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앞에서: 소설가 G의 하루 (정태언 소설집)

성벽 앞에서: 소설가 G의 하루 (정태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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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태언의 두번째 소설집. 소설집의 표제작인 「성벽 앞에서」는 ‘소설가 G의 하루’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큼, 구보형 소설의 전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서술 시간을 하루에 한정하고, 서울을 별다른 목적 없이 배회하는 소설가 인물을 내세워, 그 주체의 눈에 비친 대상과 시대에 대한 고현학(考現學)적 탐사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들이 그러하다.
저자

정태언

서울출생.한국외대노어과와동대학원졸업후모스크바국립대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2008년『문학사상』신인상에단편「두꺼비는달빛속으로」가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2년대산창작기금을수혜했고,2014년해외레지던스작가로사할린에체류했다.소설집『무엇을할것인가』,5인중편소설집『선택』,8인테마소설집『1995』,견산이호철선생추모14인소설집『큰산너머별』이있다.

목차

성벽앞에서-소설가G의하루
원숭이의간
이름들
집합주유소
비원가는길
구보전(仇甫傳)

작품해설소설가의초상김녕ㆍ문학평론가
작가의말
수록작품발표지면

출판사 서평

정태언의두번째소설집.2008년『문학사상』신인상에단편「두꺼비는달빛속으로」가당선되면서작품활동을시작한정태언은소설집『무엇을할것인가』(2013년)를펴냈으며,2012년대산창작기금을수혜했고,2014년해외레지던스작가로사할린에체류했다.
이번소설집에서작가는무명의소설가G를주인공으로내세운일련의연작을통해문학과현실에대한묵직한성찰을펼쳐보인다.소설가G는중심과주류에서비껴나세계와불화하는인물이라할수있는데,「소설가구보씨의일일」의구보를연상시키는한편환상없는궁핍한작가적실존을통해문학의존립근거를묻는다는점에서좀더근본적이고급진적인새로운구보의유형을그려내고있다.

