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꿈 (이형순 시집)

여자의 꿈 (이형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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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형순 시인이 첫 시집 『여자의 꿈』(도서출판 그루)을 냈다. 「먼 산」, 「꽃이 피는 이유」, 「사랑 마중」, 「필연」, 「간밤의 꿈」, 「석양의 선물」, 「먼 훗날」, 「실버의 멋」, 「빗방울 속의 만남」 등 50여 편을 담았다. 사랑에의 기구와 그리움, 기다림이 중심축을 이루는 그의 시는 팔순에 접어든 연륜과 체험들이 부드럽게 녹아든 깨달음과 지혜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떠올린다.
저자

이형순

첫 시집을 선보이는 이형순은 1946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여자중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드러나지 않게 시를 써온 그는 현화랑 대표를 지냈으며, 대구YMCA합창단, 대구레이디스코러스합창단 단원으로도 활동했다.

목차

Ⅰ

먼 산 014 / 길 016 / 가고 있어요 018 / 나 이리 있어요 020 / 옛길 022 / 꽃이 피는 이유 024 / 기다림 026 / 좋은 옷 028 / 바람아, 불어다오 030 / 낙원 031 / 어쩌면 좋아 032 / 우짜라 카노 034 / 인생극장 036

Ⅱ

공든 탑 040 / 사랑 마중 042 / 필연 044 / 우산 속 데이트 046 / 우리의 풍경화 047 / 나랑 함께 살아요 048 / 덕분에 050 / 간밤의 꿈 052 / 나와의 대화 054 / 내일 이맘때 056 / 사랑이 없다면 058 / 있고 없고 060 / 그대로이다 061

Ⅲ

날마다 064 / 겨울나무 066 / 기쁨 068 / 나는 싫소 070 / 나는 모릅니다 072 / 석양의 선물 074 / 그때 076 / 묵은 놀이터 078 / 올챙이야 080 / 먼 훗날 081 / 지금 082 / 정 084 / 팔순에 보는 산 085

Ⅳ

실버의 멋 088 / 빗방울 속의 만남 090 / 친구들아 092 / 여고 졸업 예순 돌 094 / 지금은 어드메뇨 096 / 울음 098 / 세상 구경 100 / 상하좌우 102 / 정답 104 / 미라 105 / 결혼식 106 / 숙아, 잘 있제 108

해설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의 시_이태수 112

출판사 서평

사랑과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
진솔, 담백한 실버의 멋 발산

첫 시집을 선보이는 이형순의 시는 팔순에 접어든 연륜과 경륜에 걸맞게 오랜 체험들이 부드럽게 녹아든 깨달음과 지혜들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떠올린다. 이태수 시인은 해설을 통해 사랑에의 기구와 그리움, 기다림이 중심축을 이룬다며, 잃어버린 사랑을 애틋하게 반추하면서도 기독교 신앙에 연유하는 더 큰 사랑과 너그러운 자연의 품에서 한결 낮은 자세로 순응하면서 베풀고 나누려는 ‘실버의 멋’까지 발산한다고 평가한다.
자성적인 자기 성찰에 초점이 맞춰진 일련의 시편들은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그리움 속의 사랑의 세계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무상감이나 비애마저 관용으로 품어 안는 관조와 달관의 심상 풍경들을 보여준다.
그가 ‘먼 산’으로 은유하는 그리움 속의 변하지 않는 세계는 동경의 대상이며, 변하게 마련인 주체와 함께 흐르는 세월도 ‘나’가 체감해야 하는 대상 이쪽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나’는 붙잡을 수 없이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바뀔 수밖에 없어 지난날로 되돌아가고 싶어지고, 바뀌지 않는 대상에 그런 심경을 투사한다.

