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고래의 뿔 (유연희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 (유연희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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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유연희의 세번째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은 그의 전작 『무저갱』(북인, 2011), 『날짜변경선』(산지니, 2015)과 더불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채워져 있다. 바다를 향한 작가의 관심에는 국내 최대의 항구도시인 부산에 연고를 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요함이 엿보인다.
바다를 무대로 한 만큼 『일각고래의 뿔』에 실린 소설들에서 뭍을 떠난 뱃사람들의 항해는 곧잘 인생행로에 비유되곤 한다. 광막한 바다 위에서 어둠과 시커먼 파도를 헤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 뱃머리를 돌리는 일이 어찌 인생과 다를 수 있을까.
더욱이 “태어난 땅에서 가족들과 살다 죽는 것은 옛말”이 된 시대에 방랑은 통과의례이고, 개척 정신은 필수 덕목인지도 모른다. 불법 포경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들의 이야기인 「일각고래의 뿔」을 포함하여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떠나 바다와 이국의 땅을 헤맨다.
저자

유연희

부산에서나고자랐다.한국해양대실습선에편승해항해체험을했다.한달간이국의바다와대양을항해한후몇편의해양소설을썼다.발해탐사대실화를경장편으로발표했으며경남양산에서텃밭을가꾸며소설쓰기의새로운방향을고심하고있다.화가들의그림과고난에서영향받기를즐긴다.소설집으로『무저갱』『날짜변경선』『항해자들』이있다.2017년부산일보해양문학상,2019년제23회한국해양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일각고래의뿔
손가락꺾기
방랑하는뱃사람
블루시드
마지막테라스만찬
송어회는이인분

해설|뱃사람의방황과여성의항로|임정균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유연희의세번째소설집『일각고래의뿔』은그의전작『무저갱』(북인,2011),『날짜변경선』(산지니,2015)과더불어바다를배경으로한소설로채워져있다.바다를향한작가의관심에는국내최대의항구도시인부산에연고를둔것만으로는설명할수없는집요함이엿보인다.
바다를무대로한만큼『일각고래의뿔』에실린소설들에서뭍을떠난뱃사람들의항해는곧잘인생행로에비유되곤한다.광막한바다위에서어둠과시커먼파도를헤치고저멀리희미하게보이는등대의불빛을따라뱃머리를돌리는일이어찌인생과다를수있을까.더욱이“태어난땅에서가족들과살다죽는것은옛말”이된시대에방랑은통과의례이고,개척정신은필수덕목인지도모른다.불법포경단속을피해일본으로건너간인물들의이야기인「일각고래의뿔」을포함하여소설집에등장하는인물들은제각기어떤이유로든고향을떠나바다와이국의땅을헤맨다.그들은여행을통해잠깐의모험과도전을꿈꾸기도하고(「마지막테라스만찬」),휴양지에서맞닥뜨린대자연의공포앞에주눅이들기도하며(「송어회는이인분」),이국땅에서풍토병과향수에시달리기도한다(「블루시드」).방랑과정주사이를끊임없이오가는이인물들은안정된생활을바라는욕망과더나은삶을위한도전사이에서방황하는인간삶의아이러니를잘보여준다.
하지만유연희의소설에서더주목해야할것은오랫동안바다가전형적인남성들의공간이었다는점일것이다.루카치가근대소설을두고“성숙한남성의형식”이라고서슴없이말할수있었던것은모험을통해자기내면의진정성을찾는근대적주체란곧남성이라는인식이깔려있었기때문이다.근대적주체의진정성이바다와같은혹독한세계와의대결을통해서만얻을수있는것이라면,선원들의강인한육체에새겨진남성성은근대적주체의필수조건처럼보이기도한다.배의이름을여성의이름으로지어온뱃사람들의전통에서“여자를그리워하는뱃사람들의허기와갈증을이용해항해의고단함을무마시키려는의도”(「무저갱」,『무저갱』)를발견하게되는것도그런의미일것이다.이렇듯오랫동안모험은남성들의전유물이었으며,여성은고향을떠나방황하는근대적주체들이귀향할장소를상징하는낭만적대상으로재현되곤했다.그러므로우리는바다라는모험의공간에서펼쳐지는남성적플롯이유연희의소설에서어떻게다루어지고있는지를,여성인물들이그플롯속에서어떤전망을얻게되는지를보다적극적으로살펴볼필요가있다.
「송어회는이인분」의작중화자‘나’는시력뿐만아니라청력까지나쁜초로의여성이다.‘나’는“내가접하지못한,상위조류의삶과사람”을원한다.이소설에서흥미로운대목은‘나’가가진독특한인생관과더불어딸에게갖는양가적감정일것이다.‘나’는자신과달리잘듣고잘보는딸이신통한한편,딸의젊음과건강함에시기심마저느끼는듯하다.이러한‘나’의‘조류론’에는삶의주체성보다는더나은삶을향한단순한열망만이엿보일뿐이다.지난해여름,발리로여행을떠나는딸을따라나설때만해도딸의조류에편승해보려는마음같은건들지않았다.그곳에서지진을겪으며“재난상황에서장애자급약자인엄마는혹”이라는것을경험한이후‘나’는부쩍상위조류의삶을동경한다.동경이란갖지못한것에대한체념의정서를동반하기마련이다.남성에게배움과성장의플롯인모험은여성에게는시련과체념만을깨닫게해주는것일까.그러나이소설의결말은뜻밖에도“풋풋하고청량한”분위기가감돈다.자신이견딜수없을것임을알고있지만,일단은계획부터해보는성격인이인물은딸이귓가에속삭인노래에서문득마음의창하나가열리는것을느낀다.그녀가여생을어떻게살아갈지는모를일이지만,적어도지금까지와는조금다른길을걷기로한것은분명하다.그여정은혹독한세계와자아사이의아이러니를교정하는남성적방식이라기보다는“송어회는이인분!”이라고말하며자신의몫을챙길줄아는자기돌봄의방식일것이다.
그러한길을막걷기로한여성의모습을「마지막테라스만찬」의마지막장면에서도엿볼수있다.“관광이나휴식이아닌여행을하고싶어.그러니까도전을하고싶다고.”이렇게말했던남편을따라함께여행을떠나온‘나’와그녀의친구민희는마지막만찬을즐긴뒤각자의길을떠나려는듯하다.도전을하고싶다던남편은누군가짜놓은안전한일정을지키기에급급하고,민희는낯선이국땅에서만난남자를찾아현지인도알지못하는경로를선택했다.시어머니에게배운사주풀이로역사가정해놓은제운명을이미보았을민희가찾는것은두리안을든범상치않은행색의남자나,아나운서와같은말씨를쓰는말쑥한남자는아닐것이다.‘나’는“네친구를어쩔래?”라는눈빛을보내오는남편과“넌어쩔래?”라고물어오는민희사이에서전에느껴본적없는이상한기분을느낀다.그러나그건불쾌한감정이아니라,눈앞에놓인미지의길에서느끼는호기심일것이다.
바다를무대로한유연희의소설에서모험은남성들의전유물일지몰라도호기심은누구의것도아니다.비록이소설집에실린여성들의서사가아주먼곳까지바라보지는못한다고하더라도,그건그것대로괜찮은일이다.남성적플롯에서여성들의길이열릴가능성을보여준것만으로도유연희의해양소설은보기드문성취를보여준셈이다.유연희의소설속여성들의항해는이제막시작되었고,그길은아직개척되지않은길이다.그녀들이어떤길을거쳐어디에도착하게될지아직알수없지만,유연희의다음소설이그녀들의소식을전해주리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