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비로소이다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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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는 계집종이 확실합니다.”
1586년, 나주 동헌에서 한 여인이 스스로 노비라 주장한다
분쟁과 갈등,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은 인간사회에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조선시대 인간사회의 생활도 다르지 않아서 각종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노비소송이 많아서 조선 전기에는 임금이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 신분제 사회에서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명문대가의 경우 얼마나 노비를 거느리고 있는지에 따라 부의 척도를 가늠했다. 노비는 평생 상전에게 신역을 바쳐야만 하는 고달픈 신세이고, 그 신분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그러니 노비는 누구라도 벗어나고픈 신분의 굴레이자 멍에였다. 재산으로 취급되었던 만큼 조선시대 노비는 민사소송에서 곧잘 소송의 대상이 되었다.
이 책은 1586년의 결송입안에 나타난 노비소송을 통해 조선의 법과 소송,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전통시대 노비의 신분을 놓고 다투는 노비소송은 거의 대부분 자기가 노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피고 다물사리라는 여인은 반대로 스스로 노비라 말한다. 반면 소송의 원고 측은 그녀가 양인이라고 강변한다.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저자

임상혁

서울대학교법과대학에서학사,같은대학대학원법학과에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법학연구소,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근무했다.현재숭실대학교법과대학교수로재직하면서학생들과배움을주고받고있다.민사소송법의해석론과함께그성립연혁에주의를가지고연구하고있으며,역사와사회속에서더불어살아가는법의역할에관심을쏟고있다.
저서로는『나는노비로소이다』와『나는선비로소이다』가있고,주요논문으로는「법인이아닌사단의민사법상지위에관한고찰」,「이른바전자소송법에대한비판적검토」,「한국전쟁집단희생피해자에대한배상과보상의입법」,「〈기묘당적〉과〈기묘록보유〉의저술의의에대한검토」,「학술논문의오픈액세스와저작권양도」등이있다.

목차

1장1586년노비소송“나는노비로소이다”
법정의모습-선조19년나주관아|원님재판|결송입안과문서생활|1586년이지도·다물사리판결문|송관김성일|올곧은법관의수난|부임과파직|관할과상피
言中有言1:명판결의한사례

2장또다른노비소송“나는양인이로소이다”
허관손의상언|보충대|유희춘의자녀들|얼녀네명모두양인이되다|임금에게까지호소하다|황새결송|심급제도|삼도득신법의등장|삼도득신법에대한반발

3장법에따라심리한다
소송의비롯|민사소송과형사소송|공문서와이두|아전|향리의역할|법적용을다투다|소송법서|사송유취|실체법과절차법|수교와법전
言中有言2:재판과조정

4장:진실을찾아서
나주법정에이르다|원고“다물사리는양인입니다!”|피고“저는노비이옵니다!”|신분과성명|증거조사|호적상고|압량위천과암록|조사결과와증인신문|투탁|공천과사천|착명|도장|추정소지

5장:재판과사회
원고와피고의변론이종결되다|판결이내려지다|사건의전모|구지의작전|이지도의사정|반전|분쟁과재판|노비제사회|소송비용|판결의증명|소송과권리실현|소송과법제
言中有言3:소송을꺼리는문화적전통?

부록
1517년노비결송입안-광산김씨가문소장
이지도·다물사리소송판결문

출판사 서평

“우리들은정정당당히소송을하겠습니다.”
시송다짐으로시작한이소송의진실은무엇인가?

1586년(선조19)3월13일,전라도나주관아에서노비소송이벌어졌다.송관은학봉김성일이다.원고와피고,소송의양당사자는당시법정인관아에나와“우리들은정정당당히소송을하겠습니다.원고와피고가운데30일간까닭없이소송에임하지않거든법에따라판결하십시오.”라는시송다짐을하고소송을시작했다.원고이지도는다물사리가양인이라하고,피고다물사리는자신이노비라고반박한다.피고다물사리는양인인가노비일까?소송이진행되면서그연유는극적인반전속에드러난다.원고와피고는그해4월3일까지주장과증거제출을마쳤다.마침내4월19일,나주목사이자이소송의송관김성일은판결을내렸다.

