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창립50주년기념총서
네번째이야기:‘한국영화화양연화’의문화적기원
영화진흥위원회가창립50주년을맞이하여총4권의총서를발간했다.영화진흥위원회는1979년영화이론총서제1집『영화예술로서의성장』(저자아더나이트,역자최창섭,김무현/영화진흥공사)부터2006년영화이론총서『한국영화사:개화기(開化期)에서개화기(開花期)까지』(김미현외/커뮤니케이션북스)까지총36종을발간한바있다.이번네권의총서는2023년영화진흥위원회창립50주년을기념하기위하여영화인들에게다양한지식을제공하는것은물론미래영화영상인력양성에도기여할것이라는생각에기초하여집필자를공모하고,네작품을선정한결과물이다.
한인터뷰에서봉준호는자신을비롯한박찬욱,김지운,류승완,최동훈등의감독들은한국에서“시네필출신이감독이된첫세대”일것이라고밝힌다.그러나그가1990년대초반활동했던시네필공동체에관한다큐멘터리<노란문:세기말시네필다이어리>(2023)에서도볼수있듯,이시기한국의영화청년들은극장에서영화사의정전들을‘계시적’으로섭렵한것이아니었다.『시네필의시대』는서구의고전적인시네필과달리,필름이아닌비디오로영화매체의본질을모색했던한국비디오(테크)시네필의영화문화적특수성에대해고찰한다.더불어1980년대이래홈비디오와비디오테크가이끈비디오필리아와1990년대영화문화를이끈비평담론,예술영화전용관,국제영화제,2000년대초중반시네마테크의시네필리아를포괄해서조명한다.즉1990년대를전후로한한국시네필의역사를서술한이책은한국영화문화에서영화가예술이자문화,학문으로서정당화를추구했던인정투쟁의기록을살펴봄으로써,서구와는구별되는의제와방법론을통해영화사랑(시네필리아)을실천해온영화수용의역사와시네필주체의열정을주목해서다룬다.
‘압축적시네필리아’:영화사랑의모든것이한꺼번에폭발했던1990년대
‘영화에대한사랑’을뜻하는시네필리아(cinephilia)는영화를감상한후영화에대해이야기하고,그와관련된담론을전파하는방식을의미한다.전통적인시네필리아는제의적행위로서의영화관람이나실물보다큰스크린과이미지,극장의어둠,빛의프로젝션에대한매혹,즉필름자체와영화관에서의일회적상영의경험을중요한구성요소로강조해왔다.‘영화를사랑하는사람’을일컫는시네필(cinephile)은예술영화의제도화과정에서탄생한이상적인관객개념으로,프랑스에서태동해서누벨바그가꽃피었던1950~60년대에는대안적문화실천의주체로인식되었다.뛰어난감식안을가진‘완벽한’관객을이상으로하는시네필의의미는1960-70년대대서양을횡단하면서스필버그나코폴라등시네필출신‘무비브랫’감독세대를거치며영화를사랑하는사람을폭넓게지칭하는식으로확장되었다.뿐만아니라작가주의심장부의정통적인프로젝트를영미권을중심으로한영화연구(CinemaStudies)의기틀로전환하는데기여했다.이렇듯1950년대에서1970년대까지파리,뉴욕,런던등을가로지르며서구의열렬한담론대상이된시네필리아는관객들의단순한열정과이상을넘어,영화를삶의더큰경험과학문의일부로자리잡게했다.
