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자들 (박향 소설집)

좋은 여자들 (박향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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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향의 소설에는 ‘어떤 시간’을 향해 홀로 되돌아가 서 있는 여자들, 고통에 몸서리치고 허우적대면서도 그 시간에 머묾으로써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여자들이 있다. 고통에 찬 여자들에게 박향은 기꺼이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때의 여성은 인간이라는 타자의 다른 얼굴이며, 그렇게 해서 ‘좋은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 보편의 고통에 대한 아이러니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타자성과 보편성을 아우르는, 여성 서사를 뛰어넘은 이 여성 서사에서 그녀들이 서 있는 자리는 곧 우리의 자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마치 일부러 그려놓은 공백처럼 비어 있는, 생산적이지도 온전하지도 못한 ‘어떤 시간’들을 정의하거나 이해하는 대신 광장에 서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 들끓는 시간을 지고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홀로 되돌아가는 어떤 이들의 삶을 직시하며 『좋은 여자들』은 시작한다.
저자

박향

1994년부산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05년첫소설집『영화세편을보다』를,이후소설집『즐거운게임』과장편소설『얼음꽃을삼킨아이』,『에메랄드궁』,『카페폴인러브』,『파도가무엇을가져올지누가알겠어』를펴냈다.제9회세계문학상대상,제5회현진건문학상대상,제3회부산소설문학상,제12회부산작가상을받았다.

목차

반말
사레
시집읽기
이매진
좋은여자
죽은자들의도시
체인징파트너
타임캡슐
작품해설|고독이고독에스미는순간|최선영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먼저,‘어떤사건’들이벌어지곤한다.「타임캡슐」의‘나’가“단죄가정의”(281쪽)라고생각하는소녀에서잇따른성폭력에퇴사를반복하는삼십대여성이되기까지의간극엔도하의자살이있다.그리고성폭행을당할뻔한뒤도하에게혐의를밀어붙였던과거의자신이있다.‘나’는심하게앓는다.그런‘나’를살린건망각과침묵,회피라는삶의태도다.‘나’가도하와의마지막기억을타임캡슐처럼묻어버린곳,그곳을기억의사각지대라고한다면거기에쌓인건기억에서박탈된‘어떤시간’의원형이다.저변에서흐르고끓어오르는‘어떤시간’은‘나’의미래를지배한다.
기억의사각지대는「좋은여자」의수경에게도존재한다.수경의내면속“깊이를알수없는검은우물”(176쪽)엔,남편에게그와동성애인의손목을그을면도날을쥐여주던순간과끝내그의고독을‘이해해버리는’순간이함께있다.고통스럽게상충하는두순간은“목구멍안에서뜨거운액체같은것이꾸루룩소리를내며흘러넘치”(176쪽)듯수경의삶을위협한다.누군가의죽음은남은사람의생을압도하는‘어떤사건’으로남는것이다.「이매진」의‘나’역시재혼가정남매라는,이루어질수없는첫사랑상대인수정의자살을겪은후낭만과사랑,이상과청춘,심지어사정과불온함마저상실한채후유증에시달리듯어디에도정착하지못하는삶을산다.그러나“잊을수있기때문에우리는살아가는거”(173쪽)라는말처럼,이들은기억이들끓는우물의뚜껑을닫고,“깊은잠”(144쪽)을청하려시도한다.

‘어떤사건’앞에서개인은고독이라는감정앞에멈춰서게된다.자신의알몸사진을찍은남자와결혼해야만하는「체인징파트너」의은주와존댓말을사용한다는이유로불온의낙인이찍히는「반말」의민주가겪는고독한폭력의시간은「사레」에이르러공공의것이된다.학교폭력에시달리다캐나다로유학을떠난딸민아.“바닷속의물풀”(55쪽)처럼가라앉은,딸의이은유적죽음앞에서서준석부부는공동의상처를안고살아가는유족과다름없다.어느새서준석에게민아의사건은“그일”(63쪽)이된반면,아내에겐표피를바꾸며계속등장하는‘어떤사건’들로계속남아있다.아내는다이어리에민아의이야기와함께세월호아이들의대화나문자를그대로옮겨적는다.그리고“기억은기록이아니라해석”(75쪽)이라는서준석의글에이런문장을남긴다.

“나는기록할뿐해석할수없다.너무생생하기때문이다.”(75쪽)

앞을보며해석하는이와뒤를보며기록하는이.‘어떤시간’에머무르는것도,무뎌지며미래를보는것도모두생존의방법들이기에옳고그름을따질문제는아니다.그러나여전히세상의폭력과모순에침잠하는자신을홀로두고균열저너머로가버린서준석에게,숨이막히는사레에들린채로,아내는묻는다.“인간이,도대체뭔데?”(73쪽)인간이란도대체무엇인가.박향의소설에서벌어지는‘어떤사건’들은결국이질문의변주일것이다.

우리공동의‘어떤사건’이후의시간이지나가고있다.해명불가한죽음들이있었고이를지켜본이들의고독과울음이남았다.배는건져졌지만어떤삶들은아직깊은바다에잠겨있기에,이곳은‘죽은자들의도시’일지도모르겠다.그러나박향의소설은이곳이오직고독으로만점철된지옥은아니라고말한다.연인을잃고자식을잃은사람들이서로를쓰다듬고(「시집읽기」),한사람이한사람에게기꺼이‘통곡할장소’가되어주는(「죽은자들의도시」)곳이기에.
박향의소설은생의고달픔을냉정하게적시하면서도,한편으로는고독이고독이기에넓힐수있는삶의지평을보여준다.고독을망각하지못하는이들의이야기가고독이모여있는그어떤자리를“뜨거운서러움의장소”(204쪽)로만들어줄것이다.더불어박향이보여주는여덟편의이야기에서한번이라도우리의‘어떤시간’과마주하게된다면,우리는분명그자리에먼저와서우리의고독을끌어안아주는‘좋은여자들’을만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