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윤희상 시집 | 양장본 Hardcover)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윤희상 시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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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윤희상 시집. 시인은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의식으로서의 언어, 즉 사회적 공론장에서 소통되는 언어의 중요성 못지않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의 절대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후자의 말은 생의 환희와 행복의 기쁨에서 발화되기 어렵다. 대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은, 실존적 고독에서 촉발되어, 삶의 비애로 빚어지며,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담금질 된다.
저자

윤희상

1961년전남나주시영산포에서태어나서울예술대학교문예창작과를졸업했다.1989년『세계의문학』에시「무거운새의발자국」외2편을발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고인돌과함께놀았다』『소를웃긴꽃』『이미,서로알고있었던것처럼』이있다.

목차

시인의말_5

1부
몸에게말하다_12
세사람과오토바이_14
창밖의나무_16
옹이_18
어떻게살면좋으냐_19
하늘이보았다_20
이땅의샤머니즘_22
홍운탁월_24
산에들에꽃이피고_25
소가죽구두_26
땅이책이다_27
겨울저수지_28
달_29
마포는출발이다_30
힘내라,번역가_32

2부
가끔,그럴때가있다_34
범해스님법문_35
열번의겨울과열한번의봄_36
환기미술관_37
소설가최인훈선생님묘소를내려오면서_38
몸이불편한당신은_39
다람쥐길_40
옹기수화문_42
흘러간노래_44
너무나인간적인_46
하늘은푸르다_47
새끼는죄가없다_48
자본주의사랑_49
신문중독자_50
마지막한사람_54

3부
시_56
말과정치_58
색으로기억하다_59
사진안에내가있다_60
다시광주에서_62
refugee_63
두가지방법의평화_64
동물의왕국_65
용이사는연못을용연이라고한다_66
일기,2016년4월13일_67
식민지경영법_68
두물머리_69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_70
부여를사랑했다_72
종교학자정진홍선생님말씀_74

4부
나무_76
시인_77
명품옷을입는이유는_78
이장우_79
홍어문화권_80
집안의내력_81
치약튜브의구멍이작아지지않은이유에대하여_82
시계_84
오르지못할나무는쳐다보지도마라_85
구진포장어구이_86
어린날의풍경_88
호원이네집_90
도보승_92
보타사금동보살좌상_94
보타사마애보살좌상_96
보타사여름자목련_98
카페평화만들기_100
일기,2020년4월15일_101
황현산선생님생각_102
시인에게_104
익숙한것들이여,안녕_105
마지막말_106

해설류신|벌초된언어와체념의시학_107

출판사 서평

“오직한사람만알고있는말”

