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반수연 소설집)

통영 (반수연 소설집)

$14.00
Description
“통영, 내 모든 작품은 그곳을 향해 있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반수연은 1998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떠난다. 2005년 희박한 모국어의 공기 속에서 쓴 단편 「메모리얼 가든」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다. 『통영』은 그렇게 낯선 이국에서 쓴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첫 소설집이다. 반수연의 소설에서 이민은 삶에 대한 근원적 메타포다. 그의 문장들은 강렬히 꿈꾸고 아프게 실패하고 부정하며 방황하다 결국 꿈이 남기고 간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인간의 오랜 운명을 이야기한다. 꿈꾸는 삶의 한 원형을, 견디고 버티는 삶의 피할 수 없는 본질을 이민자들의 형상을 빌려 차분하고 성찰적인 문장들로 축조해낸다.
저자

반수연

통영출생.1998년캐나다밴쿠버로이민을떠났다.2005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메모리얼가든」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4년,2015년,2018년재외동포문학상을수상했다.2020년단편소설「혜선의집」으로재외동포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메모리얼가든
혜선의집
나이프박스
사슴이숲으로
통영
국경의숲
자이브를추는밤

작품해설|달아남으로써돌아오는|이철주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실제로경험하지않으면포착하기어려운놀라운구체성들이소설집곳곳에자리하고있다.특히이민말년을다루고있는「메모리얼가든」과「혜선의집」은꿈과현실의간극이선명하게드러나는생의황혼무렵을누구도피해갈수없는소멸과죽음의그림자를배음처럼깔고서절제된문장과안정된호흡으로담아낸작품이다.
꿈도,가족도,기회도더이상남아있지않다는생각이들때,그래도나에게그모든것들이가능했던시간이있었음을누군가는알아주기를바랄때찾아오는죽음은이해하기어려운부탁을느닷없이건네며조용하고도묵직한소란을남긴다.「메모리얼가든」의박노인이그렇다.장례코디네이터이자묘지세일즈맨으로일하는화자에게매번찾아와계약과는관련없는엉뚱한이야기만늘어놓던박노인은,죽은아내의유해를맡아달라는곤란한부탁을남기고양로원에들어가버린다.「메모리얼가든」은박노인이세상을떠난뒤,그가남긴죽음의무게를떠맡게된화자의심리적변화의시간들을강렬하게포착한다.
「혜선의집」의혜선은암투병으로허물어져가고있다.미국생활십년만에산자신의집,“어린딸을안고계단을쿵쿵오르내리던,거짓말처럼젊고바빴던”시절이걷잡을수없이희미해져만가고있는지금,혜선의불안감은자신과남편을돌봐주는여성들이서서히집을빼앗고차지할지모른다는의심으로확장된다.한때유일하고도확실한,안전한공간이었던집에서혜선이불안정하게휘청거리는것은깨어진꿈과현실사이의아득한거리때문이다.

무력감과좌절감의원인인상실을예방하는방법은분실하기전에한발앞서잃어버리고폐기하는것이다.애초에어떤것도갖지도꿈꾸지도갈망하지도않는것이다.『통영』속이민자들에게는상실의경험이있다.「국경의숲」의레이첼은연인을잃고홀로딸을키우며살아간다.「통영」의현택은고통을잊기위해고향을떠나찾은새로운땅에서사고로손가락을잃었고,모친상으로이십년만에다시고향을찾는다.한국을떠나오면서시간의흐름은분절되었고,이민은그들삶의너무나도많은부분들을바꿔버렸다.연인이사라진국경의숲에서딸과함께눈밭에누워“스노우엔젤”을그리는레이첼과,다친손을숨기려주먹을말아쥐고장례식장구석에서잠이든현택의모습은상실을견디는인간의안감힘을선명하게보여준다.「자이브를추는밤」의화자가잃어버린것은유독돈독했던아들과의유대감이다.커가며매일한뼘씩거리가벌어지는듯멀어지더니,어느새애인과의미래를계획하는아들준이화자는손님처럼어렵기만하다.그럼에도불구하고소설은화자가현실과자기안의허기를받아들이지않을수없도록부드럽게인도한다.

『통영』의인물들은스스로의진실로부터있는힘껏달아남으로써되돌아온다.“상처를준사람과장소에서멀어지는것은완벽한해답같았”(「사슴이숲으로」)다며,“진짜실패를피하려고의도적인좌절을선택”(「나이프박스」)함으로써패배의시간을최대한늦추고지연시키려한다.『통영』속그숱한유배와우회,망각과수치의시간들은어째서하나의욕망과상처가자신들에게가장중요한생의추동이자이유였는지를이해하고받아들이기위한납득과체념,수용과성찰의시간이다.
「사슴이숲으로」와「나이프박스」의인물들은실패하는것이두려워오래잊고지내왔던창작에대한열망,갈증들과다시마주한다.현실의파국으로부터달아나기위해선택한미국에서죽은화가의작업실을정리하는일을떠맡게된「사슴이숲으로」의화자는죽은이의물건들사이에서자신의갈망을재발견하고,해묵은마음들의밑바닥을딛고일어선다.등단한지십년만에캐나다로이민을온「나이프박스」의명희는아이들을모두대학에보내고난뒤에야비로소글을쓸시간을얻게되지만,도피하듯요리학교에등록해버린다.그곳에서의허방의시간들은상처가품은독기와열을가라앉히기위한신중한기다림의시간이었다.요리실습마지막날,명희는“나이프박스”에담긴무수한도구들,잔뜩무장된핑계들을기부접수처에내려놓은채물러섰던최초의자리로돌아온다.안전한실패들에기대어진짜실패로부터달아나고자했으나,그모든일들을통해단단한마음들을재차확인하며최초의열망속으로결연한발걸음을다시내딛는것이다.

『통영』에는기나긴회피와회귀끝에패배하고좌절한자의순수성과진정성이담겨있다.멀어지지않고서는한순간도견딜수없었지만결코온전히떠날수도없었던맹목의마음들곁에서반수연의문장은이들달아나는자들에게도윤리가있음을,가장힘들고아픈우회를통해서만도달할수있는마음이있음을고백하고증언한다.그치열하고고집스러운도망자의윤리를,불가피한마음들로엮인고유한매듭과선연한문양들을그려낸다.오래도록부정해온지극히명징한실패를삶의중심한가운데에우두커니세워놓는다.마음을다해도망쳐온삶의맨얼굴을아프게끌어안으며그불완전함과비루함의밀도로,어둑한꿈의뒷모습을캄캄히들여다보고위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