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성을 걷다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

한양, 성을 걷다 (한양도성·탕춘대성·북한산성)

$20.00
Description
한양 땅에 자리한 세 개의 성(城) 따라 역사가 이어지다

서울, 그중에서 조선의 도읍이었던 한양에는 만들어진 지 600년이 넘은 성(城)이 있다. 오늘날 내사산(內四山)이라 부르는 백악-낙산-목멱-인왕을 연결한 한양도성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 삶의 일부였기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고,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았던 것이다.
외사산(外四山)의 중심인 삼각산(북한산)의 수많은 능선은 심심찮게 찾던 등산코스의 하나였을 뿐이다. 또 인왕산의 성벽과 연결된 능선을 따라 부암동-구기동-향로봉-비봉-사모바위-대남문을 걷는 코스 역시 조금 긴 등산코스에 지나지 않았다. 산성과 그것이 품은 역사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까지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 초기에 축성되었던 한양도성과 후기에 쌓은 북한산성, 그리고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기 위해 만든 탕춘대성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 아래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 세 개의 성은 한양을 지키기 위한 조선 후기의 새로운 방어체제를 보여준다. 이 책은 한양의 성(城)을 걷는 안내서인 동시에, 성을 따라 걸으면서 숙종이 강력한 의지로 쌓고, 영조가 완성한 한양의 성(城)이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다.
저자

도경재

·언론인·작가
·국내여행안내사|자연환경해설사
서울문화관광해설사|서울역사박물관해설사
도성길라잡이|평화길라잡이
·저서『한양의물길을걷다』외다수

목차

한양의성(城)을걸으며역사를잇다

한양도성
수축과개축
훼철과변화
한양의주산,백악구간
예나지금이나사람을품은낙산구간
훼손과파괴의현장,목멱구간
굴곡의역사를품은인왕구간
숫자로풀어보는한양도성

탕춘대성,그리고동성
도성과산성을연결한탕춘대성(蕩春臺城)
못다이룬숙종의꿈,동성(東城)

북한산성
논쟁36년,축성6개월
행궁과삼군문시설
16성문을걷다
승영사찰을걷다
북한산성,능선을걷다
숙종과영조,산성에들다
숫자로풀어보는북한산성

출판사 서평

한양성(城)의가치가궁금해두마리토끼를쫒다

지은이들은역사전문가도,전문산악인도아니다.완벽하게다른인생길을제각기열심히걷던이들은‘도성길라잡이’라는이름으로한양도성내사산자락에서만났다.한양도성을수없이오르내리며그역사적가치와그것이품은이야기를사람들에게전달하고쏟아내며희열을느꼈다.
그리고궁금해졌다.한양도성에서이어지는북한산성과그사이를연결하는탕춘대성,계획에그친동성등600년조선왕조가한양을지키기위해고심한흔적인한양성(城)의가치가어디에있는지…….
북한산늠름한능선위봉우리를모두줄줄이꿸만큼수도없이다녔다고자부하는지은이들이지만,그위에삼백년전조선의제19대왕이쌓은북한산성과행궁(行宮),성랑지,장대등많은시설이누구에의해어떻게만들어졌는지,지금은어떤모습으로남았는지제대로모르고있었다.
한양도성과북한산성,탕춘대성을쌓고,동성을계획했던조선왕조의수도방위전략은무엇이었는지알려고하지않았다.그저북한산성16성문종주(縱走)에뿌듯해하고,백운대정상에올라만세를외치고,산영루아래계곡에서탁족(濯足)을즐기며북한산의풍광(風光)에만심취해있었던탓이리라.
지은이들은서울의내사산과북한산을찾는이들에게한양도성과북한산성을중심으로산행과역사두마리토끼를잡을수있도록내비게이션역할을하는책을만들어보자는데뜻을같이했다.

