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타자기 : 한글 기계화의 기술, 미학, 역사

한글과 타자기 : 한글 기계화의 기술, 미학, 역사

$18.50
Description
한글 타자기의 역사를 온전하게 복원해서 기록한 김태호 교수의 역작. 기술과 사람 사이의 중층적이고 비선형적인 상호작용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재현한다.-홍성욱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학과 교수)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일의 한글에게 새로운 방향을 열어주는 책이다.-한재준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한글 타자기의 과학기술사를 씨실, 공병우라는 입체적인 인물을 날실 삼아, 학자다운 엄밀함과 공정함으로 촘촘한 태피스트리를 엮어냈다.-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 『글자풍경』·『뉴턴의 아틀리에』저자)

기계로 글을 입력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의 발전사를 통해 사람이 기술을 다루는 일반적인 경로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기술사의 명심보감 같은 책이다.-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오늘 우리가 편리하게 한글을 쓰는 일상의 바탕에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부디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최원정 (KBS 아나운서, 〈역사저널 그날〉 진행자)

동아시아가 타자기를 만났을 때
-한중일 3국의 타자기에 대한 대응. 한자문화 유지 vs 독립
현대 타자기의 원형이 확립된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미국에서였다. 타자기는 로마자를 쓰는 서구사회에서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제국주의 시대 서구의 침략에 맞닥뜨린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자기네 전통 문명의 한계에 당황하면서도, 동시에 서구 문명의 효율성과 강대함의 비결을 알아내 그들을 따라잡고자 노력했다. 그 비결 중 하나로 눈에 들어온 것이 타자기였다. 이들은 타자기가 서구사회의 효율적 행정의 비결이자, 서구의 강대함의 토대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라고 믿었다. 따라서 자기네 문자를 쓸 수 있는 타자기를 만드는 것은 이들에게 단순한 발명 놀음이 아니라, 서구 열강의 침략을 면하고 근대국가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과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로마자 타자기를 자국의 문자와 접목시키고자 했던 동아시아 3국의 대응은 ‘한자문화’를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놓고 크게 갈렸다. 중국과 일본은 문자생활의 근본을 이루는 한자를 끝내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대한 글쇠 묶음 속에서 완성된 글자를 ‘찾아서’ 찍어내는 옥편식 타자기로 방향을 틀었다. 로마자 타자기의 기본 형태를 유지하며 ‘한글’을 중심으로 문자생활을 재편,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는 길을 선택한 것은 한국이 유일했다.
저자

김태호

저자:김태호
서울대학교화학과를거쳐대학원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현과학학과)에서한국근현대과학기술사를전공하였다.싱가포르국립대아시아연구소연구원,미국컬럼비아대학한국학센터연구원,서울대학교병원의학역사문화원연구교수,한양대학교비교역사문화연구소HK교수등을거쳐현재전북대학교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한국근현대과학기술사연구와교육에전념하고있다.
박사학위논문(2009)은통일벼와한국의‘녹색혁명’에대한것이었지만,한글타자기의역사에대해서는그보다더오랫동안관심을갖고연구해왔다.세벌식자판의사용자이지만어떤자판을쓰든공감할수있는한글타자기의역사를쓰고싶다는생각을간직한채,2003년이후꾸준히한글타자기의역사에대한자료를모으고글을쓰며강연을했다.
저서로『근현대한국쌀의사회사』(들녘,2017),『오답이라는해답:과학사는어떻게만들어지나』(창비,2021),『과학기술과한국인의일상』(들녘,2022),공저서로『‘과학대통령박정희’신화를넘어:과학과권력,그리고국가』(역사비평사,2018)등이있다.

목차

여는글_한글타자기와나

1장타자기라는도전이자기회
미국이세계에자랑하는발명,타자기/현대타자기의원형이확립되기까지/타자기가바꾼문서생활/로마자세상밖으로나간타자기/한자를껴안고‘탈아입구’한일본/일본의‘가나문자운동’/한자와가나를같이써야했던일본의타자기/한자는“쓰는”것인가,“찾는”것인가?/그렇다면한글은?