창밖에 누워
날이면 날마다
나와 대면하는
먼 산

어제 내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그대로다

무심하지만 한결같이
그대로 있어 주어
만날 수 있으니
그 헤아릴 수 없는 속이
얼마나 깊은 걸까

하지만 한결같은
나의 기다림은
속절없어 눈물겹다
-「먼 산」 전문

마냥 그 모습 그대로인 ‘먼 산’은 ‘나’에게는 날마다 만날 수 있어도 멀리 있어 무심한 듯하나 속이 한량없이 깊어 보이는 외경의 대상이며, 있어 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심경은 시 「옛길」과 「기다림」에 또 다르게 묘사된다. “먼 그때가 저려옵니다 // 몸은 이리 떠밀려 왔지만 // 마음은 거기 심어 두었지요”(「옛길」)라고 바뀌기 이전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기다림」에서와 같이 그리움을 찾아 나서는 적극성을 띤 능동태로도 발전한다.
또한 「가고 있어요」에서는 “출발이 시작이고 / 도착이 끝이라면 / 가고 있음은 / 무언가를 하는 기쁨”이라는 대목에서 읽게 되듯, 길을 나서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을 동반하는 자기 위안이 되고, 포기가 아닌 체념을 대동하는 듯한 ‘순응의 미덕’ 끌어안기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 이리 있어요」에서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안으로 삭이면서 주어진 대로 살아가려는 관용(너그러움)으로 승화된 모습도 떠올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숲과 바람)에 외면당하기도 해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새길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 그 낯선 길이 어떤 계기와 만나 익숙한 삶의 길이 될 뿐 아니라 그 길의 주역이 되게도 한다.

바람이 좋아
바람 부는 데로
숲이 좋아
숲이 우거진 데로
길인가 하여 가 보았더니

바람은 가고 숲은 끊어져
오던 길 돌아보았는데
모르는 체하더이다

길이 아닌가 하여
낯선 길 들어섰는데
그 길에서
우연히 한 사람 만나
째깍째깍 살고 있으니
어느새 낯설던 그 길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길」 부분

바람 따라간 숲길에서 길이 끊겨 낯선 길에 들어섰는데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반려자와 함께 살고 있으니 그 낯선 길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건 자연 못잖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동행에 대한 예찬과 각별한 의미 부여다. 한 사람(반려자)과의 만남이 삶의 새로운 방향(길)을 찾게 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길의 길잡이가 되게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사랑의 힘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짧은 시 「있고 없고」에서는 “사랑이 있고 / 기다림도 있으면 // 행복이 있고 // 사랑이 없고 / 기다림도 없다면 // 행복도 없다”는 단순명료한 행복론을 편다. 사랑은 기다림과 짝을 이루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게 한다는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개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사랑 마중」에서는 “주어는 나 / 동사는 사랑 / 목적어는 무한대”라고 ‘나’와 ‘무한대’를 추동하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하늘의 뜻에 순응하며 따르는 자연에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그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일까.

나 기쁠 때 하늘이
나 슬플 때 강물이
사랑한다고 한다

〈중략〉

오오, 사랑아
여기도 저기도
들에서도 산에서도
나를 부른다

기다리는 그 사랑을
뜨겁게 마중하리
-「사랑 마중」 부분

이 시는 자연은 기쁠 때나 슬플 때도 한결같이 사랑으로 감싸주며, 그 사랑은 기다리고 찾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다분히 기독교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에 연유하고, 그런 사랑을 기다리고 마중해야 이뤄질 수 있다는 암시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연은 사랑을 주재하고 연출하며,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아름다운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우리의 풍경화」는 사랑 안에 자리하고 있는 풍경을 그리면서 ‘복실이’(강아지)와 ‘우리’(가장 가까운 너와 나)를 슬며시 끌어들이고, 사랑으로 만나 빚어지는 풍경에 넌지시 ‘우리의 재회(사랑)’에의 꿈을 포개고 놓기도 한다. 지금은 우연히 만나 ‘하나’가 되던 그 잃어버린 사랑을 반추하고, 기리는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스쳐 지나다
명령에 순종하는 병사처럼
꼭 같은 순간에 마주친
눈길 덕분에
서로의 그대가 되었습니다

슬픔이 와도 견딜 수 있었고
기쁨이 오면 얼싸안고 뛰었습니다
그대가 아프면 나눌 수 없어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했습니다

