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프로토타입, 원 복속기 (원 복속기 외교의례의 전환과 그 역사적 유산 | 양장본 Hardcover)

조선의 프로토타입, 원 복속기 (원 복속기 외교의례의 전환과 그 역사적 유산 | 양장본 Hardcover)

$35.00
Description
민족주의 및 목적론적 역사관과 결별하여 동아시아 지평에서, 당대의 맥락에서 외교의례를 독해하다
원 복속기에는 통상적인 외교의례뿐만 아니라 국왕 국상 시의 외교의례에서도 전면적인 변화가 있었고, 질적으로 전환된 외교의례 양상은 이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고려 말기에 전유와 계승의 과정을 거쳐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특히 고려와 명은 과거 고려와 원 사이의 의례를 공통으로 전유하여, 고려는 번국에서 명(황제)을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의 의주를 명 측에 요청하였고, 명은 지방 관부에서 황제를 대상으로 거행하는 의례를 활용하여 번국에서 거행할 의례의 의주인 『번국의주(蕃國儀注)』를 마련해 고려에 하사하였다. 이후 고려와 조선은 기본적으로 『번국의주』를 토대로 외교의례를 운영하였다. 조선은 명에서 전달받은 『번국의주』를 기반으로 영조칙례(迎詔勅禮)를 운영하였고, 명 역시 사실상 『번국의주』와 동일한 의주를 사용했음에도, 영조칙례의 실행 과정에서 조선과 명 사신은 일부 예식절차를 두고 갈등하기도 하였다. 종래에는 이러한 갈등을 조선과 명 간의 갈등으로 확대해석하여 양국 간에 이해가 충돌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았으나,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 당대 맥락에 초점을 맞춰 보면, 이는 ‘올바른’ 예의 실천 방식에 대한 조선과 명 사신 간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자

최종석

저자:최종석
현재동덕여자대학교국사학전공부교수로재직중이다.서울대학교역사교육과를졸업하고,국사학과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취득하였다.박사학위논문은「고려시대治所城연구」이다.고려시대와조선전기의사회사,문화사,그리고심성사에관심을두고연구를이어가고있다.특히민족주의역사학을비롯한근대역사학의인식적한계를넘어새로운상상력을통해한국사를재구성하는데주력하고있다.대표저서로는『한국중세의읍치와성』(2014),『한국문화의정체성』(공저,2021),『고려에서조선으로-여말선초,단절인가계승인가』(공저,2019),『한국의대외관계와외교사-조선편』(공저,2018),『고려역사상의탐색』(공저,2017),『조선시대예교담론과예제질서』(공저,2016)등이있다.

목차

책을시작하며

1부명에대한외교의례의전범,『번국의주(蕃國儀注)』1장『번국의주』의‘발견’과복원-영조례(迎詔禮)의주를중심으로
2장고려말기외교의례작성·운영에서『번국의주』의활용양상

2부외교의례의전환과몽골임팩트1장원복속기외교의례의전환과그전유·계승-‘전형적’제후국외교의례의창출
2장배표례(拜表禮)의등장과그전유·존속
3장원복속기망궐례(望闕禮)의거행과예식의변화-원종·충렬왕대를중심으로
4장조선초기영조례운영과『번국의주』

3부국왕국상(國喪)시외교의례의변화상1장책봉국을상대로한외교의례의변화-고애(告哀)·칭사(稱嗣)에서고부(告訃)·청시(請諡)·청승습(請承襲)으로
2장황제국측조문외교의례의변화
3장원복속기국왕국상시외교의례의전환과이후그것의존속

4부외교의례를둘러싼조선과명의갈등에대한새로운이해1장조서맞이예식에대한조선과명사신의갈등-오배삼고두(五拜三叩頭)의수용을둘러싸고
2장성종19년영조칙례를둘러싼조선과명사신의갈등과그성격
3장조칙합영(詔勅合迎)과영칙시승연(乘輦)의성취와그의미

책을마무리하며

출판사 서평

『번국의주(蕃國儀注)』의실체규명및복원시도-명에대한외교의례의전범,베일을벗다
이책은고려말기이후명(明)에대한외교의례의전범으로기능했으나그간존재가제대로조명되지않았던『번국의주(蕃國儀注)』의실체를규명했다.아울러외교의례의운용에서『번국의주』를어떠한방식으로활용했는지를고려말기를중심으로면밀히탐구했다.
『번국의주』는번국(蕃國)에서명황제를대상으로거행하는신례(臣禮)들의의주로,명이1370년(공민왕19,홍무3)에작성하여고려에보내준것이다.그동안베일에가려져있었던그존재를알리고『번국의주』에관한기본정보를파악했으며,아울러『번국의주』는현전하진않아도원형에가깝게복원할수있다고보아,『번국의주』의복원을시도하였다.고려말기이후로황제국을대상으로한외교의례는기본적으로『번국의주』를준용하였으니,그러한양상은조선말기까지이어졌다.

외교의례의전면적전환,원복속기의전환기적의의
빈례(賓禮)나가례(嘉禮)에수록된통상적외교의례는원복속기에들어서전면적으로전환되었다.이러한변화는원지방관부에서황제에대해거행하는의례가고려에적용·활용되는것을통해일어났다.원복속기에대폭전환된외교의례는고려말기에전유·계승의과정을통해그이후로도질적변화없이존속하였다.특히원복속기이후의외교의례는고려전기와달리외교(대외)무대에한정되지않고국내에서조차황제신하의위상을구현한다든지,황제국지방관부에서황제를대상으로행하는의례와별개로운영되지않고이와동조하여작동한다든지하는특징을지녔음을주목해야한다.
구체적으로,중국밖의제후국군주가자국의사자에게표문을건네는과정에서황제를대상으로거행한신례(臣禮)인배표례(拜表禮)가원복속하의고려에서처음으로등장하여이후계승·존속되었다.또한국왕이황제를대상으로행하는망궐례(望闕禮)역시원복속기에등장하여예식구현의변화를거쳤다.이러한예식들이원복속기를지나고려말기를거쳐조선시대에도지속되었음은조선초기의영조례예식정비를통해서도확인할수있다.
흉례(凶禮)에수록된국왕국상시의외교의례또한빈례나가례에수록된통상적인외교의례와동질적인,혹은유사한궤적을밟았다.

『번국의주』의해석과구현을둘러싼조선과명의갈등-‘사대주의’해석은근대적역사인식의산물,새로운시각이필요하다
조선은명에서전달받은『번국의주』를기반으로영조칙례(迎詔勅禮)를운영하였으며,명측도사실상『번국의주』와동일한의주를사용하였다.그런데도조선과명사신간에는영조칙례의일부예식절차를둘러싸고갈등이발생하기도하였다.이는명에서의례를잘아는조관(朝官)사신이온경우,사전에‘올바른’예의실천방식이불분명한일부의절을두고조선과명사신이각자의방식이예에부합한다고고수하며갈등이일어나곤한데서기인하였다.이러한갈등양상은민족주의적접근에서흔히상정하듯양국간이해관계의충돌에서비롯된것이아니었다.그간이책에서규명한원복속기를기점으로한외교의례변화는근대적역사인식의산물인‘사대주의’라는틀로관성적으로독해되어오곤했다.이를피하기위해이책은예(禮)에대한시대적감각의차이를최대한드러내고,화이(華夷)인식의질적전환과그방향을밝히며,외교의례를둘러싼양상을근대역사학의인식적한계를넘어새로운시각으로해석하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