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입학시험 풍경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일제 잔재가 청산되었을까?!)

일제강점기 입학시험 풍경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일제 잔재가 청산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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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근대 교육과 제국주의 교육으로 탄생한 교육제도!
일상과 교육 현장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교육을 되돌아보다!
일제강점기 입학시험 제도가 어떤 목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는지,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신문과 잡지 등 일상의 자료를 통해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지 다양한 사례를 담았다. 일제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예산에 아주 인색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설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짧은 교육 기간, 저급한 수준의 교육, 일본인과의 차별 등으로 일관하며 학교를 식민 통치의 핵심 기관으로 삼았다. 이때 등장한 입학시험이 대표적인 예다.
일제가 폭증하는 입학지원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입학시험을 철저하게 활용한 결과 ‘입시지옥’이 생겨났고, 이에 따른 치열한 경쟁, 명문 학교 등장, 입학 브로커 그리고 입시 전문학원이 생겨나는 등 얼핏 지금의 우리 교육제도와 많이 닮아 있는 당시의 입학시험 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을 살펴본다.
저자

김진섭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인문콘텐츠를 공부하여 문화예술 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홍보·교육·도시빈민 간사, ’99강원국제관광엑스포 홍보제작전문위원, 강원인재육성재단 사무처장, 한국미디어콘텐츠학회 이사를 지냈다. 춘천교육대학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교육원 교수를 거쳐 춘천교육대학교,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인천대학교에 출강했다. 현재 우리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와 교양서를 집필하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의 아침을 꿈꾸던 사람들」,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는 두껍다」,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 「정도전의 시대를 읽다」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확장성과 전통 연희에 대한 소고: 2006년 무한도전 등장 이후를 중심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 내재된 동시대인의 일상 연구」가 있으며, “김치의 혁명을 몰고 온 고추”, “우산, 근대와 전근대가 만나다” 등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목차

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풍경 1 근대?교육과?식민지?학교가?만나다

독특한 근대식 학교가 등장하다
공립보통학교를 거부하다
서당이 변하다
지원자는 늘고, 정원은 부족하고…

풍경 2 입시지옥이 생겨나다

실업학교가 주목받다
중등학교, 입시지옥이 생겨나다
전문학교, 일본인과도 경쟁하다
입학시험, 절대적인 선발방식이 되다

풍경 3 시작부터?기울어진?운동장이었다

학교가 변하다
수험생을 다양하게 검증하다
식민지 정책을 고스란히 담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경제력도 실력이다?

풍경 4 입학시험이?만들어낸?풍경들

교육은 사라지고 입학 실적만 남다
조기유학에서 각종 군사학교까지
언론과 문학, 입학시험은 뜨거운 감자였다
갈등에서 무시험 선택까지
수험생, 소비자로 주목받다

풍경 5 입학시험과?사건·사고들

교실 안과 밖 풍경, 입학시험장을 가다
집안의 갈등에서 사기 사건까지
수험생의 일탈로 이어지다
가족, 또 다른 수험생이었다
교사들도 수난이 이어지다

나가는 글/ 주

출판사 서평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워
‘2021년 인문 교육 콘텐츠 개발 지원 사업’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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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교육은
일제강점기 교육제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온 국민의 관심이 한 곳에 쏠리는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이날은 오로지 수험생이 주인공이다. TV에서는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시험장 풍경을 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늦잠을 잔 수험생이 아슬아슬 시험장에 도착하는 풍경까지 온갖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시험장 입실이 완료되는 오전 8시 10분 문이 굳게 닫히고, 시험이 끝나는 오후 6시경까지 수험생은 거의 열 시간에 걸쳐 대학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수험생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이제 그 자녀들로 이어진 이러한 풍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음 직한 궁금증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적으로 문맹 퇴치에서 민족의 지도자 육성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난의 극복에서 개인적 출세와 같은 사회적 신분 이동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교육열이 뜨거워졌고, 근대식 학교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이에 지원자가 급증하자 이들을 수용할 학교가 턱없이 부족했다. 일제는 급증하는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지원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입학시험을 도입했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바로 백 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입학지원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1920년 이후에서 1945년까지, 입학시험과 관련한 신문과 잡지 등의 기사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보는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 「일제강점기 입학시험 풍경」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인문 교육 콘텐츠 개발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현재 우리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강의와 교양서를 집필하는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이야기 우리 문화」, 「신화는 두껍다」, 「왕비, 궁궐 담장을 넘다」, 「정도전의 시대를 읽다」 등을 펴낸 저자 김진섭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제강점기의 교육을 다룬 선행 연구 업적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교육 관련 자료를 망라하여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신문 자료를 꼼꼼하게 조사한 후 관련 자료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정리했고, 이를 사료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사료들을 분석하여 중요한 의제를 이끌어내고 이를 주제별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입학시험에도 여전히 현안이 될 수 있는 주제들, 즉 독자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사회적·교육적 가치가 높다. 예를 들면 입학시험 날의 각종 풍경, 언론의 지나친 관심, 상급 명문 학교로의 진학 열기 등 우리 눈에도 선한 모습들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듯 흥미있게 서술되어 있다. 독자들은 100여 년 전과 다른 듯 같은 입학시험 경쟁에서 여전히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 입시 교육은
시작부터 비뚤어진 교육제도였다!

