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장 (이경희 장편소설)

모란시장 (이경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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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곳에서 살 수 없는 물건은 없었다. 숨 쉬고 있는 것부터 죽은 나무까지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었다. 사람들은 필요하거나 필요치 않은 물건까지 양손이 넘치도록 사들고도 시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장사치들의 수완과 입담에 혹하거나 새로운 물건에 넋이 빠진 사람들, 기어이 미로에 갇히고도 벗어나길 원치 않은 사람들로 인해 오일장은 언제나 사월의 논바닥처럼 시끄러웠다.

가끔은 시끄럽고 냄새나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이 시장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지만 나를 끔찍이 아끼는 명진, 그러니까 내 아빠 때문에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빠와 내가 비록 전혀 닮지 않았고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관계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애틋한 운명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아빠와 내게 시장은 가혹하고 무서운 곳이면서도 풍요롭고 따뜻한 두 얼굴을 한 곳이었다.

늙은 점박이 개 ‘삽교’에게는 아빠 몰래 집을 빠져나와 홀로 시장을 산책하는 버릇이 있다. 삽교에게는 원래 고양이 친구인 ‘송이’가 있었지만, 송이는 “누군가에게 고기로 먹히는 것보다 배고픈 떠돌이 생활이 낫다”며 집개인 삽교의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삽교는 아빠 ‘명진’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삽교 역시 본래는 이 모란시장에 고기가 될 운명으로 잡혀 온 강아지였다. 그런 삽교를 구해 명진에게 맡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개 도축업자인 ‘경숙’이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협박과 강요로 개를 도축하는 경숙은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또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어버린 개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경숙에게는 이 모란시장과 ‘대도축산’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경숙은 마치 목줄에 묶인 개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지만, 이곳의 주인인 ‘박 사장’에게만큼은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저자

이경희

2008년『실천문학』신인상에단편소설「도망」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으로『도베르는개다』『부전나비관찰기』,장편소설로『기억의숲』『불의여신백파선』『잠들지않는마을』『늙은소녀들의기도』,산문집으로『에미는괜찮다』,테마소설집으로『선택』『1995』가있다.

목차

모란시장_7
작가의말_232

출판사 서평

■추천의글

모란시장에가본적이없어도모란시장과연관지어개고기가떠오르는건어쩔수없다.이소설의주요장소도모란시장내대도축산이라는개를도살해파는곳이다.화자인?삽교는개도둑영달에게잡혀대도축산에서도살될뻔했으나구출된개다.개를도축하는경숙,경숙을바라보는삽교의아빠,경숙에게애증을갖는박사장,장미꽃만파는능평꽃집여자,고씨할머니,고양이송이등은시장의다양한물건처럼개성있다.그들의삶은거칠고치열하고고독하다.
소설은삽교와함께시장곳곳을누비며그작고순수한생명체의눈을통해처절한삶의모습들을바라본다.개를죽일수밖에없으나그래도죽음을짓밟지않으려는경숙은속죄처럼탄천에서장미꽃으로자신의몸을닦고,능평꽃집여자는그런경숙을위해일부러장미꽃송이들을꽃집마당에떨어트려놓는다.대구머리를구워파는고씨할머니는기이하게생긴코와점박이개삽교의말을알아듣고교감을나눈다.삽교와고양이송이도마찬가지다.쥐떼를이끌고새로운세상을노래하며행진하는코와고씨할머니의환상적인장면과,차별과힘의위계가존재하는이사회에서참혹하고생생하게재현되는박사장의폭력은묘한대비를이루며독자의가슴에쓰린파문을일으킨다.
소설은쏟아져나오는쥐떼의역동적인장면과이미죽어있거나죽기직전의것들만진열되는시장을대비시켜내부적으로는‘시장’을통해인간중심의세계가갖는필연적폭력을상기시키고,인간이외의존재들,혹은바깥에머무는존재들을평화와연대로묶어냄으로써진정한‘모란시장’의가치를역설한다.이역설이잔혹한동화같으면서도그편에기대고싶은건소설가이경희가지닌생명공동체를지향하는뜨거운열망을알기때문이다._양진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