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나여경 소설집)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나여경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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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여경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하여 타자에게로 더 깊이 다가가고자 한다. 여섯 편의 단편 모두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들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운세 운명을 믿지 않는 청년의 아이러니한 죽음, 배달 중 쏟아진 붉은 피 흘리는 아귀찜을 주워 담는 투잡 청년의 고단한 삶, 관계의 어긋남으로 빚어진 방화사건, 참담한 사고의 기억을 온전히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친구, 각기 다른 양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시장 사람들, 독처럼 스민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우리네 공동체 삶에 관한 서술이다.
저자

나여경

서울태생으로2000년부터부산에정착해살고있다.
2001년≪경인일보≫신춘문예등단후작품활동을시작했다.
두권의소설집「불온한식탁」,「포옹」과여행에세이「기차가걸린풍경」을발간했다.
제11회부산작가상,제8회요산창작지원금,제10회백신애문학상을받았다.

목차

작가의말


내기타는죄가없어요,아버지!
독毒
산책하는고양이
네버엔딩스토리
즐거운인생

발문_그녀가작가인이유는?한창훈(소설가)

출판사 서평

[주요작품]
서른두살의젤러가세상을떠났다.젤러는생전남편셋을죽였다.치명적인요부로회자되었다.매력적인여성스파이마타하리본명에서따온젤러라는이름만봐도그실체가상상된다.예쁜눈과반듯하고현란한몸매,고혹적인자태로수많은수컷의구애를받던젤러의사망소식을들은건오늘아침이다.
“별일없지?”
아침부터전화로젤러의사망소식을전하던유경이낮게가라앉은목소리로묻는다.그녀는눈을뜬후제일처음접하는소식으로그날일진을점쳤다.나는애써태연한척목소리높여말한다.
“무슨일,나야항상이상무지!”
이상무,라고말은하지만오늘내기분은모든장기가녹아사라진것처럼공허하고쓸쓸하다.어제의비보를유경에게털어놓으면속이후련할텐데,참는다.감이나운세,운명따위에유달리집착하는유경에게그소식을전하면어떤반응이나올지뻔하기때문이다.내기분도기분이지만그녀얼굴에그늘이드리워지면내마음은깜깜한어둠에잠긴다.
“오늘도무사히!”
항상쪽,하는키스소리로통화를마무리하던그녀가오늘내게건넨인사말이다.
숨이막힌다.기도를통해들어온공기가허파를태우는느낌이다.‘후유’더운숨을뱉는다.쏟아낸몸안화기에라이터를켜면불이붙을것같다.며칠째계속되는마른장마탓도있지만불편한속내때문에더후끈후끈하다.작업자들역시늘어난티셔츠처럼축처져있어분위기가영말이아니다.아침부터이것저것지시사항을전달하던팀장이불편한속내를감추지못하는내얼굴을살피다어깨를툭툭치며한마디한다.
“마음은아프지만,어쩌겠나,오늘까지마무리잘하고며칠쉬세.이럴때일수록정신줄잘챙겨야하는거알지?”
팀장말이아니어도우리는정신줄뿐아니라,줄을잘챙겨야한다.우리일이라는게잠시딴생각하는사이목숨을잃을수있기때문이다.날씨가더울때도추울때도기분이좋아도나빠도항상긴장해야한다.
젠다이에발을올려놓을때특히정신줄을팽팽히당겨야한다.산만해지면안된다.젠다이에올라앉는순간이가장위험하기때문이다.물론옭매듭으로단단히묶은로프끝부분을클립으로체결해서건물의튼튼한구조물에연결하는것도중요하지만젠다이라불리는달비계에매달려일하는시간이더많으므로타는순간부터일이끝날때까지긴장의끈을늦추면안된다.