일제강점기는 근대식 교육기관과 식민지 교육기관이 설립된 시기로, 이때 사회 대변혁을 가져온 근대와 강압적 침탈을 앞세운 식민지 지배라는 두 가지 특성이 융합된 독특(?)하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근대식 학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파생된 입학시험은 단순히 입학생을 선발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컸다. 따라서 입학시험은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이며, 이를 통해 일제 식민지 통치 정책의 본질과 함께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입학시험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뜨거운 교육열과는 정반대로 일제는 식민 통치의 기반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근대식 학교 운영에 필요한 예산에 아주 인색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설립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짧은 교육 기간, 저급한 수준의 교육, 일본인과의 차별 등으로 일관하며 학교를 식민 통치의 핵심 기관으로 삼았다. 이때 등장한 입학시험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입학시험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교육정책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높은 교육열이 반영되어 1920년대부터 근대식 학교에서 교육받으려는 지원자가 대폭 늘어난다. 여기에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식민지 사회에서의 출세,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국민 육성과 계몽·애국심 고취 등 상반된 의도가 서로 충돌하면서 희망과 좌절 그리고 수용과 저항이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고, 그런 가운데 초등학교에서도 입학시험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교육은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의식변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출발하는 기회를 상실하고 시작부터 왜곡과 굴절을 겪는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지속되었고, 수험생을 비롯해 학부모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이나 자살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이른바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입학시험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회 풍조가 등장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입학시험이라는 용어에는 개별 인간의 차원을 넘어 사회구조적 그리고 사회사적 인식이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당시에도 입학시험에 대한 사회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입학시험과 관련한 논문을 토대로 하여 신문 기사, 잡지, 인터뷰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했고, 특히 일제강점기의 신문 자료를 꼼꼼하게 내용별로 분류하여 주요 자료로 삼았다. 신문의 경우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자료가 주를 이룬다. 그 까닭은 일제가 전시 체제로 돌입하면서 입학시험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일제가 폐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음에도, 신문과 잡지 등은 폐간되었기 때문에 1940년을 기점으로 다양한 자료를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입학시험이 시행된 지 어언 100여 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사회적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우리는 입시 교육의 굴레에서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입시 교육의 뿌리를 살펴보는 소중한 기회임과 동시에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지금도 그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 시작은 바로 근대 시기의 일제강점기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듯하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100년 전은 바로 일제강점기였고, 특히 초등학교부터 입학시험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던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의 입학시험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며 학교 안팎에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고,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했다.


주제별로 분류하여
일제강점기 입학시험 풍경을 담다!

이 책은 주제별 분류하여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하였으며, 당시 시대상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와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내기 되도록 쉽게 서술하여 입학시험과 관련한 다양한 풍경들을 담았다.

〈풍경 1: 근대 교육과 식민지 학교가 만나다〉는 도입부로, 입학시험을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기에 앞서 일제 식민지 통치가 시작되는 1910년대까지 근대식 학교의 풍경을 다루었다. 여기에는 일제가 설립한 근대식 교육기관이 자리 잡는 과정과 학교 교육에 그들의 의도가 어떻게 반영되었고,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거부감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근대식 교육기관의 역할을 분담했던 각종 사립학교와 서당은 어떻게 감소했고, 보통학교부터 중등학교까지 지원자가 급증하면서 입학난이 시작되는 원인과 과정 등이 실려 있다.

일제는 ‘조선인은 오로지 식민지 국민으로서 각 분야에서 노예적 심부름을 잘하는 인물을 양성하는 교육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무부 장관은 이 강연회에서 “초등학교 교육은 예비교육이 아니고 완성교육을 행하는 곳으로, 학교를 졸업하면 곧 성실·근면·실무에 복종하고 충량(忠良)한 국민으로서 신민의 본분을 다하도록 지도해야 한다”며 “식민지 국민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선인의 교육은 초등교육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_17~18쪽

일제는 사립학교에 비해 학회 주도의 조직적인 면이 약한 서당을 전통 교육을 이행하는 곳으로 묶어두고, 탄압과 회유라는 양면책을 씀으로써 식민지 교육기관으로 개편을 시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족교육을 수행하는 사립학교를 먼저 탄압하는 일종의 분리 정책을 실시했다. (……) 1910년대까지 사립학교의 위축에 따른 공백을 메우며 근대식 초등교육기관 역할까지 담당했던 서당 역시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서당을 대신해서 야학과 강습소 등이 증가했다. 반면 보통학교로 개편되기 직전까지 학생이 1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던 공립 목포소학교 등 전국의 관공립보통학교들은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힘입어 학생들이 늘어났다. _42쪽

일제는 관리의 임용 조건으로 학력 자격을 법규화하고 회사원이나 노무자 등을 신규 채용할 때 출신 학교장의 추천을 관행화하거나 학력에 따른 임금차별을 관행화하는 등의 기준을 적용하여 관공립학교의 사회적 위상이 예전과 달리 강화된다. 즉 일제에 의해 각종 제도에서 학력을 요구했고, 학력이 없으면 식민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차 사라졌다. 여기에 실력을 키워 민족을 구하자는 이른바 실력양성론으로 많은 이들이 지식인 대열에 합세했지만, 개인의 출세 욕망으로 일본이 인가한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_49쪽

〈동아일보〉에는 “매년 봄이 되면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입학난이고, 매일 지방으로부터 들려오는 논평은 보통학교 증설과 학급 증설 문제이다”라고 비판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학교의 증설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지만,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탈락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조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_64쪽

〈풍경 2: 입시지옥이 생겨나다〉에서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치열한 입학시험과 관련해서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