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실명으로 밝히는 참여정부 인사시스템 막전막후)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실명으로 밝히는 참여정부 인사시스템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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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진짜 노무현’과 그가 만들어간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7주기인 5월 23일을 앞두고 봉하마을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노무현 추모 바람이 불고 있다. 때맞춰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이 노무현 인사정책의 허와 실을 명쾌하게 정리한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을 내놓았다. 최광웅 소장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인사수석실 균형인사 선임행정관 및 인사제도비서관을 역임한 인사전문가이자 대한민국 제1호 데이터정치평론가이다.

노무현의 인사 정책은 철저하게 ‘시스템’에 따라 인물을 추천하고, 대통령 역시 최대한 시스템의 결론을 존중해줬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낙점’ 방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최소장은 노무현에 대한 추억이나 감성에 기대지 않고, S니 P니 하는 이니셜 뒤에 숨지도 않고 모든 등장인물을 ‘실명’으로 거론함으로써 ‘진짜 노무현’과 그가 만들어간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낱낱이 드러내준다.
저자

최광웅

저자최광웅은데이터정치연구소장

대한민국1호데이터정치평론가이다.역대선거데이터와각종사회경제적지표를객관적으로분석하는작업을해왔다.2015년1월《바보선거》를출간한이후<주간조선>,<시사인>등에다양한데이터정치칼럼을기고하고있다.이를바탕으로20대총선결과-여소야대및국민의당정당투표2위-를유일하고정확하게예측해냈다.억측과진영논리가판을치는여의도정치평론시장에서그의값어치가갈수록빛을발할수밖에없는까닭이다.

저자는1990년민주당사무처공채1기응시과정에서노무현당시면접관을처음만났다.일찍부터풀뿌리민주주의의중요성을깨닫고1995년서울시의원에당선되어의정활동을수행하였다.
참여정부청와대정무수석실선임행정관을거쳐2004년인사수석실균형인사선임행정관및인사제도비서관을역임하며인사·조직전문가로변신하였다.
손학규대표시절,민주당조직담당사무부총장겸개혁특위위원으로활동하면서당조직개혁안마련에힘을쏟았고국회의원공천심사등여러차례인사추천프로세스에참여하였다.
과학기술부인사추천업무를담당한인연으로한때한국항공우주연구원상임감사로근무했으며2012년부터청색기술연구회에서차세대성장동력개발에도몸담고있다.2006년부터10년간극동대학교교양학부에서‘국가와행정’을강의하였고현재는데이터정치연구소를운영중이다.

목차

프롤로그_004
인사(人事)는만사(萬事)다

에필로그_264
인사원칙은실천이다

1.반기문유엔사무총장_‘운7기3’의연속

2.김원기정치고문_영원한정치적사부

3.영원한‘왕특보’이강철_4전5기의도전정신

4.엽기수석유인태_뻘밭으로되돌아가다

5.강금실법무장관_女風당당,금녀의벽을허물다

6.김두관경남지사_이어리이장,행정자치부장관되다

7.홍석현주미대사_실험으로그친실용주의인사

8.권은희수사과장_자랑스러운여경열전

9.청와대김완기인사수석_학력파괴의신화를쓰다

10.정보통신부H-H라인_아카시(明石)에서비밀접선을하다

11.정홍원국무총리와영혼이없는고위공무원들스토리

12.김만복국가정보원장_특정지역편중인사의결말

13.이사모_과학기술인사개혁의산실

14.이성남금융통화위원_영원한단발머리소녀

15.김선욱법제처장_단아한개혁바람

16.김경임튀니지대사_문화가흐르는외교

17.김정숙식품의약품안전청장_연구실에서찾아낸진주

18.김홍남국립중앙박물관장_유물진열장을벗어나라

19.이공계출신중앙인사위원회위원을추천하라

20.최연혜코레일사장_레일이희망이다

출판사 서평

“진짜노무현이나타났다!”

