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비로소이다 (송익필 노비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정치)

나는 선비로소이다 (송익필 노비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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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학자 송익필을 노비로 만든 소송 이야기
구봉 송익필. 그리 낯익은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배출해낸 인물과 그의 지인을 살펴보면 범상치 않다. 그 자신은 시와 문장에 뛰어나 선조대 팔문장가로 꼽히며 명성을 드날렸고, 이이·성혼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으며, 예학의 비조로 일컫는 김장생에게 ‘예’의 본의를 가르쳤다. 그가 자리 잡은 경기도 교하의 구봉산(현재 파주시 심학산) 자락에는 배움을 얻으려는 선비들이 몰려들었다. 송익필은 예학의 대가이자 최고의 유학자로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나, 소송에 휘말려 노비 신분으로 떨어졌다. 송익필과 그의 집안을 노비로 만들어버린 이 소송은 어떻게 제기되고 전개되었는가?
이 책은 안씨 집안과 송씨 집안의 소송을 통해 조선의 법에 대해 알아본다. 송씨 집안 70여 명이 이 소송에 걸려 있지만, 주인공은 송익필이다. 이 소송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신분제도뿐만 아니라 《경국대전》의 각종 법률 규정, 나아가 붕당정치로 대립하는 조선 중기의 정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

임상혁

서울대학교법과대학에서학사,같은대학대학원법학과에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학교법학연구소,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근무했다.현재숭실대학교법과대학교수로재직하면서학생들과배움을주고받고있다.민사소송법의해석론과함께그성립연혁에주의를가지고연구하고있으며,역사와사회속에서더불어살아가는법의역할에관심을쏟고있다.
저서로는『나는노비로소이다』와『나는선비로소이다』가있고,주요논문으로는「법인이아닌사단의민사법상지위에관한고찰」,「이른바전자소송법에대한비판적검토」,「한국전쟁집단희생피해자에대한배상과보상의입법」,「〈기묘당적〉과〈기묘록보유〉의저술의의에대한검토」,「학술논문의오픈액세스와저작권양도」등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안가와송가의주요인물과가계도】

1장송씨집안
소탄노인|노인의정체|신분의굴레|안가노안|기묘사화|비부|보충대|송사련|잇따른역모|불만세력|고변|안처겸옥사|상황의변화|동인과서인|이이의죽음

2장안씨집안
안가의노력|붕당의죄|법률의적용|감형|기묘당선언|기묘당적|기묘당인|기묘사림|기묘록보유|역모의재규정|송사준비|우군들
言中有言1시효와정의

3장송사의배경
소제기|격쟁|원고의주장|이어진격쟁|시효|과한법|수교와법전|법률의해석|송관|곽사원둑소송|논란의비롯|피혐|선조의분노|처벌

4장소송의진행
친착결절|문서인부|서증|입증|유서|증거|입속입안|반전|판결이유|비장의무기|파멸
言中有言2판결에대한평가

5장후폭풍
엑소더스|정여립|낙향|역모?|도주|기축옥사|정철|배후|조작|마감|

출판사 서평

소송당사자,안가와송가-두집안은어떤관계인가

1585년말,안씨집안이송씨일가에대해자기네노비라고주장하는소장을제출함으로써시작된소송은원고와피고의조상까지거슬러올라가는,100년도더지난일을따져보아야하는사건이었다.당시피고측의송씨형제들은학문으로명망이높고그들의아버지는당상관까지오른인물이었다.원고측의안씨가문은1521년신사년에권신제거모의를했다는죄로몰락했다가수십년뒤안당이기묘사림으로복권되고시호까지추증된집안으로,송가나안가두집안이모두쟁쟁한가문이었다.
두집안은서로어떤관계일까?안씨집안은왜송씨집안을상대로소송을제기했을까?
송익필의할머니는감정이라는이름을지닌여인으로거족집안의고관안돈후의비첩인중금의소생이다.조선의신분제에따라부모중한사람이노비이면그자녀는노비이므로감정도노비신분을갖고태어났다.좌의정을역임했던안당은안돈후의정실이낳은아들이며,감정은안당에게배다른누이다.송익필의아버지송사련과안당의세아들은고종사촌지간이다.소송당사자들의부모세대가얼사촌으로엮인관계이다.(두집안의인물관계는이책10쪽〈안가와송가의주요인물과가계도〉참조)
문제는,안돈후의비첩소생인감정의신분이다.확실히그녀는천한신분으로태어나긴했다.그녀는나중에송린과결혼하여송사련을낳았는데,그의자녀들이바로송익필형제들이다.안씨들이주장하듯감정이자기네집안의노비신분으로태어났으므로그후손인송씨들도노비일까?
이소송은두집안의관계로만파악할수있는단순한문제가아니다.조선최고의법전인《경국대전》법률조항을일일이따져보아야하는문제이고,법리적용의타당성을검토해야하는문제이다.

조선시대의법과그해석,
사실관계를둘러싼공방과치열한법리다툼

송씨집안과안씨집안의송사에대한판결문인「안가노안(安家奴案)」에따라두집안의소송을살펴볼때우리가주목해야할문제는많지만,여기서는그중두가지쟁점사항만소개한다.첫번째는사실관계에대한분석이고,두번째는법리논쟁이다.