2장순탄치만은않았던한글타자기의탄생
한글타자기의개발을가로막은장애물들/기술적과제:모아쓰기/사회·문화적과제:가로쓰기와한글전용(專用)/글쇠가몇벌?─한글타자기에서자판문제는왜중요한가/최초의한글타자기들/새로운나라,새로운시작:1949년한글타자기현상공모

3장타자기에미친안과의사공병우
약관의나이에의사가되다/한국의노구치히데요를꿈꾸다/세균학에서안과학으로/공병우의성실함을인정한사타케/대학의연구를경험하다/“도규계의명랑보”/공안과,최초의한국인안과전문의원에서안과의대명사가되다/‘명사’공병우의사회활동/의사공병우를어떻게평가할것인가?/한글과만나고,한글타자기를직접만들다

4장한글타자기시장이열리다
군과타자기(1)한국전쟁과손원일/군과타자기(2)5·16군사정변과한글공문서의확산/다양하게꽃피운한글타자기시장/김동훈의다섯벌식타자기/장봉선의인쇄전신기/송계범의네벌식인쇄전신기/시장의성장과분화:예고된표준화논쟁

5장공병우의시각장애인자활운동과타자기
시각장애인재활사업에대한공병우의인식전환과공안과의의료봉사/광복전후한국시각장애인의직업활동/맹인부흥원의설립과맹인재활교육/공병우타자기의배제와맹인부흥원의고난/공병우의이상은무엇을남겼는가?

6장한글기계화의분수령이된1969년자판표준화
불발로끝난1950년대의표준화시도/박정희정부의표준자판제정/공병우타자기에대한비판과공병우의대응/표준자판을둘러싼논란,그리고비정치적인것의정치화/공병우의반발과권위주의정권의탄압/아마추어발명가에서한글운동가를거쳐민주화운동가로/표준화의빛과그림자

7장공병우타자기의유산과‘탈네모틀글꼴’의탄생
공병우타자기의“빨랫줄에널어놓은”글꼴/한글타이포그래피의역사적과제/글쓰기환경의변화와새로운타이포그래피/1980년대후반의새로운문화와‘아마추어’의역할/새로운의미를얻은탈네모틀글꼴/시대의아이콘이된탈네모틀글꼴/타자예문에남은연대의흔적/‘한결체’의도전/글꼴은살아있다

맺는글_내일은한글을어떤기계로,어떻게?
세벌식자판의마지막불꽃/타자기의시대가가도한글기계화의도전은계속된다

출판사 서평

가장쉽고과학적인문자‘한글’이기계화되기어려웠던이유
─‘모아쓰기’라는난제,그리고가로쓰기와한글전용의시작

그러나한글의기계화는결코간단한과정이아니었다.총24개의자음과모음을26개의알파벳을사용하는로마자타자기에이식하는작업이왜어려웠을까?그것은한글자체의‘모아쓰기’라는특성때문이었다.초성·중성·종성이모여하나의음절글자를만드는한글의특성상,각자음과모음이어느자리에위치하느냐에따라형태가천차만별로변했다.그모든변화를어떻게모듈화하여빠르게입력할수있는가에대한기술적고민은지난한모색을거쳐해답을찾아나가야했다.

기술적난제와더불어,오히려더큰문제는사회·문화적저항이었다.세로쓰기와한자혼용의쓰기문화는1960년대까지도숨쉬듯당연했다.한자없이한글만으로,그것도세로쓰기가아닌가로쓰기로‘생활문화’를변혁하는것은가히혁명에가까운일이었다.이과정의한극단에는모아쓰기라는한글의특성마저해체하는극단적인가로쓰기,즉풀어쓰기를주장한주시경과‘한글가로쓰기연구회’가있었고,다른한편에는타자기의글쇠를옆으로눕혀세로쓰기문서를타자기로작성하는고육책이나타나기도했다.

표준화이전의한글타자기들
─5벌식,4벌식,3벌식타자기가내놓은‘한글’을‘한글답게’에대한각자의대답

한국전쟁후1960년대초반까지,군부는한글타자기의최대수요자로서타자기시장의형성을이끌었다.이런변화의혜택을가장크게입은것은공병우의세벌식타자기였다.해군참모총장이자해병대창설자손원일의후원하에공병우타자기는빠른속도로군에퍼져나갔다.공병우뿐만아니라김동훈(5벌식),백성죽(4벌식)등여러발명가들이고유의메커니즘과자판배열을갖춘가로쓰기한글기계들을시장에선보였다.타자기와마찬가지로자판을써서입력하는인쇄전신기(텔레타이프)시장에도공병우(세벌식)외에장봉선(5벌식),송계범(4벌식)등이새로운제품을내놓았다.

