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양장본 Hardcover | CD2장포함)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 (양장본 Hardcover | CD2장포함)

$106.46
Description
태엽을 감고 쇠바늘을 꽂아서 돌리던 유성기,
나팔에서 울려나오는 옛 명창의 소리와 흘러간 유행가,
해독이 어려운 잡음 가득한 분단의 음절들,
추억을 넘어 이제는 역사로 자리 잡은 소리!
이 책은 한국 유성기음반의 전모를 담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 철저한 고증, 치밀한 해석을 통해 저자는 유성기음반의 문헌학적 해석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40년에 걸친 저자의 음반 수집 경험과 집념으로 이룬 방대한 유성기음반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또한 근대 공연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의 필독서이자 호기심이 가득한 이들의 교양서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진자료는 또 다른 시각에서 소리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부록 CD 2장에는 37곡(144분)의 희귀 음원을 담았다. 예술성과 역사성을 감안하여 선곡하였고, 저자의 유성기음반 컬렉션의 진수를 들려준다.
저자

배연형

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에서고전문학을전공했으며,「최치원의사산비명의문학적고구(考究)」로석사학위를,「판소리소리책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1980년대부터판소리고음반을수집하기시작하여다수의희귀음반을발굴했고,유성기음반연구가로서고음반의문헌학적연구를개척하여학문적토대를마련했다.
「판소리5명창」(1LP,1988)과「여명의노래」(1CD,1991)등다수의복각음반을제작하여유성기음반의중요성을재인식시켰다.1989년에한국고음반연구회(회장이보형)를창립하여유성기음반전시회?학술대회를주관하였고,논문집『한국음반학』창간(1991)의실무를맡아유성기음반의학술적연구기반을마련했다.『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1998)과『한국유성기음반』(2011)을집필하였고,한국연구재단의지원으로‘한국유성기음반데이터베이스’(2011)를구축하여유성기음반정보를집대성했다.
(http://www.78archive.co.kr/v2/)
혜원여고?휘경여중교사,동국대학교문화학술원부교수를역임했고,한국예술종합학교?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등에서강의를했다.난계악학공로상(2003),판소리학술상(2005)을수상했고,KBS1FM의‘국악의향연(판소리)’과국악방송국의‘국악특강’등을진행하기도했다.
『한국의소리,세상을깨우다』(2007)등여러저서가있고,판소리와유성기음반에관한논문80여편을발표했다.판소리학회장을역임했고,소리여세?선영악회등판소리연구모임활동을통해전승이끊어진판소리복원에도많은노력을기울여왔다.

목차

서문
PREFACE
감사의말씀

제1부한국유성기음반의역사
제1장녹음의역사와유성기의탄생
1.기록의발명/2.소리의기록/3.유성기,태엽을감고나팔을달다/4.유성기,유행을팔며대중시대를열다/
5.유성기,동아시아시장을열다
제2장한국의근대문화환경과유성기음반의전래
1.유성기의전래/2.근대공연문화의발달과유성기의유통/3.삼광당-미국콜럼비아의한국첫음반취입/
4.미국빅타의한국진출/5.미국콜럼비아와빅타음반의유통
제3장유성기가만들어낸근대적현상
1.공연문화의발달과사회적인식/2.유성기이미지의형성과문예적표현/3.유성기에대한과학적인식/
4.유성기,계몽의나팔을불다/5.유세(遊說)가유성(留聲)인가,유성이유세인가?/6.유성기를경품으로걸다
제4장일본축음기상회의조선진출
1.1910년대초반의유성기판매/2.일본축음기상회의조선지점개점/3.일본축음기상회의1차한국음반녹음/
4.일본축음기상회의영업과전략/5.1913년일본축음기상회의2차한국음반녹음/6.일축의녹음공백기/
7.미국빅타의2차녹음
제5장일축·일동양사체제의등장과1920년대음반시장의전개
1.1923년일본축음기상회의3차한국음반녹음/2.일본축음기상회의4차녹음일?죠션소리반/
3.내외축음기(內外蓄音器)의조선진출시도/4.일동축음기주식회사의제비표조선레코드의등장/
5.합동축음기주식회사비행기표조선소리판
제6장전기녹음시대와유성기의전성기
1.일본빅타레코드의한국시장진출/2.일본콜럼비아레코드/3.시에론레코드/4.포리돌레코드/
5.태평레코드/6.오케레코드/7.군소회사음반

