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 9인 테마소설집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 9인 테마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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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강출판사의 2023년 테마소설집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에는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이 쓴 남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만난 남자’, ‘나를 키운 남자’, ‘내가 키운 남자’, 살아오는 곳곳에 지뢰처럼 혹은 요람처럼 있었던 남자들을,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그려낸다.

모든 것이 남자들 탓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마운 남자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나를 밥 먹여 키워준 남자들, 내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준 남자들, 내게 상처를 줘서 결국은 성장하게 만든 남자들…… 여기 아홉 편의 소설들 역시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란 무엇인가, 곤혹스럽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물학적 남자를 떠나서 보편적 인간의 어느 한순간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다만 제각기 다른 아홉의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루는 풍경이 궁금할 뿐이다. _‘책머리에’에서
저자

김이정,박형숙,반수연,부희령,이경란,이성아,이수경,이후경,하명희

숭실대학교철학과를졸업하고,1994년[문화일보]에단편소설「물묻은저녁세상에낮게엎드려」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도둑게』,『그남자의방』과장편소설『길위에서중얼거리다』,『물속의사막』,『유령의시간』을출간했다.『유령의시간』으로제24회대산문학상을수상했다.

1960년,산으로둘러싸인경상북도안동에서태어나외국처럼낯설던제주도와저녁이면온하늘이홍시처럼붉어지는충청도바닷가를두루뛰어다니며자란것을큰축복으로생각한다.서울에올라온후,더이상뛰어놀데가없어들어간마을문고에서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보며세상에는아이들만을위한책도있다는걸처음알았다.그책들을읽으며내가커서작가가될거란생각은꿈에도하지않았는데어느날소설을쓰는사람이되었다.

소설집『네눈물을믿지마』를출간했다.

목차

책머리에

김이정|하이엔드라이프
박형숙|정화된밤
반수연|빅터아일랜드
부희령|콘도르는날아가고
이경란|다정모를세계
이성아|유대인극장
이수경|선량하고무해한휴일저녁의그들
이후경|사양관(斜陽館)
하명희|오래된서점에서

출판사 서평

■작가노트

김이정|하이엔드라이프

“오디오를좋아한다.때론음악보다오디오를더좋아하는게아닐까싶기도했다.어릴적집에있던진공관라디오부터지금듣고있는빈티지오디오까지,내가음악을들은기기들을생각하면가끔내인생전체를오디오의역사로봐도무방하지않을까싶다.한때오디오에빠져있을땐중고스피커나튜너,앰프를사러남의집을겁없이드나들었다.남자혼자있는집을방문해청음을하고무거운스피커를차에싣고오기도했다.집에와서케이블과안테나,잭을연결하는것도고스란히내몫이었다.전기와전파에대한이해도없이그것들을무사히연결해소리가나기까지의과정은늘어렵고힘들었다.간혹연결이잘되어아름다운음악이예고도없이흘러나올때도있었지만대부분잘못연결해서잡음이스피커를찢어버릴것처럼쏟아졌다.그때마다나는매뉴얼을읽지않는습관을탓했다.찾아보고읽어보면될것을나는늘무턱대고덤볐다.대부분기기를떠나보내고나서야무엇이잘못된것인지겨우이해했다.내겐남자들도마찬가지였다.감정이가는대로겁없이따라가고나중에후회했다.

어느밤,대리운전기사와이런저런이야기를하며집에도착했는데주차까지완벽하게해주고돌아가는그의뒷모습에울컥했다.힘껏곧추세운등뼈들사이로매서운바람이지나가고있었다.어쩔수없는내모습이었다.빈티지오디오가정이가듯남자도이젠연민의대상이되어버렸다.”

