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월: 다시 환상을 꿈꾸다 (최정희 소설집)

신월: 다시 환상을 꿈꾸다 (최정희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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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죽음을 통하여 삶과 화해하는 인간의 서사.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번뇌.

-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이 주어진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임을 보여주는 소설.

- 운명을 거스르지 않은 소멸이 가져다준 역설과 희망의 메시지. 부조리한 삶과의 다양한 동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운명의 묵묵한 체념 속에서 피어나는 고독과 고립.

- 윤리나 사랑의 의미가 동화적인 서정성과 순수성으로 복원되고,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요소들이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명멸한다.

최정희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첫 소설집에서 주인공인 여성 화자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면, 이번 소설집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노년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는 「능소화 필 때」를 비롯하여, 「신월新月 - 다시 환상을 꿈꾸다」에서는 고아라는 출신과 안락사 문제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유럽의 역사와 더불어 성찰하고 있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이 주어지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단편이다. 「신월新月 - 다른 이야기」는 사업 실패 후 백수로 살아가는 남편과 가족 부양을 위해 택시 운전을 하는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으며, 「반짝이던 동전」은 연탄 공장 인근의 판자촌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어린 시절 겪은 사건과 현재 마을의 개발과정에 얽혀 일어나는 사건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바라춤」은 보도연맹사건을 배경으로 70여 년 전 희생자였던 한 할아버지의 삶에서 그의 손자에 이르는 가족사를 통한 굴곡진 역사를 다루고 있고, 「구름바다, 모래성」은 해운대를 배경으로 설화와 현실을 오가며 어려웠던 서민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역사적 시공간 속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통하여 인간 삶의 의미, 더 나아가 공동체적 삶의 윤리적 역사적 의미까지 짚어내고 있다.
저자

최정희

부산에서태어나성장하였으며모교대학도서관과학교도서관(초등,중등)사서로근무했다.늦은나이에소설을쓰기위해부산의인근,양산으로이사했다.2013년겨울,≪한국소설≫신인상으로등단하고아직변방에만머무르고있다.주위시선에연연하지않고오늘도산밭골산을바라보며삶과인간에관한근원적의문을품고묵묵히길을떠난다.2017년봄,소설집「사봉」을출간했다.

목차

능소화필때
신월新月-다시환상을꿈꾸다
신월新月-다른이야기
반짝이던동전
바라춤
구름바다,모래성

작품해설
장소와운명을탐색하는소설쓰기/강희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작품평]

「능소화필때」는가장인상적이었던작품이다.실버문학의진수를보는듯했다.과하지않고,모자람없는균형잡힌소설이었다.
-현진건문학상추천작심사평중/백가흠(소설가)

이소설이다만슬픔을위해쓰인소설이라말할수는없을것같다.왜냐하면그속에담긴질문,우리는어디에서와서어디로가는가라는물음이고아라는출신과안락사라는결말,그배경으로서의유럽의역사들과맞물려독특한공명을이뤄내고있기때문이다.
-「신월新月-다시환상을꿈꾸다」월평중/임지훈(문학평론가)

이작품에는우리의주목을요구하는미학이있다.그것은화자가유년시절에장대비와함께해변으로밀려온물결의움직임을소설의상징적구조로나타내고있다는것이다.다시말하면,우주적인자연의움직임으로천둥소리와함께해일처럼밀려온높은파도가화자가문의몰락을가져온불운을상징적으로나타내고있다는것이다.그래서화자의가정에밀어닥친불운을막기위해준서어머니가행했던것도이러한측면에서중요한상징적가치를지니고있다.
-「구름바다,모래성」월평중/이태동(문학평론가)

최정희소설은이러한‘운명’에대한묵묵한체념속에서도자신의길을걸어가는다양한인간군상을다루고있다고볼수있다.그래서때로우리가이해할수없는서사적결론에다다르더라도그것은자신이관계된역사적시공간을무시한결과가아니라그한계안에서주인공들이내린자의적판단을‘존중’해달라는메시지를보내고있다고보인다.이는소설가로서‘운명’을인과응보나어쩔수없는불가항력의요소가아닌,사물들과인간의역사를들여다보기위한중요한소재처럼느껴진다.‘바위’가운명적으로단단해졌다거나,‘새’가운명적으로날게되었다는결론적인선언이아니라,왜바위가운명적으로단단해졌는지,새가왜운명적으로날게되었는지를소설가스스로그운명론적얼개를짜보는것이다.…그런점에서이번소설들은‘운명’이라는주제의식으로함께묶여있다고볼수있다.
-「작품해설」중/강희철(문학평론가)


[주요작품]