한양의성(城)을걸으며,역사를잇다

한양성(城)의진정한내비게이션을만들기위해저자들은발로뛰는취재를선택했다.한여름의더위가기승을부리고,코로나19팬데믹상황까지더해마스크를착용한채올라야하는고된산행이이어졌다.그런와중에도매주북한산능선을오르내리며16성문을일일이확인하고,성문의구조를파악했다.또행궁지와승영사찰을돌아보며원래의위치를정리하고,장대에도올랐다.출입이금지된구역은관련기관의허가를받는복잡한절차를거치는것도마다하지않았다.그렇게저자들은북한산구석구석을돌아보며,산성이품은이야기를만났다.

훈련도감유영지를찾았던날의기억은지금도생생하다.무더위와높은습도로마스크안은이미땀으로흥건했다.우리의방문을알아챈산모기들도그들만의은밀한손님맞이(?)를즐기기위해떼지어모여들었다.게다가위험지역입산을통제하던국립공원관리공단직원도우려섞인말로한마디보태었다.
“올해유독뱀이많아요……”
등산용스틱으로모기떼와뱀의접근을최대한막으며,잡풀로우거진야트막한언덕을넘어섰다.아무렇게나자란나무들과웬만한사람의키만큼제멋대로자란풀들로가득한제법너른공간이시야에들어왔다.마치원시림의한가운데서있는것같았다.풀섶에파묻혀앞으로나가는것조차힘겨웠지만,상당히넓은공간임에는틀림이없었다.
‘여기다!분명…….’
없는길을만들며수풀을헤치고나아가다미끄러지기를수차례.어느사이엔가제법잘쌓인축대가모습을드러내고,아직도네모반듯한모양을잃지않은못(池)이우리를반긴다.그리고힘찬글씨체의‘무(戊)’자가새겨진바위가보였다.
‘여기구나……훈련도감유영지가바로이곳이구나.’
발에차이는기왓장과석축들이우리를3백년전이곳에서북한산성을지키기위해무예를연마하고,보초를서며생활하던조선의군인들과만나게해주었다.
말로는표현하기힘든그무언가가가슴속깊은곳에서울컥올라온다.다른이들은우습게넘길지모르나,우리에게는이순간이참오래도록좋은추억으로남을것같다.한참동안발길을돌리지못하고우리는그곳에있었다.이즐거움을독자들과함께나눌수있었으면좋겠다는바람을가득담은채…….

한양,성(城)을걷다

한양도성
종묘宗廟는조종祖宗을봉안하여효성과공경을높이는것이고,
궁궐宮闕은국가의존엄성을보이고정령政令을내는것이며,
성곽城郭은안팎을엄하게하고나라를굳게지키려는것으로,
이세가지는모두나라를가진사람들이제일먼저해야하는것입니다.
〈태조실록〉6권,태조3년11월3일기해2번째기사1394년

도평의사사의건의에따라태조는조선의도읍지한성부의경계를표시하고,왕조의권위를드러내며외부의침입을막기위해성곽을쌓았다.한양도성은이후500년이넘도록조선의정체성을뒷받침하는최대건축물이자,수도한양의표상으로존재했다.또한나라의근본인종묘와사직을보호하는울타리로조선의명암과그운명을함께했다.

탕춘대성,그리고동성(東城)
북한산성의특징가운데하나는보조성곽을가졌다는점이다.산성내중성문과함께쌓은중성이그하나이고,또한양도성과북한산성을잇는탕춘대성과동성(東城)이그것이다.서쪽에위치해서성(西城)이라불리기도하는탕춘대성과는달리,동성은계획에만그쳐그형태를찾을수없으며제대로된이름도갖지못했다.

북한산성
14세어린나이에즉위하여46년간수차례의환국정치를통해강력한왕권을향유한중흥군주숙종.그는재위원년부터양란(兩亂)의교훈을바탕으로,도성백성과함께나라를지킬든든한안보(安保)울타리를갈망하였다.북한산성은그가도모하고자했던18세기도성방위체계의시작이었다.36년간의지난(持難)한축성논쟁을끝낸1711년(숙종37),12.7km에이르는조선의새로운안보울타리인북한산성이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