제2부유성기음반과사회
제1장유성기음반의기획과제작
1.초기음반의기획과제작/2.한국인기획자의등장과문예부장의시대
제2장유성기음반과일상
1.유성기음반이낳은사회적역기능/2.음반기획과판매사업/3.유성기기계에대한이해와상식
제3장일제하의음반검열
1.레코드의취체,단속과압수에서가두연주금지까지/2.압수된음반,금지된노래

제3부유성기음반시대의음악
제1장유성기음반의분류
1.유성기음반의분류방법과내용
제2장서울소리와평양소리,가사와잡가
제3장판소리와창극,가야금병창
1.판소리의근대적변화와음반녹음/2.새로운도전,창극음반/3.새시대의꽃,가야금병창
제4장창가,새시대를노래함
1.개화기창가의등장/2.창가를넘어유행가로
제5장유성기음반연구의과제와활용

부록유성기음반발매와가격변동일람표
유성기음반잡지(雜識)
참고문헌
찾아보기
부록음반수록곡목

출판사 서평

40년에걸친저자의음반수집경험과집념으로이룬
방대한유성기음반의세계를책으로만나다!

1980년대부터판소리고음반을수집하기시작하여다수의희귀음반을발굴했고,유성기음반연구가로고음반의문헌학적연구를개척하여음반의학술적이론을정립하고사회적활용기반마련에애써온배연형선생이5년동안각고의노력을기울인연구성과물을마침내세상에내놓았다.
음향과영상은디지털매체의핵심콘텐츠이다.디지털시대에아날로그의대명사격인유성기음반을돌아보는것이무슨의미가있을까?이책『한국유성기음반문화사』를보면그에대한답이있다.유성기음반은우리근대사회의정서와속내가고스란히담겨있다.목소리는사진이나글보다훨씬더직감적이고육감적이다.사람은목소리를통해서훨씬더정확하게상대방의마음을읽을수있다.이것이바로음향자료의힘이다.
저자는객관적인자료,철저한고증,치밀한해석을거쳐유성기음반의문헌학적해석이라는새로운영토를흥미진진하게펼쳐보인다.40년에걸친저자의음반수집경험과집념으로이룬방대한유성기음반의세계가이한권의책에오롯이담겨있다.
그렇다면저자에게유성기음반은어떤의미일까?

“6,500종에달하는한국의유성기음반은근대의정서를만나는통로이다.유성기음반에는대명창의빛나는성음과개화를외치던신식창가가담겨있다.청산유수같은변사의영화설명과허풍쟁이의코미디가있다.그리움과기다림의노래가있다.금지당한노래와압수된음반은상처입은우리근대사의모습이기도하다.전통의힘과이입의생경함이뒤엉키면서새로운문화를엮어내던우리근대사를여기에서만날수있다.고음반은근대음악사의현장이요,강물이다.”

이책은한국유성기음반의전모를보여주면서장차국가적차원에서유성기음반이집대성될수있도록이론적배경을제시하고,무한한활용가능성을제시하고있다.이것이저자가이책을쓴목적이기도하다.

한국유성기음반의전모를일목요연하게정리,
무한한활용의가능성을제시한‘음반문헌학’!

1899년처음문을연유성기집에서실린더유성기에서사람의목소리기흘러나오는광경은놀라운구경거리였다.놀라움이가시자사람들은유성기음반에담긴음악에귀를기울이기시작했다.한번지나가면다시주워담을수없던명창들의소리를이제유성기판에담아놓아태엽을감고바늘을갈아끼면서듣고또들었다.경험하지못했던새로운재미였다.이기계에신정新情을붙이게되자비로소구전에만의지하던전통음악이기록으로남게되었다.이기록유산이아니었다면100년전의음악을우리는들을수없다.때로는낯설고때로는귀에익은이소리가바로한국의근대음악사이다.
희귀한고古음반을수집하기도어렵지만이것을체계적으로정리하고학문적으로연구하는일은더욱어렵다.대한제국시기유성기음반은자료가거의남아있지않고,일제강점기내내조선에는유성기음반생산기반이없었으니축적된자료또한없는것은당연하다.이러한악조건을헤치고낡은음반과단편적인기록을수집하여우리유성기음반의전모를거의완벽하게재구성한저자의강도높은작업을보면놀라움을금하지못한다.
이책은유성기음반의제작과발매과정,곡목과판매상황을치밀하게추적하여밝히고있다.저자는이것을‘음반문헌학’이라는새로운용어로설명한다.음반레이블에는곡목이나연주자등여러정보가기록되어있는데,그중음반마다부여되는번호만보면언제어디에서발매되었는지콕집어알수있도록도표로일목요연하게정리해놓았다.음반분야연구자들에게내비게이션을달아준셈이다.이러한음반문헌학적방법을응용하면누가언제얼마나많은음반을취입했는지알수있고,그변화나추세는곧바로음악사를기술하는데적용할수있다.이책의미덕은단순히유성기음반을정리하는데머무르지않고다양한활용의가능성을제시한데있다.