이지도는다물사리가양인이며그남편이이지도의아버지소유노비인윤필의아들이라는점을들어그자손들도자기집안의노비가되어야한다고주장한다.부모중한쪽이노비이면그자손또한노비가되기때문이다.그러나다물사리는자기가성균관소속의관비인길덕의딸로서자기자신또한관비라는주장을펼친다.부모가모두천민일경우아버지가사노라하더라도어머니가관비일경우자손들은모계를따라모두관비가되기때문에다물사리는자기후손들을혹독한처우의사노비대신비교적고통이덜한관노비로만들생각이었던것이다.
이렇게양쪽의주장이팽팽히맞설때는양당사자의진술만으로판단하기힘들다.이에송관김성일은증거조사에들어간다.먼저국가의공적장부인호적을조사한뒤그결과를놓고당사자또는증인을불러신문한다.호적을조사할때는보통의계보외에도,원고의경우멀쩡한양인을자기노비라고호적에올려-이를‘암록(暗錄)’이라한다-압량위천(壓良爲賤)을하지않았는지,이와반대로피고의경우역을회피하기위해세력가나기관에몸을맡기는행위인‘투탁(投託)’을하지않았는지도꼼꼼히따져본다.
증거조사와증인신문을마치고내린판결에따르면,다물사리는자기자손들을사노비에서관노비로바꾸려고사위인구지와공모하여성균관에투탁한것으로밝혀졌다.다물사리가양인인경우남편이사노이기때문에그후손들은모두아비의상전인이유겸(이지도의아버지)집안의사노비가되어야하지만,만약관비라면모계를따라그후손들은모두관노비가될수있었다.다물사리는금쪽같은외손녀들(사위구지에게는딸)을양인으로만들수야없지만어찌어찌해본다면신공을바쳐야할의무도없고앙역의부담도없는공노비로만들수있을것이라생각하고영암군관아의노비빗리와짜고일을벌인것이었다.
드디어김성일은민사판결로써다물사리의딸인이와그의소생들을이지도의어머니서씨부인에게지급하라고결정하기에이른다.손주들을타인의예속으로부터벗어나게하려고했던다물사리의애달픈시도는실패로끝나고,원고이지도가승소했다.

법정소설또는추리소설식이야기구성
조선시대법과소송에관한체계적해설

이책의핵심서사는다물사리와이지도가벌이는소송이다.소송당사자들이다투는문제는다물사리의딸인이의신분이다.원고와피고가치열하게맞붙어각자의주장을내세우는법정의모습이생생히그려진다.저자는1586년의결송입안을가지고이현장을생동감있게복원했다.주문과판결이유가간단히적시된오늘날의판결문과달리조선시대판결서는소를제기하는소지,원고와피고의최초진술,소송당사자들의사실주장과제출된증거,그리고판결등재판의전과정이기록된덕분이다.딱딱한기록의고문서를그시대의말투로바꾸어풀고사건을흥미진진하게구성함으로써독자를이야기속으로끌고간다.나주법정에서변론을늘어놓는모습,송관김성일의엄격한신문과사실조사를해나가는모습은법정을무대로한법정소설(法廷小說)과도같다.
이책이흥미를돋우는또한가지이유는피고다물사리와원고이지도가사실관계를두고다투는공방에서어떤이의말이진실일까추리하게끔하는것이다.그들의진술만들어보면모두그럴듯하여누가거짓말을하는지알수없다.우리는송관이조사하는호적을함께들여다보고원고와피고의말을대조해보면서어느부분에모순이있는지를생각하게된다.이과정에서,소송당시다물사리는과부이고여든살쯤인데노쇠한여인이어떻게대담하게도성균관에투탁하여신분을숨기고상대편의소송에맞서려했는지의심을품게된다.김성일은이의심을어떻게풀었을까?사실파악은이책의맨뒷부분에가서야확인할수있다.증거조사와신문을통해밝혀나가는이야기는그자체로한편의추리소설과같다.
그러나이책은뭐니뭐니해도인문역사법학교양서로서조선시대신분사회제도및법제도에관한저작이다.핵심이야기를풀어나가기위해또다른소송인미암유희춘집안에서벌어진소송을소개하며첩자녀의신분과관련된이야기를풀어낸다.또한조선시대의소송의운영과실제에대해구체적으로기술한다.즉,당대의법률용어와소송의절차,법률문서,지원인력,법률의적용,소송법서,법전과수교등에관한설명이지적호기심과즐거움을불러일으킨다.특히‘언중유언(言中有言)’코너는전통시대와오늘날의재판에관한저자의평을담은일종의칼럼으로서여러가지생각거리를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