노무현전대통령이떠난지7년.그는갔지만,그의이름은오늘날오히려더성성하게살아펄떡이고있다.친노니반노니말들이많지만,그것은오히려‘노무현’이라는이름이날이갈수록더커지고있다는반증일것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의7주기인5월23일을앞두고봉하마을을비롯한전국각지에서노무현추모바람이불고있다.때맞춰최광웅데이터정치연구소장이노무현인사정책의허와실을명쾌하게정리한《노무현이선택한사람들》을내놓았다.최광웅소장은참여정부청와대에서인사수석실균형인사선임행정관및인사제도비서관을역임한인사전문가이자대한민국제1호데이터정치평론가이다.특히이번총선에서역대선거데이터와각종사회경제적지표를객관적으로분석,여소야대및국민의당정당투표2위라는총선결과를정확하게예측해냄으로써많은화제를불러일으켰다.

반기문,김원기,이강철,유인태,강금실,김두관,홍석현,권은희,김완기,정홍원,김만복,이인식,이성남,김선욱,김경임,김정숙,김홍남,최연혜……

최소장은노무현에대한추억이나감성에기대지않고,S니P니하는이니셜뒤에숨지도않고모든등장인물을‘실명’으로거론함으로써‘진짜노무현’과그가만들어간역사(歷史)에참여한사람들의이야기를가감없이,낱낱이드러내준다.값싼추억팔이,감성팔이가아니라‘진짜노무현’을다시불러낸것이다.

조수진동아일보차장(채널A‘직언직설’진행자)는《노무현이선택한사람들》에대해다음과같이추천이유를밝혔다.

‘인사(人事)가만사(萬事)’.동서고금의진리이다.그러나정권을막론하고‘인사(人事)가망사(亡事)’란비판이끊이지않는다.사람이하는일이완벽할수없기에인사의시스템과매뉴얼을기록하는일은고통스러울수도있으리라.이책은그저그런식의공자왈,맹자왈이없다.조선의사관(史官)처럼누가,어떻게,누구를발탁했는지를세세하고촘촘하게,모두실명으로적어내렸다.살아있는역사의기록서다.

노무현의인사정책은철저하게‘시스템’에따라인물을추천하고,대통령역시최대한시스템의결론을존중해줬다는점에서이전정부의‘낙점’방식과는차원을달리한다.또한‘수첩인사’‘오기인사’로인사를망사(亡事)로만들어버린이명박,박근혜정부와는비교불가다.
하지만,이런시스템에따라‘노무현이선택한사람들’도노무현정부와운명을같이한것은아니다.오히려그이면을들여다보면오늘날자칭타칭노무현의정치적후계자로일컬어지는이들마저그의등에비수를꽂은경우가적지않았다.저자가인사시스템은만드는것뿐만아니라‘운용’과‘실천’이더중요하다고강조하는이유다.

《노무현이선택한사람들》은,‘스토리텔링’기법의글쓰기덕분에마치정치소설을읽듯이등장인물들의뒤에숨어있는이면이야기까지술술읽힌다.또한언론을통해서는알수없는내면의이야기들이쏟아져나오면서우리가알고있는정치인들의실제모습을제대로알수있는좋은기회가되기도한다.
또,대한민국제1호데이터정치평론가답게단순한기억이나감성이아니라정확한수치를통해노무현정부의인사상황을제대로읽을수있다.

참여정부가자랑할만한일은무엇보다밀실에서행해지던인사를시스템으로정착시킨것이다.이명박정부시절,한때인사비서관실로축소됐지만박근혜정부에서다시인사수석실이부활되어형식적시스템만큼은참여정부의경험을이어가고있다.결국사람이하는일이기때문에참여정부도사람이판단을잘못해서일을그르친경우도없지는않았다.이책은주로참여정부에서잘한인사사례를소개했지만실패한사례도일부고백했다.
자신의잘못을공개하고평가받자고용기를내기란쉽지않은일이다.그래도참여정부는인사청문대상고위공직자78명중3명이낙마해단3%의낙마율을보였다.이명박정부는111명중10명으로9.0%이다.박근혜정부는3년2개월정도의임기가경과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80명중9명이낙마해서이미두자릿수낙마율을보이고있다.
대통령제국가에서대통령의힘의원천은인사권이다.그러나대통령은국민이선출한국민의대표자이기때문에인사권을독선적으로행사해서는안된다.‘수첩인사’‘깜짝인사’‘특정지역편중인사’로는국민의동의를구하기어렵다.인사권을밀실에서광장으로꺼내놓아야하는이유이다.
_저자머리말중에서

반기문유엔사무총장
_‘운7기3’의연속


극적으로집권에성공한참여정부는솔직히인재를충분하게준비하지못했다.특히외교안보분야는일을시킬만한사람이없어서초창기에는꽤나고생을겪어야했다.후에유엔사무총장이라는어마어마한성과를거두긴했지만,반기문외교보좌관추천도꽤나어설픈과정을통해서였다.

