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장석 시집 | 양장본 Hardcover)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장석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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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오래전 한 평론가는 민중적 전망이 압도한 1980년대 한국 시를 돌아보며 세계의 본질을 투시하고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어온 대문자 ‘시’의 좌표를 망각 저편에서 일깨우려 한 바 있다(남진우, 「신성한 숲 1」, 『신성한 숲』, 1993, 민음사). 그때 잠시 화려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유성처럼 사라져간 ‘신성한’ 계보의 제일 첫머리에 언급되는 작품이 장석의 1980년 신춘문예 등단작 「풍경의 꿈」이다. 그 글에서 초월과 합일의 시적 비전을 에로스적 열망의 불길로 장엄하게 채색하고 있는 장석의 시는 ‘신성한 숲’을 향한 시의 가능성으로 한껏 충만한 한편, 얼마간 (억압적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말미암았을) 나르시시즘의 위험 또한 감지된다. 그러나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며,/그의/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11연)에서 보듯 장석 시는 유다른 형이상학적 깊이를 가진 채 부풀어 오를 것이었으되, 단 한 편의 시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림으로써 스스로 망각의 운명을 택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인 2020년 봄 장석 시인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상재하면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훨씬 긴 은일과 망각으로부터 귀환한 두 권의 시집에 부친 글에서 남진우는 말한다. “세계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의 사랑의 전언에는 여전히 순결한 자아에 대한 갈망과 현상적 질서 너머의 본질을 투사하고자 하는 은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는 이 언어를 버려두고 아니 쌓아두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한 시절 한 세상을 탕진해왔던 것일까.” ‘탕진’이라는 애정 어린 역설의 언어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석 시인은 세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앞선 두 권의 시집 출간 후 꼬박 두 해에 걸쳐 쓴 시들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이른바 ‘탕진’의 화살은 정작 시인 내부에서 더 철저하고 벼려지고 아프게 겨누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저자

장석

1957년부산생.평북영변출신으로함흥과부산에서성장하고수학한아버지와전남순천이고향인어머니사이의2남1녀중둘째다.서울대학교국문과졸업.1980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사랑은이제막태어난것이니』『우리별의봄』을펴냈다.

목차

벚꽃_9
못_10
단지이런일_11
미혹_13
나비와태풍_15
성김_16
번지점프_17
아틀리에봄_18
신호등_21
1아르의만다라_22
칠월의믿음_25
칠월밤바다_26
침묵의봄_27
수상시장_32
자전과공전_35
빗방울의얼굴_37
순천외가6_39
앎의즐거움4_41
숲지기_42
숲의총조사_45
착지의시간_47
숲의죽은나무_48
잎의수목장_50
가을의점자책_52
부리의시_54
나의노래_55
나는오동나무아래를지나가네_56
계단3_59
죽음에관한농담_61
사랑의몽유_62
단풍_63
눈매_64
은행잎편지_66
아치울견문_68
이세상끝의등대_69
무명연주자_70
시를기르는섬_71
눈의눈_72
모과심장을가진푸른그림자_74
겨울의주조_76
극광의시계_77
사물의질서_79
겨울까치집_81
사랑의타종_83
눈송이,서성이다_85
겨울연가_87
다리_90
순례의해_92
꽃잎위에뿌리다_94
숫자가중요할때_95
오월은마흔번이넘게나를깨웠네_97
풀베기_101
오월이일의노래_103
꽃의유가족_104
오월의끝날_105
안개_106
별자리오류_107
버찌의길_109
박각시오지않는저녁_111
해변의폐허_113
시빚기_116
시집,지옥에나가라_118
나비우표_122
꽃의말_124
새벽바다_125
폭염_126
나쁜날씨여,바다에침을뱉어라_127
꺼내는일_130
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_131

