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
1951년대구출생.1974년이화여자대학교미대조소과를졸업하였다.1973년대학재학중이대학보사주최추계문예에단편소설「빨간넥타이」가당선되었으며,당시심사위원이어령의추천으로단편「근(根)」,「오픈게임」으로『문학사상』제1회신인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숲속의방』으로오늘의작가상과녹원문학상을수상했고,단편「나는너무멀리왔을까」로21세기문학상을수상했다.지은책으로...
툰드라기나긴길보루빌에서만난우리발없는새오백마일나는너무멀리왔을까가멸사(加滅寺)석양꽃해설|속세를초월하지않는가멸(加滅)의힘|강지희(문학평론가)작가의말
강석경소설에서세속에진저리치며저멀리바깥으로의떠남을꿈꾸는자들은이번소설집에서도여전하다.「발없는새」와「보루빌에서만난우리」,「오백마일」에서소유하고있다고믿었던것들은우연한사고나치밀한배신과함께박탈당하거나소멸된다.지적인소유욕과예술에대한갈망역시예외일수없다.「발없는새」의영서는원예학자의집을방문한날불교적사유를가미시켜완성한김계장의시앞에서자신은남루한현실을직시할것을다짐한다.“자신의이상국인정원을세워도자식에게부담주지않기위해근력운동을해야하고회충약도먹어야하는현실”의유물론적현실은그에게엄연한진리로다가온다.추상적인대상으로서의예술과학문을탐닉할때망각하게되는육체와죽음의문제를그는직시하고붙들려한다.「보루빌에서만난우리」에서불행한결혼의원인이었던‘유령남편’곁을떠나“구름이아니라나무처럼뿌리내려”인도의보루빌공동체에서자신을새롭게꾸려나가려했던시도는이념과현실이다르다는것을확인하고끝이난다.「석양꽃」은불교의교리와세속의시선이정면충돌하면서도비스듬히겹쳐질수도있음을보여주는작품이다.작품전체에서가장두드러지는핵심적인장면은한달예정으로왔던의선이날을다채우지않고내려가겠다고선언한후,담대한눈빛으로속인의편에서자조의말을길게꺼내는순간이다.그의입장은“되풀이되는업의윤회를끊으려면먼저자신을관(觀)해야지.자기를통하지않고는진정한구원이란없어요.(……)전어리석게피흘리더라도세속에서부대끼며살고죄일지라도사랑하고그대가로고통도삼킬겁니다”로요약된다.의선이말하는‘관’은불교의‘견성’과반대에가깝다.아무리두터운층위를대어도불교에서추구하는공은삶보다관념적일수밖에없다는것,인간의복잡한욕망과탐욕,분노,어리석음을흡수하지않고튕겨내는데서얻어지는투명함이라면그것은기만적일수밖에없다는것이다.그러니의선이말하는세속은다르게는충만과불안으로가득한삶의활기라고도할수있겠고,여기에서작가의의중이깊이짚이기도한다.「기나긴길」에서단테문학관에머무르던문인들은귀신에대한생생한목격담을전해들을뿐아니라,밤마다정체불명의소리에시달린다.잠시문학관을빠져나와자신의집으로돌아온화자는철문치는소리를들으며자신을쫓아여기까지온듯한미망의혼령이생시의환영을쫓아업을되풀이하고있음을통탄한다.이소리에쫓기는어두운새벽네시에그에게위안이되어주는것은희미하게들려오는맑은목탁소리다.그런데불안을다독여주는그소리를따라산능선어딘가의절을짐작한것과달리,그가문득발견한것은욕실안고장난샤워기에서바닥으로떨어지는물방울들이다.소설은떠도는혼령들을통해인간이불행과원한에집착하지않고어떻게해탈의영원으로들어갈수있는지질문하지만,고장난샤워기를발견한순간‘어리석음을짓는업의굴레’와‘생명본연의발견과해탈’의이분법은깨져나간다.우리는표면적인현상속에서일시적인착각과함께안도와구원에머물수있다.그러나그것은종교의힘에의한것이아니라,채워지지않는갈증을잠시환영으로채우는것에불과하다.이해탈불가능한인간의맨얼굴을더깊이들여다보는자리에「가멸사」가놓인다.상징적인이미지를촘촘히활용하고있는유기적인구성과종교에대한더욱깊고치열한성찰로,앞으로말하게될단편들과함께강석경소설세계안에서계속거론될만한명편이라할수있다.이작품은‘하정길’이라는시인이동창현우의사촌제수‘박정숙’과무장사지를향해가는등산길에서나누는대화로이루어진여로형소설이다.가지가나있던자리밑동한쪽에구멍이나있는나무처럼그들의생도상처와고통으로가득하다.소설은가시투성이로태어난존재들이구멍이나고뜯기고밟히는가운데세상에부질없이맞서기보다자신을내어주는것의힘에대해말하고자한다.자신의내면에유폐되어상처를곱씹는대신나무와의유비속에서고통을삶을위해마땅히치르는대가로받아들일때,이는간결하고도단단한지혜가된다.서사구조적으로도가지,가시,유리파편등의날카로운이미지들은무장사지로향하며여러번의개울을건너는동안나무에난구멍,이끼등의이미지를경유하며어느덧둥글고부드러워진다.