노무현정부의외교보좌관발탁당시,그는본부대기5개월만에한승수외교부장관이유엔총회의장으로선출되면서의장비서실장으로1년을일하고집에돌아와쉬고있던참이었다.의장비서실장자리는일반적으로국장급이맡았기때문에사실상‘수치스러운자리’였지만,그는이기간동안에유엔의시스템을배우고각국외교관들과네트워크를넓힐수있었다.이는훗날유엔사무총장경선에서새옹지마(塞翁之馬)로작용했다.그당시만본다면,한마디로그는외교관으로서한물간사람이었다.그러나나도훗날외교부인사추천을담당하며상대해봤지만,그는전형적인신사스타일에다소보수적이면서도일욕심하나만큼은끝내주는사람이다.

반기문의외교부장관승진도우연속에서찾아왔다.NSC와외교부는2004년1월초이라크파병문제로정면충돌했다.조현동당시북미3과장이술자리에서노대통령에대해‘반미적’이라고말한사실을부하직원이청와대에투서한것이발단이었다.결국민정수석실이대대적으로조사를벌여장관부터과장까지줄줄이옷을벗거나징계를당했다.이런와중에서장관으로영전한이가바로반기문이다.차관급승진8년만의감격적인일이었다.외무고시동기이자수석합격자인최성홍전장관이2년전에이미거쳐간자리였다.

사실반기문은첫번째유엔사무총장카드는아니었다.처음에는홍석현<중앙일보>회장이2004년말주미대사로내정되면서일찌감치출마의지를피력했다.그러나홍석현대사가2005년7월안기부X파일사건으로낙마하게되자구원투수로급부상한이가바로반기문이었다.청와대는논의끝에8월말경반기문장관으로후보를결정하고,노무현대통령이직접그를불러출마준비에들어갔다는게청와대안에퍼진정설이었다.

노무현대통령은반기문선거대책본부의총괄본부장격이었다.출마선언이후꼬박8개월동안무려15개국을순방하며지극정성을쏟았다.5년재임기간중총55개국을다닌노대통령이었으니강철체력을앞세운강행군이었다.반장관을대동하고역대대통령들이잘가지않던아프리카국가까지순방일정을늘려잡았다.이집트,알제리,아랍에미리트,코스타리카,아제르바이잔등에한국대통령의방문이최초로이루어졌고,정상회담이열릴때마다반장관을바로옆자리에배석시켜자연스럽게유엔총장출마얘기가화제에오르도록유도했다.방한하는외국고위인사들도빼놓지않고청와대로불렀다.심지어스리랑카의위크라마나야카총리가방한했을때는“스리랑카에서도후보를낸다는데,그래도기회가되면도와달라”하면서너스레를떨었다.스리랑카의경우,유엔군축담당사무차장을역임한자얀티다나팔라를일찍부터후보로확정하고득표활동에들어간상태였다.결국이와같은노대통령의숨은역할은반기문의유엔총장당선에결정적으로작용했다.
반기문유엔사무총장이확정된날은한국시각으로2006년10월14일새벽이었다.낭보를접한청와대참모는“이런내막을알려야하는데……”라고노대통령에게건의했다.노대통령은“쓸데없는소리,반기문총장이잘됐으면된것이고,반총장에게영광을돌려라.아,기분좋다.”라고대답했다.흥이나서술까지한잔걸쳤다.역시노무현다움이다.
노무현대통령의적극적인후원속에유엔사무총장에선출된반기문은2008년5월노대통령의장례식에참석하지않았다.봉하에서는정중하게추모영상메시지또는서면메시지를부탁했으나끝내이를받지못했다.
같은해7월부터2011년8월까지여러차례한국을찾았지만노대통령의묘소참배는하지않았다.급기야2011년8월말,참여정부에서1년반동안반기문과함께국무위원으로노대통령을모신당시민주당김진표원내대표가공개적으로반총장을비판하고나섰다.“노전대통령이그를유엔사무총장으로만들기위해전세계를돌면서직접선거운동을해줬고,또정말총애했다.”라면서“그런그가장례식에안온것은물론,장례식2개월뒤제주를다녀가면서도김해에는들르지않더라”하고꼬집으며“반총장에게인간적으로실망했다.”라고직격했다.
이일이있은지3개월후인12월1일반총장은노무현대통령서거3년반만에봉하마을을방문했다.그는참배에앞서방명록에“대한민국의민주주의,정의롭고더불어잘사는사회,한반도의평화를위해평생헌신하신노무현대통령님께깊은존경의뜻을표합니다.”라고적었다.너무나늦은방문과참배였다.