소설집의표제작인「성벽앞에서」는‘소설가G의하루’라는부제를달고있는만큼,구보형소설의전형을가장충실히반영하고있다.서술시간을하루에한정하고,서울을별다른목적없이배회하는소설가인물을내세워,그주체의눈에비친대상과시대에대한고현학(考現學)적탐사를근간으로한다는점들이그러하다.스스로‘탁발’을나왔다자임하면서,숭례문부근을어슬렁거리다은행지점장으로있는동창을만나대출을알아보고,다시숭례문부근을어슬렁거리다출판사팀장을만나첫창작집출간을거절당하고,다시숭례문에돌아와어슬렁거리다‘탁발’을마치고글을쓰기위한‘자리’로돌아가는게이소설에서G가보여주는동선의전부다.예술가로서뿐만아니라노동자라는측면에서소설가의정체성을사유했던시선은이미오래전부터있어왔지만,실체도소용도없는아우라와노동을노동으로인정받지못하는현실은전혀달라지지않은채로슬그머니심화되어있음을「성벽앞에서」는적나라하게보여준다.신용과부채를통한금권의통치술은누구에게나손을뻗치고있거니와‘생활’의측면에서소설가는자본을소유하지못한이들과함께세계의언저리로밀려나있는방외인적존재이다.
「원숭이의간」에서는금전적인문제에숨은턱막히고마감이임박한원고는좀처럼풀리지않는데다간까지망가져버린G의이야기가그려진다.G를둘러싸고있는색채는대체로우울하고,무력하고,자기비하적이다.허나당연하게도,그게전부일리는없다.G는도무지풀릴기미가보이지않는생활과시시각각목을죄어오는금전문제들속에서도시종일관관찰한것들,떠오른상념들을충실히따라가며그것을글로옮길궁리에젖어있다.「성벽앞에서」는‘강력한힘’이담긴영화와소설에대한기억·아기장수설화·숭례문천장의용들을종횡무진넘나들면서그들의생생한이미지를글로옮기기를소망하며,「원숭이의간」에서는원숭이와관련된고사(故事)들과현재의체험그리고아버지와의과거들이작중G의소설‘훈장’으로화하고있는것이다.요컨대전자에서G가나선탁발은경제적인것인동시에글쓰기를위한것이며,후자에서G가간을내어놓고온힘을다해버티는것은생활은물론글쓰기에도걸쳐있는셈이다.
「집합주유소」에서G는어느날우연히「해뜰날」이라는노래와‘집합’,‘아이큐84’라는말들의자장(磁場)에사로잡히고만다.일반적인경우라면설핏의미없는연상작용으로치부하고깊게생각지않은채잊어버리겠지만,G는암호를풀어내듯끝끝내그것들의관계를곱씹어한장의그물에함께올리려애쓴다.결국우연한것처럼G의머릿속을점령한‘해뜰날’과‘집합’그리고‘아이큐84’라는말들은G의콤플렉스들과은밀하게연관되어있다.그러나우리가눈여겨봐야할지점은세말사이에감춰져있던미스터리자체가아니라,서로무관해보이는파편들사이에서희미한별자리를발견하는인식,그리고신기루처럼곧사라져버릴그것을끝끝내글로옮겨기록하는의식이다.이미사라진지오래인‘집합주유소’라는지명을별의심없이받아들이게하는자동화된일상적인식에균열을일으키고,텍스트를정해진풀이와전혀다른방식으로바라보게함으로써‘질문’자체를가능케하는능력.그러니까,G가다수또는주류와는다른지형에서서세계를다르게바라보고기록한다는것,그게초점이다.
2017년봄의‘촛불혁명’을상기시키는소설「비원가는길」에서G는이러한시국에대해서도모종의불화감정을느끼는한편,갓난아기‘마리’의‘귀중한’하루와이제하의단편소설「비원」속동운의최후의하루,그리고고작글감좀건지겠다고‘마리’의비(碑)를찾고원서동옛집까지몰래갔다가망신을당한자신의‘하찮은’하루를견주면서G는저자신과도불화한다.그는자신의불완전함·무능함·부족함·하찮음에대해말하지만소설(小說)이란완전무결한위인들이아닌작은(小)자들에대한이야기(說)인바,그의하찮은하루역시우리에게소중한사유를제공한다.시류에휩쓸리지않은채,자기자신조차섣부르게믿어버리는대신의심하고반성한다는건어떤의미인지에대해.그는옛소설가들이그러했던것처럼타인들보다뛰어난‘지식인’으로서가아니라,더욱부족한채로변두리에선채로답을베풀기보다는계속해서‘함께’질문하는존재이다.그의글쓰기는자신의혼란과자괴와질문이우리에게와닿을수있도록,그와우리사이를매개해준다.우리는세계와의불화속에어리둥절한채방황하는G의의식과함께하면서,우리자신과세계사이에드러나지않은채로놓여있던자동화된구조를어렴풋이감지한다.
「구보전(仇甫傳)」은유일하게G가아닌‘구보’의이름을내건동시에,홀로조선조를배경으로삼고있다.이조선의구보역시전반적인상황들은G의그것과닮아있다.유학(儒學)하는‘선비’이고,당대의큰흐름이그러했듯‘과거(科擧)’에매달렸으나역시급제하지못한데다,“성현의글귀라고칭송되는글들만그대로답습하라강요하는”시류로부터빠져나와버린이다.사회의부조리에편승하는대신그가매혹된것은‘아이들을위한’글쓰기이며특히‘아기장수’설화를어떻게다시쓸것인가하는과제이다.그러니까,그는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나금서가된『서유기』와같은잡문으로그러한과제를달성하고자한다.
정태언의소설은성공보다는실패를통해말한다.부정확함,비껴남,엇나감,미약함,하찮음,불완전함의양식(樣式).이것은불필요하거나쓸모없다는뜻이아니라,오히려단지실패를경유해서밖에는말해지지않는어떤것들에게목소리를부여한다는의미이다.
해외레지던스작가로사할린에체류할때의경험을담은중편「이름들」에서G는자신과고려인들사이에놓여있는연결고리를놓지않으면서도,둘사이에놓여있는간극을인정한다.그는사할린에머물며이런저런행사에끌려다니는내내손쉽게민족적동질성에의거하여고려인들과동포애에젖어드는대신지적·감정적인거리감을있는그대로노출시킨다.러시아식이름에대한불편,욕설과맞닿는연상들,‘박’의소설에대한솔직한논평들,사할린교포들의비슷비슷한사연에대한지겨움같은것들.온갖불순한것들을G는자신의소설속에여과없이섞어넣는다.
그렇게먼것을가깝다고말하거나부족한것을족하다고말하지않는것,불순물과몰이해의어둠을억지로걷어내지않는것.그것이G의소설관이자인생관이기도할것이다.물론그는자기시대의소설과삶은무엇이고무엇이어야하는지결코질문을멈추지않을것이다.정태언의소설들은그렇게세상의온갖어둠과더러움그리고우리들자신의갖은‘작음’을끌어안은채로,우리곁에서서성이고있다.소설가의초상이란,그런것이아니겠는가.(‘작품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