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놈과 국왕 (광해군의 그림자 외교관 하서국)

상놈과 국왕 (광해군의 그림자 외교관 하서국)

$18.00
Description
상놈 하서국과 국왕 광해군
숭명배금(崇明排金)에 맞서 한배를 타다
광해군 재위 기간 내내 조정을 뜨겁게 달군 두 개의 논쟁이 있다. 조정 신료들은 양편으로 나뉘어 이 논쟁을 매일같이 격렬하게 벌였고, 그로 인해 국가행정은 수시로 마비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광해군은 결국 이 논쟁의 끝에서 조카가 주도한 정변(계해정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다. 그 하나는 인목대비 폐위 논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이 취할 외교적 태도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었다.
저자 계승범의 전작 『모후의 반역』이 인목대비 폐위 논쟁을 통해 충과 효가 정치 무대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을 그렸다면, 이번에 펴내는 『상놈과 국왕』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 의리와 군부-신자 관계를 강조한 조정 신료들에 맞서 광해군이 명과 후금 사이에서 이중외교를 펼치고, 그의 뜻을 후금 누르하치에게 충실히 전달한 하서국의 활동을 그린다.
저자

계승범

역사학자.서강대학교사학과교수로2026년초에정년퇴임하였다.현재는개인적으로HIKAN연구소를세워역사탐구를계속한다.서강대학교를졸업하고미국워싱턴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동아시아맥락에서보는조선시대정치·지성·사회사및국제질서분야를주로연구한다.특히양반지식인의중화의식과유교의한국적특성이조선을빚어내는과정및그역사적유산이현재한국사회에서여전히작동하는양상에관심이많다.
대표저서로는『아버지의그림자』,『유자광,조선의영원한이방인』,『모후의반역』,『중종의시대』,『정지된시간』,『우리가아는선비는없다』,『조선시대해외파병과한중관계』등이있다.공저로는TheCambridgeWorldHistoryofSlaveryVol.2와LongLivetheEmperor:UsesoftheMingFounderacrossSixCenturiesofEastAsianHistory외다수가있다.

목차

01.전쟁속의한반도,1592~1644
02.여진세력의동태와누르하치의성장,1392~1616
03.하서국은누구인가?
04.임진왜란과향통사하서국,1592~1607
05.임진왜란과광해군의트라우마,1592~1618
06.요동전쟁발발,광해군과하서국,1618
07.조선군의투항과하서국,1619
08.후금의국서,광해군과하서국,1619~1620
09.누르하치의조서,광해군과비변사,1621
10.처형대에서하서국이바라본하늘,1621~1622
11.유배지에서광해군이바라본하늘,1622~1641
12.에필로그:17세기초조선의선택과그유산

다시생각해보기1:광해군의노선은과연중립외교였을까?
다시생각해보기2:조선은왜,질줄알면서도호란을피하지않았을까?

출판사 서평

‘상놈’하서국은어떤사람인가?하서국은평안도(오늘날북한자강도)만포에서북방여진을상대로통역업무를맡아보았던향통사였다.본인은변방에서수자리를서며군역의부담을진평민이고,그의아내는노비다.철저한신분제사회에서지배층인양반은상천(常賤:평민과천민을합한개념)을천하게여겨‘상놈’이나‘상것’으로불렀다.하서국은바로그런존재였다.국왕광해군과는도무지접점이보이지않는다.하지만그는후금의도성허투알라와조선을바삐오가며누르하치와광해군의가교역할을충실히한인물이다.조선조정은누르하치와의교섭창구로하서국에게전적으로의존했다.
1589년누르하치가만주의건주여진세력을통합하며새로운강자로부상했다.임진왜란과정유재란때는조선에원병을보내주겠다는제안도해왔다.1616년후금을세우고칸을자칭한누르하치는이제국제무대에서명중심의동아시아질서에서벗어나독자노선을걷겠다는의지를분명히밝혔다.마침내1618년4월누르하치는요동의무순(撫順)을공격하여함락했다.무순은명나라가요동지역을방어하는데매우중요한거점이었다.명나라로서도가만있을수없었다.후금을정벌하기위한대규모원정군을꾸리고조선에도징병하라고요구해왔다.
명의파병요구에,비변사를필두로한조정의절대다수신료는신자(臣子)된제후국의도리로군부(君父)인명나라의징병요구에마땅히따라야한다고강력히주장한데반해,광해군은참전에부정적이고강력히반대했다.병농이분리되지않은조선에서갑자기군사를뽑기도어려울뿐더러무리하게파병한다면국경방어가허술해지니우리강토만잘지켜도그도리를다하는것이라는논리를내세웠다.
이런와중에누르하치가명-후금간전쟁은조선과상관없으니끼어들지말라는내용의서신을보내왔다.만포로누르하치의서신을갖고온차관을상대한이는여진어통역을맡은향통사하서국이다.
요동전쟁(1618~1622)이발발하자하서국은더욱분주해졌다.파병을강력히반대하던광해군이명황제의칙서를받아강홍립을도원수로삼은조선군을파견했을때하서국도통사이자길을인도하는향도장으로출정했다.하서국은누르하치에게조선은명나라와달리후금과싸울의사가없었는데명나라의요구에못이겨어쩔수없이출전했을뿐이라고설명했다.후금군과전투를벌인부차전투에서출정한군사의70%를잃은강홍립도투항하면서누르하치에게조선의출정은불가피하게내린결정일뿐후금과는원한이없다고말했다.저자는실록과여러자료를통해하서국과강홍립등의그러한설명이,명을도와후금과싸운다면그보복으로후금이조선을침공할가능성을우려한광해군의뜻이었을것이라고본다.
하서국은누르하치의국서를조선에전달하기도했으며,한양에직접올라가국왕광해군을알현하고양국이서로화친하자는내용의답신을구두로전달받아그대로누르하치에게구두로전하는임무도수행했다.이렇듯그는광해군의아바타이자분신처럼조선국왕의뜻을후금누르하치에게충실히전하면서조선과후금사이의긴장을일시적이나마완화했다.사대의리와숭명배금으로뒤덮인조선조정에서후금과화친하려는광해군과그의의도를정확히파악한하서국은한배를탄사람이나다름없었다.


