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안티쿠스 책장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안티쿠스 책장

$18.00
Description
상처받은 영혼에 위로가 되는 고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철인왕(哲人王) 아우렐리우스의 철학과 사색의 성찰!
‘나는 여러분이 이 사람을 황제가 아니라 홀로 선 고독한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고백록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전장에서도 손에 책을 놓지 않고 인간의 삶과 성찰, 책임과 의무를 고찰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 자기의 사상과 묵상 권고(훈계)와 신념을 비망록 형식으로 기록한 삶의 후반에 남긴 철학적 일기이며, 시대를 초월하고 후대에 많은 철학자, 지도자, 사상가들의 영혼에 큰 영향을 끼친 동ㆍ서양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는 불멸의 고전이다.

저자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MarcusAureliusAntoninus121~180)

아우렐리우스는121년4월26일로마에서태어났다.그의아버지안니우스베루스는로마의귀족이었으며어머니도미티아루킬라는집정관카르비시우스투루스의딸로서교양있고경건하고자애로운부인이었다.베루스집안은원래스페인에서살았는데마르쿠스가태어나기1백년전부터로마로이주하여살기시작했다.그의할아버지안토니우스베루스는총독,집정관,원로원등의요직을지냈다.아우렐리우스는여덟살때아버지가죽자,할아버지슬하에서자랐다.어머니도그가어릴때죽은것으로알려져있다.그는태어날때부터병약하여학교에다니지않고훌륭한가정교사들로부터교육을받았다.그는공부에열중했으며뛰어난자질을나타내어당시황제하드리아누스는아우렐리우스를사랑했으며그를‘가장진실한자(Verissus)’로부르기도했다.아우렐리우스의숙모파우스티나와그녀의남편안토니누스피우스에게는아들이없어아우렐리우스를양자로맞아들여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라고이름붙여주고그들의후계자로삼았다.138년아우렐리우스가17세때하드리아누스황제가죽자,아우렐리우스의양부(養父)인안토니누스피우스가제위를물려받았다.이때부터아우렐리우스는미래의황제로서통치하는법과황제로서해야할일들을섹스투스,루스티쿠스,프론토등에게배운다.139년아우렐리우스는피우스황제의후계자로정해지고황제의딸파우스티나와약혼한다.그후재무관과집정관에오르고145년24세때파우스티나와결혼한다.146년장녀안니아카렐리아가태어나고이후13명의자녀를두었으나8명이요절하고,1남4녀만이남았다.161년40세때피우스황제가죽자아우렐리우스가뒤를이어즉위하고의동생인루키우스베루스를공동황제로삼았다.이때부터게르만족,스키타이족등외적의침략과변방야만족의소란등외부로부터의위협이끊임없이계속되고페스트와티베리스강의범람으로인한기근등으로시련을겪는다.그러다169년공동황제인베루스가죽고게르마니아가다시공격해오자아우렐리우스는다뉴브강에진을치고그곳에서생활하고이때부터이책《명상록》을쓰기시작했다.이후야만족과의싸움과카시우스의반란을진압하기위해원정을떠나고이원정에서아내파우스티나를잃는다.그후북방의전장에서돌아오는도중페스트에걸려며칠동안앓다가180년3월17일59세의나이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서문·6
아우렐리우스생애와사상·11
스토아철학에대하여·19

제1권·27
제2권·40
제3권·51
제4권·64
제5권·88
제6권·109
제7권·134
제8권·161
제9권·186
제10권·207
제11권·229
제12권·250

아우렐리우스연보·266

출판사 서평

2000년이지난지금도역사상가장위대한책으로꼽히고세계의수많은독자에게꾸준히사랑받는〈명상록〉은공익을위한일이라면싸우지않고양보하고,옳은일이아니면행하지않고,진실이아니면말하지않으며,마지막순간까지자기를꾸짖고지금바로죽을수도있는사람처럼행동하라는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자기자신에게이야기하는사색과성찰의‘자성록(自省錄)’이다.
이책은스토아철학의사상을강조한배움,인생,운명,죽음,인간의본성,우주,자연,도덕등12권의장과개별적인단상들로구성된로마황제아우렐리우스가현대를살아가는우리에게큰울림을주는인생지침서다.

그가로마를통치하던시대는게르만족,스키타이족등외적의침략과변방의소란등외부로부터위협이계속되고페스트와티베리스강의범람으로오랜기간전쟁과질병,기근과시련을겪으며야만족과카시우스의반란으로소환명령을기다리듯오랜기간그의영혼은지쳐있었다.

그는전장에서도손에책을놓지않고진리를탐구하고〈명상록〉을쓰면서고독과유랑의시간을달래며그어떤것도자기가최선을다해자기의의무를수행하는것을방해할수없고,인간의이성적영혼은우주로고스의일부분이고인생의목적은이러한우주의신성한목적을이해하고따르는것이라고믿었다.