해설|정홍수
‘바다’와‘아이’가동행하는‘형이상학적서정’의깊이_134

시인의말_154

출판사 서평

오래전한평론가는민중적전망이압도한1980년대한국시를돌아보며세계의본질을투시하고우주와의합일을꿈꾸어온대문자‘시’의좌표를망각저편에서일깨우려한바있다(남진우,「신성한숲1」,『신성한숲』,1993,민음사).그때잠시화려한불꽃으로타올랐다유성처럼사라져간‘신성한’계보의제일첫머리에언급되는작품이장석의1980년신춘문예등단작「풍경의꿈」이다.그글에서초월과합일의시적비전을에로스적열망의불길로장엄하게채색하고있는장석의시는‘신성한숲’을향한시의가능성으로한껏충만한한편,얼마간(억압적시대와의불화로부터말미암았을)나르시시즘의위험또한감지된다.그러나“이제삶은신성한정지이며,/그의/그림자인풍경만이변모한다”(11연)에서보듯장석시는유다른형이상학적깊이를가진채부풀어오를것이었으되,단한편의시만남기고홀연히사라져버림으로써스스로망각의운명을택한다.
그로부터정확히40년만인2020년봄장석시인은『사랑은이제막태어난것이니』『우리별의봄』두권의시집을한꺼번에상재하면서돌아온다.생각보다훨씬긴은일과망각으로부터귀환한두권의시집에부친글에서남진우는말한다.“세계를향해낮은음성으로속삭이는그의사랑의전언에는여전히순결한자아에대한갈망과현상적질서너머의본질을투사하고자하는은밀한열망이가득차있다.그동안그는이언어를버려두고아니쌓아두고어디서무슨일을하며한시절한세상을탕진해왔던것일까.”‘탕진’이라는애정어린역설의언어에응답하기라도하려는듯장석시인은세번째시집을들고우리를다시찾아왔다.앞선두권의시집출간후꼬박두해에걸쳐쓴시들이다.그시들을읽으며,이른바‘탕진’의화살은정작시인내부에서더철저하고벼려지고아프게겨누어지고있었다는것을확인한다.

