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간 (정빛그림 소설집)

빛의 시간 (정빛그림 소설집)

$14.19
Description
소설가 정빛그림은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인생에 남겨진 ‘실패’의 흔적들을 주목한다. 실패란 철저하게 시간의 지배 아래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실패는 결과에 대해 이루어지는 평가이므로 끝이라는 시간성이 전제될 때에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봐야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은 시간의 경과가 없다면 실패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빛의 시간』은 불연속적인 침묵의 순간과 언어가 끊어진 곳에서 발생하는 전환의 순간을 통해 실패로 규정된 다양한 국면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삶의 행로에 변화가 예견되는 순간은 인생이 끝내 다 보여주지 않는 신비한 비밀이다. 이때 발견된 순간들은 사라진 시간을 불러와 인간 실존의 새로운 시간을 확보한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은 평가가 완료된 순간으로서의 실패를 뒤적여 이전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거나 일찍이 망각해버린 시간을 불러낸다.
저자

정빛그림

1983년전주에서태어났다.세종대학교회화과와고려대학교대학원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웹진『비유』에소설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고,그림작업과글쓰기작업을함께하고있다.

목차

빛의시간
눈속의늑대들
기억하는마음
오해의주변
자유연기
벨롱에서
올드픽처스
여름새(중편)

작품해설|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박혜진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소설가정빛그림은‘순간’을포착하기위해인생에남겨진‘실패’의흔적들을주목한다.실패란철저하게시간의지배아래에서만사용될수있는개념이다.실패는결과에대해이루어지는평가이므로끝이라는시간성이전제될때에만적용할수있기때문이다.시간이지나봐야좋은일이었는지나쁜일이었는지알수있다는말은시간의경과가없다면실패여부를판단할수없다는말이기도하다.『빛의시간』은불연속적인침묵의순간과언어가끊어진곳에서발생하는전환의순간을통해실패로규정된다양한국면들을해체하고재구성한다.삶의행로에변화가예견되는순간은인생이끝내다보여주지않는신비한비밀이다.이때발견된순간들은사라진시간을불러와인간실존의새로운시간을확보한다.이책에수록된여덟편의소설은평가가완료된순간으로서의실패를뒤적여이전에는알아차릴수없었거나일찍이망각해버린시간을불러낸다.

표제작인「빛의시간」은이러한정빛그림고유의주제를집약적으로보여주는소설이다.자신의그림을그리기보다는친구해주의어시스턴트로더충실한나날을보내고있는‘나’는정작해주의작품의도와주제의식에는공감하지못한다.두사람사이에는모종의어긋남이있다.해주는종종한갓진오후의시간을‘빛의시간’이라부른다.해주의작품세계를관통하는모티프와도같은빛의시간이란과거와현재와미래가공존하는총체적세계다.그것은“존재하지않았을시간”인동시에무언가가“어긋나면서생겨난우연의순간”을말하기도한다.“아무도모르는순간지나가고아무도모르기때문에부질없지만그순간에운명이변화를일으”킨다는사실은빛의시간이인간의시간을넘어서고싶은마음이만들어낸상상의시간이라는사실을보여준다.빛의시간을이해하지못하던‘나’는일련의사건들을통해과거에묻어두었던가혹한진실과마주하게되고,결국빛의시간을이해할수있게된다.
정빛그림의소설속에서예술은자신에대한침묵과외면을허락하지않는다.독립된단편이지만「빛의시간」과연결해읽을수도있는소설「눈속의늑대들」은한순간의침묵을통해예술의긴시간을상상하게한다.“이렇다할성과도없이삼십대가되었다며속상해하는”해주는여느젊은예술가들이그런것처럼원하는만큼의성과를내지못한것에대해후회와반성의말을내뱉는나날을보낸다.그러던중갤러리에서운영하는세미나에참석하게된해주와연인정우는올리브라는사진작가에대해알게되는데,풍문에따르면올리브에게는작업과정에서피사체인여성들을추행한다는혐의가따라다닌다.피해자에게심정적으로공감하는정우는한때불법촬영시위에동참하던해주가지금은피해자를가리켜“올리브한테당한척하고다닌다”더라는소문을덧붙이는데대해모종의실망감을느끼는한편난해한주제를즐기는무리에대해서도이질감을느낀다.불법을내면화한예술과그런예술세계로부터인정받고자하는또다른예술속에는현실을전복하지못한채현실에굴복하고현실의승인을기다리는서글픈예술가의초상이자리한다.정우와해주사이에침묵과어긋남의순간이발생할때,그한순간의침묵속에서떠오르는것은타락한예술의기나긴그림자다.