박형숙|정화된밤

“이소설은쇤베르크의「정화된밤」을모티브로썼다.본문에서인용된시는리하르트데멜의「두사람」의일부이다.쇤베르크의곡은어렵지만새로운자극을준다.공연장에서쇤베르크의「정화된밤」의연주를들은날도그랬다.기존의음악과는다른,뭐라말할수없는,불편하지만싫지는않은,언젠가있었던것같은,그런느낌이덮쳐왔다.그리고그날밤,나는쇤베르크의「정화된밤」의모티프가되었다는리하르트데멜의시를접했다.

남자는자신의유전자가섞이지않은아이를,그러니까다른남자의아이를받아들일수있을까?이런물음에대해리하르트데멜은그럴수있다고대답한다.같은물음을소설속의M씨에게던져보았다.M씨는속시원히답해주지않았다.하여나는M씨의일상과내면을,과거와현재를따라가볼수밖에없었다.

스스로를다른남자들과다르다고생각해왔던M씨에게도이문제는쉽게답할수있는문제가아니었던모양이다.M씨는과거와현재를오가며자신을반추하는가운데힘겹게자신의실제모습에가닿는다.이를지켜보는나는여성작가로서그의인간적인고뇌에한발더가까이다가갈따름이었다.M씨는보편적인남자(men)일까?아니면단지자신의상처에서자유롭지않은한남자(aman)일까?

1899년25세였던쇤베르크는3주만에이곡을작곡하였다고한다.처음에는청중들의반발을샀지만지금은19세기쇤베르크의대표곡으로손꼽힌다고하니그내용과형식모두급진적이었던것이분명하다.이곡에는쇤베르크가결혼하기전의감정이투영되었다고한다.그런데훗날그의아내는다른예술가를따라떠나고,쇤베르크는그후일체의감정을탈각시킨것같은무조주의로돌아섰다고하니,믿거나말거나이다.

핏줄은,혈연은늘옹호되어야할까?핏줄에대한집착은인간의본능이지만인간에게는종종이런본능을넘어서는감정이나행위가있다.물론핏줄에대한부정또한쉽게받아들여지기는어려울것이다.그러니정화된밤이란누구나맞이할수있는밤은아닌것같다.마치쇤베르크의까다로운음악처럼.”

반수연|빅터아일랜드

“남자가없는집에서자랐다.아버지는일찍죽었고오빠들은각자의가정으로가버렸다.마흔에과부가된어머니는함께사는네딸대신에죽은남자를원망하고오지않는아들을그리워하며평생을보냈다.어머니의생은남자의유령에서한시도벗어나지못했다.나의생은그런어머니의생과좀체유리되지못했다.나는남자를모른채남자가없는여자들에둘러싸여자랐다.

세상에남자없는이야기가어디있을라구,화끈한연애소설이나써야지.남성서사를써보자했을때재밌겠다며맞장구쳤던걸이소설을쓰는내내후회했다.나의대부분의성장과정속에서남자는부재했고남겨진여자는불행했다.그러니나는남자를몰랐다.평범한남자와결혼하고아들을낳아갓난쟁이가성인이될때까지키웠지만여전히나는남자를알수없었다.도대체남성서사라는게뭐란말인가.

산문집을내느라두달을한국에머물다어제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마감이지난작가노트를쓰려고노트북컴퓨터를열었다.집이캐나다에있으니돌아온다는표현을쓰긴하지만,비행기를타기전친구들에게보낸작별문자에는곧한국으로돌아오겠다,고썼다.언제부턴가어디가나의원점인지헷갈린다.어디로가는게돌아오는건지모르겠다.이젠돌아온다는표현을쓸때면모르는문제를받아든것처럼잠시골똘해진다.골똘해질수록더미궁이다.

모국어가없는곳에서그것의부재를써온시간이길었다.부재는존재를증명한다했던가.그건끊임없이모국과모국어를생각하는시간이었다.남자이야기를쓰는동안나는남자없는여자들의삶을더오래생각했다.남자의부재는여자의불행으로존재를증명하고있었을까.내가보고겪은삶은얼마간그랬다.하지만두어달남자이야기를쓰고나니그런생각이든다.모국과이국.남자와여자.어쩌면중요한건그게아닌지도모르겠다.이야기의마침표를찍고나니,원점이어딘지더모르겠다.그래서남자이야기가아니라그냥사람사는이야기가되어버린것도같다.”

