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학생입니다 : 차동희 수필집

아직도 나는 학생입니다 : 차동희 수필집

$15.00
저자

차동희

저자:차동희
하서초등학교졸업(7회)
성균관대학교법학과졸업
이화여자대학교교육대학원졸업
1993년『문예사조』신인상수필당선등단
법무부,노동부근무
한국여성개발원(現여성정책연구원)책임연구원명예퇴직
원광대학교여성학강사역임
부안문인협회회원

목차

세번째수필집을내면서


1부

우리한신자여학생회장
미국에사는친구영순이에게
은행에서생긴일
어느비오는날에
젖먹이손자중학생이되었네
지하철안의풍경
효녀이야기
색동저고리
어머님의머리카락을잘라서


2부

예의에대하여
진을주선생님8주기에붙여
모자의매력
자랑스런나의후배K여사
동방예의지국
음악가친구순이생각
다시태어난다면
자세


3부

요양병원에있는친구를찾아서
동지팥죽의풍습
1950년6.25사변후에서글픈사연들
연금이냐효도냐
그래도수석합격도해봤다
오빠의진심
백내장수술후에맑고푸른하늘을볼수있어요
나에게박수를


4부

어머님생각
판잣집에살면서대학생이되었네
행운
아들타령
아직도나는학생입니다
꿈속에서만나본아버지
우리어머니의손재봉틀
6년우등상과6년개근상

출판사 서평

우리한신자여학생회장
-오뚝이친구다시도전해봐요

나는만학晩學으로어렵게대학에들어가서,평균5세연하의학생들과어울려서공부를하였다.
법과에들어갈때는거의가법관이되어보려는꿈을품고있었을것이다.
그런데입학할때(1964년도)가졌던꿈을성취한행운아도있지만,꿈과는상관없이다양한분야로진출했다.
가장놀라운일은졸업후에신학을공부해서목사안수를받고큰교회에서설교를하는동기가3명이나있고,대학교수로,은행원으로,공무원으로,경찰로,사업가로다양한분야에서활동을했다.
여학생은네명이입학했으나한명은중퇴하고세명이졸업했다.
그중에서한명은사대부고출신으로교사가꿈이었기에교사자격증을취득하여졸업하자마자바로학교교사로진출했고,나는법관이되어보겠다고사법고시준비를했으나꿈을이루지못하고공무원이되었다.
한신자,그녀는정치가가되는꿈을품고있었다.
3학년이되자여학생회장에출마했다.
법과여학생은주야간합해도10명도안되는데문과학생과겨루려고출마하다니….
나는걱정스러웠다.
도저히승산이없는경쟁인데….
투표날이다가왔다.
문과학생들에게에워싸여서,당선은기정사실이라는듯이당당한상대후보자를보면서나는기가죽어있었다.
마지막후보자들의소견발표시간,발표장을가득메운여학생들앞에서,먼저문과생후보자가무슨얘기인가길게발표를한후에박수갈채가쏟아졌다.
한신자차례가됐다.길게얘기를하지않았다.짧게발표를한후,끝으로한말이명언이었다.
“내가여학생회장에당선된다면,나는여학생을위한,여학생에의한,여학생들의여학생회장이되겠습니다.”
