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따 대고

어따 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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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올바르게 걸어가되 앞만 보지 않고 전후좌우 그 너머의 눈물과 상처까지 살피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시인의 자세라는 것을 김춘기 시조에서 읽는다. 남에게 편안히 하지 못한 untold story를 은유로, 상징으로 넌지시 일러주면서도 종내 몇 마디는 혼자만의 몫으로 남겨두는 시인의 속마음을 가늠하면서, 편편이 넘겨보는 갈피에는 그 특유의 면역력이 스며있다.

궁술을 연마할 때 활을 잘 쏘는 법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한다. 먼저 명상으로 찰지력을 높이면 오감, 육감을 넘어서는 능력이 생기는데 중요한 것은 과녁을 맞혀야겠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릴 때까지, 우리 자신이 화살이 되고 활이 되어 목표점에 이를 때까지 수백 수천 번을 다시 쏘는 것. 그리하여 사물의 에너지가 우리의 움직임을 이끌어 우리가 원할 때가 아니라 스스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활시위를 놓게 된다는 것이다. 시조 작법 역시 이러하다는 생각에 이르니 종착역에서 손짓하시던 어머니가 「활」이 되신 연유를 알 것 같다.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맺힌 가슴을 풀어내는 「북촌리 동백꽃」, 안과 밖의 눈물을 엮어 각인된 기억으로 마침내 나를 바꿔놓는 「순천만 갈대」, 인간의 조건에 대해 배우게 하고 삶과 행동에 대한 통찰력이 드러난 「시간은 약이 아니다」, 자기반성과 함께 세상을 향한 통로가 되어 이웃과의 소통을 꿈꾸게 하는 「도미노 거리」, 시치미를 떼고 습관적인 언어 행위를 방해함으로써 관계의 구체성을 드러내 보이는 「개기일식」과 사물을 대상으로 하되 일상생활의 관습으로 취급하지 않는 「서울 그림자」에는 시인의 돌올한 시대정신이 엿보인다.

“용광로 쇳물처럼/ 녹아내리는 심장/ 세방낙조 끓는 태양/ 수평선과 포옹한다/ 사랑은/ 끝이 없는 것/ 어따 대고, 나이를 대노”(「어따 대고」)를 읽으면 일몰의 순간 낙조처럼 끊임없는 천착으로 생을 살아가는, 숨겨진 그의 호방함이 넌출거린다.
일상의 낯익은 껍질을 벗겨내고 지각의 신선함을 되살리는 김춘기 시인의 시조는 마침내 올 운運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저자

김춘기

경기양주출생
2008년《국제신문》신춘문예시조당선
2001년금호시조상,2002년공무원문예대전우수상(시조),2009년교원문학상(시),2010년강원문학신인상(시),2023년그린매거진디카시국민공모전대상수상
2015년양주백석중학교장퇴직후제주도로이주
시집『웃음발전소』『아버지버킷리스트』,부부시집『윗세오름까마귀』출간

목차

1부허리케인

해탈/사하라,갈증풀다/외계행성/폭풍전야/궤변,벼락거지/순천만갈대/허리케인/경적/피라미/제주억새/신노들강변/기상이변/엉또폭포2/북촌리동백꽃/코로나,평등이루다/하늘울음


2부초음속시대

순정공업사적자장부/허공에살다/유리천장깨다/청년K,아침/고뿔/제주도달/초음속시대/노량진매미울음/바람의말/공/대정오일장/서울그림자/도미노거리/오후한나절/못3/신주례사


3부이구아수폭포

살구나무손말/부슬비/젖니솟다/메밀꽃/다도해/백령도몽돌해안/모슬포,겨울별자리/애월은/고비사막,겨울한컷/수행/이구아수폭포/밤비/제주산담/월경/푸른별연금/가평천


4부돌풍

베링바다그물질/바다교향곡/곡선/가을/봄비/어머니손/해진구두/활/캄보디아칼란디바/아이티아나이스/어따대고/당케포구먼나무/아버지등/국보1호/돌풍/티베트얄룽창포강


5부개기일식

지천명골드미스정/홍수/라쿤/한라산중공업지구/개기일식/슬픈부부/시간은약이아니다/패자부활전/지평선/대이작도소식/초당동반딧불이/증기기관차/독도/비치미오름에피는꽃/백목련/봄을발간하다/해설_이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