자니는날카로운칼로팔목에선을그었다
선영은허벅지에문신했다
미키는젖꼭지에피어싱했다

피흘렸다

아파도,아프지않았다

누가읽거나말거나,
이세상에서오직한사람만알고있는말이있다

말의뿌리를알수없다

어쩌다가,혹시누가읽었다고했을때,
그말은이미좀처럼열리지않는방으로들어간뒤였다
-「몸에게말하다」부분

윤희상시인은타자를위해존재하는실질적이고현실적인의식으로서의언어,즉사회적공론장에서소통되는언어의중요성못지않게“이세상에서오직한사람만알고있는말”의절대적가치를누구보다도잘알고있다.후자의말은생의환희와행복의기쁨에서발화되기어렵다.대개‘오직한사람만알고있는말’은,실존적고독에서촉발되어,삶의비애로빚어지며,참을수없는고통으로담금질된다.자신의존재의이유를따져물으며최후결단을내릴때내지른내면의절규같은것이‘오직한사람만알고있는말’이다.그러니,이말은몸을통해밖으로발화되지않는다.오히려신체에아로새겨진다.이때,몸은말의매체가아니다.몸은언어의메가폰이아니다.몸은언어의기관이아니다.몸은말의출구가아니다.몸은말의마지막귀착점이다.그렇다.몸자체가말이다.몸은육화된언어인것이다.그래서이말은피를흘린다.모름지기시인이라면이‘위험한’말을읽어내야한다.고독한실존이세계를향해타전하는암호와같은구원의몸짓에주목해야한다.‘몸을통해말하는자’가아니라‘몸에게말하는자’의비명을감청해야한다.이것이시인에게부여된특명이다.하지만시인의고백처럼,“자니”,“선영”,“미키”가몸에게말한뜻을간파하기는쉽지않다(“말의뿌리를알수없다”).가까이다가가면,이말은밀실로들어가잠복하기때문이다(“그말은이미좀처럼열리지않는방으로들어간뒤였다”).고통으로다듬어진말은좀처럼일상의언어로번역되지않는다.이들의언어는창문없는단자(Monad)이기때문이다.그러나절망하지말자.이말을해독할일말의희망은있다.그단초를「겨울저수지」에서찾을수있다.

외딴산골겨울저수지얼음위에
돌을던진사람은외로운사람이다
누구에게말을건네고싶은사람이다
돌은말이되기위해
찬바람을맞으며
얼음이녹는봄까지견뎌야한다
돌이말이되어가닿는곳은
저수지의마음자리일것이다
아무도그깊이를알수없다
-「겨울저수지」전문

한겨울결빙된저수지위에내던져진차가운돌은창문없는독방에밀폐된언어로읽힌다.겨울한파가물러가고따듯한봄이다가오면꽁꽁얼어붙었던호수의표면이차츰녹기시작할터이다.이것은부정할수없는자연의순리이다.여기서시인은결빙되었던수면이녹아서종국에는돌이저수지밑바닥으로하강하는순간에주목한다.이순간이결정적인이유는,“저수지의마음자리”에돌이가닿는순간,그동안해독을불허했던고통의언어가처음으로창문을열기때문이다.여기서필요한것은,기다림과인내의시간이다.세상에내동댕이쳐진고통의언어에게도기다림의시간이필요하고,이고통의언어를위무하는시인에게도인내의시간이필요하다.시심이웅숭깊어야경화(硬化)된고통의언어를품어안을수있다.이렇게보면,깊이를가늠할수없는“저수지의마음자리”는윤희상시인이희원하는시혼의좌표,즉그의시에내재한‘장소의정령(geniusloci)’이다.이번시집에실린작품중수작으로꼽히는「겨울저수지」의전언을풀어설명하면다음과같다.아픔이남긴흉터에서새살이돋듯,생의고통속에서시의언어가움튼다.돌이말이되기위해서는기다림의시간이필요하다.그렇다.언어를자신의지배에두겠다는오만함을버려야한다.언어를도구화하는우를범해서는안된다.언어가자신의현존을스스로증명하도록기다려야한다.고통은자신의현존과더불어오늘도언어에게로가고있다.돌이언어가될때까지,시인은호수밑바닥에서기다리고또기다려야한다.그리고이응답없는기다림을위해필요한덕목이있다.바로체념의기술이다.이때의체념은허무주의적패배의식에빠진자의무책임한포기가아니라,자신의한계를정확히인식한자의최종귀결점이다.이때의체념은행위의중단이아니라,반성이자자각이며결심이된다.포기는힘에굴복하는것이지만체념은스스로힘을거두어자신과독대함으로써새로운가능성을조심스럽게모색하는일이다.“행여나,어떤곳이없는것은아닐까”라는체념속에‘아마도,새로운어떤곳이있지않을까’라는한줌의희망과기대가움틀지도모른다.이런맥락에서보자면,시는채집하고포획한언어의재물로쌓은화려한예술의왕국이아니다.시는무한무변한사막의모래밭에희미하게남은오토바이바퀴자국같은것일지모른다.이것이슬프게체념을배운자의아르스포에티카(arspoetica),즉윤희상의시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