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강출판사의 2023년 테마소설집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에는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이 쓴 남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만난 남자’, ‘나를 키운 남자’, ‘내가 키운 남자’, 살아오는 곳곳에 지뢰처럼 혹은 요람처럼 있었던 남자들을,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그려낸다.

모든 것이 남자들 탓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마운 남자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나를 밥 먹여 키워준 남자들, 내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해준 남자들, 내게 상처를 줘서 결국은 성장하게 만든 남자들…… 여기 아홉 편의 소설들 역시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란 무엇인가, 곤혹스럽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물학적 남자를 떠나서 보편적 인간의 어느 한순간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다만 제각기 다른 아홉의 남자들이 한데 모여 이루는 풍경이 궁금할 뿐이다. _‘책머리에’에서
저자

김이정, 박형숙, 반수연, 부희령, 이경란, 이성아, 이수경, 이후경, 하명희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도둑게』 『그 남자의 방』 『네 눈물을 믿지 마』,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유령의 시간』이 있다. 『유령의 시간』으로 제24회 대산문학상 수상.

목차

책머리에

김이정 | 하이엔드 라이프
박형숙 | 정화된 밤
반수연 | 빅터 아일랜드
부희령 | 콘도르는 날아가고
이경란 | 다정 모를 세계
이성아 | 유대인 극장
이수경 |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
이후경 | 사양관(斜陽館)
하명희 | 오래된 서점에서

출판사 서평

■ 작가 노트

김이정 | 하이엔드 라이프
“오디오를 좋아한다. 때론 음악보다 오디오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진공관 라디오부터 지금 듣고 있는 빈티지 오디오까지, 내가 음악을 들은 기기들을 생각하면 가끔 내 인생 전체를 오디오의 역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오디오에 빠져 있을 땐 중고 스피커나 튜너, 앰프를 사러 남의 집을 겁 없이 드나들었다. 남자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해 청음을 하고 무거운 스피커를 차에 싣고 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케이블과 안테나, 잭을 연결하는 것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전기와 전파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것들을 무사히 연결해 소리가 나기까지의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었다. 간혹 연결이 잘되어 아름다운 음악이 예고도 없이 흘러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못 연결해서 잡음이 스피커를 찢어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매뉴얼을 읽지 않는 습관을 탓했다. 찾아보고 읽어보면 될 것을 나는 늘 무턱대고 덤볐다. 대부분 기기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겨우 이해했다. 내겐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가는 대로 겁 없이 따라가고 나중에 후회했다.
어느 밤, 대리운전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힘껏 곧추세운 등뼈들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박형숙 | 정화된 밤
“이 소설은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모티브로 썼다. 본문에서 인용된 시는 리하르트 데멜의 「두 사람」의 일부이다.
쇤베르크의 곡은 어렵지만 새로운 자극을 준다. 공연장에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연주를 들은 날도 그랬다.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하지만 싫지는 않은, 언젠가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리하르트 데멜의 시를 접했다.
남자는 자신의 유전자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그러니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리하르트 데멜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같은 물음을 소설 속의 M씨에게 던져보았다. M씨는 속 시원히 답해주지 않았다. 하여 나는 M씨의 일상과 내면을,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왔던 M씨에게도 이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M씨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을 반추하는 가운데 힘겹게 자신의 실제 모습에 가닿는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여성 작가로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따름이었다. M씨는 보편적인 남자(men)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 남자(a man)일까?
1899년 25세였던 쇤베르크는 3주 만에 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중들의 반발을 샀지만 지금은 19세기 쇤베르크의 대표곡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그 내용과 형식 모두 급진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 곡에는 쇤베르크가 결혼하기 전의 감정이 투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훗날 그의 아내는 다른 예술가를 따라 떠나고, 쇤베르크는 그 후 일체의 감정을 탈각시킨 것 같은 무조주의로 돌아섰다고 하니, 믿거나 말거나이다.
핏줄은, 혈연은 늘 옹호되어야 할까? 핏줄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인간에게는 종종 이런 본능을 넘어서는 감정이나 행위가 있다. 물론 핏줄에 대한 부정 또한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정화된 밤이란 누구나 맞이할 수 있는 밤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쇤베르크의 까다로운 음악처럼.”