공병우타자기가한글타자기시장을선점했으면서도시장을독점하지못하고다양한타자기들이병존할수있었던것은무엇때문일까?공병우타자기가마음에들지않았던소비자들이다른타자기를선택했기때문이다.특히네모반듯한글씨에익숙한공무원사회와민간기업에서는공병우의세벌식타자기가만들어내는들쭉날쭉한글자꼴이어색해보였다.이에타자기제조업자들은가지런하고네모반듯한글자를찍을수있는타자기를만들어공병우와경쟁했다.이렇게가지런한글자를찍으려면네벌이상의글쇠가필요하다.빠르고간단하게글씨를찍는것을무엇보다우선시했던공병우타자기와달리,4벌식,5벌식타자기개발자들은네모반듯하고가지런한글씨를찍는것을우선시했다.

자판표준화,비정치적인것의정치화
─공병우타자기의군사독재정권에대한투쟁,민주화운동과의결합

1969년7월28일,국무총리훈령제81호로한글타자기와인쇄전신기의표준자판이공포되었다.이것은국가가제정한첫번째한글표준자판으로,오늘날한국에서사용되는컴퓨터표준자판의원형이되었다.특이한점은정부가표준화과정에깊숙이개입했다는사실이다.기존사업자들이채택한다양한자판을무시하고완전히새로운표준을만들어시장에강제했다.표준자판을둘러싼논쟁과갈등의와중에서,한글자판은기술적평가의대상을뛰어넘어가치판단과정치적논쟁의대상이되었다.세벌식타자기를만들었던공병우는표준자판에맞서비타협적인투쟁을벌였다.3선개헌을거쳐유신으로치닫던박정희정부가그의저항을용납할리는없었다.공병우는정보기관의집요한회유와탄압에시달려야했다.다방면의탄압을겪으면서,공병우와그지지자들은자신의싸움을“과학적진실을외면하고탄압하는독재정권에대항하는투쟁”으로규정하게되었다.공병우는1981년미국체류중광주민주화운동탄압을비판한것이문제가되어전두환정권내내귀국하지못하고미국에머물게되는데,대중들사이에서공병우의수난사는“더빠르고효율적이었으나군사독재정권에의해밀려난세벌식타자기이야기”라는서사로정리되어,군사독재의폐단을보여주는사례로널리회자되었다.

공병우타자기의유산과탈네모틀글꼴이야기
─PC통신시대와퍼스널컴퓨터에글꼴로남은세벌식타자기의흔적

공병우타자기가지닌가장큰특징은글자의조형적균형에대한배려를생략하고극단적으로효율을추구했다는점이다.받침이있으나없으나모음의키가일정했으며,쌍자음글쇠를따로두지않아쌍자음이들어간음절글자는옆으로더넓은공간을차지하곤했다.음절글자들이윗줄을따라정렬되고받침이있으면그만큼아래로내려오는특유의모양은,“빨랫줄에옷을널어놓은모양같다”고놀림을받기도했다.그러나이윽고1980년대가되면공병우타자기의글꼴에적극적인미학적의미를부여하려는시도가나타났다.“네모반듯한글꼴이야말로한자시대의구습”이라며,“탈네모틀글꼴이야말로순한글이지향해야할모습”이라는공세적인주장이나타난것이다.젊은한글디자이너들은새시대의한글폰트는적은수의모듈을조합하여만듦으로써한글창제의원리를살리고폰트제작의효율을높여야한다는생각으로,공병우타자기와같이그런가능성을현실에서구현해줄수있는기계에관심을가졌다.이상철은1984년창간된잡지『샘이깊은물』의제호를위해철저히모듈화된자모를고안했다.뒷날‘샘이깊은물체’또는‘샘물체’로불리게된이글꼴은대중의환영을받은최초의탈네모틀글꼴이다.안상수는1985년기하학적단순성을극대화한‘안상수체’를내놓았고,한재준은1988년공병우와의개인적인만남을계기로공병우와한재준의성을딴‘공한체’라는이름의폰트를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