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시인의 눈길은 “작은 풀꽃들의 가는 몸짓”을 향한다. 그것도 “허리를 구부리고 눈높이 맞춰가며.” 사실 어느 시인이나 마음을 끄는 꽃을 보면 그렇게 하게 마련이리라. 또한 “밀어를 속
삭이듯이/ 눈빛을 건네보[는]” 행위도 김연동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둘째 수에서 시인이 꽃과 시인 사이의 경계를 무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노루귀 참별꽃이
수줍게 고개 들고/ 시든 내 얼굴도 꽃인 듯 쳐다[본다]”니! 이로써 시인은 ‘꽃’에게 ‘내’가 ‘꽃’이 되었음을, ‘나’에게 ‘꽃’이 ‘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거듭 말하지만, 이처럼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되는 경지야말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화된 “최고의 직관적 인식”의 경지이자 선불교의 시조인 달마가 추구하고자 했던 선禪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꽃’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체험했으니, 어찌 시인의 마음이 “한나절을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고의 직관적 인식을 지향하든 또는 선의 경지를 추구하든 이에 이르기 위한 선결 조건은,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암시했지만, ‘나 자신’을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같은 경지를 서양의 대표적인 선험철학자 에드문트 후썰Edmund
Husserl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사적 자아das personliche Ich”나 “경험적 자아das empirische Ich”를 극복함으로써 “직관적 순 수die eidetische Reinheit”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결국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를 없애는 일’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처럼 ‘나’를 없앤 끝에 비로소 이를 수 있는 시적 인식의 경지가 현실적인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앞서 논의한 「풀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삭이듯이/ 눈빛을 건네보[는]” 행위도 김연동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둘째 수에서 시인이 꽃과 시인 사이의 경계를 무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노루귀 참별꽃이
수줍게 고개 들고/ 시든 내 얼굴도 꽃인 듯 쳐다[본다]”니! 이로써 시인은 ‘꽃’에게 ‘내’가 ‘꽃’이 되었음을, ‘나’에게 ‘꽃’이 ‘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거듭 말하지만, 이처럼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내’가 되는 경지야말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화된 “최고의 직관적 인식”의 경지이자 선불교의 시조인 달마가 추구하고자 했던 선禪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꽃’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체험했으니, 어찌 시인의 마음이 “한나절을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고의 직관적 인식을 지향하든 또는 선의 경지를 추구하든 이에 이르기 위한 선결 조건은, 이미 앞서 여러 차례 암시했지만, ‘나 자신’을 버리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같은 경지를 서양의 대표적인 선험철학자 에드문트 후썰Edmund
Husserl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사적 자아das personliche Ich”나 “경험적 자아das empirische Ich”를 극복함으로써 “직관적 순 수die eidetische Reinheit”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결국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를 없애는 일’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처럼 ‘나’를 없앤 끝에 비로소 이를 수 있는 시적 인식의 경지가 현실적인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를 보여주는 것이 앞서 논의한 「풀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노옹의 나라 (김연동 시조집 | 양장본 Hardcover)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