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영화 그리고 인문

과학기술과 영화 그리고 인문

$16.68
Description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인류의 미래적 지표를 인문학적으로 짚어보는 에세이집이다.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의 회원들로 구성된 필자들은 과학기술 영화를 선정, 함께 관람한 후 그 인문적 주제와 방향성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과 글쓰기 수업 과정을 가졌다. 영화가 가진 감수성과 상상력이 글쓰기라는 행위를 만났을 때 일어나는 보다 실천적 성찰은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감성을 선사한다. 영화는 글쓰기를 통해 그 사유가 심화되며, 공존의 상상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단편적인 토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충분히 어우러진 시간과 공간의 발견은 우리에게 절실한 시대감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저자

백년어서원

백년어서원은부산원도심동광동에자리한푸른여울입니다.‘백년어’는앞으로백년을헤엄쳐갈백마리의나무물고기를의미합니다.충청도산골옛집을헐어나온서까래와기둥에서태어난물고기들,그지느러미로새로운물결을만들고있습니다.
‘百’은물이끓기시작하는온도이며,한세기를넘어가는단위이며,언제나받고싶은점수이기도합니다.‘百’의우리말은‘온’입니다.이는‘전부’,‘모두’를함축하고있으니,곧온전함을지향하는자연수입니다.이기도같은‘百’은당신속에서오래자라고있던자연또는자유의이름이기도합니다.
물고기가표상하는건생명에대한연민과깨어있는영성으로신석기때부터사용된정신사의아이콘입니다.이는시대를거슬러근원을찾아가는힘이기도하며,공존을위한감수성의세계이기도합니다.십시일반마음과손길을보태고있는아름다운사람들을기억하며이제백년어는글쓰기의공동체를꿈꿉니다.소박한깃발을달고,누구에게나열려있는,무늬가있는문이고자합니다.긴꿈을꾸고자합니다.