부희령|콘도르는날아가고

“아버지가운전하던차가빙판길에서미끄러져교통사고가났다.내가열두살되던해겨울의일이다.아버지는오른팔과오른쪽다리에골절상을입었고꽤긴시간병원에머물렀다.어머니도이따금집에들를때말고는여러달동안얼굴을보기힘들었다.부모가없는집에서의생활은새롭고자유로워좋았으나,새학년으로올라가면서상황이바뀌었다.조숙하지만방치된아이로세상을대면하면서기이한경험을자주했다.이전에는세상사람들을막연히어른과아이로나누어생각했으나,이후로는남성과여성이라는범주가더선명해졌다.나이를먹어가면서머릿속에서사람들을분류하는방식은복잡하고다양해졌다.끼어드는범주나선입견없이,분류하지않고사람을만나기가꽤어려운일이되었다.

열두살여자아이의눈과목소리를다시꺼내쓰는일은상쾌했다.너무두툼한외투를입어서움직임이굼뜬상태로살아오다가겉옷을벗어던진느낌이었다.비로소본래의나로돌아온것같은과장된활력이샘솟았다.물론부처의말씀에의하면,세상에는나라는게없고또내가아닌것도없다.그러나열두살여자아이는내가바라는나의모습에가장부합했다.

숨어있던자아들이튀어나오기시작했다.담임선생으로부터“부모님들에게?10월유신’국민투표에꼭찬성해야한다고말씀드려라”라는말을들은적이있는나,온종일칠판만바라보고앉아있어야하는학교가싫어서과학실에불을지를계획을짜던나,사람들앞에서네번째까지딸인걸알고울음을멈출수없었다고말하는엄마를미워하던나,버스요금이없는줄알면서도무턱대고버스에탔다가차장언니에게쫓겨내려야했던나.그모든내가금지와권위의철조망으로휘감겨있던흑백의시절을총천연색으로다시살아보겠다고아우성을쳤다.”

이경란|다정모를세계

“오래미루어왔던충치치료를받고있다.치과만큼가기싫은곳이또있을까싶게치과치료는공포스럽다.외면해봤자호전될가능성은결코없다는점에서충치를인생의축소판으로간주해도될까.몇회에걸쳐신경치료를받았는데오래방치한탓으로신경을감싼세포들이석회화되어버려치료가까다롭다는지청구를들어야했다.그말이내게는삶에서어떤문제에봉착했을때겁내지말고정면으로돌파해야해결할수있다는말로확대되어들렸다.

세번째신경치료에서의사는‘파일’이라불리는가느다란도구를치아에꽂은채방사선사진을찍게했다.모니터에띄워진내치아에가늘고길쭉한침같은것이두개꽂혀있었다.신경의위치와방향을정확하게파악할때이렇게한다는걸처음알았다.놀랍다.저미세한선들이고통의근원이라는사실이.의사는모니터를확인한다음다시뾰족한기구로치아깊은곳을찔렀다.원인을정확하게찾아인정사정보지않고후벼파지않으면통증을없앨수없다.그것이두렵다면,혹은우물쭈물하다가기회를놓친다면,발치밖에방법이없을것이다.다음순서는이가뽑혀나간자리를텅비워두고상실을감내하거나,인공치아를이식하는것일테고.마취가된상태라통증은느껴지지않았고다만약간의압력이전달될뿐이었지만지레겁을먹고자꾸움찔거리게되었다.그러면서도비로소해결을향해한발내딛는안도감과뿌듯함이느껴졌다면내가너무얄팍한사람일까.

애초치료를받으려했던치아는사실다른것이었다.막상치과에가보니지금치료받고있는치아가더많이상해있었고,그양옆의치아도이미상한상태였다.이것들의치료가끝나면애초걱정되었던치아의치료를시작한다고했다.예상을벗어난진단과치료순서인셈이다.닮지않았나,인생과?