(1)가장크게다투어지는사실관계-송익필의할머니감정은노비신분이었나?
송익필형제의할머니감정이천첩소생의미천한신분으로태어난것은사실이다.이는피고측도인정하는바이다.그런데조선의법전은일정한지위에있는이들의비첩소생에대하여양인이되는길을만들어놓고있었다.보충대에입속하는방법으로서,이는《경국대전》〈형전〉‘천처첩자녀’조에나온다.
“대소원인(大小員人:대소관원)으로서공·사노비를아내나첩으로삼은이의자녀는,그아버지가장예원에신고하면장예원이사실을확인하여장부에기록하고병조에공문을보내어보충대에들어가도록한다.”
이규정에따라천첩자녀들은보충대에편성됨으로써양인이될수있고일정한직역을수행하고나면벼슬도얻을수있었다.
남의자식은노비로부려도자기자식만큼은양인으로만들고싶은마음이부모마음일터.감정도이과정을거쳐양인이되고,양인남성송린과결혼했을것이다.그랬으니아들송사련도관상감종5품의벼슬을지낼수있었던것이다.
하지만소장에서안씨집안은감정이속량되지않았으며,따라서그아들송사련은양인이아닌데도불법으로관상감에소속되었다고주장한다.안씨집안에서감정을속신하지않았다는주장을뒷받침할증거로103년전안돈후의유서라는것을내민다.이유서에무엇이라쓰여있을까?이유서는믿을만한문서인가?
송씨집안은직접증거를제출하지못해불리한상황에서마침내감정의보충대입속입안을찾아냈고,제출했다.그런데송관은격식에어긋난다며위조가능성을문제삼는다.이입속입안은어떠한가?송관은무엇을근거로격식에어긋난다고했을까?이문서에위조의여지가있는가?
이책은안가와송가가제출한각각의문서를하나하나분석한다.유서의형식과문구도꼼꼼히살펴보고증거력을가질수있는지도검토한다.입속입안에대해서도마찬가지로분석한다.입속입안에서인용된《경국대전》의조항을살펴보고위조여부를판단한다.과연송관의판결은타당했을까?

(2)소멸시효에대한법리다툼
오랜시간이지나서권리를소멸시키는효과를가져오는것이소멸시효이다.《경국대전》은일반적으로5년과한법을두었지만,1517년중종때새로운과한법을규정하는수교가내려져30년이일반적인소멸시효기간이되었다.그러나예외항목이있었으니,노비와관련된문제는60년의과한을적용했다.송씨집안에서는사건의소멸시효가완성되었다면서안씨집안의소장을받아준것자체가법에어긋난다고주장했다.실상안씨집안이몇번에걸쳐냈던소장은이‘과한’문제로퇴짜를맞았으나,결국장예원은소장을접수하여재판을진행했다.장예원은무엇을근거로과한법을아랑곳하지않고소를접수하여심리를진행했던것일까?송관이끌어들인법리는무엇일까?
이책은두집안이치열하게다투는법리다툼의이해를돕고자《경국대전》,《대전속록》,《대전후속록》등의법전에서규정한조문들,여러수교들을조목조목들여다본다.그리고송관의법리해석을따져본다.

오해와편견으로빚어진인포데믹

이책은안씨집안과송씨집안의소송을통해조선의법제도를살펴보는것이일차목적이지만,저자가서문에서밝혔듯이송익필이라는유학자를“인포데믹(infordemic)으로부터조금이나마구하는효과”도꾀했다.
송사가벌어지기몇십년전안씨집안의안당은좌의정을역임한권신가문이었다.그러나송익필의아버지송사련이1521년에안당의아들안처겸등이남곤을비롯한대신제거모의를한다며고변함으로써기묘사화이후수많은선비가죽고유배를가는사건이벌어졌다.이때안당은교수형에,두아들은능지처참되어가문이몰락한다.이때고변한송사련은역모를알려국가를구한공으로당상관에올랐다.우리가흔히‘신사무옥’이라알고있는사건이바로이것이다.거의모든역사서는두말할것도없고,백과사전등에도이른바‘신사무옥’이라는항목으로설명을한다.
그러나저자는1521년신사년에권신제거모의가실제로이루어졌으며당대에도이는사실로받아들여져서‘안처겸옥사’로명명했음을지적한다.즉,‘무옥’이아니라고말한다.오히려송사련의고변으로몰락한안씨집안,특히안처겸의아들안로가송씨집안을불구대천지원수로여기며그앙갚음을하기위한준비를착실히해나가면서자신의집안을기묘사림으로격상시켰음을여러자료를검토하며설명한다.신사년사건은안가-송가송사의발단이라할만한중요한사건이므로,안가측이주장하듯,또후대에알려져있듯,정말조작된사건이고무고인지에대해저자는먼저검토한다.
안가와송가의송사가종결되고3년뒤인1589년에정여립의모반으로시작된기축옥사는1,000여명의동인이피해를입었다고전해진다.대체로많은역사서가이기축옥사를기획하고막후조정한인물로송익필을지목한다.저자가송익필에대한또하나의인포데믹으로지적한부분은바로이것이다.
기축옥사의위관이송익필과친한정철이고,또한송익필이서인들과가깝게지냈기때문에기축옥사의배후조정자로설정되곤하는데,저자는당시송익필이소송에패하여노비신분으로떨어진뒤도망다니는신세였고,이후유배를당한처지여서기획이나조작을할여력이없었음을말한다.송익필이역모조작을했다는것은150년이지난뒤『동소만록』에서얘기하는것인데,이역시도하나하나검토하면서말이안되는것을지적해간다.

안씨집안과송씨집안의소송은1519년기묘사화에서1589년기축옥사에이르는정치적상황과무관하지않다.「안가노안」에적힌송관의판결문은견강부회의법적용이많이보인다.당시의정치적상황이영향을미치고있음이나타난다.이책은소송판결문을통해당시의법과정치를읽고,법과법리적용의타당성을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