반수연 | 빅터 아일랜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오빠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가버렸다. 마흔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함께 사는 네 딸 대신에 죽은 남자를 원망하고 오지 않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보냈다. 어머니의 생은 남자의 유령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생은 그런 어머니의 생과 좀체 유리되지 못했다. 나는 남자를 모른 채 남자가 없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세상에 남자 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을라구, 화끈한 연애 소설이나 써야지. 남성 서사를 써보자 했을 때 재밌겠다며 맞장구쳤던 걸 이 소설을 쓰는 내내 후회했다. 나의 대부분의 성장 과정 속에서 남자는 부재했고 남겨진 여자는 불행했다. 그러니 나는 남자를 몰랐다.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갓난쟁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지만 여전히 나는 남자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남성 서사라는 게 뭐란 말인가.
산문집을 내느라 두 달을 한국에 머물다 어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마감이 지난 작가노트를 쓰려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 집이 캐나다에 있으니 돌아온다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기 전 친구들에게 보낸 작별 문자에는 곧 한국으로 돌아오겠다, 고 썼다. 언제부턴가 어디가 나의 원점인지 헷갈린다. 어디로 가는 게 돌아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젠 돌아온다는 표현을 쓸 때면 모르는 문제를 받아 든 것처럼 잠시 골똘해진다. 골똘해질수록 더 미궁이다.
모국어가 없는 곳에서 그것의 부재를 써온 시간이 길었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했던가. 그건 끊임없이 모국과 모국어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남자 이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남자 없는 여자들의 삶을 더 오래 생각했다. 남자의 부재는 여자의 불행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을까. 내가 보고 겪은 삶은 얼마간 그랬다. 하지만 두어 달 남자 이야기를 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모국과 이국. 남자와 여자. 어쩌면 중요한 건 그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고 나니, 원점이 어딘지 더 모르겠다. 그래서 남자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도 같다.”

부희령 | 콘도르는 날아가고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가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교통사고가 났다.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겨울의 일이다. 아버지는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꽤 긴 시간 병원에 머물렀다. 어머니도 이따금 집에 들를 때 말고는 여러 달 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의 생활은 새롭고 자유로워 좋았으나,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조숙하지만 방치된 아이로 세상을 대면하면서 기이한 경험을 자주 했다. 이전에는 세상 사람들을 막연히 어른과 아이로 나누어 생각했으나, 이후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가 더 선명해졌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사람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끼어드는 범주나 선입견 없이, 분류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기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열두 살 여자아이의 눈과 목소리를 다시 꺼내 쓰는 일은 상쾌했다. 너무 두툼한 외투를 입어서 움직임이 굼뜬 상태로 살아오다가 겉옷을 벗어 던진 느낌이었다. 비로소 본래의 나로 돌아온 것 같은 과장된 활력이 샘솟았다. 물론 부처의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는 나라는 게 없고 또 내가 아닌 것도 없다. 그러나 열두 살 여자아이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가장 부합했다.
숨어 있던 자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으로부터 “부모님들에게 ‛10월 유신’ 국민투표에 꼭 찬성해야 한다고 말씀드려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나, 온종일 칠판만 바라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학교가 싫어서 과학실에 불을 지를 계획을 짜던 나, 사람들 앞에서 네번째까지 딸인 걸 알고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를 미워하던 나, 버스 요금이 없는 줄 알면서도 무턱대고 버스에 탔다가 차장 언니에게 쫓겨 내려야 했던 나. 그 모든 내가 금지와 권위의 철조망으로 휘감겨 있던 흑백의 시절을 총천연색으로 다시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이경란 | 다정 모를 세계
“오래 미루어왔던 충치 치료를 받고 있다. 치과만큼 가기 싫은 곳이 또 있을까 싶게 치과 치료는 공포스럽다. 외면해봤자 호전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점에서 충치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간주해도 될까. 몇 회에 걸쳐 신경 치료를 받았는데 오래 방치한 탓으로 신경을 감싼 세포들이 석회화 되어버려 치료가 까다롭다는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그 말이 내게는 삶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겁내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확대되어 들렸다.
세번째 신경 치료에서 의사는 ‘파일’이라 불리는 가느다란 도구를 치아에 꽂은 채 방사선 사진을 찍게 했다. 모니터에 띄워진 내 치아에 가늘고 길쭉한 침 같은 것이 두 개 꽂혀 있었다. 신경의 위치와 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 이렇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놀랍다. 저 미세한 선들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의사는 모니터를 확인한 다음 다시 뾰족한 기구로 치아 깊은 곳을 찔렀다.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인정사정 보지 않고 후벼 파지 않으면 통증을 없앨 수 없다. 그것이 두렵다면, 혹은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친다면, 발치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다음 순서는 이가 뽑혀 나간 자리를 텅 비워두고 상실을 감내하거나, 인공 치아를 이식하는 것일 테고. 마취가 된 상태라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약간의 압력이 전달될 뿐이었지만 지레 겁을 먹고 자꾸 움찔거리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비로소 해결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얄팍한 사람일까.
애초 치료를 받으려 했던 치아는 사실 다른 것이었다. 막상 치과에 가보니 지금 치료받고 있는 치아가 더 많이 상해 있었고, 그 양옆의 치아도 이미 상한 상태였다. 이것들의 치료가 끝나면 애초 걱정되었던 치아의 치료를 시작한다고 했다. 예상을 벗어난 진단과 치료 순서인 셈이다. 닮지 않았나, 인생과?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방치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몸은, 치아는 참으로 정직하다. ‘다정’은 그것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치료가 마무리되면 취약해진 치아를 잘 보존하고 돌보면서 지내야 할 터이다. ‘다정’도 그쯤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성아 | 유대인 극장
“해외여행을 하면서 두어 번 정도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한번은 은발을 곱