젠다이에연결된로프외에또하나의보조로프에안전대를연결하면젠다이로프가풀어지거나끊어진다해도추락사하는일은없다.안전을생각하면백번천번로프를하나더연결하고안전대를매야겠지만일하는처지에서는노땡큐다.우리는안전대를믿는게아니라실수하지않을자신을믿는다.우리가일터에서젠다이라부르는달비계를미국이나일본같은선진국에서는사용하지않는다고들었다.대신곤돌라를사용한다.달비계를사용할때보다작업속도가거의다섯배나늘어나는곤돌라를우리나라에서사용하는일은영원히없을지도모른다.‘빨리빨리’를구호로외치는이나라에선생각할수없는일이다.속전속결의위대한나라아닌가.
나는젠다이에안전하게올라앉으면제일먼저핸드폰에저장된음악을재생시킨다.유경이저장해놓은음악이다.이상하게그녀가저장해놓은음악을듣게되면마음이가라앉는다.간혹밤에쓴편지의감상에화들짝놀라아침에찢어버리듯손발이오그라드는노래선택에소름이돋을때도있지만대부분은언제들어도좋은음악들이다.좋은음악,지금은이렇게말하지만,사실유경이저장해놓은음악은난해하고처음들을땐몹시거부감이일었다.감이나운명에집착하는그녀를이해하는일만큼이나그음악과친해지기까지오랜시간이걸렸지만얼마전부터는습관처럼제목도모른채그녀가저장해놓은음악을듣는다.
‘우아한유령’오늘내가들을곡이다.유경이내핸드폰에저장해놓은곡들은제목과곡들이너무길고어려운데이곡만은쉽게느껴지면서귀에잘들어온다.내가이곡을듣고있으면동료들은짜증을내면서집어치우라고아우성친다.잘되던작업도망친다는것이다.그들의성화에나는실없이웃고만다.사실우리가듣는음악은주로트로트이다.트로트중에서도너무빠른음악은제외한다.빠른노랫가락의박자를따라가다보면오히려일의능률이떨어지기때문이다.너무빠르지도느리지도않은뽕짝이야말로우리들의작업능률을올리는데큰몫한다.
세상시끄러운소리와개미처럼옴짝옴짝움직이는이들의모습은음악이뜨는순간사라지고나만의세상이펼쳐진다.수술을집도하는의사눈에는천사이로드러난환부만보이듯내눈에는뿌옇게흐린창만보인다.소음과사람들의움직임을모두신경쓴다면작업이제대로이루어지지못한다.그건또다른사고로직결되기도한다.집중또집중해서작업을마칠수있는건모두그녀의노래때문이라고생각한다.‘우아한유령’이흘러나온다.이로써작업이시작된다.
나는로프공이다.로프공?축구공탁구공도아니고로프공은뭐예요?내직업을말했을때십중여섯명정도는그렇게되묻는다.특히여자들이그렇게묻는다.나머지도내직업을딱히알아서안물어보는건아닌것같다.나는그럴줄알았다는듯씩웃고만다.로프공은건물의외벽,유리창,간판청소,실리콘작업뿐아니라유리나패널교체,타일보수심지어고층건물에글씨붙이는작업등높은곳에올라가는작업은모두한다.따지고보면로프공들도우리나라엄마들이저높이올려놓는직업인의사,판사,교수만큼높은위치에있다.그들과다른것이있다면우리는매일매일바닥으로다시내려온다는것이다.
로프공들이일하는모습을본사람들은보기만해도아찔하다고말한다.그럴때마다나는어차피우리모두엄마뱃속에서부터외줄에기대태어난목숨아니냐,천지분간못하던생명체일때도배꼽과연결된외줄에기대열달이나살았는데,이제어느정도세상물정다아는처지에뭐그리두려울게있겠느냐,라고말한다.하지만그건내게거는주문에불과하다.
이바닥에서베테랑으로불리는이들도순간순간심연의바다로추락하는듯한두려움을토로할때가많다.특히동료가작업도중죽었다는소식을들었을때심해진다.로프공들의사고는예기치않은경우가별로없다.문제는하나,안전에부주의한탓이다.누구나초보자일때는주로프와보조로프를매고안전대도착용한다.그러다가두줄이한줄이되고안전대착용도소홀해지게된다.그야말로줄하나에목숨을매달고일을하는것이다.그렇게되면정신줄뺏기는아찔한순간은부지불식간에유령처럼찾아온다.
친구찬식의죽음도그랬다.어제찬식이매달려있던로프가끊어져그자리에서사망했다는소식은순식간에작업현장을얼어붙게했다.그생각을하니불가마를집어삼킨듯또다시속이화끈화끈하고메슥거린다.
대학동기인찬식은꽤열정적이고성실한친구였다.내가로프공이된것도찬식이때문이었다.학교를졸업하고적당한일자리를못찾아이리저리방황하고있을때그가내게인터넷에서복사한전단한장을내밀며말했다.같이일해볼래?전단광고내용은몹시황당했다.
<세상그어디에도없는최고의청소기술을보유한업체.국가관직업관윤리관이철저한분.금슬좋고효성이지극하며형제간에우애가돈독하여평화로운가정을이루고있는분>
유별난광고문구에픽,하며웃다거창한마지막구절을읽고나서찬식과나는결국폭소를터트리고말았다.
세계청소시장을제패할야망품은분!
찬식과나는그당시별로웃을일이없었는데우리에게잠시나마큰웃음을선사한‘달인청소대행업체’에입사하기로했다.광고전단을처음봤을때웃었지만일을하다보니직업이나윤리관이투철한사람,가정사가원만한사람을뽑는것은매우당연한일이었다.누구에게나그렇지만특히우리처럼매순간위험한일을하는사람에게는사랑하는사람들이곁에있다는건큰위안이기때문이다.