다시금 그대와 나
테너와 소프라노로 화음 맞추며
우리 만남이 필연이었음을
노래하게 해 주소서

그대와 나
손잡고 저 먼 산에 올라
마주 보며 해 저물도록
필연이어서 행복했노라고
노래를 불러요

산울림이 메아리 되어
우리의 만남이 필연이라고
외칠 겁니다
그 메아리를 언제까지나
가슴에 묻겠어요
-「필연」 전문

우연히 만나 ‘서로의 그대’(부부)가 되어 살던 사랑의 서사를 떠올려 보이는 이 시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며 사랑하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그 만남이 우연이 만든 필연이어서 행복했음을 소환하고 반추한다. 게다가 함께 그런 노래를 산에 올라 다시 부를 수 있다면 그 ‘필연’이라는 산 메아리까지도 언제까지나 가슴에 묻겠다는 심경을 곡진하고 절절하게 드러내 보인다.
「간밤의 꿈」은 꿈속에서 남편과 사랑을 나누던 장면까지 “너무나 아름다워 / 지워지기 전에 / 서둘러 새겨 두렵니다”라고, 생생하게 살려 놓고 싶어 한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나는 주인공이 되어
롱코트에 머플러를 날렸지요

잠시 후 멋진 차림의
잘생기고 듬직한 그 사람
그립던 나만의
그대가 등장했지요

그는 내게로 다가와서
나를 감싸주고
그대가 원하고 내가 기다렸던
영화보다 기막힌 장면같이
입맞춤했는데
감촉은 없어 알쏭달쏭하더군요

그때까지도 광장 한복판에서
뭇시선을 받고 있었지요
광장은 그대의 온기로 가득했고
관중들은 주인공인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나는 그 포근함에 흠뻑 젖어
유유히 광장을 걸어 나왔지만
지금도 광장에 있는 것만 같아요
우리 두 사람은
아직도 꿈속에 있나 봅니다
-「간밤의 꿈」 부분

광장의 군중 앞에서 사랑을 주제로 공연하는 젊은 멋쟁이 두 주역 배우를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시는 꿈속이라 입맞춤해도 “감촉은 없어 알쏭달쏭하더군요”라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지금도 광장에 있는 것만 같아요”라든지 “우리 두 사람은 / 아직도 꿈속에 있나 봅니다”라고 그 아름다운 한때를 꿈속에 붙들어 놓듯 새기고 있다. 이 시는 “주어는 나 / 동사는 사랑 / 목적어는 무한대”라는 「사랑 마중」의 한 대목을 새삼 떠올려보게도 한다.
그의 일련의 시는 일상인으로서의 생활이 여러 빛깔의 파토스나 무상감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회한이나 후회로부터도 한가지이게 마련이라는 자성적인 자기 성찰에 주어져 있다. 세월은 그야말로 무상하기 그지없어, 되돌아보면 “옛적엔 / 먼 훗날이 / 멀기도 하더니 // 먼 훗날 기대 속에 / 휘감겨 사노라 / 어느새 / 가까이 와 있어”(「먼 훗날」)라는 회상은 세월의 덧없음과 비애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때는 / 지금 이렇게 / 슬며시 와 있는 / 이때를 / 몰랐”(「그때」)으며, “그 귀한 것들을 / 누리지도 못하고 / 그냥 보내 버렸다”(같은 시)고 늘그막의 후회와 비애를 토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지나가 버린 ‘그때, 그때’를 저리도록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심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무상감을 극대화해 보이면서 그리운 과거를 역설적으로 돌아보는 「나는 싫소」는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참으면서 살았고 착하게 살려고 애썼으며, 이쁘게 보이려 겉치레도 했으나 강하게 살아왔다는 서사를 담고 있다.

지금은 나 비록
알몸일지라도
때 되면 싹 틔워서 꽃피고
열매를 맺는

그런 기쁜 날을 마련함은
이 겨울이 나에게
베풀어 준 덕분임을
알고 있기에 춥지 않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