목차

서문
미래를여는영화,내일을여는글쓰기

신정민
숭고한삶에바치는헌화-〈로마〉
나는어디에있는가-〈루시〉

이수경
현현하는타자들을향한진정한사랑-〈그녀〉
존재하는모든것들을위하여-〈루시〉,〈컨택트〉
이미세계가있었다-〈바람계곡의나우시카〉,〈나의문어선생님〉

김묘재
내자리는어디인가-〈컨택트〉,〈내게너무나사랑스러운그녀〉,〈돈룩업〉,〈루시〉,〈바람계곡의나우시카〉

기준을다시세우면-〈루시〉
클레오누나와영자언니-〈로마〉

이경희
우리는어디로가고있는가?-〈루시〉
바람계곡,생명의공동체가재건되길소망하다-〈바람계곡의나우시카〉
벽(Wall)을넘어서-〈월-E〉

목민정
사랑은명사가아닌동사-〈그녀〉
나를비추는거울-〈나의문어선생님〉
중요한건눈에보이지않아-〈로마〉
떠도는영혼-〈트랜짓〉

허재원
이름밖의존재-〈나의문어선생님〉
‘차이’를넘어‘해방’으로-〈바람계곡의나우시카〉
언어의환영-〈컨택트〉

윤미순
멈춘바람,생쥐는살아있다-〈바람계곡의나우시카〉
지금은사랑할때-〈내게너무나사랑스러운그녀〉
흘수선,그경계를넘다-〈나의문어선생님〉

박근자
내가그의이름을불러주었을때그는나에게로와서꽃이되었다-〈나의문어선생님〉
나의희망뇌사용량-〈루시〉
유년의기억속가정부리보에대한추억-〈로마〉

김미경
우주,상상력이이끄는거대하고아름다운세계-〈콘택트〉
인생은타이밍이다-〈트랜짓〉
과학이라는종교-〈블레이드러너2049〉
일상은계속된다-〈로마〉

백양휴
AI의눈물,몸이없는사랑-〈그녀〉

황선화
햇볕반,그늘반-〈내게너무사랑스러운그녀〉
숙연한삶을위하여-〈네버렛미고〉

진미현
암흑속에반짝이는C-빔-〈블레이드러너〉
나를봐줘-〈써로게이트〉
너에게닿기를-〈그녀〉

김수우
믿는다는것-〈바람계곡의나우시카〉
촉수사유,그사랑의힘을위하여-〈월-E〉
진실을마주하는방식에대하여-〈돈룩업〉

우리가본영화

출판사 서평

[주요작품]
포스터가인상적이다.해변에가족인듯보이는사람들이물에젖은서로를껴안고있다.숨가쁜호흡이느껴지고,동시에안도가전해진다.죽음에서돌아온자들.물에빠진아이들을수영도할줄모르는입주가정부클레오가바다에뛰어들어구한후의장면이다.나도그들을껴안고서하나의그림이되어보는상상을했다.포스터는영화의얼굴이다.영화를대신해줄수있는한컷,저장면에는이영화의모든것이담겨있다.2018년알폰소쿠아론감독이각본,제작,촬영까지한작품은놀랍게도흑백영화다.온갖색을생략해버린흑백은사람을단순화시킨다.당시암울한현실을보여주는흑백은불안한사회와불안한가정과불안한사람들의이야기에집중하게한다.또한이영화는배경음악도없다.다만옥상에널어놓은빨래에서떨어지는물소리,옆집에서들려오는라디오소리,개짖는소리,해변의파도소리가들린다.나는작은소리에귀를기울이게된다.
영화가시작되자롱테이크로클레오가집청소하는장면을보여준다.클레오는일곱식구로구성된중산층가족의입주가정부다.청소,세탁,집안정리뿐아니라음식,아이들의등하교,취침기상까지모두그녀가해낸다.짧은시간안에더많은것을보여주려고하는것이영화다.그런데그저일상적인어쩌면너무나평범해서지루하기까지한장면을시작부터길게보여준다는것은감독이관객에게전달하려는의미가숨어있다는것이다.평범이야말로비범한것아니겠는가.이평범한일상은나의일상을불러왔다.엄마가해야할일들을가정부가대신해낸다는것이잠시부럽기도했다.하고싶은일보다해야할일이많아서누가나대신내일들을해줬으면좋겠단생각을가끔했기때문이다.그렇게나는클레오의입장이되어집안일을함께하는느낌이었다.클레오의물은더럽혀진집을씻어내며오염된것을정결하게씻어낸다.물은이영화에서중요한상징이다.씻어내야할것이무엇인가생각하게한다.
이영화는멕시코역사상가장비극적인사건중하나인1971년6월10일에벌어진‘성체축일대학살’사건이배경이다.정부지원을받은우익무장단체세력이시위대를무력진압하며백여명을살해하는사건,정권이극우테러단체를동원해참정권보장과정치범석방을요구하는학생과노동자를무자비하게공격한사건이다.
이런상황속에서영화는한가정의이야기를담담하게보여준다.빨래가널린옥상과죽은이들의무덤,손을핥는개들과흉물스러운동물머리박제와같은이질적인것들이동시에존재한다.죽을뻔한아이들의생명을구하는것과죽은채로태어난클레오의아이,상식적이지않은한가장의곡예주차와차를긁고망가뜨리는아내,정신이육체를지배해야한다면서무도정신을강조했지만육신의정욕만을채우고임신한여자친구에게서도망친클레오의남자친구페르민등영화는생명과소멸,가정을파괴하는자와지키려는자와같이불편한현실들을대비시켜보여준다.이런시퀀스들이영화의메시지에다가갈수있게해준다.지극히일상적이고움직임이없는장면들속에감도는이상한기운들.가장인안토니오의외도로안주인인소피아는점차신경질적으로변하고,힘의상징인남성의폭력이가정안으로들어온다.평범한일상속에감추어져있는두렵고무서운현실이조용히진행된다.권력을위해사람을죽이는세상은지금도세계곳곳에서진행중이란사실을다시한번실감하게한다.
