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은 왜 (김연경 연작소설)

명왕성은 왜 (김연경 연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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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소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관해 자주 말하곤 한다.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달리 소설은 우리를 닮은 누군가가 등장해서, 있을 법한 시공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그럴듯한 결말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때의 ‘리얼함’이 훌륭한 소설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소설이 얼마나 ‘문학적’인지에 관해서도 자주 말한다. 당연하지만 소설은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 작품이 가지는 미학적, 예술적 가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훌륭한 소설은 예외 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물론 플롯과 구성도 치밀하다. 김연경의 『명왕성은 왜』는 바로 그 사이에 서 있는 작품이다. 현실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이 속에 담겨 있다.
저자

김연경

1975년경남거창에서태어나부산에서자랐다.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를졸업했다.1995년‘대학문학상’소설부문에당선되었고,1996년『문학과사회』로등단했다.소설집『고양이의,고양이에의한,고양이를위한소설』『내아내의모든것』『파우스트박사의오류』,장편소설『고양이의이중생활』『다시,스침들』『우주보다낯설고먼』등을펴냈다.도스토옙스키의『죄와벌』『악령』『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파스테르나크의『닥터지바고』등을번역했다.현재서울대학교에서러시아문학을강의하고있다.

목차

명왕성은왜
모르핀의법칙
안톤의平凡해장국
앤디와나,그리고김광석
19세기러시아문학산책

해설_노태훈|도스토옙스키와선짓국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여기실린다섯편의소설은뻔한이야기이면서뻔하지않다.비루한현실을살아가는인간군상들이저마다의사연을갖고등장하고,속물적이고통속적인이야기들이넘쳐나지만그삶의무게를견디면서도끝내이들은나름의품위를잃지않는다.다소빠르게절망하고손쉽게우울해져서몰락과실패의서사를그려내는거개의문학과달리이소설은담담하게자신의삶을이어나가는사람들을따라가고있다.
실제지진의흔들림을경험한이후에어지럼증을느끼기시작하는‘김광석’씨를우선따라가보자(「명왕성은왜」).간호조무사로이십년가까이일해오다가우연히만나게된환자‘윤미영’과사랑에빠지게되는,그러나그유일한여자와파혼을겪고마을버스기사를잠깐하다가결국운전면허학원기능강사가된,그리하여쉰을훌쩍넘긴나이에홀로삶을영위하고있는‘김광석’씨는이제고독사를걱정하기시작한다.어찌되었든아이를낳고엄마의‘잔혹한’삶을택한누나와달리,또세상을향해막펄떡이기시작한조카‘연암’과달리‘김광석’씨의삶은미래가없어보인다.지나가버린사랑을되뇌고매끼니를겨우연명해가면서집안의늙은천덕꾸러기신세를면하지못하는‘김광석’씨는어딘지모르게익숙하다.하지만작가는그를흔한중년남성의감상적레퍼토리로귀결시키지않는다.유품정리사들이싹정리한방을보면서삶의허무함과죽음의무서움을동시에느끼지만그는“사람이혼자살다혼자죽는것이그렇게불쌍한가”(46쪽)하고곱씹기도하는것이다.다시말해설령이름이붙은태양계의빛나는존재가되지는못할지라도‘김광석’씨는분명하게탄생하고또소멸하는‘우주적존재’인것이다.밀려나고밀려나서이제는이름조차빼앗겼지만명왕성은“다섯개의위성과함께유유자적,태양의저먼바깥에서공전을거듭”(47쪽)하는데,그역시그렇게자신의삶을살아가다가누군가를또만나게된다.