찬식은타고난성실성과안전하고신속하게작업을잘처리하는실력을인정받아이일을시작한지얼마안돼청소대행업체를인수하여대표가되었다.그는누구보다도안전을최우선으로여겼다.내게도항상첫째도안전둘째도안전이라는말을주문외우듯했다.
찬식의사인은달비계를연결하는로프절단으로인한추락이었다.로프공들중에로프를결속할지지물이부실할경우옥상에못을몇개박아묶거나건물계단틀에줄을매달기도하지만찬식은일을안하면안했지,그런위험천만한일은절대하지않는친구였다.로프지지철물인앵커볼트상태에서부터로프의손상과부식,달비계의연결,접속부상태등모든일에철저한친구였다.달비계를연결하고있던그지점에로프를갉아먹은뾰족한철판조각이있을줄은아무도몰랐다.
이럴땐불현듯운명론자인유경의말이맞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기도한다.하지만세상에우연이얼마나많은가.찬식의일도어쩌다우연히일어난사고였을뿐이다.
유경의방한쪽벽에는커다란얼룩말사진이붙어있다.국내유일한그레비얼룩말로이름은젤러다.아기자기하거나화려하게또는귀엽게단장하는여자들방과는다른분위기다.유경과함께간동물원에서본젤러는뭐라표현하기힘든말이었다.굳이표현하자면이정도가맞을것같다.
“동물도저렇게아름다울수있구나.”
유경은아름다운겉모습과달리슬픈사연을간직한젤러를좋아했다.젤러는합방을시도하던남편얼룩말세마리를뒷발로차서모두쇼크사시켰다.팜므파탈에서따온‘팜므파말’이라는별명이따라다니는이유이기도했다.어찌어찌해서두번째남편과합방에성공해아들을낳았지만,그아들마저죽고말았다.
“젤러가왜수컷을쇼크사시켰는지알아?”
“왜?”
“그건운명에순응하지않았기때문이야.”
“뭐,운명,푸하하하하무슨되지도않은말을….”
“여러수컷중한마리를선택하는야성의습성을버리지못했기때문이래.젤러에겐임의대로인간이그렇게수컷을붙여주면안되는거였어.젤러의선택권을인간이빼앗아버린거지.그래서애꿎은수컷만목숨을잃게된거고.”
“멋지네,운명을거슬러개척하는말이라니.”
말을마친내가일부러호탕하게웃었지만유경은고개를돌렸다.
나역시젤러의남편말들처럼유경에게수없이차였다.
“한번만더그런쪼다같은소리하면가만안둬!”
화가날때마다내가유경에게퍼붓는소리였다.자신과엮이면불행한일이생긴다는이유로나를거부하던그녀를이해할수없었다.나는그냥싫다고해라,무슨그런말도안되는걸로사람을무안하게하느냐,라며으르렁댔지만,그녀의입에서내가싫다는말은나오지않았다.그것이면족했다.
유경의말에의하면자신을가까이하면내게좋지않은일이생긴다는것이다.첫번째결혼에실패하고결혼을약속했던두번째남자마저교통사고로잃고난후생긴트라우마였다.나는그런되지도않은소리를들을때마다속에서울화통이터졌다.참으려고해도저절로고함이터져나왔다.
“내게생기는안좋은일그어떤것이라도다감수한다.외줄타는내인생에너는또하나의내목숨줄이다,”라는내말에그녀가마음을돌리기까지3년이란세월이걸렸다.
하지만여전히그녀는운명이나운세따위의이야기가나오면예민해지기일쑤였다.
할당된작업량을시간안에마치기위해손을빠르게놀린다.물과10:1로희석된불산이들어있는말통을젠다이오른쪽고리에걸고왼쪽에는작업용도구를건다.밧줄의고를늦추면서천천히젠다이를아래로내린다.유리창에불산섞인물을뿌리기위해창틀을지지대삼아발을고정한다.불산은유리창을광나게닦기위해쓰는데빠르게물로씻지않으면유리도녹일수있다.나는손빠르게오래쌓이고쌓인먼지위에물을뿌리고세척을시작한다.잠시의작업으로도온몸이비맞은듯땀으로흠뻑적는다.끈적하고불쾌한유리창먼지가내몸으로옮겨붙는느낌이다.
뿌옇게안개낀듯보이지않던유리창이서서히묵은때를벗기시작한다.4개동중작업이마무리된3개동이유난히햇빛을받아말끔하게보인다.눅진하게들러붙은불쾌함이잠시가시고기분이상쾌해진다.
건물외벽은사람피부와같다.관리받은피부와방치해버린피부는상태가다르듯건물도관리여부에따라수명이늘어난다.건물외벽이사람피부라면유리창은눈이다.맑고또렷한눈에마음이끌리듯유리창이맑은건물을보면기분이저절로좋아진다.산성비나눈,황사와자동차매연,미세먼지때문에더러워진건물외벽과유리창은숨을쉬지못하는데,우리로프공들은그런건물을치료하는의사나마찬가지다.소문난의사에게진료받고싶은환자가줄을잇듯건축물의사로서소문난로프공의주가역시높다.나도그중하나다.원래성실한근성을가지고태어난것도있지만다른로프공보다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