「기억하는마음」과「오해의주변」은완료되었거나진행중인‘순간’을통해내용으로서의‘순간’에좀더몰두하는소설이다.「기억하는마음」의주인공국주는사랑하는남자가갑자기떠나버린상황을받아들이지도이해하지도못한채슬픔의정체구간에갇혀있다.어느날국주는한남자를소개받게되는데,남자는여러면에서별다른인상을주지못했지만웬일인지그가쓰고있는이상한모자만큼은국주의마음에잔상을남긴다.배우인남자가연기할때썼다는그모자는극중죽은사람의소품으로,그모자를쓰고있으면마치죽어있는것같은기분을느낄수있다는남자의이야기가국주의마음을사로잡은것이다.국주는순간순간다른사람이될수있는가능성을실천으로옮길수있는남자의말에서자신이사랑했던사람을떠올린다.사진을찍었던그역시순간만이전부인사람이었기때문이다.
「오해의주변」은순간이발생하는상태에주목한다.‘나’에게는우정과질투를공유하는친구여름과세영이있고,또이들사이에등장한한명의남자이자비가있다.‘나’는에어비앤비로이자비에게집을제공하며그와흡사연인과도같은시간을보내지만,사랑이생성되려는순간‘나’는누구에게도그무엇도물어보거나확인할수없는상태를경험한다.‘나’는여름과이자비가함께떠났다는세영의말에놀랐지만아무것도묻지않는다.“물어보는순간,우정이끝장나는것은물론이고그날밤의기억이아무것도아닌게되어버린것만같”은기분에사로잡힐게분명했기때문이다.불안정을속성으로하기에사랑은규정될수없다.규정되지못하고규정할수없는‘순간’이라는속성이사랑을두려워하게하면서도사랑을잊지못하게한다.

「벨롱에서」는과거로부터벗어나지못한자가현재를살아가지못하는비극을보여주는소설이다.어린이집교사인‘나’는이전에일하던곳에서발생한영유아사망사건에연루되어실형을선고받은과거가있다.‘나’의현재는과거로부터분리되지못하고,과거가현재를끌고다니므로현재의과거화가계속된다.과거에붙들려현재를살지못하기로는「여름새」의휘영도마찬가지다.열여덟살에학교선생을가위로찌른뒤경찰서와소년원,법원과병원,면담과상담으로일년을보낸휘영이사라진아서를찾기위해떠난길에서만나는것은소화하지못한과거다.소화되지못한과거는정신적성숙의재료가되지못하고오히려탈을일으킨다.
미래를잃어버린사람의순간은어떨까.「자유연기」에서‘나’는배우로서의자신과엄마로서의자신사이에서갈등하는존재다.과거와단절되었을뿐만아니라미래와도단절된‘나’는사라진시간앞에서엄마라는역할을제대로수행하지못하고방황한다.한편「올드픽처스」는다음장면으로인생이전환되는순간에대해말한다.반야는“평범한사물들이기존의이미지를버리고의미심장하게바뀌는순간.의혹으로가득찬환상적인순간을카메라에담고싶었다”.반야가찍고싶은건상태가변하는바로그순간,즉순간의이후이자이후의순간이만나는접점지대다.그러나기다리는순간은오지않는다.순간의시간은순간그자신이결정하기때문이다.

다양한순간은우리가망각하고있던인간에대한진실을알려준다.순간이라는유한한시간에서그것을이루고있는이전과이후의시간을상상함으로써순간의의미는바뀐다는점이다.순간의의미가바뀌는순간과거와미래도바뀐다.인간은순간을통해과거와미래를끊임없이재발견하고재정의해나가는존재다.주어졌거나주어질시간을뒤로하고스스로에게시간을줄수있는존재.정빛그림이포착한인간은시간속에서살지않는다.오히려인간이시간을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