첫사랑의고향인거창으로내려간판사‘김지훈’과조금은특이한새사랑을시작한의사‘김여운’은부부이다(「모르핀의법칙」).이들의딸‘김흔재’의눈에비친부모들의모습은무척흥미로운관찰의대상이다.의학스릴러를써보겠다는소설가의꿈을갖고‘김흔재’는아빠와엄마의일탈을지켜보는데,시골중년여인들을향한욕정과정사없는불륜모두‘김흔재’에게는“사생활”(132쪽)일뿐이다.흔한말이기는하지만사생활이라고간단히치부해버리는‘김흔재’의태도에는가족이라는혈연,끈끈한유대감,온갖부채감과죄의식,기대와배반같은구시대적사고방식이드러나지않는다.그런데이산뜻함은새로운세대가획득한전위적인포즈가아니라이미중년의고민을끝낸시(세)대의산물이라는점에서흥미롭다.비장하게판사라는직업의고충에대해토로하며유서를써놓은오십대의아빠‘김지훈’에게이십대의딸‘김흔재’는당신만힘든게아니라는사실을왜모르냐고,세상이치가다그런것이라고‘조언’한다.이뒤바뀐구도속에서자못심각해보였던기성세대의일탈은마치청춘의방황인것처럼취급되고,촌극에가깝기는해도삶은한편의‘연극’이된다.
이제2010년대의문청,‘안톤’이자‘피남흔’의삶으로이동해보자(「안톤의平凡해장국」).‘안톤’은러시아문학박사가『파우스트』강의를해야하는암울한상황임에도불구하고자신은“명색이크리에이터,엄연히창조적인작업”(167쪽)을하고있음을강조한다.인문대의수두룩한“저런박사들”(167쪽)이되지않기위해대륙별로안배해가며“제일핫한작가”(168쪽)를다루고,‘정치적올바름’을따져가며영상을찍는‘안톤’은‘피남흔’을지우기위해애쓴다.선짓국과소주를마시며‘김흔재’에게원초적인욕망을느끼는‘피남흔’이아니라문학과예술을논하며더아름답고고귀한것을추구하는‘안톤’이결국다다르는곳은“음란이나외설이라는이름으로세간을놀라게한소설”로서의“성애소설”(176쪽)이다.여기에서작가는교양의허위와가식을걷어내고모두솔직해지자고말하고있지않다.위대한고전이야말로진정한문학이고유튜브콘텐츠는그렇지않다는식의이분법적가름이아니라오히려우리가알고있던그고상함의정체가바로속물적욕망이었음을,그리고그것이바로문학이라는행위를통해이루어져왔음을작가는보여주려고한다.
런던에서인연을맺게된출판편집자출신‘안정민’과제3세계에관심을갖고있는영국인‘앤디’를들여다보자(「앤디와나,그리고김광석」).아프리카에서태어났고아버지는평양에서근무하는‘앤디’의글로벌한삶의궤적과,러시아문학을편집하고세계각국으로문학기행을떠나는‘안정민’의삶은얼마나다를까.작가는이들의여정이다르지않다고다시한번강조하는듯하다.문학하는삶과삶을사는문학은생의매국면에서연결되고끝내는구분되지않는다.여기에‘김광석’이끼어드는순간마흔살의‘안정민’혹은‘J-Min’은무엇도결정하지못한채담배한대에자신을내맡기게된다.
소설의마지막은러시아문학연구자‘고은영’이박사학위논문심사를받던모스크바의풍경으로향한다(「19세기러시아문학산책」).중국인유학생들과부대끼면서,괴팍한학과의논문심사위원들과부딪혀가면서신산한러시아를견딘‘고은영’에게남은것은자신이혼자라는사실과인생의한페이지가끝났다는감각이었다.그렇게맞이한서른번째페이지이후‘고은영’은결혼을했고아이를낳았다.십여년의세월이흘렀고장애진단을받은아이를돌보며도스토옙스키의『백치』를번역하고있는‘고은영’은『고은영』이라는책을어떻게써왔던것일까.삶은결말을모른채계속해서쓰이고있는소설과같다.도대체어떤삶을살고있을지종잡을수조차없는‘리첸첸’처럼,베트남으로돌아간‘민’이아내와딸과함께잘지내고있는지역시알수없는것처럼삶은공백으로가득차있다.그공백을소설로메울수는없지만소설은그공백이당연한것이라고,완벽한결말은없다고말하는장르라는점에서의미가있다.그러므로소설을쓰는행위는죽음이예비된생을살아가는것과동일하고,삶을받아들이고인간이라는존재를이해할수있게한다.
이소설집자체가거대한문학기행이라는점을언급하지않을수없다.소설에그저몸을맡기고끝까지따라가다보면작가가어떤인물도허투루두지않았음을어렵지않게느낄수있다.그것이연작소설의중요한조건이자매력임은자명하지만김연경이라는작가가가진완숙함에서기인한다는점도분명하다.능숙한소설주행강사가이끄는대로도로주행을마치면어느새나의이야기도주절주절늘어놓고싶어질지도모른다.특히이소설은전대미문의코로나시대를목전에두고있는풍경처럼보이는데,그래서조금애틋하고아련하게느껴지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