통증이느껴질때까지방치하면그대가를치르게되어있다는점에서몸은,치아는참으로정직하다.‘다정’은그것을몰랐을까.그럴리가.치료가마무리되면취약해진치아를잘보존하고돌보면서지내야할터이다.‘다정’도그쯤은알게되었을것이고.”

이성아|유대인극장

“해외여행을하면서두어번정도혐오발언의대상이된적이있다.한번은은발을곱게빗어넘긴자그마한할머니로부터,한번은10대백인소녀들로부터.그때알았다.혐오의언어는번역이필요없다는걸.

할머니에게그런말을들었을때는충격이너무커서아무런대응을하지못했다.하지만10대소녀들이우르르몰려가면서나를향해그런말을했을때는,나도가만있지않았다.나는내가알고있는욕설을줄줄이읊었다.물론한국말로.오해를살까봐변명을하자면,나는욕설을거의하지않는다.하지만한국어의찰진욕설은나의흥미로운채집대상이다.어떤상황에서는살떨리는모욕이되는말이,진한애정을표현하는말로둔갑하는걸볼때면한국말이신비롭다는생각마저든다.그렇게채집해놓은것이마침내진가를발휘했다.나는마치책을읽듯이욕설을나열했을뿐이었다.그런데소녀들이움찔하더니겁먹은강아지들처럼꽁지를내리고도망쳤다.나는욕배틀에서승리한것처럼쾌감마저느꼈지만,오랫동안뒷맛이개운치않았다.
그것이소설의씨앗이되었다.”

이수경|선량하고무해한휴일저녁의그들

““내가무섭니?”
언젠가,고등학생이었던아들에게장난삼아물었던적이있다.아이는그렇다고대답했다.좀억울한마음이들어서“엄마가그렇게무섭게하지는않았는데?너보다힘도약하고……”하고따지듯물었다.
그러자아이가내얼굴을똑바로바라보며이렇게대답했다.
“엄마라는존재자체가권력이니까요.그렇게물을수있으니까요.”
나는그말을오래생각했고,오래도록마음에두었다.
언젠가중학생소녀와부모의갈등을보여주고상담하는티브이프로그램을보다가딸아이가말했다.
“아빠가저러면더무섭죠,엄마보다.”
중학생소녀의아빠가그애의엄마보다특별히더무서울만한행동을하는것처럼보이지는않았으나,나는‘본능적으로’아이의말을이해할수있었다.

의도하지는않았지만,관계속에서주어지는권력.
스스로선택한것은아니었어도태생적으로갖게된힘.
그권력과힘에서느끼는폭력의가능성과두려움.

이소설이꼭‘남자’에관한이야기는아니었다.
그러나그옛날,어디에서든명석하고건강했던나의엄마가유약한‘남자’아버지의‘힘’앞에서는속절없이무너지던어떤날을잊을수는없을것같다.
나도모르게,그도모르게갖게된권력과힘에대한두아이의말.
이제는청년이된그들에게도주어질지모를그것에대한,아직은무해한이야기였다.”

이후경|사양관

“어떤이야기를쓰고싶었던가.이번소설은시작하기가어려웠다.마로니에꽃이피고지던토지문화관에서5월과6월을보내면서내내이소설에사로잡혀있었다.하지만실제로쓴시간은얼마안되고,무엇을쓸지결정하는데시간을다보냈다.이것저것마음에두었던이야기들을끄집어내어건드려보았으나매번엎어야했다.글이나가주지않았다.숨쉬듯눈이내리던아오모리의풍경만이계속눈앞을가로막았다.그이야기는안돼,나는고개를저었다.아오모리에서만난다자이오사무에대해선언젠가소설을쓰려고마음먹고있었지만그건여자에대한이야기였다.여자가아니면안되는이야기였다.이번소설은남자에대해써야했기에아예처음부터젖혀놓았던것이다.그런데도다른글은써지지않고봄이지나초여름에접어들도록내눈앞에는눈내리는풍경만이아른거렸다.나는소설을시작도못한채초조해하기만했다.

