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다 (방현희 소설집)

타오르다 (방현희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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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하나의 글자는 인류의 족적을 축약한다.”(259쪽)
때로 한 단어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단어에 그만큼 두터운 이야기가 응축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의미한다. 방현희 소설집 『타오르다』에는 ‘타다’와 ‘지다’, 두 가지 말의 발화점과 종착지가 함께 담겨 있다. ‘타다’를 중심으로 쓴 연작 세 편, 그리고 ‘지다’에 대한 연작 세 편 등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타오르다』는 인간이 겪는 어떤 갈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방현희

2001년단편「새홀리기」로『동서문학』신인문학상을수상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2002년『달항아리속금동물고기』로제1회문학/판장편소설상을받았다.소설집『바빌론특급우편』(2006)『로스트인서울』(2011)『붉은이마여자』(공저,2004),장편소설『달을쫓는스파이』(2008)『네가지비밀과한가지거짓말』(2012)『세상에서가장사소한복수』(2014)『불운과친해지는법』(2016),심리치유우화집『아침에읽는토스트』(2012),산문집『오늘의슬픔을가볍게,나는춤추러간다』(2012)『우리모두의남편』(2015),청소년소설『너와나의삼선슬리퍼』(2013)를펴냈다.산문집『함부로사랑을말하지않았다』(2019)로전숙희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타다
타다2
내마지막공랭식포르쉐-타다3
광장에지다
늙은피터의고백-지다2
우는남자-지다3
밤의환대
소설가나씨의하루

작품해설한눈팔며걸어간다|김녕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타다
‘손을타다’‘기회를타다’‘계절을타다’등에쓰이는동사‘타다’는대체로과잉의뉘앙스를내포하고있다.그러므로무언가를‘타’는인물들은과잉된욕망에의한갈증을느끼는이들일것이다.자신을매혹하는그모호한대상의정체를찾는일은지독한외로움을발견하는일이기도하고(「타다」),인생이실패의굴레에빠져버렸음을재확인하는일이기도하며(「타다2」),죽음을예감하면서도멈추지못하고자기자신을연소시키는일이기도하다(「나의공랭식포르쉐-타다3」).
‘타다’연작의시작인「타다」의화자는친구엄마로부터“남자손좀타겠”다는폭력적인말을듣는다.그말이주는충격을떠안고어른이된그녀는,공허한연애를되풀이하며내부에서발화하는무언가의근원을찾으려한다.마침내깨달은것은자신의과잉된성(性)이‘외로움’에서기인했다는사실이었다.

외로움은기운이몹시성하고독했다.그녀가인정하든안하든그것은그녀를파고들었다.외로움은두려움도불러일으켰다.외로움은치졸함도불러일으켰다.외로움을탄다는것은앞뒤분간을하지못하게만든다는말이었다.안하던짓도하게만들었고부끄러움도모르게만들었다.(25쪽)

“과잉은결핍이었다”는그녀의말처럼,자극으로가득채워진삶의밑바탕에는외로움과고독,결핍이있었다.「타다2」의화자가타고난결핍은‘타오르는’불길로부터시작되었다.화재로형을잃고혼자서살아남은그의삶은우연을가장한필연처럼,계속해서화마로인해불행의국면을맞고있다.그는자신의참담한삶을재건하려는시도를접고,차라리“먼지나때가되는편”을택한다.「나의공랭식포르쉐-타다3」의‘그’를사로잡은것은자동차를‘타’는일이다.공업사의기술자인그는죽은친구의포르쉐를넘겨받은뒤,그차를완벽한자신의것으로만들기위한작업에강박적인자세로착수하고있다.그러나그토록차에열심이었던친구와그에게는공통점이있는데,자기자신을연소하듯이쏟아붓는그열정의끝이죽음에닿아있다는점이다.

지다
‘짊어지다’‘싸움에지다’‘저버리다’등에쓰이는동사‘지다’에는무언가스러지는듯한느낌이있다.「늙은피터의고백-지다2」의화자의마음속에서는한때아름다웠던별들이지고있다.간호사이자소설가인화자는글을쓰지못하고있는데,병든사람들의“화나고슬프고고통스러운얼굴”들이계속밀려들어오기때문이다.피묻은솜과주삿바늘,체액이묻은시트,짠내가나는아픈노인들사이에서그녀는삼십년전친구였던해옥을떠올린다.천진하게망원경으로별을올려다보던해옥이빛을잃고눈물을흘리던일들을떠올린다.
「광장에지다」에는져버린수많은이들의숨이있다.소설속화자인‘골렘’은흙을빚어만든인형을뜻하는말로,오직명령에따라서만움직이는수동적인존재다.그는세월호사건희생자들을위한분향소가있는광장으로나가피자를먹고오라는아버지의명령을받는다.유가족단식투쟁앞에서명령에따라‘폭식투쟁’에가담하는골렘은그러나뜻밖에도한소녀와의만남을통해자신을멈출수있게된다.“눈물흘리고,가슴을쥐어뜯으며기도를하는사람들이살갗에닿고,눈동자로읽히고,손에잡”히는것을느끼게된다.
「우는남자-지다3」의골렘또한인간에게가까이가지말라는아버지의명령을어긴다.그는무너지고있는한가정을발견하고다가가그들을안아준다.몸이찢어지고타는듯한고통을느끼면서도난간에매달린여자아이를있는힘껏끌어안는다.타인의고통에공감하는일은피부를뚫고들어오는외로움과쓸쓸함에녹아내리는일이다.감정이이끄는대로움직이며생생한인간으로거듭나는일이다.주어진것에순응하지않고어긋나고마찰하는것,저항하는것을두려워하지않는것이야말로‘지’지않고살아가는방법인것이다.더욱이「소설가나씨의하루」에따르면,살아간다는것은환멸을견디는일이다.소설가이지만생계를위해치욕스러운노동을이어가야하는화자는,생존본능과인정욕구사이에서자신의방식대로어떻게든살아남고자한다.그런면에서「밤의환대」속그녀에게남편의병마는해방이다.늘폭력으로그녀를옥죄어왔던남편은이제구속복에묶인채로,수면제에취해잠에빠져있다.그의숨이지고고개가마침내떨구어졌을때,그녀는자신을환대하는자유로운밤을향해문을활짝열어젖힌다.

『타오르다』속인물들은결코완벽하거나완전하지않다.크고작은실패들을반복하면서,현실의무게에짓눌리는한편이상(理想)을향해나아가려이리저리충돌하는인물들의모습은인간이란본래그렇게휘청대는존재임을보여준다.차디찬현실은우리를숨막히게하고,우리를매혹하는의미와이상은우리를다시움직이게한다.그렇게흔들리며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