명나라냐후금이냐,양자택일의상황에서
광해군의아슬아슬한줄타기외교

명나라중심의동북아시아질서가공고할때조선의외교정책은단순했다.조선의지배엘리트층은사대의리로중화문명의주체인상국(上國)을섬기며,자신은소중화(小中華)이데올로기로무장했다.중원이세계문명의중심이고,조선을제외한모든나라는이적(夷狄)오랑캐라는화이론(華夷論)적문명의식이정치·사회·문화·사상을지배했다.
그러나명질서(明秩序)의약화가가시화하고후금이강성해지면서조선에위기가닥쳤다.17세기초만주지역에서성장한누르하치의후금이명나라를위협하고,급기야1619년봄명나라의대규모원정군을대파하고1621년에는요동의심장부인심양과요양을점령하면서후금의누르하치는조선에명나라냐후금이냐양자택일을하라고압박했다.지정학적으로명과후금사이에낀한반도의조선은양쪽의눈치를모두봐야하는상황에처했다.
당시명나라는우방제후국인조선에군사를파병하여함께싸우자고했으나광해군은미온적이었다.명을도와전쟁에끼어들었다가는틀림없이후금의보복공격을당할것이라는정세판단때문이었다.반면,조정신료들은임진왜란때명황제가군사를보내주어거의망하게된나라를일으켜세워준은혜를입었으니명나라의요구를무조건들어줘야할것이며,후금의국서에절대로답하지말고,후금과는교통을완전히단절해야한다고주장했다.
광해군은모든신료들의반대를무릅쓰고후금에서보내온국서에답하고자했고,요동전쟁에출정한강홍립에게는“사람을보내오랑캐와몰래통하라”고했다.이는곧무리하게전투에임하지말고눈치껏지휘하며,상황을보아필요하다면조선은부득이파병하는것이기때문에후금과원한이없으며그래서싸울의사도없음을저들에게알리라는뜻이었다.
명나라와후금,어느나라를상대로도국가의자위력을갖추지못한조선의외교는난관에부딪쳤다.이상황에서광해군은당당하게중립을천명하지못한채,명나라에대해서는전통적사대를계속하면서후금과는명나라몰래대화를추진하는아슬아슬한이중노선의외교를줄타기하듯이어갔다.그리고명나라의눈을피해후금과비밀리에교통하는일을일선에서수행한인물은하서국이었다.


1년간격을둔두죽음,
그리고결국피할수없는전쟁

사반세기넘게조선과후금을오가며광해군과누르하치의핫라인같은역할을했던하서국은1622년봄후금의요동장악이후급변하는정세에휩쓸려후금에서처형되었다.후금에대한조선(비변사)의분명치못한태도,후금지도부안강경론자들의주도권장악,하서국의간첩행위탄로등때문이었다.그의죽음이후후금은조선에매우공격적으로나왔다.
광해군은후금의공격적대응에,1622년봄조선군을요충지에주둔시키라는명나라칙서마저문무백관이보는앞에서거부했으며명나라의존재가조선의안위에도움이되기는커녕방해가된다고천명했다.그리고후금에우호적인국서를보내라고독촉했다.이전에는비밀리에후금과교통하고은밀하게명나라를속이는차원이었지만,이제는대놓고명나라를기피하는차원으로전환된것이다.
신료들은파병을거부하는국왕광해군의정통성을의심하기시작했다.명나라와의군부-신자관계를부인한다고보았기때문이다.결국조정신료들로부터철저하게고립되었던광해군은외교논쟁이시작된지거의5년이되던1623년3월12일밤에발생한정변으로말미암아왕위에서축출되었다.하서국이처형소식이전해진지1년만이었다.
한사람은후금에대한전략을세우고또한사람은이를충실히수행했던가운데,실행자하서국은후금지도부(홍타이지가이끄는강경파)의손에의해,전략가광해군은그1년뒤조선신료들(주자학적화이론자강경파)의손에의해물리적·정치적죽임을당한것이다.
16세기를지나면서명과조선의군신관계에는부자관계가추가되었다.가변적인군위신강(君爲臣綱,충)보다훨씬더중요한부위자강(父爲子綱,효)논리가조선왕조의국가정체성으로확고해진것이다.충효에기초한사대의리를포기하지않는한,조선이취할대응방법은사실상명나라(군부)와운명을함께하는것뿐이었다.
조선의새인조정권과후금의새홍타이지정권이대화를통한수교를거부하면서,인조가등극한지3년만에,홍타이지가즉위한지불과3달만인1627년정묘호란이벌어지고,다시그로부터9년뒤1636년에병자호란이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