2017년차기대선의주요이슈는한반도통일과경제회복이될가능성이높다.경제를되살리는길은오로지남북경제협력뿐임은온세상이다아는바이다.따라서그적임자는유엔사무총장을역임하며국제무대에서중재역할을경험한반기문이더가깝다고할수있다.그러므로20대총선에서참패하면서오세훈,김문수등주요후보군을잃은새누리당친박계에서특히그를주목하고있다.
그러나시계를거꾸로돌려2006년반기문장관의유엔사무총장출마를공식화했을당시한나라당이어떤반응을보였는지회고해보자.멸시와냉소그자체였다.“세계외교질서도모르고날뛰는철부지들이벌이는턱도없는짓”이라며야유를퍼붓기까지했다.분단국으로외교력도취약하고당선가능성이낮았던것은사실이었으나새누리당의전신인한나라당의비아냥거림은그도가지나쳤다.그랬던그들의상당수가이제는반기문을차기대안으로꼽고있다.정말로아이러니한노릇이다.
지난20년동안실력만큼이나운세또한기막히게따랐던반기문총장.퇴임이후가벌써부터궁금해진다.

김만복국가정보원장
-특정지역편중인사의결말


새누리당은2015년12월7일최고위원회의에서김만복전국가정보원장에대한당원제명(안)을의결했다.이에앞서김전원장은새누리당서울시당으로부터‘탈당권유’조치를받고중앙당에이의신청했다.새누리당이김전원장을징계한사유는“2015년10·28재·보궐선거당시부산기장군새정치연합후보를지원한중대한해당행위를했다.”는것이었다.한편김전원장은같은해8월27일팩스를통해새누리당에입당한사실이뒤늦게알려져SNS를뜨겁게달군바있다.

김만복은2006년11월노무현대통령에의해국정원개원45년만에최초로내부승진케이스로원장에발탁되면서세간의이목을받았다.2007년노대통령의10·4남북정상회담을수행했고,2015년10월에는이재정경기도교육감,백종천전청와대안보실장과함께《노무현의한반도평화구상》이란책을내놓기도했다.그랬던그의변신을많은사람들이의아하게여기고있다.그는과연참여정부의대표적인변절자인가?

참여정부초대국정원기조실장을지낸고서동만의증언에의하면1978년5월,서울대시위로관악경찰서에연행돼갔을때김만복이취조실로찾아와“다음시위주동자가누구인지만귀띔해달라”고회유했다고한다.유종일KDI교수는“김만복은일찍이서울법대를나와중앙정보부직원이되는,당시로선매우희한한선택을했다.나의형유종성과형친구이자나의동지였던서동만등을탄압하는데앞장섰다.
참여정부출범과더불어서동만은국정원기조실장에기용되어개혁작업에착수했다.하지만1년을버티지못하고잘렸고,그자리에김만복이왔다.그후김만복은국정원장을지냈고,속이문드러진서동만은암으로죽었다.”라면서탄식했다.이와관련해,김만복은2006년11월국회인사청문회에서원혜영·박명광·선병렬등당시열린우리당의원들의학원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