가부마는앞으로왕위에오를세자에게는매부요,세손에게는고모부이기때문에당대왕의사위로서는정치참여가금지되어도이후에는왕실인사로서왕의후견인역할을할수있었다.
이책에는각부마의[인물관계도]를실어놓았는데,혼인으로중첩된왕실과당대정치세력을한눈에파악할수있다.예컨대성종부마임숭재는풍천임씨가문으로그의아비임사홍은태종의둘째아들인효령대군의손녀사위이고,임숭재의형은예종의부마이다.선조부마신익성은병조호란당시청음김상헌과함께척화파로활동하며인조앞에서‘주화파의목을베어버리겠다’고말한인물이다.평산신씨신익성은그딸을청풍김씨김좌명과혼인시켰는데,김좌명은김육의아들이며,김육의손녀는현종의왕비인명성왕후이다.영조부마박명원은선조부마인박미의5대손이며,영조의또다른부마인김한신과도혼맥으로연결되어있다.부마가문이당대정치의흐름을주름잡는세력의하나로서자리매김했던셈이다.
따라서부마와그가문을살펴보는일은조선시대정치사를파악하는데새로운시각을제공해준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