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신화 · 기호 · 텍스트 · 소설적인 것의 ‘현기증나는 이동 작업’을 통하여, 프랑스와 세계에 가장 활력적인 사유체계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롤랑 바르트는, 그의 사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문단의 표징으로, 또는 소설 속의 인물로 여전히 우리들 가운데 자리 하고 있다. 그의 모든 모색과 좌절, 혹은 기쁨은 다만 그 자신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닌 오늘날의 모든 전위적 사유가들에게도 공통된 것으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의 문학 편력에 대한 조망은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처음에는 마르크스와 사르트르를, 다음에는 소쉬르와 옐름슬레우를, 그 다음에는 데리다와 라캉을, 마지막으로는 니체를 자신의 직관이나 기분 · 충동에 따라 빻아넣으려 했다는 그의 소박한 견해와는 달리, 칼베의 지적에 따르면 “바르트가 이론가가 아니라면, 타자의 이론을 이용할 줄 아는 에세이스트도 아닌 하나의 시선 · 목소리 · 스타일이다”라고 평가된다. 즉 바르트에게는 그만이 가진 문체나 시선이 존재하며, 비록 그의 사유체계가 독창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문체나 시선 속에서 모든 것은 새롭게 주조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말처럼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이후 새로운 돌연변이적인 텍스트가 창출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점에서 기존의 상투적인 것만을 반복할 따름이라면, 예술가의 모든 노력은 무엇보다도 이런 상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혹은 모든 체계 밖에 위치하려는 모색의 표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그의 후기 작업을 특징짓는 텍스트 혹은 텍스트성은 끝없이 다른 곳을 향하여 이동하는‘언어의 불가능한 모험’ ‘언어의 유토피아’또는 푸코가 말하는 ‘무한한 지평 위에 놓인 끝없는 작업’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바르트의 후기 작업을 특징짓는 텍스트 · 즐거움 · 권력 · 도덕성을 통하여, 그의 사유체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 모든 모색은 언어의 불가능한 모험을 즐긴 유토피안이라는, 혹은 시류에 편승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지만, 결코 경직된 사유나 형태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실험 정신의 결과라는 점 에서는 긍정적인 평을 받는다. 그리하여 언어를 바꾸자라는 말라르메의 구호(랭보의 뒤를 이어)는 단순히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바르트에 이르면 보다 구체적인 실천 작업으로 이어지며, 동시대의 사유가들과 같은 윤리 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문학인답게 문학의 유토피아적 기능을 믿고 실천한 드문 사유가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나는 표류한다”라는 바르트의 코기토는, 다만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공통된 전략만은 아닌 삶의 실존적 양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진실과 자유, 다름과 개별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도덕적인 에토스와 그것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독사, 상투적인 것 사이에 놓인 그 엄청난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시도로 인식된다. 여기에 옮긴 글들은 바르트의 후기 작업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이 모든 모색은 언어의 불가능한 모험을 즐긴 유토피안이라는, 혹은 시류에 편승하는 스타일리스트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지만, 결코 경직된 사유나 형태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실험 정신의 결과라는 점 에서는 긍정적인 평을 받는다. 그리하여 언어를 바꾸자라는 말라르메의 구호(랭보의 뒤를 이어)는 단순히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바르트에 이르면 보다 구체적인 실천 작업으로 이어지며, 동시대의 사유가들과 같은 윤리 의식을 공유하면서도 문학인답게 문학의 유토피아적 기능을 믿고 실천한 드문 사유가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나는 표류한다”라는 바르트의 코기토는, 다만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공통된 전략만은 아닌 삶의 실존적 양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진실과 자유, 다름과 개별성의 회복을 추구하는 도덕적인 에토스와 그것을 억압하는 사회적인 독사, 상투적인 것 사이에 놓인 그 엄청난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시도로 인식된다. 여기에 옮긴 글들은 바르트의 후기 작업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텍스트의 즐거움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