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인문학’이란무엇인가
―손상이장애로,나아가소외가되는시대,비정상과정상의재조명
‘손상’인문학은일반독자는물론연구자들에게도낯선개념이다.장애학의문제의식과방법론을인문학으로적극수용하여새롭게만들어낸개념이기때문이다.장애학에따르면우연히발생하거나선행하는육체적정신적‘손상’은근대이후특정한사회적환경과조건속에서‘장애’가되었다.이같은장애화과정은기본적으로장애인문제에적용가능하며,나아가근대적소외현상으로다루어진다.
장애학의문제의식과방법론은‘비정상’적대상들을주목하고근대와‘정상성’의관계를끊임없이질문해왔다.여기서‘손상’인문학개념이도출되었다.‘손상’인문학은근대가‘손상’으로구성한것들이특정한사회적환경과조건속에서장애화되는과정을‘정상성’에대한비판및성찰을통해탐구하는인문학적,역사학적방법이다.
냉전하한국에서는장기간권위주의통치가이루어졌다.권위주의시대권력의지배는물리적폭력및강압과더불어헤게모니,규율,통치성,문화등다양한방식을통해관철되었다.‘손상’의장애화도권력의지배방식중하나였다.권력에대한직접적인저항뿐만아니라권력을위협할수있는모든것들이‘손상’,즉‘비정상’으로규정되었다.그리고권력이제시한‘정상성’은이데올로기적으로,담론적으로사회곳곳에뿌리내렸다.이과정에서사회적위계에따라다양한형태의‘손상’이발생했다.하지만그것은일방향적인것이아니었다.지배의관철과정에서무수한균열과모순이발생했고,그균열과모순을따라주체의능동적인저항이일어났다.이책은이같은지배와저항의관계를‘손상’인문학의문제의식과관점에서변증법적으로파악하고자했다.
손상된대학생
―1960~70년대저항의주역,남/녀대학생의손상과저항
1960~70년대한국에서권력에맞서가장선도적으로저항했던주체는대학생이었다.1960년4월혁명은대학생이저항의주체로우뚝서서이후약30년간이어지는‘학생운동의시대’를연획기적인사건이었다.하지만그순간부터‘손상’이발생했다.4월혁명에는남학생뿐만아니라여학생도참여했고많은희생을당했다.하지만,그들은특히여대생들은남학생중심의운동네트워크에서소외되면서철저하게주변화되었고,오히려사회전반에만연한여성혐오의분위기속에서사회적비난의대상이되었다.
여학생의‘손상’이사회전반의편견속에서이루어졌다면,남학생의‘손상’은권력에의해더직접적으로가해졌다.한반도안보위기를겪으며1969년에부활한학생군사훈련,즉교련은1971년대학에서크게강화되고제도화되면서남학생들을압박하였다.같은시기창설된향토예비군과함께군현역복무앞뒤에배치된교련은남학생의생애주기적인군대사이클을형성했다.이는그시대의‘정상’이되었고,반면이에대한저항은‘비정상’이되었다.비정상을정상화하는가장효과적인방법은강제징집혹은그위협으로대학생의몸을더욱옥죄는것이었다.
손상된지식인
―정치교수라는낙인,배후세력이라는누명
권력에의한‘손상’은비단대학생에게만가해지는것이아니었다.당대의비판적지식인역시다양한방식으로‘손상’을입었다.1965년박정희정권이많은반대속에서도한일협정을체결하자2백여명의대학교수들은이에반대하며국회비준거부를요구하는성명서를발표했다.이에정권은이들교수를‘정치교수’로낙인찍는방식으로가혹하게탄압했다.지식인의정치관여는‘비정상’으로간주되어배격되었다.또한지배권력이저항을탄압하는과정에서공안사건이지속적으로발생하였는데여기에도많은지식인이연루되었다.그들은특히학생운동의‘배후’로지목되는경우가많았고,이때어김없이‘북한’과연계되었다.1967년동백림사건을통해그전형이완성된‘북한→지식인→학생’으로이어지는배후와연결고리는,냉전과분단체제하에서권위주의정권이지식인에게‘손상’을가하여저항을탄압하는일반적인방식이었다.
손상된민중
―전태일의시대,빈곤과편견에갇힌이들의외침
이시절대학생과지식인보다더큰‘손상’을받은사람들은민중이었다.그들은권력에의한‘손상’뿐만아니라사회적편견,특히엘리트의편견에의해서도많은‘손상’을입었다.1960년4월혁명당시대학생못지않게적극적으로시위에나서고또많은희생을당한사람이바로고학생과도시하층민이었다.하지만그들의과격한행동은권력과엘리트가공유한사회질서유지,안정이라는‘정상성’에의해‘손상’으로간주되어비판받았다.그리고4월혁명의기억속에서배제되고사라져갔다.이후에도민중에게가해지는‘손상’은계속되었다.1970년전태일의분신은그대표적인사례다.애초권력과사회가요구한‘정상성’에맞춰성실한노동자가됨으로써성공을꿈꿨던전태일은,그러나곧열악한노동현실을직시하고고뇌하며각성하고결단하였다.그는자신과노동자들이당한‘손상’을분신을통해극적으로드러내며저항하였다.
손상된인식
―순치와통제의언어,유언비어로떠도는저항의언어
사람들의‘인식’속에서도‘손상’은끊임없이발생했다.1960년대중반박정희정권은베트남전쟁에한국군을파병했다.그리고이를사회통제의효과적인수단으로활용했다.베트남에대학생위문단을파견한것도그일환이었다.대학생위문단은박정희정권의조국근대화사업의정당성과성과를선전하는데주목적이있었다.이를통해박정희정권은그동안정권의존립자체를위협했던대학생을순치하고자했다.
또한1970년대유신체제하에서는긴급조치와같은항시적인억압속에서정부나언론을통해서는알수없는그럴듯한이야기들이사회전반에퍼져나갔다.박정희정권은이를‘유언비어’라하여사회적‘손상’으로간주하고끊임없이단속하였다.하지만유언비어는자유와정의를갈망하는사람들의‘공감대’속에서쉽게확산될수있었다.1970년대유언비어는잠재된여론이자저항의잠재력이었다.
역사비평의새로운학술서시리즈‘와이비아카이브’
―시대와지역의한계를두지않는지식의아카이빙
역사비평사의유서깊은총서시리즈“역비한국학연구총서”는2004년부터현재까지43권에이르는묵직한한국학저작들을펴냄으로써21세기한국학지식과담론을선도하는역할을자임하고있다.다만‘한국학’이라는범주를설정함으로써전통적인학제상‘한국사’로분류되는연구들외에분과학문을뛰어넘거나가로지르는기민한연구성과들을담아내는데는일정한한계가있었음을인정할수밖에없다.이에새롭게선보이는학술시리즈‘와이비아카이브’는시대적으로고대부터현대까지,지리적으로동서양을자유롭게넘나들며,학문분과의구분에서도자유롭게,동시대연구자들의다양한문제의식과그에기반한연구들을종횡무진모아내고자한다.‘출판시장의침체’와‘학문의위기’가회자되는오늘날,진지한학문적탐구의노작들을하나하나아카이빙하는과정에서위기를넘어서는희망을찾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