한국영화사에서1990년대를전후로한시네필문화에주목하는이유는다음과같다.첫째,1990년대영화문화의전성기는복합적인요인에서파생한것임에도불구하고기존영화사에서는이시기영화문화의활력을이전세대와의단절속에서특권적으로서술해온경향이있다.이에1990년대시네필리아를1980년대의공동체적인영화운동의유산과1990년대적인영화문화가중층적으로결합된산물로바라볼필요가있다.또한1990대는영화산업,시스템,영화문화,예술과학문으로서의제도화등에있어현재의체제가형성된격동기로서21세기한국영화문화가맞닥뜨린위기의근원으로서도비판적으로접근할수있다.둘째,극장보다더큰시장으로서의비디오는1980년대부터2000년대중반까지대중적접근성과친밀성,게릴라적정치성등으로한국영화문화의급진적인변화를가져왔지만,현재의관점에서죽은미디어또는매체의질적가치측면에서필름에비해열등한미디어로간주되어주목받지못했다.이책은비디오를단지복제및상영기술차원을넘어한국시네필리아의근간이된핵심적매체로다룬다.다양한재전유및밀렵에기반한비디오의활용은필름영화의관람성과미학적가치를변형한동시에오늘날의디지털관람성을일부예고한미디어라는관점에서뉴미디어환경의수용자중심영화문화를예고한원형적토대로접근할수있다.셋째,‘애활가’에서‘시네팬’,‘영화광’등한국영화사에서영화를사랑하는관객은어느시대에나존재했지만,사회경제적,문화적자본을가진일정한숫자의젊은관객층이부상하면서‘시네필’이라는용어가본격적으로출현하고유의미한관객문화로서자리매김하게된시기는1990년대라고할수있다.즉,영화를사랑하는사람을일컫는방식과영화사랑의실천은그자체의역사로오롯이존재해왔지만,이책은영화에대해자의식적으로성찰하고영화를둘러싼변화하는환경을질의하는‘비판적시네필리아’로서의정체성을가진주체적인관객성에초점을맞추고있기때문에이시기를시네필문화의본격적인출발점으로간주한다.
영화산업면에서1988년의외화수입자유화정책,1990년대중반예술영화전용관을표방하며동시대국제영화제수상작이나고전예술영화를배급및상영했던코아아트홀,동숭씨네마텍의등장,『문화과학』,『리뷰』,『상상』등문화계간지들을통해폭증하는문화담론과『씨네21』과『KINO』같은영화저널리즘들의창간,민예총문예아카데미나,한겨레문화센터,문화학교서울등사설영화강좌의인기,부산국제영화제를비롯한다수의국제영화제에힘입은영화팬의확대,대학영화동아리와PC통신영화동호회등을통한영화문화의급부상이이와같은문화형성의배경이라고볼수있다.이처럼한편으로2차대전후찬란했던시네필문화의유산들이뒤늦게도착하고,다른한편디지털기술의확산에따른‘영화의쇠퇴및재배치’의징후가중첩되던1990년대에한꺼번에개화한한국의시네필영화문화는서구의작가주의나정전화된모델을넘어영화사랑및영화의즐거움에대한자기반영적성찰성을가진비규범적인시네필적주체를배양했다.
‘불순한시네필리아’:관객들이선도한잡식적인대안적영화문화의‘활력’
이시기영화문화와관객들의‘활력’을다루는이책의제목은‘시네필의시대’지만,이책은필름이나극장에대한순수하고충만한열정보다는결핍과불완전함으로가득했던한국시네필의‘불순한(promiscuous)’영화사랑의실천들에주목한다.여기서‘불순함’이란원본에충실한순수성과진정성에기반한고전적시네필의조건이결여된한국시네필들이비디오를통해불법복제와해적판을넘나들며영화를전유했던상황일반을일컫는다.이렇듯시네필리아의특정적인시간과공간을넘나드는‘압축적’이고‘잡식적’인불순한영화문화의특성은서구적인의미에서고전적인시네필리아와‘영화의모더니즘’을동시대적으로경험하지못한한국영화문화의중핵을구성하는특정성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그러나이책은시네필담론에서중요한것은용어의기원이나정의가아니라행위주체의실천과전유라고주장한다.
비디오테크에서동숭씨네마텍까지:‘영화의시대’의장소와담론들
이책은총4장으로구성되어있는데1장에서는한국시네필문화의특정성을구성하는‘비디오필리아’의개념을정의하고,1990년대한국영화문화에서비디오라는매체를통해어떻게시네필리아를실천했는가를조명한다.또한비디오필리아와시네필리아가혼재된‘1990년대한국시네필의다이어리’를연대기적으로개괄함으로써이책의각장에서다루게될주요영역(홈비디오,비디오테크,영화담론,시네마테크,예술영화전용관등)과실천들이서로맞물려영화문화의네트워크를이루고있었음을예비적으로보여준다.가정용비디오에서는시네마테크의결여를대신해출시된고전예술영화비디오컬렉션을‘홈시네마테크’라는차원에서살펴보고,좋은영화보기운동을모색했던국내최대비디오체인점인영화마을을‘동네시네마테크’의관점에서다룬다.