그런데도힘없는한여성의힘,클레오의헌신은흔들리는가정의중심에있고영화의중심에있다.〈로마〉에서보여주는현실에대한정확한앵글들은어떤이야기의전개보다는감독이어릴적경험했던일들을되돌아보는것이어서오히려서툴고,엉성한느낌이다.감독혼자서각본,제작,촬영까지했기때문일지도모르겠다.모든것이잘짜여진것같지않아서오히려편안한느낌이묘하기까지하다.또하나재미있는것은감독이카메라포지션을하나의대상에게만포착하지않는다는것이다.모두가이영화의주인공이란생각까지들게한다.카메라시선이관객의시선처럼한장면에한사람과한공간을담지않는다는것도흥미로웠다.
〈로마〉는많은움직임보다는가만히응시하는앵글이많다.이는영화속인물을바라보고있는관객과의거리를자연스럽게한다.감독의머릿속에있는장면들을하나씩꺼내어붙여놓은느낌은이처럼감독의경험을관객의경험으로이끈다.감독이자신의삶을돌아보고특별했던이야기하나하나를조명해보는작업,그렇게감독의기억에서출발한영화〈로마〉는과거를떠올릴때불필요한부분을생략할수있었던것같다.그래서감독의다른작품들과달리화려하거나감각적이지않다.지진,산불,학생시위,무력진압등빠른움직임과긴박한상황이펼쳐지는데도이상하리만치영화속인물들은크게동요하지않는다.
카메라의담담한시선.개똥이야기도그렇다.영화속에서수없이등장하는개똥또한매우상징적이다.이는단지클레오뿐만아니라그시대를살았던원주민피지배계급의가정부들의일상과그들의처우를상징한다.성스러운것을더럽고하찮게여기는사람들속에서그더러운것을깨끗하게,성스럽게하는사람들을보여주는것이다.영화가시작부터개똥을치우는것은바로그것이다.우리가깨끗이해야할것을,치워야할것을보여준다.또하나의가족인개,보리스도클레오는보살펴야하는가족으로받아들인다.가족구성원들은가족인보리스의똥을받아들이는데가장인안토니오만신경질적으로반응한다.많은영화에서그렇듯남성은권력과권위를갖춘지배계층으로묘사된다.안토니오는동물머리박제를힘과부의상징으로,자랑거리로여긴다.힘없는것들을짓밟은비열함을자랑스럽게여기는남성을보여준다.집크기와맞지않는고급차를타고다니면서바람을피우는,가족을속이고세상을속이는남성은결국자신을속이는것이다.그가개똥을뭉개버리는장면은유독길고자세히묘사되는데내눈엔그개똥이바로안토니오였다.
1970년대초,멕시코시티를배경으로‘클레오’와‘소피아’두멕시코여성을중심으로전개되는〈로마〉는1500만달러라는적은예산으로멕시코에서멕시코인스태프와멕시코인배우들만데리고만든135분짜리영화다.나는영화를볼때주연과조연을나누지않는편이다.인생이란영화에서주인공은언제나한사람뿐이듯,우리는그한사람들이기에그렇다.〈로마〉는클레오라는한인물을중심으로사회와가족에관한이야기를풀어간다.그구성원들은서로를의지하고서로를보살피면서가족을지켜내려고한다.그들모두가이영화의주인공이다.힘든상황속에서그들에게필요했던건바로연대다.가족의연대,한가정의평화는공동체연대,사회의평화로이어질수있다.삶의이야기속에서가벼운존재는없다.이영화는감독을길러준입주가정부,리보로드리게스를모티브로한것이다.묵묵히허무한일상속에서자신이해야할일을해내는가정부의지극히평범한삶과희생에바치는영화여서더감동적이었는지도모르겠다.
영화의시작부분과마지막부분에비행기가날아간다.더러운곳에서정결한곳으로,억압과폭력에서자유로날아가야한다는,평범하지만고결한일상에대한경외로다가왔다.〈로마〉는이처럼감독개인의은인에대한헌정,남성우월주의시대에대한비판,여성들의근면에대한치하.독재시대에대한비판,생명과죽음에대한이야기를보편적으로표현해낸다.다소무거운메시지가있지만〈로마〉는피보다진한정으로뭉쳐지는가족의연대를그리고있어해체되고있는요즘의가족문제의단초를보여준다.자신의위치에서자신이해야할일을묵묵히해내는한여성의삶을깊이있게그려낸영화를보면서모든것이제자리에있을때가장아름답다는말이떠오른다.나는내가있어야할곳에있는지,무엇을하고있는지생각하게한다.
-신정민,「숭고한삶에바치는헌화-〈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