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 겨울 (김갑용 소설집)

토성의 겨울 (김갑용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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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갑용의 첫 소설집 『토성의 겨울』은 ‘소설가’ 혹은 ‘소설 쓰기’에 대한 질문을 통해 진실의 존재 방식과 관련된 우리 시대의 증상을 탐사한다. 「최초의 전거」의 ‘나’는 도서관의 전거 사업을 담당하는 외주 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동료 작업자 중 한 명,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생이 ‘최초의 전거’를 찾아보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건넨다. ‘최초의 전거’를 가진 작가의 책은 수많은 장서들의 지식을 압축한 저술로, 그것만 찾아내면 문학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와 대학원생은 최초의 전거를 찾기 위해 미궁처럼 펼쳐진 도서관을 배회하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대학원생은 도리어 그간 작업해놓은 전거들을 모두 삭제해버리기까지 한다.

어떤 고정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맹신에는 종종 폭력이 수반된다. 말하자면 중심/보편/상식을 가정하고 그 외의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많은 문제가 비롯되곤 한다. 인종, 젠더, 환경 등의 문제도 중심과 주변을 구획하고 위계질서를 만들어 중심 밖에 놓인 존재를 간과함으로써 생겨났다. 문학에 국한해서도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문학에 무엇이 담겨야 한다, 문학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진리는 오히려 문학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령 소설은 어떻게 써야만 한다는 준거가 있고 그에 작가가 속박된다면 그의 소설은 오히려 소설의 본질과 멀어지는 무엇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학원생이 전거를 모두 삭제했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행위는 문학에 관한 체계화된 지식이나 정의를 지워버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저자

김갑용

1990년대구에서태어나아산에서자랐다.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2016년세계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슬픈온대」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슬픈온대
음영의사랑
포노원(ForNoOne)

2부
토성의겨울
아무도모르게
최초의전거
김정훈의죽음

*
진창에처박히다

해설|한사람의모든것을쓴다는것,그리고읽는다는것|전소영

출판사 서평

「토성의겨울」의주인공인B32는꿈을현실로누벼내는,즉허구안에서살아가는실험에참여중인피험자다.과거B32는현실에심어진꿈속에서연갈색단발머리의끝자락만푸른색으로물들인,파랑새의이미지를환기하는여성을만났다.다만첫실험의꿈은현실과완벽하게동화되지못하고어렴풋한흔적만남긴채기억의뒤안길로사라졌다.실험이거듭되었을때B32는다시금꿈속에서같은여성을만난다.그러나실험은완전하지않았고,B32는꿈과현실이뒤죽박죽되어버린틈바구니어딘가에서살아가기시작한다.그런그의이야기에실존하는텍스트들이오버랩되면서B32의사연은소설밖의세계와다시금뒤섞인다.토성에서사명을다한무인탐사선카시니호(1997~2017),다큐멘터리영화「코야니스카시」(1982),영화「라탈랑트」(1934)와같이우리의현실에존재하는것들이작중에도등장한다.이렇듯하나의소설텍스트를여러텍스트의환기나인용을통해기술하는방식을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고부르기도하는데『토성의겨울』속소설들은대체로이같은방식을취하고있다.「토성의겨울」외에「최초의전거」케이스도있었고,「포노원」에는비틀스의다큐멘터리가오버랩되었으며「김정훈의죽음」을읽을때도오페라「마술피리」나소설『죽은아버지』,『모래시계요양원』을떠올리게된다.이로써작중인물의삶과우리의삶사이의선이점선도되었다가실선도되었다가하는것이다.
「슬픈온대」는학습지물류센터에서만난‘나’와남자의서사를담고있다.이‘나’라는일인칭주어에는“타인이되기위해노력하는”(「김정훈의죽음」,202쪽)작가의마음이자리하고있었을것이다.그런데어쩌면그것은잘되지않았는지도모른다.2인칭의‘너’의이야기를하는‘나’가그려진「포노원」을보면‘너’가아무리‘나’를불러대고‘나’를‘너’에게겹쳐놓으려고해도그것이불가능하며둘이닿지않는사실만부각되고있다.
진리라여겼던모든체계가무너져버리는느낌,또는스스로무너뜨리는경험.그끝에남은것은‘소설은사람그자체’라는믿음이었을지모른다.그러면,그런소설은어떤것인가.“누구에게도손을내밀지않았고무엇도내걸지않”으며“오직한사람만이읽”히는,“한사람에대한모든것”이되는소설.그러기위해“소설가는완벽하게지워”(「김정훈의죽음」,206쪽)지는소설이아니었을까.
여러소설에서활용된상호텍스트성이라는방식은작가의그림자를최대한지우기위한노력이기도하다.소설이작가의창작물이자소유물이라는인식에서벗어나게하는장치가그것이다.그런소설에서작가는문화와담론의편집자일뿐이니대신작중인물,또그와소통하는독자가부각될수있겠다.요컨대이소설집은그자체로,구성이나내용면에서작가가자신의문학론을실천하기위해자기를부단히지워낸결과물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