2장에서는비디오테크에서시네마테크로의이행과정을추적하며‘문화학교서울’을다룬다.1990년대활동했던비디오상영기반단체들의주된활동은수입되지않았거나비디오로출시되지않은영화를국내외에서입수해대중에상영하는것이었다.이런단체들은많은제약과한계를갖고있었는데,불법비디오테이프의복제상영이라는저작권및법적문제,필름원본에비해열화된화질,열악한영사또는디스플레이장치,상영공간과시설문제,미출시걸작의편수한정,재정이나인적자원등의문제였다.1990년대명멸했던수많은비디오테크들가운데서도어떻게‘문화학교서울’만이1990년대내내지속되면서,민간시네마테크의탄생으로이어질수있었을까?이에문화학교서울이수용자중심의‘시네마테크운동론’의정립속에상영과교육에집중했던시기를1기(1992-1995)로,‘전국시네마테크연합’결성이후제작및배급에대한실천,‘인디포럼’개최등대안적한국영화및독립영화에천착하며활동영역을넓혔던시기를2기(1996-1999)로,필름영화제로의전환및민간시네마테크전용관으로거듭나는2000년대전후의활동을3기(2000-)로살펴본다.또한2002년‘서울아트시네마’탄생이후에도지속되는한국시네마테크의과제를고찰한다.
3장에서는1980년대후반부터2000년대초반까지한국영화의주요담론을형성했던잡지및계간지를살펴본다.공론장으로서의비평은영화문화의바로미터이자시대정신을가늠할수있는장이다.1980년대후반부터본격화한한국의‘영화연구’는1990년대중반을기점으로리얼리즘비평,작가비평에국한되지않고,영화매체에대한자의식및장르에대한탐색을더욱강조하면서,페미니즘,정신분석학및문화연구등의압축적수용을통해학술적형태로분화된다.3장은한국영화산업및제도,미학과정체성에대한성찰속에비평과이론,영화학연구로개화하며논쟁과협상의담론양상을보여준『영화언어』,『KINO』,『필름컬처』를살펴본다.이시기백가쟁명의담론장중에이셋을택한이유는각각이시기와지향을차별화하며,1990년대이후한국의시네필을배양하고비평및이론,영화학으로분화하며영화문화에의미있는영향을끼쳤다고판단되기때문이다.이시기의영화비평담론장을살펴보면한국에서1990년을전후로한15년정도가시네필문화형성에있어얼마나‘압축적인’시간이었으며,전반부와중반부,후반부가불균질한시간이었는지를알수있다.이에각저널의아젠다와구체적인비평담론,담론을넘어선문화활동및실천을세밀하게살펴본다.
4장은1995년개관한최초의예술영화전용관‘동숭씨네마텍’에대한역사적분석을통해한국영화문화의장에서‘예술영화’의이념을재구성하고,당대예술영화,단편영화라는구성물의의미와한계를2000년대이후독립예술영화문화에끼친영향력과관련해서조명한다.예술영화는텍스트적특징의질문들로환원될수없으므로예술영화가제작,유통,배급,상영되는‘제도로서의예술영화’를체계적으로접근할필요가있다는스티브닐의주장을확장하여이장에서는동숭씨네마텍의실천을통해대기업참여와장르영화의부상등으로영화산업의패러다임이급격히전환되고정책적,제도적변화와함께현재한국영화계의시스템이시작된1990년대한국영화의역동성과중층구조를조명한다.
21세기‘뉴시네필리아’의전사(前史)
이책에서는서구의고전적인시네필과다르게20세기까지거의부재하는필름아카이브와비규범적인스크린속에서대안적인시네필문화를실천했던한국시네필의역사와특정성을‘불순한시네필리아,압축적시네필리아’라는관점에서고찰해보았다.이는1990년대시네필의유산을역사적으로규명하고,그유산이21세기새로운시네필들의다양한영화사랑의실천속에서어떻게계승되어왔는가를조명하기위한출발점이기도하다.포스트-시네마담론이부상한1990년대이후영화문화는영화란무엇인가에대한질문부터영화의장소성에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