그러고인간은신의섭리를거역하지말고,자연의법칙에순응하고,자연을중시하고,시시각각다가오는죽음을어떻게맞이하고,무조건복종만을요구하던시대노예로살기보다철학자로죽기를택하고,우월한정신만이열등한육체의노예가되지않으니지금바로죽는사람처럼미래를덤으로생각하고인간의의무를수행하며인간답게행동하라고한다.

옳은일이아니면행하지않고진실이아니면말하지않으며,마지막순간까지자기를꾸짖고지금바로죽을수도있는사람처럼행동하고,자신을황제가아니라홀로선고독한한사람으로생각하고이고백록을읽어달라고한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철학과사색의일기이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MarcusAureliusAntoninus)는121년4월26일로마에서태어났다.그의아버지안니우스베루스는로마의귀족이었으며어머니도미티아루킬라는집정관카르비시우스투루스의딸로서교양있고경건하고자애로운부인이었다.베루스집안은원래스페인에서살았는데마르쿠스가태어나기1백년전부터로마로이주하여살기시작했다.그의할아버지안토니우스베루스는총독·집정관·원로원의원등의요직을지냈다.

마르쿠스는여덟살때아버지가죽자할아버지슬하에서자랐다.어머니도그가어릴때죽은것으로알려져있다.그는태어날때부터병약하여학교에다니지않고훌륭한가정교사들로부터교육을받았다.소년시절은행복했다.그는공부에열중했으며진실하고성실했다.당시로마황제는하드리아누스였다.황제는소년마르쿠스를사랑했으며그의이름인Verus를Verissus(진실한자)로불렀다.마르쿠스의숙모파우스티나와그녀의남편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피우스에게는아들이없었다.그래서그들은마르쿠스를양자로맞아들여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안토니누스라고이름붙여주고그들의후계자로삼았다.마르쿠스는이때부터미래의황제로서통치하는법과황제로서해야할일들을배웠다.

마르쿠스는26세때양부안토니누스피우스의딸파우스티나와결혼했다.마르쿠스와파우스티나사이에는13명의자녀가있었는데아들인코모두스와4명의딸을제외한나머지자식들을마르쿠스로부터모두앗아갔다.161년마르쿠스의양부인황제안토니누스피우스가죽자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가제위를물려받았다.그러나그에게제위는탐탁한것이아니었다.철학이그에게위안이며종교였다.마르쿠스는의회의반대에도불구하고의동생인루키우스베루스를자기와함께황제의자리에올려놓았다.그리하여로마는역사상처음으로동시에두사람의황제를갖게되었다.

이때부터마르쿠스는끊임없이전쟁을겪었다.그전쟁들은동부속국들의반란과중부유럽게르만인의이동에기인한것이었다.161년부터166년까지는파르티안전쟁이있었는데이때마르쿠스의의동생루키우스베루스가군대를이끌고가서승리하고돌아왔다.그때페스트가로마전역을휩쓴것도이원정의결과였으며로마멸망의원인이되었다.또한이때티베리스강의범람으로로마는엄청난곡식을잃었다.마르쿠스는굶주리고있는백성들을구제하기위해궁정의보물들을팔아야만했다.

167년의동생루키우스베루스가죽자,그는이후13년동안혼자서로마를통치했다.그후아시아의카시우스라는자가마르쿠스가죽었다는소문을퍼뜨리며자신을황제라고자칭하고반란을일으켰다.이러한소문을들은마르쿠스는아시아로향했다.그후카시우스는부하에게살해되고반역자들을관대하게대해주었다.이원정기간에그와함께갔던아내파우스티나가죽고다시다뉴브강지방으로돌아와게르만족의침입을막기에힘썼다.그의영혼은여러가지수난과전쟁에시달려‘소환명령을기다리고있다’는그의말처럼지쳐있었다.그는그곳에있는동안<명상록>을쓰면서고독과유랑의시간을위로했다.그에게이<명상록>은철학일기였다.

그후북방의전쟁을마치고돌아오던중에마침내페스트가그를덮쳤다.그는며칠동안앓다가180년3월17일‘나의죽음을슬퍼하지말라.오히려전염병에걸린사람과수많은사람의죽음을생각하라.’는말을남기고세상을떠났다.그때나이59세였다.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가남긴<명상록>은그가남긴철학적일기이며자기의사상과묵상그리고권고(훈계)와신념을비망록의형식으로기록해놓은그리스어로쓰인책이다.
우리가이책을읽을때마음에새겨두어야할것이있다.그것은이책이로마황제가자기자신에게이야기하고있는‘자성록(自省錄)’,즉자기성찰의기록이라는사실이다.따라서여기서‘당신’이라고부르며꾸짖고위로하는대상은독자들이아니라황제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