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 (강현숙의 농구인생 | 양장본 Hardcover)

나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 (강현숙의 농구인생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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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포인트가드 3관왕의 기록

강현숙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다. 농구에서 포인트가드는 경기장에서 공수의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한국 여자농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가드였던 강현숙의 기록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그는 특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불우한 환경에서 보내 자칫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던 위험을 밤에 잠을 잘 때도 농구공을 안고 자는 미칠 정도의 열정으로 국가대표의 꿈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궁핍하기 짝이 없던 산동네에서 태극마크의 꿈을 키워 마침내 국가대표가 되고, 8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활약했으며,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농구인생의 금자탑이라고 할 만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처럼 뛰어난 선수이면서도 우쭐하거나 모나지 않고 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다정다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다음에도 포인트가드로서의 책임감으로 가정의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가정주부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성싶다. 그리고 이제 다시 농구장으로 돌아와 한국농구를 위해 남은 열정을 쏟는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강현숙의 인생은 포인트가드 3관왕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울러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은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보너스 같은 재미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인생을 진솔하게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여자농구의 한 시대를 꼼꼼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공적인 역사로서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저자

강현숙

서울광희초등학교5학년때농구를시작하여무학여중과무학여고에서선수생활.1972년제8회쌍용기쟁탈남녀고교농구연맹전최우수선수상(MVP)수상.제2회마닐라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우승)에청소년국가대표선수로참가.
*1968년천주교에입문한강현숙은평생을두고독실한신앙생활을해왔다.
*강현숙은외환은행농구팀소속으로1973년국가대표로선발되어1980년까지8년동안국가대표포인트가드로활약했다.국가대표로서1973년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대회동메달,1974년제5회서울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우승과제7회테헤란아시안게임2위,1975년제7회콜롬비아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5위,1976년몬트리올프레올림픽출전과제6회홍콩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2위,1978년제7회쿠알라룸푸르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우승과제8회방콕아시안게임우승,1979년제8회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2위,1980년불가리아에서열린모스크바프레올림픽참가와제8회홍콩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우승등의성과를거두었다.
*강현숙은1973년한국일보제정신인체육상부문최우수장려상을수상했고,제8회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와모스크바프레올림픽에서두차례세계베스트5로선정되었으며,체육훈장기린장,백마장,거상장을수상했다.
*1986년서울아시안게임과1988년서울올림픽에서자원봉사를하며다시농구장으로돌아온강현숙은2002년한국여자농구연맹(WKBL)경기감독관,2003년대한농구협회이사,2004년대만존스컵국제농구대회선수단장,2005년부천국제농구연맹(FIBA)월드리그선수촌장과농구협회홍보이사,2007년인천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선수촌장과농구협회기술이사,2010년체코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선수단장,2011년나가사키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선수단장과한국농구연맹(KBL)첫여성심판위원장(2011~2013),2015년한국여자농구연맹(WKBL)재정(裁定)위원,2017년한국여자농구연맹(WKBL)재정(裁定)위원장을맡는등한국농구발전을위해헌신하고있다.

목차

강현숙의농구인생

제1부산동네서키운타극마크의꿈
은퇴경기서중국대파하다
포인트가드와나의삶
나락으로떨어진어린시절
“엄마,나농구선수됐어!”
박신자를롤모델로삼다
한우물을팔래요
너무나억울했던편파판정
연습벌레로지내다
버스비20원과과자한개의유혹
성경구절을외우며다닌등하굣길
청소년대표로태극마크달다

제2부영광과좌절,그리고연애
태극마크달고모스크바로
고려인과조선족의이주역사
“여편네없는박정희괴뢰도당”
잊고싶은한일전의악몽
바스켓볼의탄생과한국농구
한골에땅을친몬트리올프레올림픽
출국하루전손가락탈골
이탈리아미국전지훈련
깡총한바지의촌스러운남자
새벽길의북동횡단
신동파의‘빳다’세례
족두리쓰고중공을연파하다
김기자,장수가탄말을쏘다!
열성팬들
천호대교투신소동
미수에그친눈밭에업어치기
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상〉
개막전패배의충격
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중〉
75%의슛정확도로미국을격파하다
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골득실차로놓쳐버린우승의꿈
스포츠강국을일군태릉선수촌
김기자의철야전투첫날
“자네가뭔데내딸을데려간다는거야.”
김기자의철야전투둘째날
“그냥동생이라고생각하고잊어주시오.”
김기자의철야전투셋째날
마지막자존심을건최후의승부
모스크바프레올림픽의회한
세계베스트5
체육연금농구1호
호리덕(胡利德)감독과의인연
그리운아버지

제3부긍정과지성(至誠)으로지킨가정
신혼여행에서있었던일
밥을태우는여자
엄마가되다
다섯집의인연
두번째출산에서쌍둥이낳다
아이셋키우기
늑막염에걸리다
봉사활동
남편의노조활동
미국연수와자동차여행
가정최대의위기-①
청천벽력의간암판정
가정최대의위기-②
색전술치료
가정최대의위기-③
겁쟁이남편
가정최대의위기-④
“누군데이렇게시끄러우냐”
가정최대의위기-⑤
70시간같았던7시간의수술

제4부다시농구장으로돌아오다
22년만의귀환
선수촌장선수단장
대표팀구성의갈등
뜻밖의‘女포청천’제안
심판위원장24시
아들셋얻고할머니되고

출판사 서평

한국여자농구의전성기를빛내다

한국여자농구의전성기가언제였을까?국제무대에본격적으로진출하기시작하여상당한성적을거둠으로써국민의환호와사랑을받던시기가바로강현숙이국가대표선수로활약하던무렵과맞물린다.
강현숙이1972년청소년국가대표로선발되어제2회아시아청소년농구선수권대회여자부에서우승을차지한것은강현숙의농구인생이꽃을피우는출발점이었다.1973년한국일보신인체육상최우수장려상을수상하고국가대표로발탁된이후1980년은퇴할때까지8년동안줄곧대표선수로선발되어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대회동메달(1973),제5회서울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1974)우승,제7회테헤란아시안게임2위,제7회콜롬비아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1975)5위,제6회홍콩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1976)2위,1978년제7회쿠알라룸푸르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우승과제8회방콕아시안게임우승,1979년제8회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2위,1980년제8회홍콩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우승등의성적을거두었다.
개인적으로는1979년제8회서울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와1980년불가리아에서열린모스크바프레올림픽에서두차례세계베스트5로선정되었고,체육훈장기린장,백마장,거상장을차례로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