삶에늘가래가끓어
젊음에서낡아가던내가난의전성기
비켜갔던허다한장소
돌아가며외면한숱한일

나는가느다란내시에매달린어릿광대였다네
-「오월은마흔번이넘게나를깨웠네」부분

시의제목에눈길이머물게되거니와,“빗소리처럼네노래처럼나를흔들었”던‘오월’은‘마흔번’의숫자를통해“거룩함이비천함을눕히고/죽음이죽임을이겨이루어낸사랑의성소”로서‘1980년오월’을명확히가리키고있다.“나는한낮의하늘에부조되는장엄한무늬를/보았다”로시작되는「풍경의꿈」을비롯하여그의많은시가알려주듯장석시의구성원리에는세계를성(聖)과속(俗)의긴장속에서파악하고겪어내려는지향이있다.이는애초에엘리아데식세계이해에얼마간빚진것일수도있겠으나,가령‘우주’‘하늘’‘별’‘대지’‘바다’와같은세상의경계를자연적실재와는다른의미공간으로들어올리는감각은초기시부터근작까지거의일관되고있다는점에서좀더고유하고개인적인차원에서장석시의토대를이루어온듯하다.그러나동시에거룩함의나타남,성현(聖顯,hierophany)의순간적광휘는무엇보다속(俗)의자리에서출발하는시의언어적노동이아니면안된다는사실,비속하면비속한대로현세적이고현실적인인간의시간안에서모색되고이루어져야한다는자각또한장석시의출발선에분명히존재했던것같다.그렇다면앞서인용한글에서나르시시즘의근거로지목되기도했던“나는부끄러워눈물흘렸다.내꿈은/나에게입맞추어주었다”(「풍경의꿈」6연)는시적진술은그와같은성속의변증법이시인이시에투신하려던저1980년대초입에이미전혀쉽지않은무게로다가와있었다는사실의역설적표명,막막하고두려운예감의휩싸임으로읽을수도있다.「풍경의꿈」의후반부는“삶을준비하는자가새를날려보냈다.어둠속으로”로시작되고있는데,첫번째새는“무너진너의슬픔위로떨어”지고있으며두번째새는“지상의어두운골목에서”“차갑게불타고있”다.“노아의세번째비둘기”만이“황금빛올리브잎사귀를물고왔다……”고진술되는데여기서‘노아’가‘삶을준비하는자’와동일한인물인지도모호하거니와,저말줄임표의침묵은어떻게해석되어야하는가.새의귀환은‘삶’과는전혀다른차원의멀고먼전설의이야기처럼들려온다.“이제삶은신성한정지”이고“그림자인풍경만이변모한다”는시의대답은그어조의당당함으로오히려닿을길없는막막한거리를환기한다.해서는시의마지막에‘새’는다시한번“슬픔의첨탑위로떨어”진다.“새여,/슬픔의첨탑위로떨어지는푸른입술이여……”‘삶을준비하는자’가세상에날려보낸첫번째‘새’이자마침내‘슬픔의첨탑’위로떨어질수밖에없었던‘푸른입술’의운명은마치장석시가스스로에게부여한‘자기처벌’의신성한임무처럼보일지경이다.그렇다면장석시의오랜침묵은스스로가만든자각적운명이며,여기에는적어도‘마흔번’이넘는깨움이필요했다고도할수있다.그리고그것은‘사랑의성소’로서‘오월’의재발견과함께일어나고있다.
이번시집의표제작이「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인데,‘바다’는장석시의원초적장소라할만하다.등단시에서‘문법바다’라는관념의외피를두르고처음선을보인그곳은시인의유년기기억이잠복해있는부산영도남항과순천만을하나의선으로이은뒤시간의진행이만드는또하나의선을따라통영바다라는꼭지점을가지는삼각형의구조로거듭장석시에돌아온다.그렇게시간적으로원근법의삼각형을이루는바다는공간적으로는일제히남쪽의거의동일위도에정렬해있다.여기에바다에인접한언어군으로서섬,정박,등대,배,어망,닻,청음초등등일련의환유적계열어들이따르기도한다.그리고원초적장소인만큼,바다에종종‘아이’가등장하는것도자연스럽다.심지어시인은도심의횡단보도세발자전거에앉은아이와눈길을나누면서도바다에있다(“내인생의이봄을/횡단보도에정박한다”,「신호등」).기실‘아이’는‘바다’못지않게장석시의테마를형성하는중요한주어이며,때로는화자의시선이때로는세계나사물의응시가생성되고교차하는자리다.장석시는아이를통해처음과만나고처음을일깨우려한다.이때아이는‘무구함’의표상이라기보다는‘무명(無名/無明)’으로서장석시를개시(開始/開示)하는‘타자’의자리에가까운듯하다.
‘영도남항’은“산파가나를받아주었던집”이있는곳인데,뻘에묻힌지여러날이지나거적밖으로나온맨발로처음목도된아이의시신은유년기시인에게거듭가위눌린무서운꿈이된듯하다(「영도남항」,『우리별의봄』).말하자면‘바다’는시인에게한번도추상이나관념이아니었다.그러나‘해변의아이’는돌아온다.이번에는“육지를향해엎드려있”는모습으로(「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다행히“그아이는죽으면서깨어났다/물속에서눈을떴다”바다쪽에서온아이는받아줄땅을찾아떠돌던난민의아이일수도있고,다른안타까운사정이있을수도있다.이시의이야기안에서아이가‘집’으로돌아가기를기원하는것은모두의마음일테다.“이아이는돌아가고싶을까/물론이지물론이지/모든것들이대답한다”그런데아이는바다쪽에서왔으므로바다로돌아가야한다.시인은간절히바란다.“낯선관리들이와그아이를데려가기전/파도와썰물은힘세어져/그의얼굴을바다를향해돌려주기를”.

그래야만그아이는
이일이시작된곳으로돌아가
그집의마당이나현관에서
가장좋아하는여자의손을다시잡을수있을터이니

뒷걸음치지않고앞으로걸음마해서
-「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부분

엄마가있는집으로가는길.“뒷걸음질하는아이는없”으므로아이는앞으로걸음마를해야한다.그러나바다는뒤쪽에있다.누군가가얼굴을바다를향해돌려준다고해도사정은달라지지않는다.뒤를보면서앞으로가기.이상한난경안에서시는‘영도남항’과도이어지는세상의깊은슬픔이되면서동시에얼마간장석시의의지이자자기투영이되기도하는것같다.
장석시와함께‘바다’와‘아이’는계속돌아올것이다.그때“한송이만더열리면/떠오르리라”의들뜬예감과“그리하지않으려고하루아침에흩어버리는/흰꿈”의결단은‘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의곤경을마주보고기억하는한에서거듭새롭게열릴수있으리라.어쩌면「해변에엎드려있는아이에게」는장석시가자신의시를‘마흔번이넘는’망각으로부터일깨운‘아이’에게보내는전언이자다짐인지도모른다.이번시집에는그가『우리별의봄』을헌정한(“벗에게/우리는여전히한알의씨앗에/함께들어있으므로”)‘친구’를떠올리게하는시편들이들어있거니와(「아틀리에봄」,「아치울견문」,「이세상끝의등대」),부재하는‘벗’(‘벗’의또다른현현이‘아이’이기도할것이다)의“최고희망”과함께일구어갈장석시의“햇빛가득한안쪽”(「아틀리에봄」)을우리역시오래들여다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