유성기음반은대중적인소비상품으로서근대문화형성에핵심적인역할을했다.유성기음반은전통음악을담아서보존하는데머무르지않았다.대중적인소비형태는음악자체를변화시키는원인이되기도했다.긴이야기로엮어내던판소리를3분이라는짧은시간안에담는과정에서음악적으로농축됨으로써서정적인표현이강조되었다.저자는이것을현대판소리가기교적인소리로변화하는원인이되었다고주장한다.
유성기음반은외래음악이들어오는관문이기도했다.처음에는서양음악이나일본노래의곡조에노랫말을바꾸어부르는창가가유행했다.일본노래를번안이나번역해부르는단계를거쳐1932년무렵부터조선인이창작한유행가가본격적으로나오기시작했다.‘낙화유수(강남달)’이나‘황성의적跡’이나오면서본격적인대중음악의시대로접어들었다.이를계기로외래음악과전통음악이역전됨으로써수천년전승된우리음악사가근본적으로바뀌는계기가되었다고진단한다.
1930년대에이르러유성기음반의영향력이크게높아지자그에따른여러사회적인현상이벌어지기도했다.‘에로와그로’라는퇴폐적인풍조의원인으로지목된것이다.일제는이를빌미로유성기음반을단속하였는데,실제로는민족의식을불러일으키는‘아리랑’과같은노래를금지하고압수하는데그목적이있었다.

▶이책의구성
『한국유성기음반문화사』는3부로구성되어있다.제1부는한국유성기음반의역사로,우리나라에음반이도입된이래여러음반회사에서발매된음반의종류와수량등을일목요연하게서술했다.음반수집과정리에서기초적인정보인셈이다.제2부는유성기음반과사회에서는음악이산업화되면서유통되는과정을음반산업측면에서치밀하게분석하고있다.제3부는유성기음반시대의음악으로분야별비중이나악곡의분포,취입자의변화등을각종통계수치를제시하며면밀하게분석하고있다.부록으로유성기음반을이해하는데필요한용어나개념을백과사전식으로정리했다.
870쪽에이르는방대한분량이지만다채로운희귀사진자료는물론,당시분위기를생생하게느낄수있는신문광고등이함께수록되어있어이를보는재미도쏠쏠하다.분야마다대표적인악곡37곡을엄선하여2장의부록CD에담았다.1906년에취입된한국최초의음반‘유산가’,‘육각거상’등을최신기술로리마스터링하였는데,113년전의녹음이란사실이믿기지않을정도로생생한음질을들려준다.송만갑과이동백의판소리,창가학도가,윤심덕의‘사의찬미’,월남이상재의연설‘조선청년에게’등희귀음원은음반수집가라면누구나탐낼만한아이템이다.
※책속에실린유성기와유성기음반관련이야기들

▶“카루소가유성기를낳았는가,아니면유성기가카루소를낳았는가?”
유성기음반에새로운지평을연사람으로는프레드릭가이스버그(FrederickGaisberg,1873~1951)를꼽을수있다.그는독일계미국인으로피아노를잘쳐서16세때부터아르바이트로콜럼비아실린더레코드에피아노반주를하고있었다.20세가되던1893년,가이스버그는베를리너의그라모폰사에서일자리를얻었는데,피아노반주는물론가수들을섭외하는일에도능력을발휘하였다.1898년런던에그라모폰지사가설립되자그는영국지사로파견되면서능력은더욱빛을발하게된다.(……)
1902년4월11일,가이스버그는마침내이태리밀라노에서테너엔리코카루소(EnricoCaruso,1873~1921)를나팔앞에세워오페라아리아10곡을녹음하였다.그는당시오페라계에서떠오르는샛별이었다.카루소를설득하는데들인돈은100파운드로당시로는거금이었다.그들은29세동갑내기였는데,카루소는장난삼아한나절취입으로거금을챙겼고,직감적으로카루소의노래가지닌상업성을간파한가이스버그는본사의반대를무릅쓰고무모한녹음을감행했다.카루소의음반은전무후무한성공을거두었다.그뒤그라모폰-빅터사는카루소와전속계약으로거금을벌었고,카루소또한음반으로인해하루아침에세계적인명성을얻으면서혜성처럼등장하였다.카루소의음반은장난감유성기를음악감상의매체로인식을바꾸는계기가되었다.그런의미에서카루소가유성기를재탄생시켰다고도한다.