그런내용이었다.
그말이끝나자마자폭소와함께우레와같은박수가터져나왔다.
투표가끝나고한신자측의대표로검표를지켜보던나는가슴이울렁거렸다.
계속한신자표가쏟아져나왔다.
드디어압도적인표차로한신자는여학생회장으로당선되었다.
김명복과나는얼싸안고깡충깡충뛰면서눈물을글썽거렸다.투표에서이긴승리감을처음으로느껴본그때그추억이엊그제일처럼선명하게떠오른다.
그렇게여학생회장이되자강의출석보다는교내행사나대외활동에열중하게되었다.
시험때가되면어디까지시험범위인지도모르고있다가집중적으로공부했는데,놀랍게도시험점수가높아서교수님들도놀라셨다.그녀는뛰어난암기력을가지고있었다.
졸업후에는부산지역에서여러차례국회의원에당선된분곁에서봉사활동을하면서정치가의꿈을키우고있었다.
그의원이현역에서떠나자새로탄생한모정당에입당하여얼마나성실하게봉사했는지,능력을인정받아서비례대표순위에서여성1번을받았고,드디어‘우리여학생회장이의원배지를달게되었구나’라고생각했었다.
그런데의원명단발표전날밤,변수가발생했다.다른여성의이름으로바뀌게되어서탈락되고말았다.
이것이바로정당내부의실상이다.
그후,그녀는새로탄생하자마자이목을끌었던‘이회창’씨정당에들어가서봉사를했다.
그러다가또다시예기치못한일로그당이무너지면서그녀는좌절하고말았다.
그러나그녀는또다시‘오뚝이’처럼일어섰다.
수녀출신으로서독파견간호사로가서고난속에서간호사일을마치고귀국한둘째언니가부산에서양로원을운영하고있었는데,그곳에찾아가서봉사활동을하기시작했다.
언니혼자힘으로는헤쳐나갈수없는대외적인일들을주로동생인그녀가맡아서처리해냈다.
그러다가정식으로사회복지사를고용해야만할상황에처하게되었다는것이다.
그때,그녀는용기를내서사회복지사교육기간에참석하여교육을받고,시험을쳐서,대학원에서사회복지학을전공해야취득할수있는‘사회복지사1급자격증’을취득했다는것이다.
정치가가되어보려던야망의꿈을접고,언니의일을지원하는사회복지사로오뚝이처럼일어선것이다.역시학생시절에뛰어났던그암기력이남아있어서,그렇게언니를도와주기위해서,그런일을해내고야말았다.
아마국회의원직을시험을봐서당선시킨다면,그녀는틀림없이합격되어서의원배지를달수있었을것이다.그뿐인가?처음부터사법고시시험준비를했다면,벌써법관이되었을것이다.지금도아쉬운감을느낀다.
정치가의야망을안고도전했던그녀!
정치가란능력(재력,실력)도있어야하겠지만,줄을잘서야한다고들한다.
한때는‘노란옷만입어도국회의원에당선될수있다’고하던때도있었다.
대학시절!도저히이길수없으리라예상했던선거전에서당당하게승리했던그재능!
여의도가는길에,‘줄만잘섰더라면그녀의능력을발휘할수있었을텐데’하는아쉬움이남는다.이제라도그녀의탁월한능력을볼줄아는혜안慧眼을가진정치인이나정당이나타나서그녀에게오뚝이처럼다시정계에진출할수있는기회가주어진다면얼마나좋을까?
(2016.7.『부안문학』)