하염없이시간이흘러갔다.점심을먹고나면텅빈세미나실에들어가멍하니창밖을바라보았다.바람에흔들리는상아색마로니에꽃들이보였다.푸른나뭇잎의갈라진손가락을세었다.일곱개,마로니에나무는칠엽수로도불린다고했다.건물처마에집을지었는지작은새들이오르락내리락부산스러웠다.주인공을남자로바꿔써볼까,생각했다.눈내리는빈들판에중년의한남자가막막하게서있었다.그얼굴위로다시여자의얼굴이겹쳐졌다.남자의탈을씌운다고될얘기가아니었다.아무래도이번소설집에선빠져야겠다고포기하려는데문득,남자얘기를먼저쓰고여자얘기를나중에쓰면되잖아,하는생각이솟아났다.이글은‘사양관1’이고,나중에‘사양관2’를쓰는거야.그럼정말쓰고싶던얘기는나중에할거니까여기서는부담없이얘기를풀어도되잖아.

그생각이겨우소설을시작하게해주었다.글은,여전히머뭇머뭇,잘나가주지않았지만도망만치지말자고나를달랬다.그런데처음을벗어나니오히려이글이원래쓰려던글인것처럼편해졌다.낯선‘현준’을조금씩알아가는일이설렜고,‘유경’이피아노를치는여자란것도알게되었다.유경의얘기를먼저썼다면현준은전혀다른사람이되었으리라.아니,아예존재하지않았을수도있었다.유경도피아노하곤거리가먼여자가되었을지도몰랐다.이글을먼저썼어야했다.나는현준이좋아졌으니까.피아노를치는유경도마음에드니까.애인과이별하고,친구와사별하고홀로떠난눈의나라에서비로소상실의슬픔을제대로바라보는한남자한테나는서서히스며들었다.”

하명희|오래된서점에서

“고등학교때부터알고지냈던서점이문을닫는다는기사를본것이몇해전이었다.그날나는집에서나와말그대로정처없이걸었다.걷다보니내가살았던동네였고,또걷다보니어느새서점이었다.그날서점에는어딘지쓸쓸해보이고무언가를찾는듯한사람들이하나둘씩모여들었다.그들은그동안서점에오고가던추억을풀어놓으며서점주인에게인사를하러들른사람들이었다.나는디귿자책장구석에앉아그들의이야기를엿듣다가뜻밖에도당혹스런기억과마주하게되었다.

벽에는삼십년전상연되었던연극포스트가붙어있었다.그연극을보지는못했지만포스터만은기억하고있었다.몸을잔뜩웅크리고할말을찾지못하던열일곱의내가떠올랐다.그러자기억속에묻어두었던,연극을같이보자고했던그애도딸려나왔다.도대체이작은서점은내게무엇이었을까.얼마나많은기억이숨어있는것일까.그날부터한달동안직원처럼매일서점을드나들었다.

나는하루에딱하나만이서점이좋았던점을적어나갔다.하루종일책을봐도눈치를주지않았던것,오로지책속으로들어갈수있었던것,책을읽다가지겨울땐서점에온사람들을구경할수있었던것,그들의꿈이나일상을엿들어도아무도뭐라고하지않았던것,외로울땐아무말안하고고독할수있었던것,책을안사고도그냥나올수있었던것,책을읽을수록이상하게더고독해졌던것.좋았던것들은날마다쌓여갔다.그리고한달이다되어갈때나는이렇게적었다.몇년이지나다시가도그곳에이서점이있었던것.이서점을드나들땐내가소설가가될지몰랐지만막연하게이야기를쓰는사람이되고싶어했던시작이이서점이었다는것도깨달았다.그제야이소설의첫문장이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