「나는너무멀리왔을까」는「석양꽃」이후네편의장편과산문집을거친후무려14년만에발표한단편이다.이소설은마지막에이르러인물의절망을높은밀도로그려내며신화적도약을이루어내고있다는점에서후기대표작으로꼽을만한작품이다.그런데이소설은이로부터20년이지나발표한작가의최신작「툰드라」와겹쳐읽을때비로소더깊은이해가가능하다.「나는너무멀리왔을까」의‘관(觀)’은자신이쓴시나리오「하안으로가는길」이거듭엎어지면서무력감과절망에빠져있는상태다.그런그에게문득5년전교통사고로죽은조카의장례를치르기위해미국에갔다가일시적인관계를맺었던게이‘닥터박’의전화가걸려온다.자신을방기했던시절의불편함을대면한관은눈밭에누워있다가‘재연’이보낸말다래엽서를떠올리고,그리움에사로잡혀경주로간다.재연에게경주는잉여의부르주아지냄새를벗어나살아있는듯느끼게하고,실종자처럼조용히고립되어있을수있게해주는소중한공간이다.그런재연앞에서관은대학후배오와의우발적인두번의관계에서아이가생겨보름뒤결혼해야하는상황으로부터도피하길원하지만,재연은쓴웃음으로현실을직시하라는냉정한충고를건넨다.관은결정적인순간에고개를돌린오르페우스다.자신이무엇을잃은줄도모르고지금껏살아왔으니,그무지가유지되었더라면천오백년전의고분이켜켜이쌓여있는신성한지하세계(경주)에서지상(서울)으로무사히되돌아갈수도있었을것이다.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혼돈속에있던그가비로소중요한진실을깨닫고고개를돌린순간,모든것은불길속으로영원히사라져버리고만다.남자가멈추고수장된그자리에서「툰드라」는여자의시선으로다시시작된다.마흔아홉이된‘주영’이몽골로떠나는날,작년부터계속불규칙했던생리가“한숨을토하듯찌꺼기를쏟아내듯마지막출혈”을시작한다.‘울란바토르’라는지명이주영에게처음빛을마주한“아기엉덩이의몽고반점”으로다가왔다는점을생각하면,그녀의몽골행은처음부터탄생과죽음이만나는기묘한여행처럼보인다.그러나이모든것은회한없이단순한기쁨으로다가온다.몽골의초원행은‘승민’과함께하는여행이지만,애초에소유가전제되는제도속으로들어가고싶은적없던주영에게승민의존재는그리중요해보이지않는다.작별여행이기에승민은“너조금이라도나좋아했니?그렇다고말해주길바라.거짓말이라도괜찮아”라재차묻지만,주영은승민이보여준그간의인색함과다른여자와의만남을지적하면서도산뜻하고단호하게헤어짐을말한다.승민의인정처럼주영은“미약한계란이아니라반체제”이자,“사랑도무엇에도기대지않고너만의형식으로살아온독립된영혼”으로바로선다.그렇게또다시승민과작별을고한주영이마지막에마주하는것은탑만있는무인의절‘스투파’다.넓이를잴수없는하늘아래노을이깔리고,온통말과새들이대지를누빈다.더없이완전한풍경이자낙원인그곳에서그녀는문득다음과같은사실을깨닫는다.“해탈이거기있었다.”주영은오르페우스가뒤돌아본순간멀리떠나가는에우리디케다.오르페우스는자신이돌아보고붙들려했기에이모든사건이벌어졌다고생각하겠지만,소유가중요하지않은에우리디케에게정착하지않고떠나가는일은자연스러운것이다.대상에매이지않는그녀에게사랑했느냐는질문은무용하며,계속해서이동할수있는자유만이중요하다.세속의삶에결코길들여지지않으려는강석경의날짐승같은감각은,욕망을거듭꺼뜨리는가멸(加滅)의구도(求道)를거치며이제여기까지왔다.경주와인도너머중국과몽골에이르기까지아시아곳곳을두루어우르다마침내그가발견한툰드라.한국문학사에서새로개척해낸이영토는속세를함부로초월하지않고자신안에서고요히거듭멸하는자의품격이도달한자리다.추천사소설을다읽고나는어쩔수없이『숲속의방』의소양을떠올리지않을수없었다.이후,강석경의소설을죽따라읽어온나는『툰드라』에이르러작가의세상에대한비판이더욱매섭고도저해진것에놀랐다.문장의밀도와세계에대한인식에서는옹골찬근력마저느껴졌다.중산층의속물적인가치와가족주의에대한혐오와절망이소양을자살로몰았다면,『툰드라』의인물들은국가와제도의기만,‘도덕하는사람들’에맞서는길을선택한다.스스로가독립된반체제가되어자신의그늘자리를키운다.고통을피하기보다는잠자는의식을깨우쳐준것에긍정하며,누구의침해도받지않고호젓하게꿈꿀수있는고독의소파,구름위의인간을자처한다.그리하여몽골초원에서주영과승민의샤워는자유의세례를형상화한모습에다름아니다.돌마,소담,수랭,작드더러즈,그리고주영은우리를꿈속에젖게하는이름으로각인될것이다.여기에강석경이란이름을더하고싶다._이성아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