미국에사는친구영순이에게

영순아,우리가벌써10여년이지나도록만나본적이없구나.
그런데도왜자주만난느낌이들까?
그건바로카톡때문이구나.
자주카톡으로자료나사진,그리고너의기도문등을주고받고하다보니,자주만나고있는듯하구나.
영순아,너와나사이는어느누구보다도각별한친구사이라고생각한다.우리가처음만나게된것은8.15해방이후,초등학교입학직전이니벌써70년이흘렀구나.
네가지금서울에살고있다면종종만날수있을텐데,하는아쉬움도크다.너도아버지께서돌아가신후에만났지만,너희집은부자틀이나는집이었지.
안채와사랑채가있고,운동장같이넓은마당과높은흙담장과큰대문이있는집.
언니도두분,오빠는세분이나있어서대가족이었지.
대청마루구석구석에는쌀가마니와과일바구니들이항상널려있었어.
너희집앞에는여러그루의밤나무들이울창하게자라고있어서밤나무밑으로다니다가밤송이를얻어맞고아파서운적도있단다.
집건너편에는‘알미산’이있었고,산아래는넓은과수원이있어서봄부터가을까지먹거리가풍성했었지.
봄에살구부터시작해서대추,감,밤,사과등등….
어느날,너와내가단감을따서먹고그씨를과수원입구탱자나무옆에심었지.
신기하게도두개의씨가새싹이솟아나오고,무럭무럭자라났지.
감나무가자라기에좋은위치였는지아무도건드리지않고그대로자라나서수년후에도그앞을지날때마다미소가흘러나오고,흐뭇한기분으로바라보았단다.
아마지금도그자리에우뚝서서옛과수원의추억을지키고있을것같구나.
너는어릴때노래를잘한다고너희큰오빠의귀여움을많이받고자랐지.
너를음대에보내서성악가로키운다고하면서,학예회때네가독창연습을하면,너희오빠는날계란을가지고와서너에게먹일때얼마나부러웠는지….
그렇게호강하던네가그잔인한6.25한국전쟁으로인하여쓰라린슬픔을맛보게되었었지.
너를아기처럼보호해주었던큰오빠는행방불명이되고,가정은파산이되고,너는고향을떠났었지.
언니들은시집을가고,둘째셋째오빠와어머님과같이너는서울로가서살고있었지.
나는20세가되자,어머니께서제발시집좀가라고졸라대셨단다.
그당시나는열심히일도하였지만,틈틈이책을보면서독학獨學으로한문공부를했고,오빠가서울에서보내준중고등학교참고서를독파하면서공부를했지.
왜그렇게도공부가하고싶어서미쳤을까?
사촌들은서울에서다학교에다니고,오빠만데려다가공부를시켜주니까샘이나서그랬을거야.
나는계집애라고무시당하고,‘시집가면남의식구’라면서….
나는어머니와타협을했었단다.시집보내려고한푼두푼모아놓은돈으로공부를해서,내가벌어서시집가겠노라고.
그래서길게땋고다니던머리를내손으로싹둑자르고,숙부님집으로찾아갔다가쫓겨나고,엉엉울면서내려와서머리를싸매고누워있다가너의집에가서한달만머물러있을예정으로옷보퉁이를싸들고너에게찾아갔었지.
나는검정고시학원에가서공부하려고왔으니,한달동안만너의집에있겠다고내꿈을털어놓았을때,너는쾌히동의했을뿐만아니라너도중단했던공부를하고싶었는데함께학원에등록하자면서선뜻앞장서서학원으로향했었지.
나는다른과목은다쉬웠으나영어는백지상태였는데,그날부터너에게서A.B.C를배우면서영어공부에매진했었어.너는나의영어개인교사였단다.
강의실에들어가자마자,첫날부터영어시험지를받고이름만써내고나왔는데,1주일마다영어시험을보았으므로,1주일동안너한테서지도를받아서열심히공부한결과1주일후에본시험에서는70점을받았고,2주일후에는드디어100점을받아냈더니영어선생님께서놀라시면서“우리반에천재가나왔네”하시면서깔깔웃으시던모습이떠오르는구나.
그렇게출발한우리는야간고등학교에함께다니게되었고,모대학의2부시험도같이응시했지.나는등록금준비도못한처지에대학에한번합격이라도해보고싶어서응시했었어.
우리는합격이되고,나는50%입학금이면제되는장학금을준다고통지가왔었지만,전액장학금혜택을받았다면당연히입학수속을했었겠지만나머지50%를낼형편이못되었지.
등록을포기한다고했더니,너는입학금준비가돼있다고했는데혼자다니기싫어서였는지포기하고말았지.
너는둘째오빠가버스기사였는데,종종사고건으로법원에불려가서시달림을받는걸보고오빠를도와주기위해서법관이되어보겠다고하자,나는원래학교에서학생들가르치는교사가꿈이었는데,덩달아서법관이되어보려는꿈으로바뀌고말았지.
그러다가너는어머님이떠나시고,입주가정교사로지내다가결혼을했고,나는시간제가정교사로조금씩모아서간신히대학에들어가게되었구나.
그리고정부대여장학금덕분에졸업을하게되었지.
너는자녀들을데리고미국으로이민갔고,거기서신학공부를해서전도사님이되고,열심히전도활동하는너의모습이장하구나.
이제는요양원에다니면서전도도하고,봉사활동도한다니자랑스럽다.
지난해에는심장수술까지했다고했는데,곧회복되어서예쁜모습으로찍어보낸너의사진을보면서마음이놓였단다.
내가손자들돌보면서틈틈이중국어공부도하고,피아노교육도받는다고했더니,성경공부나하라고핀잔을주었지.
네말대로요즘교회에서성경공부교육을받으면서너의잔소리가떠올라서이글을쓰게된것이다.
영순아,어느덧우리도80을향해가고있구나.
앞으로도우리건강관리잘하고,손가락이움직이는날까지카톡도주고받으면서살자.
네가언제한국에올지,내가미국에다니러갈수있을는지.
그날이올수있기를기도하면서이만줄일게….
(2016.7.『부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