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대하여 - 동문선 문예신서 404

텔레비전에 대하여 - 동문선 문예신서 404

$19.00
Description
본서는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논쟁거리가 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읽혀지고 있는 화제작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둔 이 책이 독자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과 기자 및 지식인들의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그의 학자적·사회적 명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론계 기자·지식인·교양대중들 모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두 개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묶은 책으로 명쾌하고 종합적인 형태로 텔레비전을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 강의는 텔레비전이란 작은 화면에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검열의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텔레비전의 영상과 담론의 인위적 구조를 만드는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두 번째 강의는 저널리즘계의 영상과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텔레비전이 어떻게 서로 다른 영역인 예술·문학·정치·철학·과학의 기능을 깊게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청률의 논리를 도입하여 상업성과 대중 산동적 여론의 요구에 복종한 결과이다.
저자

피에르부르디외

저자:피에르부르디외(PierreBourdieu)
25세에철학교수자격시험합격,프랑스의사회학자이자인류학자,철학자,비평가로서경력은프랑스고등연구원교수,사회과학고등연구원교수,콜레주드프랑스교수를역임.
세계적으로유명한석학으로신자유주의를전면에서가장강하게비판했다.저서로는《상속자들》,《대중예술》,《예술의사랑》,《재생산》,《사회학자의직업》,《상속자들》,《구별짓기》,《실천감각》,《사회학의질문들》,《호모아카데미쿠스》,《말해진것들》,《마르틴하이데거의정치적존재론》,《국가귀족》,《대답들,성찰적인류학을위하여》,《세계의비참》,《자유로운교환》,《실천적이성들》,《파스칼적명상》,《맛불》,《남성지배》등다수있으며,‘상징자본’,‘문화자본’,‘아비투스’,‘장(field)’등의개념이유명하다.카를마르크스,에밀뒤르켐,막스베버를잇는20세기후반의대표적인사회학자로서사망이후에도사회과학전반에막대한영향력을미치고있다.

역자:현택수
고려대사회학과졸업
프랑스Paris8대학사회학석사
프랑스Paris4대학사회학박사
한국방송개발원선임연구원
고려대사회학과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학방문교수를역임하고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으로재직중이다.
저서:《현대사회의구조와변동》(공저)
《문화와권력:피에르부르디외사회학의이해》(편저)
《사회고발성시사보도프로그램의문제점연구》
《프랑스위성방송의사회문화적특성에관한연구》
《방송작가의의식조사연구》등

목차

서문

1.스튜디오와그내막
보이지않는검열
보여주면서감추는텔레비전
돌고도는정보
긴급성과신속한사고
진짜같은가짜토론,혹은진짜로가짜인토론
모순과긴장

2.보이지않는구조와그효과
시장점유와경쟁
통속화의세력
시청률에의해판정되는투쟁
텔레비전의위력
협력
입장의권리와퇴장의의무

부록:저널리즘의영향력
저널리즘장의속성
침투효과
짧은규범적후기

참고문헌
역자후기
색인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저는여기텔레비전앞에서텔레비전에대한몇가지질문을하고싶습니다.이것은좀이율배반적인시도라고생각되는데,저는일반적으로텔레비전앞에서,특히텔레비전에대해중요한것을말할수없다고생각하기때문입니다.텔레비전에서는아무것도말할수없다는것이사실이라면가장훌륭한지성인들,즉지식인·예술가·작가들이텔레비전에서말하는것을삼가야한다고결론을내려야합니까?

사람들은전부아니면아무것도아니라는식의이러한극단적인양자택일을받아들이지않을것입니다.저는‘일정한조건아래’텔레비전에서말하는것이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오늘콜레주드프랑스의방송서비스의도움으로저는완전히예외적인조건의혜택을받았습니다.첫째로,저는강의시간이제한되지않았습니다.둘째로강의제목이부과되지않았습니다.셋째로,스튜디오에는저에게명령하는사람이아무도없었습니다.즉일반방송의경우와는달리기술적인면에서,혹은‘시청자가이해하지못할것’이라는노파심에서,혹은도덕과예의범절등의측면에서간섭하는사람이없습니다.

이것은아주특별한상황입니다.유행이지난용어를사용하자면저는‘생산기구들을통제’한것인데,이것은관례적인일은아닙니다.저에게주어진조건이완전히예외적인것이라고말하면서,저는텔레비전이요구하는일반적인조건들에관해이미말하고있습니다.

그런데사람들은왜일반적인조건에도불구하고텔레비전방송에참여하는것을받아들이는가?이것은매우중요한질문입니다.그러나방송에참여한대부분의연구자·학자·작가(기자는아님)들은이런질문을하지않습니다.이런질문의부재에대해문제시하는것이필요한것같습니다.

사실상텔레비전에서무엇을제대로말할수있을지염려하지도않고,방송출연을받아들이는것은무언가를말하기위해서가아니라다른이유,특히보이기위한것임을매우분명하게드러내는것입니다.버클리는“존재하는것,그것은지각되는것이다”라고말했습니다.일부우리철학자들(그리고작가들)에게존재한다는것은텔레비전에지각되는것입니다.요컨대존재한다는것은기자들에의해지각되는것이고,이것은곧기자들에게‘잘보임(이것은타협과명예롭지못한행동을내포함)을뜻합니다.

철학자나작가가계속해서자신의작품에의존할수없게된다면,가능한한자주방송화면에나타나는수밖에다른방도가없다는것은사실입니다.따라서일정한시간적간격을두고가능한한간단한책을쓰는것이,질들뢰즈가관찰했듯이텔레비전에의초대를보장하는중요한기능을하고있습니다.이같이텔레비전화면은오늘날일종의나르시스의거울,나르시시즘적인노출의장소가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