매일매일살아가야하는의무감에가슴이답답하다.누군가살아가는이유를나에게명쾌하게설명해주었으면좋으련만.이런저런생각을하고있는데느닷없이폐지를끌고다니는노파의모습이눈앞에아른거린다.노파는힘들게손수레를끌고다니면서도늘능소화처럼활짝웃고있었다.이상하게도노파의모습을떠올리니갑자기새벽공기처럼기분이상쾌해진다.
자리에서일어나바깥으로나가도로를따라무작정걷는다.그러다어느지점에서무턱대고서서누군가를기다리고있는나자신을의식하고는깜짝놀란다.그순간,저쪽에서짐수레를끌고오는노파의모습이한눈에잡힌다.원인을알수없으나가슴이두근거린다.스스로주책이라며자신을책망한다.노파가점점가까이다가오자얼굴이뜨거워진다.마침내나를발견한노파는반갑게웃는다.나도웃음으로대한다.끄는것을멈춘노파는오른손으로이마에흐르는땀을훔쳐내더니상쾌한어조로말을건넨다.
“아이고어르신,그렇지않아도기다렸어요.접때무슨돈을.”
내가노파의말을중간에서가위로종이자르듯싹둑잘라버린다.
“그건제마음이니그냥받아두세요.그리고이걸제가한번끌어볼테니할멈께서는뒤에서좀밀어주오.”
“이를어째?이런일은어르신께서하실일이아니지요.”
노파는어쩔줄몰라한다.
“내가할일이없어집에서빈둥빈둥놀다보니소화가안되어운동삼아해보려하니너무심려치마오.”
나도모르게당황한노파에게용기있게내뱉는다.어쩔수없다는표정으로노파는고개를숙이며손잡이아래로빠져나와손수레뒤로간다.나는손잡이를단단히잡고손수레를끌며앞으로나아간다.생각보다힘들지않았다.노파의집앞에당도해걸음을멈춘다.노파는가지말고잠깐만기다려달라며쪼르르안쪽으로뛰어간다.노파가분명수표를가져올것이라예상한나는얼른집으로돌아간다.움직이고나니몸이한결가벼워진것같았다.밤에는꿈조차꾸지않고깊은잠에빠져버렸다.
아침에일어나밥을먹고노파의집으로향한다.마침노파가대문밖으로나오는중이다.나를보자환한미소를머금으며잠깐만기다리라하고는또집으로들어가려한다.나는바로노파의손을붙잡는다.
“자꾸이러시면정말화낼겁니다.제성의를무시하는거라고요.저는그돈없어도사는데지장없어요.”
나는약간정색을하며목소리톤을올린다.
“사람이란자꾸공것을얻다보면또뭔가를바라게되지요.그리고제가몸이아픈것도아니고,밥을굶는것도아니기때문에남도움을받고싶지않아요.제마음이불편해서그래요.”
요즘세상에보기드문노파였다.
“남의성의를지나치게거절하는것도예의가아니지요.그에관해서는인제그만얘기하시고지금부터어떤일을하나요?어제는몸을좀움직였더니소화가잘되어밤에잠도잘오고,몸도훨씬가벼워진느낌이들어요.그래서오늘하루만이라도할멈일을도우며같이해볼까해요.”
나는일부러노파의말을막으며근엄한어조로말을던진다.
“그럼오늘하루만같이하시는겁니다.우선손수레에꽉찬폐지를인근에있는고물상으로가져가야해요.”
노파도포기한듯한발물러서는모양새의말을건넨다.
“그럼제가손수레를끌게요.”
내말에노파는웃음을띠며그러라고한다.뒤에서노파가밀고나는손수레를끌며앞으로착착나아간다.별힘도들지않고기분이좋아진다.그러나한시간쯤가고있는데길이좀가팔라지기시작하더니힘이꽤든다.하지만노파에게내색하기싫어짐짓모른체하며손수레를힘껏끈다.땀이나오고숨이가빠왔지만,자존심에말을할수가없다.속으로끙끙대며올라간다.드디어쓰러지기직전에간신히고물상에다다른다.
“힘들지요?고맙습니다.이걸로땀닦으세요.”
노파의물음에좀힘들다며말하고는노파가건네는수건으로이마에땀을훔쳐낸다.노파가고물상주인에게폐지를달아값을치르는동안,나는벤치에앉아몸을식힌다.계산을끝낸노파가가까이다가오자나는자리에서일어나빈손수레를끌며경사진길을내려간다.내려오는것도힘을주어야만손수레가굴러떨어지지않고적절한균형이유지되었다.
노파의대문앞에도착하니점심때였다.누추하지만집에들어가셔서식사하고가시겠냐고노파는물었다.오후에약속있는걸깜박했다며정중히거절하고는집으로향했다.집에도착하자너무피곤해거실에큰대자로드러누웠다.쫑이가까이오는것을화내어쫓아버린다.온몸이쑤시고힘이하나도없다.그렇게힘든일을노파가거뜬히해내는것이신기할정도였다.
밤에자다몸이아파끙끙거린다.아침에일어나니온몸에몽우리가져바늘로찌르듯이쑤셔댄다.어제어지간히피곤해끼니를걸렀더니배가고프다.용을쓰며간신히몸을일으킨다.이구차스러운목숨을연명하려면뭐라도요기는해야한다.공연히노파앞에서힘자랑하다가몸이말이아니었다.노파가존경스럽다.그런일을하며남도움없이스스로살아가는노파를보니나자신이한없이초라해보인다.
-「능소화필때」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