▶조선의유성기집영업시작
유성기가조선의일반대중에게널리알려진때는1899(광무3)년3월이었다.당시『황성신문』『독립신문』『제국신문』등에는유성기소리를들려주고돈을받는집의광고가대대적으로실리면서유성기는온장안의화제가되었다.유성기집을차려입장료를받는사업은에디슨유성기초기시절부터있던형태였으며,유성기가도입되던초기에일본에서도유행했다.고가의유성기를구매할능력이없는대중에게호기심을만족시켜주는‘구경산업’이었다.규모의차이는있지만요지경이나활동사진감상도같은종류이며,근대적인흥행산업의시작이라할수있다.
1899년3월서울에서유성기집[留聲機處所]을차린곳은다음과같다.
<광고>
◎서양격치가(格致家)에서발명한유성기를매래하야서서(西署)봉상시(奉常司)전113통9호에
치(置)하?는데,기중으로가적생슬(歌笛笙瑟)성이운기(運機)하는대로출하야완연히연극장과여
(如)하니,첨군자는해처(該處)로내림완상하시오.
_『황성신문』1899.3.10.1.

▶1906년『만세보』독자투고란
1906년『만세보』독자투고란에는한편의시가실려있다.국운이쇠잔해가도북촌양반들은여전히태평가를부르고있고,오히려서민들은생업에종사하면서도나라걱정을하고있다.그와중에도극장공연은인기를끌면서대중을불러들이고있었다.협률사극장이재개관하던1906년서울의풍경이었다.
1910년이전에서울에는벌써10여곳의극장이설립되었다.서울은서서히근대도시로변모해갔고,대중적인문화현상이유행하기시작했다.협률사가재개관하자대중은환호했지만언론에서는비판적인기사를쏟아냈다.언론의시각은곧지식인의시각이었다.

매일풍악이하늘을울리며,고운기생이달같고광대가구름같아한바탕풍류판을마련하니어린자제들이심지가들뜨고이목이황홀하야황금을아끼지않고청춘을허송하야가산탕진은오히려말할것도없고만사하는일이이로부터허물어지기로부형들의개탄걱정하는소리가장안가득히비등함이두번째요.
_『대한매일신보』1906.3.8.

▶유세(遊說)가유성(留聲)인가,유성이유세인가?
유성기를청중동원에적극적으로활용한것은국시유세단(國是遊說團)이었다.국시유세단은일본의대한제국통치의당위성을홍보하기위한어용단체로이완용과통감부의지원을받고있었다.이단체는일진회고희준이주동이되어신광희,예종석등이1909년7월26일원각사에서발기대회를열고단원28명으로유세단을꾸려전국을다니며강연을하고다녔다.국시유세단은곧바로민중의지탄의대상이되었고,가는곳마다봉변을당하기일쑤였다.
언론또한연일가차없는비판을쏟아내었다.청중이모이지않자그들이동원한것이바로유성기였다.

만평)바깥의냉평
모단원은유성기를매일4원씩에빌려서오강으로순회하면서청중을유인할세,그유성기곡조에박타령한곡이나온다.놀보가한참박을타는데,그박속에서똥이쏟아지더라.청중이일시에코를막고,‘구려,구려!’다해산하였다니허다한타령에하필박타령을유성기로창하였던가.
그곁에서듣던사람만코를막을뿐아니라멀리서듣던자도또한귀를씻으리로다.평하여가로되,내가듣자니일본맹인들이경쇠또는풍금으로귀신에게빌어먹고산다하더니,이단원의유성기가거의그쯤되는구나.

▶민속학자석남송석하의평
유성기음반이대중음악의중심에서인기를끌게되자갖가지사회적역기능이생겨나기시작했다.1930년대유성기문화현상에대해민속학자석남송석하(石南宋錫夏,1904~1948)는매우정확하고간결하게요약하고있다.

“……축음기가유성기라는명목으로조선에나타난것은약30년전의일이다.수입당시의빅타편면(片面)레코드는조선의예술을위하야무한한공헌을한것이다.비록음반에우성(雨聲)은있었을망정학술상으로당시의속요내지민요는이것아니고는이제는찾아볼재조도없다.그리하여유성기는점차로대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